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8 3. 갈림길에서는 돌아보라 =========================
“배를 회두시킬 수는 없겠죠?”
“아쉽게도 이 지점은 그러기에는 강폭이 좁소.”
“노렸겠지.”
“그럴 겁니다. 이 지점만 지나면 다시 넓어지니까요.”
“선장님. 지금 강의 유속이 어느 정도 됩니까?”
“대략 4노트 정도 될 거요.”
형은 내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내가 아니라 풍향계를 보는 것인 것 같았다. 깃발을 관찰하던 형은 말했다.
“좋아. 바람은 많이 불지 않는다. 저 놈들도 돛의 도움은 크게 받지 못할 거야.”
그 때였다. 나는 시야에 뭔가 나타난 것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우리가 지나온 쪽, 북쪽에서 불빛 하나가 자그마하게 보였다.
“형! 북쪽에 불빛이 보여요!”
모두 조용해졌다. 형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이것 참. 야습을 하면서 불을 켜고 온다고. 기리인. 잘 들어라. 처음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으면 대략 5~6천보 정도 떨어져 있을 거다. 선장님. 유속이 4노트라고 하셨죠? 대략 40분쯤 있으면 도착하겠군.”
“어떻게 할 거요?”
“적을 전멸시킬 겁니다. 돌아가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면 대공 전하도 포기하겠죠. 좀전까지는 확신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확신할 수 있어요. 저 놈들은 정규군이나 직업 군인이 아닙니다. 훈련도가 높지 않을 겁니다.”
“우리 아이들은 말했다시피 칼 같은 거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약간 초조해하는 선장을 안심시키듯 형은 계속 차분하고 자신감 있는 어조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끼리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여기에 닻을 내려 주십시오. 다른 배들은 먼저 보내는 게 좋겠군요.”
“음. 그럼 잠시 정비할 게 있으니 먼저 가라고 곧 뒤따라잡겠다고 신호를 보내겠소.”
선원 중 한 명이 횃불을 들고 이물쪽으로 가서 이리저리 휘두르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저 쪽에서도 횃불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이어 선장님은 선원 네 명에게 지시해 이물과 고물 양 쪽에서 닻을 던지게 했다. 우리 배가 멈춰서는 동안, 나머지 두 척의 배와 뗏목은 그대로 강 아래로 흘러내려가, 점차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강변에 접안시키는 게 낫지 않겠소?”
“아니, 강 한가운데 세우는 편이 오히려 낫습니다. 강변에 세웠다가는 만에 하나 육지로부터의 협공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면 더 위험합니다.”
형은 어떻게 자신할 수 있는 걸까. 이 먼 거리에서 불빛을 켜고 오고 있다는 것만으로 저들이 정규군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건가. 저건 다 경험에서 오는 걸까. 형이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어서든, 혹은 그렇게 믿지는 않지만 사기를 위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든, 형이 침착한 태도를 보이니 나는 긴장이 다소 풀리는 것을 느꼈다.
“선원 여러분은 모두 배에 들어가세요. 선장님은 이 중앙 돛대로 오세요. 칼 같은 건 없으시죠? 네. 묶지는 않겠습니다. 여기 앉아 계세요. 만에 하나 우리가 지면 우리가 협박했다고 하시면 될 거구요. 만에 하나 화살이 날아오면 여기, 톨라츠의 방패 뒤로 숨으세요.”
형의 말대로 우르르 사람들이 배 안으로 들어갔다. 상단주는 알고 있을까. 그 말은 우리가 죽을 운명이 되면 자기를 죽이겠다는 말이라는 걸. 나는 초조하게 고물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기리인! 30분쯤 지났다. 보이는 게 변한 건 없니?”
나는 퍼뜩 전방을 바라보았다. 저 쪽의 배는 이제 확실히 보인다.
“배가 보입니다! 한 척이고, 이 배 크기와 비슷합니다!”
“좋아. 기다려라. 기리인, 너의 저격 유효 사거리를 재 본 적이 있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어제처럼 쏜다면, 대략 300걸음 정도면 가능할 겁니다. 온 힘을 다해 쏜다면 500걸음 정도에서도 그 정도의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럼 그렇게 하자. 조금만 더 기다려. 사람이라는 게 보이기 시작하면 오백 걸음 정도다. 삼백 걸음 정도가 되면 사람의 팔다리가 구분 가능하다.”
나는 조용히 기다린다. 저 배가 점점 커진다. 이제는 확실히, 사람들이 배에 불을 밝히고 무기를 들고 서 있는 게 보인다.
“보입니다. 숫자는 대략... 스무명 정도. 전부 무기를 들고 서 있고, 두 사람이 갈고리 같은 걸 들고 있습니다. 플레이트 메일을 가슴에만 입은 사람이 한 사람, 뒤에 있습니다. 칼이 좋아 보이네요. 무기를 들지 않은 사람이 단 한 사람 있는데 타륜을 잡고 있습니다.”
“갈고리라고 했나?”
선장님 목소리다. 선장님이 나를 불렀다.
