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33화 (33/309)

00033 2. 말할 수 있는 것, 말할 수 없는 것 =========================

선장실에서 선장님과, 상단주님과, 우리 네 사람이 간단한 식사 - “출발이 늦은데다 올해는 유속이 느려 갈 길을 재촉해야 해서, 정박하지 못하니 어려운 식사를 만들기 힘듭니다. 이 정도의 식사를 내놓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선장님이 가져오게 한 식사는 빵과 버터, 으깬 감자, 베이컨 같은 거였다. 소박했지만, 따뜻해서 맛있었다. - 를 마치고 차까지 얻어마시고 나서 우리는 갑판으로 나섰다. 에아임 형이 오른쪽을 보다가, 말했다.

“저기 있군. 기리인. 저기를 봐라.”

강 건너편. 대수림이 끝난 그곳에, 키가 내 허리까지 오는 노란색과 초록색의 풀이 가득 심겨진 너른 밭이 펼쳐졌다.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까지 뻗어있는 너른 밭.

거기에 흰 머릿수건을 쓰고 역시 흰 천으로 입을 가린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바구니를 허리에 끼고, 가끔씩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나며 뭔가를 하고 있었다. 아... 풀에서 뭔가를 떼어내고 있구나. 뭘까. 허리아프겠다. 나에게서 한 100걸음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매우 많이 움직이고 있었다. 한 쪽에는 큰 통이 있고, 바구니를 들고 허리를 두드리며 다가가는 흰 천을 뒤집어쓴 아줌마 아저씨들이 바구니에 모인 것을 그 큰 통 안에 쏟아붓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눈을 의심했다. 저 멀리서, 챙이 넓은 모자를 쓴 한 남자가, 팔을 크게 휘둘렀다. 그 팔에는 검고 낭창거리는 것이 쥐어져 있었다. 저건, 채찍이다! 검은 채찍에 맞은 한 남자가 몸을 오그리며 땅을 뒹구는 모습이 보이고, 잠시 후. 쐐액! 채찍 소리가 뒤늦게 도착했다.

“저, 저거!”

내가 놀라 형들을 돌아보자 형과 아저씨와 심지어 누나마저도 내 눈을 피했다.

“...”

나는 에아임 형이나 아저씨, 누나가 내 눈을 피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하지만 저건, 노예잖아요? 노예를 동원한 농업은 치르낙 대왕 이래...”

“금지지. 그 이후로 남쪽에서는 노예가 아닌 자유민들에게 영지를 주고 소작료를 받는 방식이 일반화되어 있어.”

대답하는 에아임 형의 목소리도 아까보다는 좀 어두워진 느낌이었다.

“...그럼 저거 알고서 그러는 거에요? 누가 감히?”

“이 북부 영지에서 저런 짓을 저런 규모로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겠니.”

“그럼 대공 전하가? 대체 왜...”

나는 묻기 전에 생각에 잠겼다. 치르낙 대왕께서 모든 영주들을 납득시킨 대로, 자유민이 농사짓는 게 훨씬 적극적이기 때문에 소출이 많으며, 따라서 영주들에게 돌아가는 이득도 많다.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 이 대수림 아래의 땅은 비옥하지는 않지만 모자라지도 않다. 소작을 주겠다고 하면 여기로 일시적으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 사람들을 이용하지 못했다는 것은...

“저 농작물이 대체 뭐길래 그러는 건가요?”

“시바낙(sibannac)이야.”

“시바낙?”

“정확히는 저 시바낙 풀의 잎과 줄기에 맺히는 하얀 진액을 말하지.”

“저 풀은...”

조용한 말투로 에빌로 누나가 말했다.

“잎이나 줄기를 자르면 진액이 나오지 않아. 나와서 하얗게 굳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 그리고 그 진액은 뛰어난 마취 효과를 가지고 있어.”

“그런데 왜 저렇게 노예들까지 동원해서...”

“왜냐고?”

대답하는 에아임 형의 얼굴도, 곁에서 지켜보는 톨라츠 아저씨와 에빌로 누나의 얼굴도 어두웠다.

“저 풀의 표면에는 하얀 솜털이 잔뜩 붙어있어. 저 솜털은 몸에 매우 안 좋다. 저 근처에 오래 있으면 기침병에 걸리거나, 피부병에 걸려서 온 몸을 긁거나 하게 되지.”

