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5 3. 갈림길에서는 돌아보라 =========================
“기리인! 숙여!”
아. 제기랄. 나는 활시위를 당기던 손을 멈추며, 그대로 톨라츠 아저씨의 방패 뒤로 머리를 숙였다. 탱! 탱! 강변에서 날려오는 화살이 아저씨의 금속제 방패에 맞아 튕겼다. 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대체 며칠째냐고!
아저씨가 나를 돌아보며 “괜찮니?” 하고 물으셨다. 그 순간, 나는 황당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그 때 민첩이 아니고 힘을 100을 줬으면 아저씨처럼 방패를 들고 저러고 있었을까. 나는 고개를 휘휘 내저은 후 말했다.
“전 괜찮아요. 아저씨는요?”
“나야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지.”
실제로 아저씨는 두 사람의 몸을 가리고도 남을 만한 방패를 들고도 평온한 말투를 유지하고 있었다. 팔의 근육과 힘줄은 터져나올 것 같았지만, 아저씨는 약간의 땀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할 게 없어 그냥 발만 구르고 있던 에아임 형이 선실 창문 너머로 말했다.
“기리인! 침착해! 궁수가 냉정을 잃으면 어쩌잔 거야!”
나는 아니라고 소리치려다가, 소리를 치려고 했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냉정을 잃고 있다는 걸 깨닫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띠링!’
<냉철이 발동합니다. 차분하게 상황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나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저쪽을 관찰했다. 스무 명 정도가 말을 타고 속보 정도로 달리고 있었다. 저래서야 말들이 지쳐 떨어지기를 기다릴 수도 없겠구만... 우리 배는 뗏목들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는데, 니아트강의 유속은 결코 빠른 편이 아니라, 그냥 흐르는 배는 말들이 속보하는 정도, 사람이 약간 빠르게 달려서 따라잡을 수 있는 정도다. 그러니, 저 놈들이 심심하면 다가오는 거지.
“형! 에빌로 누나는요?”
“준비하고 있어! 그런데 효과가 있을만한 마법이 마땅치 않다는데! 땅 파는 마법은 아까 썼고, 저 쪽도 대비하고 있을 테니까...”
나는 이를 꽉 깨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형! 그럼 누나한테 저 쪽으로 바람을 불게 해 줄 수 있냐고 물어봐 주세요!”
형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뭐라고 하더니, 다시 창문 너머로 외쳤다.
“된대!”
“그럼 앞으로 열 센 이후에 마법을 캐스팅해주세요! 범위는 여기에서 저 기슭까지!”
“어떻게 하려고?!”
“어차피 쟤네들도 저건 견제만 하는 거잖아요! 우리도 쟤네들 쫓아만 내게요!”
형이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바크 선생님이 주신 고급 화살이 아닌, 버려도 되는 보급형 화살이 담긴 전통을 매만져 쥐기 편한 위치에 놓으며 속사 준비에 들어갔다.
“셋! 둘! 하나!”
나는 짧게 시위를 당겨, 약간 비스듬히 위로 쏘았다. 날아가는 걸 확인하지 않고 나는 계속해서, 무릎꿇고 톨라츠 아저씨의 방패 뒤에 숨어있는 채로 약간 포물선을 그리며 그들에게 날아갈 수 있게끔 계속해서 화살을 날렸다.
원래 저런 건 여러 명이서 쏘아서 그물처럼 덮치게 해야 한다. 그걸 나 혼자서 해야 한다. 그러니 화살을 길게 당길 수는 없다. 짧게 짧게, 나는 순식간에 전통을 다 비워낼 기세로 화살을 날린다. 모자라는 힘은 바람이 도와줄거다! 점점 팔이 아파오는 것이 느껴진다. 숨쉴 틈도 없어 내 폐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당장 이 방법 말고는 없다. 퓽! 퓽! 퓽! 나는 무아지경에 빠져 화살을 날리다가, 서른 개 정도 차 있던 화살이 어느새 텅 비어 있었다.
“어떻게 됐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빼꼼 내밀어 저쪽을 내다보았다.
