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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40화 (40/309)

00040 3. 갈림길에서는 돌아보라 =========================

갑자기 주변의 하얀 공간이 저 먼 곳부터 조금씩 가루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광경 같지만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아침이 오는 모양이군요.”

시스템도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리인 모스. 당신은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당신같은 인생의 격류를 겪은 사람이 당신 정도로 건전한 정신으로 지내기는 결코 쉽지 않을텐데 말입니다.”

“네 덕이 커.”

“지당한 말씀입니다.”

즉답. 나는 피식 웃었다. ‘시스템’도 피식 웃었다.

“혹시 앞으로 어떤 일이 있다거나 어떤 사람을 조심하라거나 하는 조언 같은 건 없나?”

“아쉽게도 제 권한 밖입니다. 그리고 그걸 알게 되면 인생이 재미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 내 발 근처까지 가루가 되고 있었다. 내 몸도 조금씩 그 흩날리는 가루에 잠겨들어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자신을 믿으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점차 어둠에 잠겨드는 나를 내 모습을 한 ‘시스템’이 배웅해 주었다.

---

눈을 뜨자 며칠간 지내 익숙해졌던 선실의 천장이 보였다. 배가 가볍게 움직이는 느낌이 났다. 왼쪽으로 난 창문을 통해 햇살이 선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해가 뜬지 꽤 된 모양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낭을 잘 말아 내 배낭 안에 넣으려다 그 안에 네모난 상자 하나가 있는 걸 보았다. 응? 내 배낭에는 상자 같은 건 안 키웠는데? 내가 그 상자를 집어들자 갑자기 예고도 없이 내 눈 앞에 창이 떠올랐다.

‘띠링!’

<물품 정보 – 백곰의 심장(R) 랭크 : A->

<서브 퀘스트의 보상으로 얻은 물품입니다.>

<복용을 선택시 보너스 포인트를 3 얻을 수 있습니다.>

<보관을 선택시, 차후 연계 퀘스트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연계 퀘스트의 보상은 포인트 3보다 큽니다.>

이거. 대놓고 갖고 있으라고 하는 거 맞지.

<한 번 봤다고 이제 좀 익숙해진 모양이군요.>

그래, 이제 그 입버릇에도 좀 익숙해지는 모양이다. 나는 <보관>을 선택 후 짐을 정리하고 바깥으로 나갔다.

다시 배가 강물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갑판은 어제의 일이 거짓말이라는 듯 깨끗했다. 모든 것이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고, 선원 아저씨들이 이리저리 오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인 것 같다. 나는 어제의 전투의 흔적을 더 찾아보려 하다가, 포기하고, 에아임 형들이 어디 있는지 둘러보았다. 좁은 갑판 위에서 갈 곳이라봐야 뻔했다.

역시 세 사람은 고물 쪽에 둘러앉아 있었다. 쇠로 만든 삼발이 위에 가벼운 솥 하나가 올려져 있고, 그 아래에는 배 위에서 차마 불을 피울 수는 없었던지 에빌로 누나가 만든 마법의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톨라츠 아저씨가 콧노래를 부르며 솥을 젓고 있었다. 에아임 형은 그 옆에서 군침을 삼키다가, 나를 돌아보고는, 반갑게 손을 들었다.

“기리인! 잘 잤니?”

“네, 형. 형들은 못 주무셨겠어요.”

“아냐, 우리도 잘 잤어. 기사수련을 받을 때는 잠을 못 자고 며칠씩 행군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지.”

에아임 형은 장난스레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참,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다.

“어제 네가 잠든 다음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줘야겠지만, 일단 배를 먼저 채우고 생각하자꾸나. 톨라츠의 요리는 정말 맛있거든. 아, 에빌로 양. 내기할까? 난 기리인이 접시를 핥는다에 1레블리스.”

“안 핥는다에 2레블리스 걸죠.”

그러더니 누나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1레블리스 줄테니...”

“형, 형이 지셨어요.”

“안해 안해. 와. 어떻게 10년 가까이 안 사람을 버리고 만난지 1주일도 안 된 사람 편을 드냐. 아무리 절세 미남이라지만... 아악!”