“네. 손에 밧줄 같은 걸 들고 있는데 그 끝에 갈고리가 달려 있는 것 같네요.”
“확실하군. 수적으로 위장해서 우리를 다 족치려는 거요. 만약 정식으로 영주님이 보내셨다면 갈고리가 아니고 정식으로 배를 접현시키라고 널빤지를 내리라고 했겠지.”
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향해 말했다.
“기리인. 말했던 대로,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사람이 최우선이다. 타륜을 잡고 있는 사람이 두 번째다. 알았지? 그 다음부터는 너의 판단에 맡긴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윌로우(willow)를 꺼내어 화살에 재었다. 침착하게, 침착하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가, 들이쉬었다가, 내쉰다. 심장은 아까처럼 세게 뛰지는 않지만, 두근거리고 있다. 숨이 고르게 되자 나는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동시에 마나를 불러일으켰다. 마나를 화살에 마구 불어넣으며, 나는 머릿속에 선을 그렸다. 내 화살에서, 저 플레이트 메일 입은 놈의 머리까지. 그 선을 따라 내 마불살의 원통형을 가리킨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시위를 잡아당긴다. 빠아아아아. 활이 삐걱이고, 나는 외쳤다.
“꽉 잡으세요!”
첫날 내 곁에 있었던 형과 누나는 발에 힘을 주며 돛대를 꽉 붙들었고, 아저씨는 방패를 뱃전의 홈에 넣고 두 손으로 방패를 단단히 잡았다.
톡.
내 엄지손가락이 움직이자 릴리즈(release)에서 시위가 부드럽게 빠져나오고, 화살은 내가 마나를 불어넣어 만든 원통 안을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미끄러져 나간다. 그렇게 한 스무 걸음쯤 갔을까.
빵!
화살이 공중에서 갑자기 폭죽을 터트린 것 같은 굉음을 내며 직선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액! 충격파가 오며 배가 흔들리고 물결이 출렁인다. 뒤에서 궤적을 바라보던 나는 알 수 있었다. 화살 주변에 하얀 고깔 모양의 바람 같은 것이 어렸다는 걸. 그 굉음을 내며 화살은 날아가고,
정확하게,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놈의, 머리에, 닿는다.
퍽.
아직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마치 수박을 떨어트렸을 때처럼, 머리가 산산조각이 나 피와 뭔가 지저분한 것들이 사방으로 터지고 있다. 당장이라도 토해야 할 것 같은 욕지기나는 광경일텐데, 왜일까. 내 마음은 아직 아무런 동요가 없다. 나는 기계적으로 다음 화살을 시위에 매기며 마나를 불어넣는다. 다음 타겟은, 형의 말 대로, 조타수다.
톡. 빵! 쐐애애액. 퍽.
조타수 역시 머리가 박살난다. 그제야 그 놈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하지만, 아직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발리스타가 아닌 이상에야 여기까지 날아올 수 있는 무기는 없다. 보통 활의 유효사거리에 들어오기 전이니까. 게다가, 조타수가 죽으면서 타륜이 제 멋대로 돌아가고 있다. 배가 갑자기 왼쪽으로 급선회를 시작한다.
톡. 빵! 쐐애애액. 퍽.
그렇게 쉽게 활을 쏘게 내버려둘 것 같으냐. 나는 활을 집어들려던 궁수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윌로우가 아닌, 미늘이 달린 화살촉이지만, 마불살은 너무 강하다. 박혀서 상처를 크게 만들어야 할 미늘이, 박히지 않고, 뚫고 나가고 있다. 그 결과 궁수는 왼쪽 가슴부터 팔까지 마치 보이지 않는 마수가 한 입 뜯어먹은 듯 너덜너덜하게 되어 피를 팍 터트리듯 쏟아내며 뒤로 쓰러진다. 한 박자 늦게, 아직 활을 쥐고 있던 왼손이 허공에서 한 바퀴 돌며 그 놈의 위로 쏟아진다.
톡. 빵! 쐐애애액. 퍽.
이 쪽을 가리키며 손짓을 하는 놈이 있어 나는 그 놈에게 화살을 날려주었다. 겨냥을 급하게 하느라 정확히 맞추지 못했는지 이번 화살은 그 놈의 배에 맞았다. 굉음을 내며 날아간 화살은 결국 배를 뚫고 나간다. 그 놈의 뒤로 뚫린 구멍을 통해 허리뼈와 내장과 피와 무엇인지 모를 것들이 튀어나가는 것이 보인다.
“좋다! 기리인! 이제 200보 거리야!”
그래. 저 사람들의 얼굴이 약간씩 구분이 가기 시작한다. 나는 다시 목표를 찾는다. 타륜을 향해 달려가려는 용감한 녀석이 있다. 미안하지만, 놓아둘 수는 없지.
톡. 빵! 쐐애애액. 퍽.
