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2 3. 갈림길에서는 돌아보라 =========================
우리가 차 한잔으로 아침을 때우는 동안(톨라츠 아저씨는 내려서 부두에서 맛있는 것을 사 먹자고 말했다) 선원들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뗏목의 도착은 미틱 시에도 큰 이벤트인 것 같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저 부두에 나와 있었다. 정식으로 부두에 뗏목이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부두 옆의 넓은 공간에 줄지어 통나무 뗏목들이 늘어섰다. 어제 듣기로는 저 중 1/3은 동쪽 지류로 내려가고, 1/3은 이곳 미틱 시에서 소화하고, 나머지 1/3이 다시 남니아트강을 따라 내려가 레카 시에서 소화하게 될 거라고 한다.
미틱 쪽에서 나온 사람들과 나무꾼 아저씨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동안, 우리 배도 물살을 타고 부두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어느새 부두에서 나온 견인선이 우리 배를 끌고 접안시설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부두가에는 짐을 내리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기리인, 미틱 시를 처음 본 감상은?”
에아임 형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찾고 나서 대답했다.
“살아있는 것 같네요.”
내 말에 형은,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랄까. 무슨 뜻에서 내가 그 말을 했는지 알겠다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그럼, 난 상단주를 잠시 만나고 올게. 앞으로 일정에 대해 물어봐야 하니까.”
형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휘파람을 불며 선장실로 향했다.
“자, 우리도 짐을 꾸려 내려갈 준비를 하죠.”
톨라츠 아저씨의 말에 따라 우리는 우리 선실로 가서 침낭과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대충 배낭을 정리하고, 메고 갈 수 있도록 그 위에 활이 든 상자를 잘 묶고 정리하고 보니, 누나와 아저씨도 대충 짐정리가 끝난 것 같았다. 두 사람의 배낭은 숙련된 모험자임을 입증하듯 세월의 흔적이 팍팍 느껴질 정도로 닳아 있었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아저씨, 그 배낭에 방패까지 드시는 거에요?”
톨라츠 아저씨의 배낭의 크기가 무지막지하게 컸다는 거다. 내 배낭의 두어 배는 되어 보였는데, 거기에 그 문짝만한 방패까지 들고 다녀야 한다니. 새삼 아저씨의 <힘 98>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느꼈다. 아저씨는 사람 좋게 웃기만 하고 계셨다. 물건을 대충 정리하고 나니 형이 선실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뭐라고 하던가요?”
아저씨가 묻자 형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중요한 얘기는 안 해주고, 3일 후 12시에 출발할 거다 라고 하더군요. 자신은 성의 사람들을 만나고 거래를 체결하기에만도 바쁘다고, 방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우리를 도와줄 수는 없는데, 우리가 무섭긴 무섭나 봅니다.”
그러면서 형은 내 쪽을 보며 눈을 찡긋했다. 아. 서른 먹은 아저씨가 눈 찡긋하는 게 어울려 보이는 건 반칙 아닙니까. 형은 짐을 팍팍팍 꾸리더니, 어깨에 배낭을 짊어지며 말했다.
“자, 갑시다! 기리인, 미틱 시 항구에 오면 길거리에서 생선튀김을 먹어봐야 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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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미틱 시 동쪽의 항구에 정박하고, 아저씨들이 쇠사슬과 밧줄로 배를 단단히 결박시킨 후, 우리는 뱃전에 댄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우와...”
평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강변을 따라 큼지막한 창고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이 창고들과 부두 사이를 소달구지와 손수레들이 바삐 오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외침소리와 소 울음 소리, 일하는 소리, 길거리에 좌판을 편 노점상들이 호객하는 소리. 평생 이 정도로 시끄러운 광경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코에서 떠나지 않는 이 비릿한 냄새. 생선의 비린내였다. 내가 얼굴을 찌푸리고 있자니 형이 웃으며 말했다.
“기리인. 나중에 바다를 가 보면 이것보다 훨씬 심한 냄새가 날 거다.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냐.”
어깨를 툭툭 치며 형은 앞장서 걸어갔다.
“형은 이 곳이 익숙하신가봐요?”
“그럼. 대륙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이곳을 안 지날 수는 없거든. 그러다보니 여러 번 왔었지. 저기 보이니? 저 아저씨 생선튀김이 제일 맛있더라. 아저씨! 생선튀김 넷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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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선튀김을 물고 형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미틱 시의 거리를 걷는 건, 참 힘들었다. 길이 넓지 않아 사람들과 자꾸 부딪히고, 그 와중에 자꾸 눈은 신기한 광경을 따라 저절로 움직이고. 추운 북부 대요새와는 달리 이 곳은 이미 한창 봄이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훨씬 얇아져 있었다. 조끼 없이 셔츠와 바지만 입은 남자들, 외투가 없이 블라우스 차림에 숄 같은 것만 두른 아가씨 아줌마들. 무엇보다, 추위를 막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 옷 색깔에는 크게 신경쓸 수 없는 북부 사람들에 비해 미틱 시의 사람들의 옷은 형형색색이라 눈이 너무 즐거웠다.