조용히 뻗어온 누나의 손이 에아임 형의 셔츠 위로 옆구리살을 한움큼 꼬집었다. 두 사람이 촌극을 벌이고 있는 동안, 내 눈은 미안하지만 그들을 떠나 톨라츠 아저씨의 요리에 못박혀 있었다. 배고파서가 아니었다. 아저씨의 요리하는 방식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저씨는 정말 요리를 대충 하는 것 같았다. 아까 젓고 있던 루(roux)에 물을 붓는데, 물을 붓는 방식이 보통 사람과는 완전히 달랐다. 만약 내가 물을 붓는다면 천천히 기울여서, 물이 너무 많이 들어가지 않게 마지막에는 조금씩 조금씩 따르며 조절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저씨는 물통을 집어들더니 콸콸활 따르다가 어느 순간 확 하고 물통을 다시 세웠다. 저래도 되는 건가?

물이 끓자 옆에서 노란 가루가 담긴 자루를 가져와 물에 가루를 서서히 풀며 저었다. 삽시간에 솥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노란 가루는 옥수수 가루였나보다. 이어, 어제 먹었던 육포를 몇 장 꺼낸 아저씨는 손으로 육포를 찢어서 이제 수프가 된 솥 안의 요리에 뿌린 후, 옆에 있던 조그만 통들이 담긴 주머니를 열더니 하얀 가루를 집어들었다. 소금이겠지. 그런데, 아저씨는 이번에도, 간도 보지도 않고, 소금을 검지와 엄지로 약간 집어들더니 곧바로 솥 안에 뿌려버린 것이다. 진짜 저래도 되는건가.

내 눈길에 어린 의문을 느꼈는지 톨라츠 아저씨가 사람 좋게 웃었다.

“신기한가 보군요, 기리인 군.”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래요. 요리 해 본 경험은 거의 없지만 어머니께서 하시던 걸 몇 번 보긴 했거든요.”

나는 잠시 마른침을 삼키며 어머니의 기억이 다시 잠들기를 기다린 후 말을 이었다.

“아까 물 부을 때도 그렇고, 지금 그거 소금이죠? 소금을 치는데 간도 안 보고 대충 집더니 뿌려버리고. 형이나 누나가 놀라지 않는 걸 보면 아저씨는 원래 그렇게 요리하셨었나 보네요. 그렇게 해서 요리가 나와요? 그것도 형이 ‘접시를 핥는다’는 내기를 할 정도로 맛있게 된다고요?”

아저씨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신께 받은 재능 덕분이죠.”

“어...떤 재능인데요?”

휴. ‘알아요, 눈썰미죠?’ 라고 말할 뻔 했다. 다행히 순발력을 이용해 말을 억눌렀기에 망정이지.

“재능의 이름은 ‘눈썰미’에요. 다른 것을 쉽게 따라할 수 있고, 손재주도 좋아지는 편이죠. 하지만 무엇보다 저 재능은 ‘감각을 정확하게 해 준다’는 장점이 있어요. 예를 들면 나는, ‘저건 어느 정도의 길이이겠다, 어느 정도로 무겁겠다’ 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럼 대개 맞아요. 요리를 할 때도, 아 물은 어느 정도 부으면 되겠다, 하고 물통을 기울여 부으면 딱 거기까지 물이 들어가고, 간을 보지 않아도 아 이 정도로 맵겠구나 짜겠구나를 알 수 있어요.”

“...그건 쓰기에 따라서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겠는데요?”

“하하. 트리클 신께서 주신 능력을 신께서 주신 임무 이외의 것으로 사용해서는 안되죠. 단순한 친목이나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욕심을 위해 사용하게 되면 우리 사제나 예비 사제들은 바로 신벌(神罰)이 내려와요.”

아. 잊고 있었다. 아저씨는 사제였지. 신의 뜻을 실천하는 사제. 힘이 98이라 아저씨보다 힘 센 사람이 거의 없고, 문짝같은 거대한 방패와 헤드가 애기 머리통만한 묵직한 메이스를 다루지만, 늘 허허 웃는 버릇이 있고, 온화한 인상의 아저씨.

“자, 다 됐습니다. 한 그릇씩들 하세요.”