목 위가 순식간에 사라진 그 녀석이 타륜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아래쪽으로 굴러내려온다. 목을 잃은 시체가 굴러내려오는 모습에 무기를 들고 있던 녀석들이 굳어버린다. 굳었다고? 좋은 표적이다. 나는 미늘 세 개를 꺼내어들고 심호흡을 한 다음, 시위를 당기는 것과 마나 원통을 만드는 것을 동시에 한다. 빠아아아. 활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듣고 있지 않고 나는 그대로 릴리즈를 놔 버리며 동시에 활을 돌려 새로운 표적을 향한다. 다시 똑같은 과장, 빠아아아, 톡. 빠아아아. 톡.
빵! 빵! 빵! 쐐애애애애액. 퍽. 퍽. 퍽.
“뭐, 뭐야 저거!”
“괴, 괴물 활이다! 미친 활이다!”
“오오 트리클이시여...”
사람을 죽이러 온 길에 트리클 신 찾지 마라. 나는 다시 화살 하나를 더 잰다. 이번에는 덩치가 제법 있어 보이는, 할버드(halberd)를 들고 있는 전사를 노린다. 잘 관리된 하드 레더를 입고 있지만,
톡. 빵! 쐐애애액. 펑.
마불살 앞에서는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리는 결말을 맞을 뿐이다. 내가 지금 잡은 놈이 꽤 거물이었던 듯, 그 놈의 죽음은 남아있던 열 명 남짓한 적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으아아아아!”
그 놈들이 손에 든 것을 내던지고 선실 쪽으로 뛰어가려고 한다. 안에 들어가서 피해보려는 거겠지. 그렇게 둘 것 같냐. 나는 다시 윌로우 하나를 잰다. 동시에, 붉은 보석을 건드린다. 화살에 마나가 활에서부터 공급된다. 나는 그 겉을 마나의 원통으로 감싼다. 나는 선실 쪽을 향해 화살을 날린다.
톡. 빵! 쐐애애액, 퍽! 화염 마법을 불어넣은 화살은 화염의 창이 되어 선실로 들어가려던 놈의 발 앞에 쑤셔박힌다. 화염창의 불길이 선실로 들어가는 앞쪽을 태우고, 큰 구멍을 낸다.
“히이이이익!”
가장자리가 불타는 구멍 앞에서 놈들은 얼어붙어버린다. 표정에 공포가 가득하다. 불가해한 것을 보았을 때 느끼는 그 공포. 이제 거리가 꽤 가까워졌는지 표정들까지 읽을 수 있다. 한 놈은 숫제 엎드려 머리를 감싸고 바들바들 떨고 있다. 저항하지 않는 상대를 쏠 이유는 없다. 화살이 아깝다. 나는 아직도 무기를 놓지 않은 한 놈을 겨냥한다. 저 정도 거리라면 마불살을 쓸 필요도 없다. 나는 활을 당기는 즉시, 조준을 확신하고, 놓아버린다.
톡. 쐐애애액. 타앙.
마불살이 아닌 화살은 그저 날아가 틀어박힐 뿐이다. 단지 그 부위가 아주 안 좋은 부위였을 뿐. 목에 정확히 틀어박힌 화살은 숨이 지나가는 앞부분을 정확히 찢어내었다.
“커, 커어, 커어억...”
목 앞을 움켜쥐고 그 놈은 비틀대다가 옆으로 쓰러졌다. 적들의 배는 90도 전타하여 우리 쪽에 우현을 보이는 채로 떠내려오고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마치 충각 돌격을 하게 된 느낌이다. 에아임 형이 기세좋게 외쳤다.
“무기를 버려라! 무기를 버리고 엎드리는 자는 화살밥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남은 사람이 일제히 무기를 땅에 던지듯이 버리고 엎드렸다. 선장님이 일어나 뱃전으로 달려가더니, 고물쪽의 닻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톨라츠 아저씨가 방패를 두고 달려가 돕자 금세 닻이 끌려올라오고, 우리 배도 물살에 의해 약간씩 돌기 시작했다. 선장님이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닻을 뽑아낸 터라 우리 배는 아주 스무스하게, 저 쪽 배를 비스듬하게 마주쳤다. 그리고 그 서슬에 우리는 서서히 강변으로 밀려가, 두 배가 나란히 강변의 모래톱 위에 푹 하고 올라섰다.
============================ 작품 후기 ============================
최고의 플레이! 기리인은 전설적입니다!
음음. 죄송합니다.
기리인이 좀 비인간적이죠? 그에 대한 이야기도 차차 풀어나가겠습니다.
빵! 소리는 화살이 음속을 돌파하면서 생기는 소닉붐(sonicboom)입니다. 하얀색 바람이라고 표현한 게 음속을 돌파할 때 나는 그 충격파죠. 보통 화살은 음속을 돌파하지 못합니다만, 아티팩트 활 + 신묘한 화살 + 기리인의 마불살 세 가지가 합쳐져서 나온 광경입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고하쿠 님 // 사실 민폐가 맞죠. 멀쩡한 애 전장으로 끌어들이고 관계도 흐트러트린 거니까요. ㅋㅋ 챕터 제목에서 보듯 기리인이 어떻게 줄타기를 하느냐가 이번 챕터의 핵심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 추, 코, 쿠 해 주시면 더 감사히 더 열심히 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