내 탄착군은 꽤나 정확했다. 우리 쪽을 쫓아오던 저들 위로 짧은 시간에 연사된 화살이 비처럼 내려, 비슷한 곳에 꽂혀 있었다. 몇 마리의 말이 넘어져 있었고, 사람들 몇몇이 뒹굴고 있었다. 대형을 짜고 우리를 따라오던 저들의 대형은 이미 무너진 지 오래였다.
“화살에 맞은 건 한 마리의 말이었습니다. 그 놈이 날뛰면서 몇몇 말들이 함께 굴렀죠. 말에 깔린 기수가 셋, 낙마한 기수가 둘입니다. 당분간은 저들이 우리를 쫓아오지는 못하겠군요.”
톨라츠 아저씨가 방패를 살짝 치우며 말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몸의 긴장을 풀고 뱃전에 주저앉았다. 에아임 형과 에빌로 누나가 달려나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 뒤를 이어 묵직한 발소리. 나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라움 상단주님이다.
“아이구, 이게 뭔 일이래...”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우리 쪽을 흘긋 보고는, 그대로 저 쪽으로 가 버리셨다. 화를 내야 마땅한 상황이지만, 나는 막 온 힘을 쏟아 활을 쏜 직후라 숨고르기에 바빴다. 곁에 다가온 에아임 형과 에빌로 누나는 어두운 표정으로 라움 상단주님이 내려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다소 과장되게 에아임 형이 주저앉았다.
“진짜 이게 뭔 일이긴 뭔 일이야. 밤이고 낮이고... 이 3일째 몇 번째지?”
“벌써 다섯 번째군요.”
톨라츠 아저씨가 방패가 넘어지지 않게끔 잘 내려놓은 후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저씨같은 덩치 큰 사람 치고는 의외로 날렵한 동작이었다. 아저씨는 우리 중에서 가장 지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헉헉거리고, 에빌로 누나는 마법을 쓴 후유증으로 좀 지쳐 있고. 숨을 헐떡이던 내가 말했다.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래, 이상하지. 3일에 다섯 번이라니. 원래 이 동네가 이렇게 험한 동네였나?”
“아니, 그거 말구요. 형. 제 말좀 들어보세요.”
형은 그제야 내 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어제부터 하고 있던 생각을 털어놓았다.
“형이 저 도적떼의 두목이라고 생각해 보자구요.”
“나보다는 이 아저씨로 해 주면 안될까?”
큭. 이런 상황에서도 이런 실없는 농담이 나오다니. 이것이 제국 수사기사의 멘탈인가.
“농담이 아니구요. 출발 전에 톨라츠 아저씨가 했던 얘기 있죠? 북부의 주력 상품에 대해.”
“아... 그랬죠.”
“에빌로 누나는 못 들었겠지만 아마 알고 계시겠죠. 다들 아시겠지만 우리 북부의 주력 상품은 저 목재에요. 우리 앞에서 떠내려가고 있는.”
세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저런 실익도 없는 습격을 하죠?”
“실익이 없다니?”
에빌로 누나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다시 뗏목들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걸 훔치고 싶으면, 배를 치면 안 되죠. 우 달려들어서, 저 뗏목에 말들이 끄는 밧줄이라도 걸고, 몇 개 당겨가면 그만이죠. 아니, 애초에, 저 뗏목 한두 개 가져간다고 해서 그게 얼마나 하나요?”
“그래... 기리인 말이 맞아.”
에아임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귀중품이나, 상단이 갖고 있는 자금을 털 작정이라면, 더더욱 저렇게 다가와서는 안 되죠. 하다못해 뗏목이라도 만들어서 배에 붙여서, 구멍이라도 뚫거나... 아니면 조그만 배라도 갖고 오거나요.”
세 사람은 다시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 사람들의 습격은 사실 요란하긴 했지만 피해 자체는 별로 안 컸어요. 마법사도 없이, 그냥 빠르게 걷는 말을 탄 사람들이 화살을 여러 번 날리는 정도였잖아요. 첫 날에만 예상 못하고 있다가 활 맞아서 선원 아저씨들이 몇 명 다쳤지만, 목숨이 위험한 정도도 아니고, 그 다음 번 습격부터는 별 피해 없었잖아요.”
“그럼 기리인, 너는 저 사람들이 왜 저러는 것 같니?”
형의 물음에 나는 바로 대답했다. 어제부터 죽 생각하고 있었던 문제였으니까.