아저씨는 두 손으로 잡아야 하는 큰 컵에 수프를 한가득 담아, 형과 누나와 나에게 나눠주었다. 나는 따뜻해진 컵을 들고, 냄새를 맡았다. 와! 이 냄새는 진짜 참을 수 없다! 리미네 저택에서 먹었던 요리사들이 만든 수프보다도 훨씬 더 맛있는 냄새가 난다!

나는 컵을 기울여 수프를 한 모금 마셨다. 우와... 앞으로 내가 살면서 어떤 수프를 먹게 되더라도 오늘 같은 수프를 먹기는 힘들 것 같다. 모든 것의 조화가 완벽했다. 루는 완벽한 정도로 볶아졌고, 옥수수 가루는 아주아주 잘 풀려졌으며, 아저씨가 찢어넣은 육포도 너무 딱딱하지도 않지만 너무 흐물흐물해지지 않을 정도의 완벽한 정도로 흐물해져 있었다.

“에빌로 누나. 미안한데 나 형 쪽으로 전향하고 싶어요. 그래서 컵을 핥고 싶어요.”

“이해해. 아저씨 요리는 그러고도 남아.”

“아저씨는 요리집을 열어서 포교를 하면 아마 대박이 날 거에요.”

“그렇게 권하고 있는데, 본인은 이건 어디까지나 취미라고 우기니까 말이지...”

에아임 형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수프를 한 모금 마시고는,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보나마나 내 얼굴도 형의 저 얼굴처럼 헤벌레~ 하고 있겠지. 아이고.

---

우리가 식사를 끝내자, 아저씨는 우리의 도움을 받아 그릇과 요리도구를 정리하고, 선원에게 부탁해 줄 달린 두레박을 빌려 물을 길어 물통을 채우고 그릇을 간단히 씻었다. 아저씨의 정리가 끝나자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던 선실에 들어갔다. 혹시나 엿듣는 사람이 있을까 창의 발을 내리고, 그리고도 혹시나 몰라 에빌로 누나가 방음 마법까지 추가로 걸었다. 준비가 된 것을 확인한 에아임 형이 말했다.

“일단, 어제 네가 들어간 후에, 우리는 사로잡은 사람들에 대해 심문을 했다. 에빌로의 심문 마법의 도움으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지. 우선, 그 놈들은 북대공이 보낸 사람이 맞아.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대로 정규군은 아니고, 북대공이 여러 용도로 쓰는 사병이 있는 모양이더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약간은 께름찍한, 약간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너가 잠든 후, 심문을 마치고 그 놈들은 우리가 처리했다. 그 놈들이 타고 왔던 배도 에빌로 양의 마법과 배의 기름으로 활활 태워버렸지.”

형은 그러더니 약간 거북한 표정을 지우며 말했다.

“북대공이 이 보고를 받는 것은 아마 라움 상단주가 돌아가는 석 달 후쯤 될 거야. 이미 그때 우리는 북대공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을 벗어난 지 오래일 거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는 형처럼, 우리의 목숨을 노리던 검은 손길로부터 벗어난 것을 즐거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처음에 형을 돕기로 결정했을 때 생각했던 것을 되새기고 있었다.

사실 나는 북대공 전하의 은혜를 입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에게 돌아올 일이 없어진 장학금도 챙겨주셨고, 의식주를 제공받게 해 주셨으며, 아카데미를 이용할 수 있게까지 해 주셨다. 그런데 나는 지금 북대공 전하의 뒤통수를 쳐버린 셈이다. 신의를 중요하게 여기고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키는 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는 북부 남자에게 있어 이것은 씻을 수 없는 오점이다. 아무리 대공 전하가 노예들의 수명을 깎아가며 마약을 만들어 팔아 돈을 번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마약은, 그리고 노예들을 이용한 위험한 장사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두 가지를 어떻게 양립시킬 수 있을까.

============================ 작품 후기 ============================

무지무지 졸리네요. 봄이 오는건가...

화이트프레페 님 // 약빨 + 마법빨이죠.

고하쿠 님 // 다크한 another 스토리가 막 생각나려 합니다 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 추, 코, 쿠 주고 가시면 더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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