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31화 (31/309)

00031 2. 말할 수 있는 것, 말할 수 없는 것 =========================

신뢰라며.

‘띠링!’

<기본적으로 의문을 갖는 것까지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아 이 자식 말이나 못하면.

<저를 본받아 기리인군도 언변을 조금 더 연습하는 게 어떻습니까? 91이라는 수치가 믿기지가 않습니다.>

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톨라츠 아저씨와 에빌로 누나가 짐을 정리하고 잘 준비를 하는 가운데, 아직 에아임 형만 포기하지 않고 내 앞에서 팔짱을 끼고 뚱한 표정을 지은 채 앉아 있다.

“한 번만 쏴 보자니까?”

“형, 몇 번 말씀드렸잖아요. 이 활은 그냥 공격발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화살 내가 찾아다 준다니까?”

“형님, 대체 왜 이리 이 활에 그렇게 집착하시는 겁니까?”

발끈하려던 에아임 형은 깊이 숨을 내쉬었다. 아쉽다. 발끈했으면 죄송합니다 하고 납죽 엎드린 후, 형이 체면상 아니다 나도 어른답지 못했다 하는 걸 기다렸다가, 그럼 화해하고 활은 집어넣죠, 이렇게 나오려고 했는데.

“대장으로서 대원들의 정확한 전력이나 그 이유에 대해 아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사시에 그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가 난다. 분명히 아까 네가 보여준 모습은 언어도단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꽤 많은 전투 경험이 있지만, 200보 거리에서 곡사가 아닌 직사로 그것도 충격으로 인해 배가 흔들릴 정도의 화살을 날릴 수 있다는 건 말도 안 돼.”

형은 한껏 진지하게 말했다. 아. 이러면 경청하지 않을 수 없잖아.

“너는 자신이 마법을 잃었다고 했다. 그 말은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저 활이 어떤 금지된 요소를 사용하지 않았는가 알고 싶다. 아니, 알아야 한다. 이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왔다! 역습의 찬스다!

“왜요?”

“응?”

“왜 형님이 그런 금지된 요소가 쓰였는지 알아야 하시는 거에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면서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하는 에아임 형님. 그렇겠지. 말 안하려고 성까지 바꿔가면서 억지로 숨기고 있는 비밀인데. 나는 ‘순수하게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계속 에아임 형님을 바라보았다. 형님은 앉은 자리가 갑자기 약간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는지 움찔거리다가, 시선을 피했다. 됐다.

“이 활은 두 달동안 저에게 활을 가르쳐 주신 은사님께서 주신 겁니다. 수도에 있는 디오틀라라는 장인분이 만드신 활이라고-”

그런데, 갑자기 에아임 형님이 귀가 번뜩 뜨였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디오틀라? 디오틀라라고 했어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은 에아임 형. 나는 놀라서 어버버거리며 말했다.

“어, 네. 저에게 활을 전해주신 분이 그렇게...”

그런데 이게 웬일. 형님은 모든 문제가 다 풀렸다는 얼굴로 편하게 주저앉았다.

“어쩐지. 디오틀라 님이라면 그럴 만 하지.”

“아시는 분이세요?”

“알다마다. 제도의 장인들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분이지. 다른 네 분의 장인이 자기 기술을 극한까지 연마해 전통적인 제품들 중 명품을 뽑아내는 분이라면, 디오틀라 님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 분이라고들 한다.”

새삼 다른 눈으로 내 활을 바라보던 에아임 형님은, 무릎걸음으로 두어 걸음 다가와 내 활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겨보지 않을테니, 잠깐 만져봐도 괜찮을까?”

확연히 달라진 태도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아임 형은 마치 미술품을 만지는 듯한 손길로 활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쓰다듬었다.

“이게 활이라는 걸 믿기가 참 쉽지 않군.”

에아임 형이 멍하니 말한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도 처음 받았을 때 그렇게 생각했어요.”

에아임 형이 손을 뗐다. 나는 무언의 허락이 떨어졌다고 생각해 케이스를 닫고 활을 내 짐이 있는 쪽에 치웠다. 역시 에아임 형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활과 화살을 정리하고 다시 에아임 형의 앞에 다가오자, 에아임 형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기리인. 미안하다.”

“네?”

“너에게 얘기해줘야 하는 것이 있지만, 지금은 말할 수가 없다.”

그렇게 말한 형은 톨라츠 아저씨와 에빌로 누나 쪽을 잠시 돌아본 후,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두 사람은 나와 계속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만약 위험이 생기더라도 함께 견뎌갈 수 있다. 하지만 기리인 너는 달라. 만에 하나 위험한 일이 생기면 그건 고스란히 나와 우리의 책임이 된다. 내가 너에게 얘기해줘야 하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는 너에게 그런 위험부담을 지워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에아임 형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형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이 들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나 역시도, 위험부담 때문은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으니, 형 입장에서는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은 부담스러운 화제를 지우듯 손을 한두번 허공에 휘젓더니 – 참 특이한 제스처다, 하고 생각했다 – 약간은 밝아진 어투로 말했다.

“나중에, 우리가 좀 더 친해지고 너에게 필요할 때가 오면, 나는 너에게 얘기하지 못한 것들을 얘기해 줄게. 그 때는...”

“저도 제가 얘기하지 못한 것들을 말해드릴게요.”