“우리의 속도를 늦추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속도를... 늦춘다라.”
“지금도 보세요. 아까 그 놈들이 나타나서 활 쏘자마자 뗏목 위에 탔던 아저씨들이 죄다 강 쪽으로 대피하는 바람에, 흐름이 제멋대로 멈췄잖아요. 배에 탄 사람들도 피해를 점검하고 어쩌고 하느라 모두 멈춰 있고요. 한두 시간은 늦게 출발하게 될 거 같은데요.”
에아임 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추측이 상당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데, 문제는, 그러면 우리의 발을 잡아서 뭘 노리느냐가 아닐까.”
“형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걱정이다.”
“네?”
“네 예측이 맞다면, 아마, 지금쯤 뭔가 큰 일이 닥칠까봐 걱정이라고. 우리 배를 노리려는 시도가 있을텐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에아임 형은 어두운 어조로 말했다.
“배가 튼튼하긴 하지만, 이렇게 강을 오가는 상선은 사실 튼튼하다고는 볼 수 없어. 한계선까지 짐을 싣기 때문에 더더욱 말이지. 만에 하나 저 놈들이 이 배의 화물이 목적이라면 배에 무슨 짓을 할 거다.”
에아임 형은 우리가 내려가는 남쪽이 아닌, 북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이 정도 크기의 배를 어디서 구하는 거다. 그게 가능하다면 상황은 거의 끝난 거나 다름없지. 배와 배끼리 붙여서, 칼 든 여남은 명만 넘기면, 이 정도 배는 쉽게 제압이 가능하니까. 상품은 털고, 사람들은 죽이거나 몸값을 받으면 된다.”
“그럼, 배에 실은 상품이 목적이 아니라면. 사람이 목적이라면요?”
에아임 형은 씩 웃었다.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다. 그것 말고는 배에 구멍을 내거나 불을 지르는 방법인데, 사람은 생각보다 잘 죽지 않아. 지금이 한겨울도 아니고, 수영을 하면 얼마든지 살아서 도망칠 수 있다. 그러니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직접 보내서 죽일 사람들의 목을 가지고 오게 하는 게 가장 확실하지.”
내 <냉철>은 저 말에 대응해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줬지만, 내 무릎은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손으로 떨리는 무릎을 잡아서 진정시키려는 듯 손으로 무릎을 내리누르며 말했다.
“형, 그럼 형 말은 우리가 노려지고 있다는 말인가요?”
“그것 말고는 생각할 수 있는 게 없어. 이 상단 사람들은 오간지 오래 됐으니 저 시바낙에 대해 모를 리가 없다. 그 영역을 지나는 건 이 상단 소속의 배 밖에 없다. 육로로 올라갈 때는 배만 올라가고 사람들은 육로로 복귀하니 비밀을 지키기에 용이하지. 나무꾼들이야 저걸 봐도 뭔지 모를테고. 우리밖에 없어. 저걸 알 만한, 그리고 알아서는 안 되는 사람들은.”
분명히 봄인데, 바람이 싸늘하게 느껴진다.
“미틱에 도착하는 게 며칠 후이지?”
“이대로라면 사흘 쯤 걸릴 거 같군요.”
톨라츠 아저씨의 말에 에아임 형은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오늘이나, 늦어도 내일이야. 너무 미틱 시에 가까워지면 오히려 그 쪽에 들킬 가능성이 있다. 북대공과 중부 공작의 사이는 좋다고만은 볼 수 없어. 만약 북대공이 상단에 수를 쓰다가 들킨다면 중부에게 약점을 잡히는데다가 시바낙의 비밀이 들킬 수도 있어. 그 위험을 생각한다면 오늘쯤 수를 쓸 거다. 늦어도 내일 밤.”
============================ 작품 후기 ============================
주인공 가만 둬서 뭐하겠습니까. 열심히 굴려야죠.
화이트프레페 님 // 새우라도 좀 파닥거려 봐야겠죠.
크리스펠로 님 // 구른다! (경험치) 먹는다!
고하쿠 님(33편) // 그러게요... 쓸만한 제목이 안 떠오르네요...
제르디엘 님 // 감사합니다!!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고 가시면 더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