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1 3. 갈림길에서는 돌아보라 =========================
그러고 보니 어제 잡은 포로들은 어떻게 됐을까. 다, 죽였겠지. 배까지 불태우는 마당에, 위험부담을 남겨둘 수는 없었겠지. 아마 그걸 나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해 나를 먼저 재운 것일 거다.
그러고 보니, 어제 누나는 알았을텐데. 내가 마법에 걸리지 않는다는 걸. 약은 들었지만, 내가 잠든 건 그냥 잠든 거지 마법 때문이 아니었다. 모르지는 않을텐데, 누나는 왜 얘기하지 않는 걸까. 그냥 자기 실수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어쨌든, 그냥 순하고 얌전한 누나라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 겉으로는 형도 누나도 아저씨도 다들 착하고 순하게 보일 수는 있어도 저 사람들은 10년 넘게 인간의 악의를 마주해 온 사람들이다, 라고 나는 다시 한 번 명심했다. 내 눈길을 느낀 누나는, 가볍게 웃어보였다.
“북대공의 손아귀에서는 벗어났지만, 우리의 일이 끝난 건 아냐.”
에아임 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바낙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는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배에는 시바낙이 없어. 상단주는 시바낙 밭에 대해 알고는 있었을 뿐,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시바낙의 운반 역할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어.”
“믿을 수 있는 거에요? 거짓말일 수도 있잖아요.”
내가 묻자, 형은 웃으며 누나를 바라보았다. 에빌로 누나도 가볍게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기리인. 나는 심리 마법, 정확히 말하면 수사 마법의 전문가야. 어지간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거짓말을 할 수 없었을 거야. 게다가 에아임 씨의 칼날까지 목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뭐, 나야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정도지.”
에아임 형은 씩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실 공급 자체를 잡아낸다는 건 어렵기도 해. 숨기기가 훨씬 쉬운데 비해 적발하기는 힘들거든. 마약이라는 건 부피가 크지 않기 때문에, 한두 사람이 들고 육로로 이동하기만 해도 충분하니까. 다행히 우리는 지금 공급의 시작과 끝을 알고 있다. 북부에서 넘어온 시바낙의 상당수가 지금 미틱 시를 시작으로 중부에서 풀리고 있어.”
직접 와 본 적은 없고, 지리 상식이라고는 학교에서 배운 게 다인 나로서도 미틱 시가 선택된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부 산맥에서 녹아내린 물은 북부 대요새에 인접한 니아트 호수로 모인다. 이 호수에서 흘러넘친 니아트 강이 도도하고 유장하게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처음으로 둘로 갈라져 남니아트강과 동니아트강이 되는 그 곳. 삼각형 부분에 있는 것이 바로 미틱 시이다. 당연히, 제도에서 뻗어오는 ‘황제의 길’이 이어진 남니아트 강 중간 하구의 레카 시와 함께 교역의 중심이고, 만약 북부에서 뭔가를 내려와서 중부로 풀어야 할 입장이라면 가장 먼저 고려할 것이 미틱 시임에는 틀림없다.
게다가, 미틱 시는 북부 대요새만큼의 인구를 갖고 있는 대도시이지만, 북부 대요새는 절반이 군인이니 도시 자체로만 보면 훨씬 미틱 시가 크다. 그러니, 지푸라기를 숨기려면 건초더미 속에 숨기라는 것처럼, 뭔가를 숨기기도 좋을 것이고, 미틱 시 자체로만 봐도 엄청난 시장일 것이다.
“기리인. 일이 이렇게 되어서 너에게 북대공 전하와 척을 지게 했다만, 원래는 너에게 도움을 부탁하는 것은 미틱 시에서 하려고 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우리 수사기사들은 이렇게 3인조 정도로 움직이다가, 확실하게 증거를 잡았을 때 병사들이나 공무원들을 지원받아 행동한다. 문제는 지금 확실한 물증이 없는데다가, 미틱 시의 어느 누가 북대공의 뒤를 봐 주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자칫 잘못하면 화살을 재기도 전에 개가 짖어서 새를 날려버리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거다.”