에아임 형은 고개를 두세 번 끄덕거리더니, “늦었다. 쉬렴. 난 뒤처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해보고 올게.” 이러면서 선실의 방문을 나섰다. 돌아보니 톨라츠 아저씨와 에빌로 누나는 이미 자리를 펴고 있었다.

“오늘은 일단 다 같이 자자. 내일은 선실을 재배치해 줄 거야.”

톨라츠 아저씨의 말에 나도 내 배낭 안을 뒤져 모포를 꺼내 몸 위에 덮고, 배낭을 베개삼아 자리에 누웠다. 바닥이 맨 나무바닥이 아니라 깔개가 깔려 있어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아저씨와 누나는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는지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 그러지 못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두운 선실 천장을 보며 나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아까 내가 활을 당기고 마나를 불어넣던 장면, 화살이 화염의 창이 되어 허공을 가로지르던 장면, 그리고, 마수화된 백곰의 머리와 목이 불타듯 뻥하고 뚫려 날아가고, 그 커다란 몸이 몇 번 비틀대다가 앞으로 쿵 하고 쓰러지던 그 장면. 심장이 진정이 잘 되지 않는다.

아, 그래.

이번이, 내가 활로 살아있는 걸 쏘아 죽인 첫 경험이었구나.

---

“기리인, 일어나.”

한참동안 천장을 바라보며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했던 기억이 나는데, 언제 잠들었던 걸까. 어느새 선실 밖이 환해져 있었다. 에아임 형이 나를 흔들고 있었다.

“아침이네... 안녕히 주무셨어요 형님.”

“그래. 일어나라. 밖에 구경가자.”

구경? 나는 모포를 개어 배낭에 집어넣고, 기지개를 켜며 선실을 나섰다. 내 앞에서 걸어가는 에아임 형은 배의 후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는 형을 따라 배의 후미갑판으로 갔다. 그리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론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북부 영지의 주요 생산물 중에는 호수 건너 대수림에서 채취하는 목재가 있다. 그걸 잘라서, 가지를 쳐낸 후, 열 개씩 스무 개씩 튼튼한 덩굴로 단단히 엮는다. 그리고, 그냥 아래로 띄워보낸다. 그러면 호수의 아래쪽, 이 부두 근처에 모이게 되고, 마치 배가 정박하듯 호수 기슭과 부두 근처에 통나무를 단단히 엮은 뗏목들이 떼로 모여있게 된다.

하지만 그 광경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우와...!”

반대편이 가물거릴 정도로 잘 보이지 않는 큰 호수를 뗏목들이 잔뜩 메우고 있었다. 작고 큰 똇목마다 나무꾼 아저씨들이 한 명씩 타고, 서서히 호수를 빠져나가 니아트 강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침 안개 속에서 움직이는 아저씨들의 모습은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종족들의 벌목꾼 같았다. 호수의 유장한 흐름 속에 아저씨들은 느긋했다. 긴 막대기를 삿대 삼아 이리저리 저어 방향을 잡으며 똇목은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이거 이거, 정말 멋진 광경이군요.”

톨라츠 아저씨와 에빌로 누나가 에아임 형과 내 곁에 와서 섰다.

“그러게. 이렇게 뗏목을 엮어 내려보낸다고 어디서 듣기는 들었는데 본 건 처음이야.”

“저 뗏목을 타고 내려가 나무를 팔아서 버는 돈을 ‘떼돈을 번다’고 하는 모양이더라구요.”

에빌로 누나가 약간 크게 물었다.

“그럼 그 떼돈이 여기서 온 거라고?”

“어, 네. 아마 그럴 거에요.”

누나는 별 말 없이 뗏목들이 줄지어가는 장면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얼마나 보고 있었을까. 남은 뗏목들이 상당히 수가 줄었을 때, 누군가 우리 뒤에서 다가왔다.

“손님분들.”

어, 기억에 있는 목소리다. 아마...

“이그코 님?”

“이름을 기억해주니 고맙네. 에아임 님.”

형은 몸을 돌려 이그코 님을 바라보았다.

“네, 여기 있습니다.”

“상단주님의 전갈입니다. 떼가 다 빠져나간 후에 배들도 떼를 따라 내려갈 겁니다. 떼보다 앞서 가면 문제가 있을 때 배가 떼에 상처를 입기 때문에 일부러 뒤에 출발하는 겁니다.”

“느리겠군요?”

이그코 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래도 미틱 시에 이르는데 평소보다 1~2일 정도 더 걸릴 것 같습니다.”

“그 정도라면야, 여행을 조금 더 길게 즐긴다고 생각하면 되겠군요.”

“저를 따라오십시오.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고 출발하겠습니다.”

우리 일행은 이그코 님을 따라 배를 내려갔다. 내려가기 전, 나는 다시 한 번, 저 뗏목떼의 흐름을 바라보았다. 아. 저 분들은 걱정 하나 없이 느긋해 보인다. 이제 큰 돈을 만지고, 분명 도시의 닳고 닳은 상인들 창녀들에게 쪽쪽 빨리고, 푼돈만 쥐고 돌아오겠지. 그럼에도 그 모든 것들이 뭐 어떠냐는 듯 나무꾼들은 여유롭게 보였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는 생각을 잠시 하며, 나는 등을 돌려 이그코 님과 우리 일행을 따라갔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에 2챕터가 끝납니다.

저 떼돈은 진짜 떼 팔아서 얻은 돈입니다. 강원도 쪽에서 유래한 말이라더군요.

제르디엘 님 코멘트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나 힘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추코쿠 주고 가시면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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