“그럼...”

“그래. 시바낙은 그래서 소규모로만, 작업 시간이 길지 않을 정도로만 키운다. 중부나 중남부의 농민들이 밭 옆에 한 평 정도 되는 공간에만 심어서 용돈벌이 정도로만 키우는 작물이지. 그러다보니 극도로 비싸고, 약을 만드는 용도 이외에는 구하기도 어렵다.”

“그랬던 것이 최근에 시바낙이 대량으로 풀리게 되었단 말이죠.”

“맞습니다. 문제는... 시바낙에서 나온 흰 가루를 불에 살짝 그을리면, 마약(痲藥)이 된다는 점입니다.”

마약?

“환각을 보게 하거나, 환청을 듣게 하거나, 묘한 감각을 받게 하거나... 해 본 사람에게서 얘기를 들어보니, 소리를 보고, 그림을 맛보는 등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하더군. 평생 잊을 수 없는 광경이라 언제든 다시 하고 싶은 그런 감각이라고.”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른의 이야기를 한다는 뿌듯함은 어느새 날아간 지 오래였다.

“마약이라고 불린다면... 중독성이 심하다는 말 아니에요.”

“그렇지. 사람을 폐인 만들기 딱 좋아. 실제로도 그 때문에 문제가 많이 되고 있고.”

“그럼, 그럼 저건 범죄잖아요!”

나는 간신히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봐. 에아임 형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이봐, 기리인. 저걸 누가 하고 있는지 잊었냐.”

아, 북대공 전하가... 그래, 우리가 범죄를 신고하면, 그걸 수사하는 사람은...

“북대공 전하에게 입막음만 당하면 다행이지. 우리를 어떻게든 쥐도새도 모르게 없애려고 난리칠지 몰라.”

“어떻게... 그 돈 벌자고 사람의 목숨을...”

나는 너무나 충격을 받아 저런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톨라츠 아저씨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기리인군. 내가 점심 먹기 전에 해 줬던 이야기 기억납니까? 목재 이야기와 목줄 이야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톨라츠 아저씨가 말했다.

“북대공 전하는 분명 저 시바낙 추출물을 내다 팔아 큰 돈을 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리인 군도 북대공 전하를 봤겠지만, 그 분이 사치나 향락을 즐기는 분이시던가요?”

아니, 아니다. 아카데미 졸업식장에 상 주러 오실 때도, 병자를 병문안할 때도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다니는 천상 무골이다. 그 분 덕에 북부 대요새에서 거주하거나 근무하는 귀족들도 사치를 차마 부리지 못하지. 내가 고개를 젓자 톨라츠 아저씨는 계속 말했다.

“기리인 군. 경제라는 말의 근원은 경세제민(經世濟民),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데서 기인합니다. 대공 전하가 개인적인 축재를 하지 않으면서도 그 막대한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은, 점점 줄어드는 중부와 제도의 지원에 덜 의지하고자 함이고, 또한 제도가 씌우는 목줄로부터 벗어나고자 함이죠. 그리고 그 돈을 고스란히 북부 대요새에서 필요한 생필품과 식량, 각종 물자 등을 구매하는데 쓰고 있습니다.”

나는 순간 내 선실 안에 있을 내 배낭, 거기에 담긴 금화들을 떠올렸다. 라루트 님이 내 준 금화가, 대공 전하께서 나에게 상으로 내렸던 60드로그의 금화가, 노예들이 병을 일으키는 식물 곁에서 채찍을 맞아가며 딴 마약을 팔아서 번 것이라니. 욕지기난다.

내 표정을 지켜본 에아임 형이 내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 아무리 맑은 물이라도 잉크를 한 방울 타면 모두 검게 되는 것처럼, 목적이 선하다 한들 저런 악한 수단을 쓰면 악을 낳는 결과밖에 안 되지. 그 결과로 북대공령의 사람들이 모두 윤택하게 살 수 있다고 한들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 해서 예를 들어 에빌로 씨에게 화염 마법으로 저 밭을 불태워 달라고 해 보자고. 그럼 당장 북부의 수만의 사람들이 덜 입고 덜 먹어야만 하지.”