“일손이 조금이라도 더 있으면 좋겠죠.”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오래 있을 수는 없어. 어제 상단주에게 물어보니 미틱 시에서 3일 정도 머무르면서 목재의 절반을 팔고, 레카로 내려갈 계획이라고 들었다. 어차피 너도 레카로 가서 황제의 길을 따라 제도로 갈 거잖아?”
“형.”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참 열변을 토하던 형은 입을 닫고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형이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알고, 어떻게 도와드릴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도 알아요. 북대공 전하께서 저를 당장은 노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알고요. 하지만 저는 형이 벌이는 이 일의 끝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네요.”
“무슨 말이니?”
“톨라츠 아저씨가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시바낙으로 번 돈은 개인적 축재가 아니라 북부 사람들의 생활을 위해 쓰인다고.”
아저씨가 갑자기 이야기의 화살이 자기를 가리키자 살짝 당황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마음이 형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며.
“형. 저는 시바낙이 마약이 되어서 전달되는 걸 막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 바로 시바낙이 전달되는 길을 끊어버리면 북부 사람들은 굶어야 해요. 그리고 만약 형이 바라는 것이 지금 당장 그 길을 끊어버리는 거라면, 제 입장에서는 그건 북대공 전하에 대한 배신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제는 배신이 아니고?”
형은 의외로 담담하게 물어왔다. 내가 이런 대화를 할 줄 예상했던 것일까. 형이 담담했기에, 나도 언성을 높이거나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할 수 있었다.
“어제 그 놈들은 저를 죽이려 했었으니까, 제 자신을 지키고 이 배를 지키기 위해 싸운 거죠. 아무리 은인이라도 목을 내 줄 의리까지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제가 그 길을 말려죽이는 데 협조하게 된다면 그건 북대공 전하와 북부 사람들에 대한 공격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에아임 형은 차분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얼마 후,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래. 네 입장은 알겠다. 그럼 이렇게 하자. 어차피 우리 입장에서도 외부자인 너에게 직접 수사를 도와달라거나 할 수는 없지 않겠니? 대신 3일동안 우리의 정보 수집원이 되어 주면 좋겠다.”
“정보 수집원이요?”
“말이 거창하지, 시내 구경 다니라는 소리야. 사실 지금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수사를 시작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단서가 아무 것도 없다는 소리지. 의외로 단서가 간단한 곳에서, 소문 같은 것에서 나올 수도 있거든. 그런데 우리가 그걸 다 좇을 수는 없으니까. 네가 시내를 구경하거나 사람들을 만나면서 들은 얘기를 들려주는 정도로 도와주면 어떨까.”
“그 정도면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게 아닌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지난 1주일 정도 되는 기간 동안 너를 봐 온 결과 너는 확실히 머리가 좋고 이야기를 파악하는 능력이 빨라. 어차피 지금까지 진행된 일에 대해서 다 알고 있기도 하고. 그러니 밤에 모여서, 서로 모아온 정보를 놓고 취합하는 과정에 같이 참여해 주면 좋겠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기리인 군이라면 왠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끌어낼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나도 그래.”
톨라츠 아저씨와 에빌로 누나까지 동의하고 나섰다. 음... 그 정도라면...
‘띠링!’
<메인 퀘스트(2) - 시바낙 커넥션(3)>
<심문과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를 통해 미틱 시에서 공급선을 찾기로 한 에아임 일행. 당신은 그들을 제한적인 범위에서나마 돕기로 했습니다. 미틱 시에서 정보를 찾아보세요.>
<정보는 의외로 무시할 만한 단순한 사실에서 모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이야기를 많이 들어 보세요. 물론, 당신이 어떤 정보를 찾는다는 사실은 노출시키지 않을수록 좋습니다.>
<퀘스트 보상 : 연계 퀘스트로 이어집니다.>
<메인 퀘스트(2) - 시바낙 커넥션 : 보너스 조건 업데이트>
<당신은 북부의 사람입니다. 정의구현도 좋지만 북부 사람들을 굶주리고 아프게 하는 것은 당신이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일 것입니다.>
<탐색 과정에서 북부와 에아임 일행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세요.>
<이는 반드시 만족할 필요는 없는 보너스 조건입니다. 달성하지 못해도 퀘스트 실패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본 시스템이 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보상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최대한의 보상’?