에아임 형은 두드리던 것을 멈췄지만 계속해서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말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거야. 알아도 말하지 못할 것들도 생기고, 선과 악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지. 악인 줄 알아도 당장은 손을 못 대기도 하고. 참아야 하는 일들도 많아지지.”

하늘을 잠시 바라보던 에아임 형은, 톨라츠 아저씨와 에빌로 누나를 잠시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에아임 형은 나를 향해 돌아섰다.

“기리인.”

“네, 형.”

“미틱에 도착하면 우리를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말은 간단하지만 형의 얼굴은 지극히 진지하고 무거웠다. 아주 말하기 힘든 내용을 말한다는 투로 던져진 저 말에 나는 간단히 도와주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뭘 도와드려야 하는 건데요?”

에아임 형은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선원들 몇 명 외에는 갑판은 비어 있었다. 에아임 형은 내 어깨를 잡은 손을 자기 쪽으로 가까이 당겨, 내 귓가에 입을 가져다대고 말했다.

“놀라지 말고 들어. 너 정도면 어디 가서 엉뚱한 소리 안 할 것 같아서 말해주는 거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형은 내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내 본명은 에아임 로그푸스. 제국 2급 수사(搜査)기사다. 지금 저 시바낙과 관련된 일 때문에 상단 관계자로 위장하고 있는 거야.”

나는 놀란 티도 못 낼 정도로 그 자리에 바짝 굳어버렸다. 이게 무슨 일이래. 에아임 형의 말이 이어졌다.

“톨라츠 씨는 트리클 사제시다. 트리클 신전의 이단심문관으로 10년째 일하고 계시는 베테랑이다. 나와는 자주 같이 일을 하는 사이지. 에빌로 양은 수사와 관련된 심리 마법을 전문으로 하는 마법사다. 수사기사를 수행하는 마법사인 셈이지.”

나는 다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야말로 정말 어디 가서 말할 수 없는 일이구만.

‘띠링!’

<서브 퀘스트 – 시바낙 커넥션 (1)>

<당신은 에아임 일행의 정체와, 북부 영지와 시바낙의 관계에 대해 들었습니다. 당신은 북부 영지 주민들, 당신이 떠나온 고향 사람들을 굶주리고 추위에 떨게 하면서 정의를 추구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에아임 일행의 말을 무시하고, 저 노예들이 시바낙을 따다 고통받고 죽어가는 걸 그냥 잊어버리겠습니까?>

<선택하세요>

============================ 작품 후기 ============================

처음으로 연참을 했네요.

2부가 끝났습니다.

내일 점심때는 짧은 막간극을 연재하겠습니다.

제르디엘 님 // 이 게임은 동시진행 온라인 게임이 아닌 싱글 게임입니다. 대륙과 역사와 NPC들이 주어지고, 그 위에서 플레이어가 플레이하는 거죠. 물론 싱글 게임만은 아니지만 그건 다음에 자세히 밝힐 기회가 있을 겁니다.

genessis 님 //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이문세 님 // 용사파티...까진 아니고 ㅎㅎ;; 첩보물이나 수사물이라고 해야 하나요? 특공대? 암튼 그런 겁니다 ㅋㅋ

크리스펠로 님 // 늘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오랜만입니다. 코멘 여러개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게임에 관해) 주인공이 자아가 있다고 느끼는 게 사실은 플레이어가 주인공을 조종한 것을 주인공의 시점에서 '저건 내가 한 행동이야'라고 인식하는 것인 거죠. 말씀하신 대로 어찌 보면 겜시스템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물론 저런 겜을 그냥 냈다가는 안 팔릴 것 같긴 합니다만 ^^;;;

(주인공에 관해) 정의구현 ㅇㅈ 플레이보이 ㅇㅈ 언제나 당하는 주인공만 키울수는 없죠 ㅋ 적극적으로 나서는 주인공도 있어야죠.

(리미에 관해) 나중에 다시 나올지 어쩔지는 지금은 아직 미정입니다. 플레이보이니까 또 다른 꽃으로 날아가야 ㅋ;;;;

(천재에 관해) 전에 얘기나눴던 걸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저도 기억합니다 ㅋㅋㅋ

(네이밍 센스에 관해) 제 네이밍 센스야 뭐 악명높...^^;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 추, 코, 쿠 주고 가시면 더 감사히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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