<훗날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십시오.>
이제 이렇게 물어봐야 ‘시스템’은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나는, 창을 닫아버린 후 형에게 말했다.
“그럼 도와드릴게요. 대신 제 쪽에서도 부탁 한 가지만 드려도 될까요.”
형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형 뿐만 아니라 아저씨와 누나도 바라보며 말했다.
“말했듯이 시바낙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북부의 사람들이 고통받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법이 없을까요?”
“글쎄...”
“쉽지 않은 문제죠...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북부 뿐만 아니라 제도나 중부까지 이야기가 나올 문제라...”
세 사람은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하긴 답이 바로 나올 문제가 아니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답을 바로 찾아달라는 말은 아니에요. 형들에게는 형들의 사정이 있고 형들이 추구해야 할 목표가 있겠죠. 단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길이 있는지 간간이 함께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해 주세요. 그게 제 부탁입니다.”
형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꼭 생각해 볼게. 약속하마.”
나머지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반드시 이 약속을 꼭 지킬 거다. 그런 인상을 받았다. 저런 인상을 줄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재능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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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습격이 없어서 몸은 편했지만, 마치 겉도는 사람처럼 철저하게 우리 넷끼리만 보낸 이틀의 시간이 지났다. 선장님이나 상단주님은 우리를 보고도 못 본체 했다. 특히 나를 보면 안색이 변하며 멀리 돌아가곤 했다. 괴물 대접이 처음은 아니지만 저건 너무한데.
새벽 안개가 뱃전과 강 위를 덮고 있었지만, 저 대평원 쪽의 지평선은 서서히 깨어나듯 주황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저러다, 어느새 해가 확 떠버리지. 마법사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때는 밤 늦게 잠들고 아침에 늘 힘들어했었는데, 어느새 나는 아침 일찍 눈을 떠 몸을 푸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고물 쪽의 뒷갑판에서 가벼운 체조를 하고, 바크 선생님이 시킨 매일 아침 근육 운동 – 앉았다 일어나기, 팔굽혀 펴기 같은 것들 – 을 하고 있자니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 기리인 군. 좋은 아침입니다.”
나는 몸을 바로 하며 약간 가쁜 숨을 쉬며 인사했다.
“잘 주무셨어요, 톨라츠 아저씨?”
“하하, 배가 느려져서인지 새벽에 깨 버렸네요. 차 한잔 할래요?”
“차는 좋죠. 그런데 느려졌다고요?”
아저씨는 예의 조리도구를 꺼내, 물을 데우며 말했다.
“강의 흐름이 많이 느려진 것 같지 않나요?”
“그러고 보니...”
“미틱 시에 가까워지고 있는 겁니다.”
아저씨는 어느새 끓은 물을 차주전자 안에 부어 차를 우려낸 후, 큰 컵 두 개에 차를 따라서 하나를 나에게 건네고는, 내 팔을 잡고 이물 쪽으로 데려갔다.
“역시, 이제쯤 보이겠다 싶었는데. 저기, 보이나요?”
평생 잊을 수 없는 광경, 여행을 하기 잘 했다고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동쪽으로부터 떠오른 해가, 마치 강의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것 같은 높은 성벽의 대도시와, 성벽 위로 삐쭉삐쭉 솟아오른 성과 첨탑과 저택들과 건물들의 동쪽 벽을 주황색 햇살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회색이 주황색과의 싸움에서 점차 패배하며 뒤로 물러나고, 주황색은 이어 노란색에 자리를 내 주기 시작했다. 대도시가 잠에서 깨어 살아나는 광경 같았다. 호흡하지 않는 건물들임에도 살아난다는 느낌을 주는, 그런 광경이었다.
“저게... 미틱 시인가요?”
아저씨는 내 마음을 안다는 듯, 조용히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점차 안개가 옅어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간신히 안 늦었네요.
늘 일요일 밤 연재가 제일 고비입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에빌로는 아마 알면서도 말 안했을 겁니다 ㅎ
asdfdasfds 님 // 무슨 일이신지... 먼저 쪽지를 보내거나 해서 말씀해주시기는 곤란한 일인가요?
제르디엘 님 // 항상 감사합니다. 힘내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고 가시면 더욱 열심히 분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