“형...”
“응?”
즐겁다는 듯이 빙글빙글 웃는 에아임 형. 아. 저 얼굴 한 대만 때리고 싶다.
“생선튀김 이거, 일부러 먹인 거죠?”
형 뿐만 아니라 아저씨와 누나도 큭큭대며 웃기 시작했다.
“미틱 시에 들어오는 사람이라면 먹어봐야 된다고 했지, 맛있다고는 안 했는데?”
으엑! 맛없어! 비리고 튀김옷은 두껍고 간은 안 맞고! 형은 왼손에 들고 있던 레몬 반 쪽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레몬을 왜 주는지 알겠지? 이거라도 잔뜩 뿌려 먹어야 그나마 먹을만하거든.”
나는 그 말대로 레몬을 쥐어짜서 생선튀김 위에 잔뜩 뿌렸다. 형 말대로, ‘그나마 먹을만’해졌다. 아오. 여전히 큭큭대던 누나가 말했다.
“나도 몇 년 전에 여기 처음 왔을 때 에아임 씨한테 당했어.”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벌써 10년이 지났군요.”
“나도 선배 기사랑 여기 처음 왔을 때 똑같이 당했다고.”
그렇다고 아무 말도 안 해주고 이렇게 하기냐. 나는 생선튀김에 끼워 준 감자튀김을 와작 씹으며 – 아니 어떻게 하면 감자튀김도 이렇게 맛이 없냐 – 조용히 결심했다. 언젠가 꼭 에아임 형에게 오늘의 복수를 해야지, 하고.
그러는 동안 우리는 어느새 큰 교차로에 이르렀다. 저 멀리 미틱 시의 시장이 거주하며 공관으로 사용하는 성이 보였고, 북부 대요새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몇 층짜리 건물들이 길가에 쭉 늘어서 있었다. 건물들의 1층은 온갖 종류의 가게들로 이뤄져 있었고, 그 윗층은 살림집과 창고 같은 걸로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아침을 맞아 가게들은 좌판을 펴고 물건을 진열하는가 하면 걸레와 먼지털이를 들고 청소에 바빴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교차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여기가 도시의 중심가야. 내가 여기 올 때마다 묵는 여관이 있으니 그 쪽으로 가자. 일단 짐을 부려놓고, 돌아다녀 보자고.”
형은 정말 여기 자주 왔다는 듯, 익숙한 걸음으로 길을 안내했다. 나는 퍼뜩 정신이 들어 혼자서도 여기를 찾아오기 위해 지리를 머리에 넣어두기 시작했다. 큰길가의 약제상에서 꺾어서, 안으로 들어가서, 자그마한 교차로가 나오면,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꺾고, 파란 색의 문을 한 동네 빵집을 지나... ‘머물다 가는 바람’이라는 긴 이름의 여관이 나왔다. 꽤 큰, 3층짜리 건물이었다. 낡지 않고 생각보다 깔끔한 석조 건물이었다. 형은 익숙한 동작으로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아, 에아임 씨!”
단골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던 듯, 카운터를 보던 흰 머리수건을 한 통통하고 볼이 붉은 아주머니 한 명이 달려나오다가 형을 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형은 아주머니를 가볍게 포옹한 후 말했다.
“반가워요, 무고이스 아줌마. 얼마만이죠? 한 스무 날 정도 됐나?”
“그래요, 그 정도 됐을 거에요. 어떻게, 갔던 일은 잘 됐어요? 톨라츠 씨, 에빌로 양도 오랜만이에요. 얼른 들어오세요. 그리고... 세상에, 이 잘 생긴 도련님은 누구셔요?”
아이고. 나는 얼굴이 약간 붉어지는 걸 느꼈다. 형은 빙긋 웃으며 나를 소개했다.
“이 쪽은 기리인 모스. 이번에 잠시 같이 다니게 된, 나를 도와주는 동생이에요.”
“잘 왔어요. 갈 때도 에아임 씨하고 같이 출발할 거죠?”
“네. 잘 부탁드립니다.”
“숙박비는 내가 낼 거니까, 평소처럼 방 준비해 주세요. 3층 방들 비었죠?”
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카운터로 돌아가 열쇠를 네 개 꺼내왔다.
“3층 맨 안쪽 방부터 차례대로 네 개 쓰시면 되겠네요. 식사를 준비할까요?”
형은 톨라츠 아저씨를 바라보았고, 톨라츠 아저씨는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
“대략 12시쯤 되어가는 것 같네요. 식사를 하고 움직이는 게 좋겠습니다.”
“그거 좋지. 생선튀김 맛 씻어낼 필요도 있고 말야. 아줌마, 짐 정리하고 바로 내려올 테니까 점심식사 4인분 부탁해요. 오늘은 뭐 있어요?”
“에아임 씨가 오실 줄 알았으면 더 맛있는 걸 했을 텐데 오늘 점심은 그냥 스튜에요.”
형의 표정은 오히려 그 말을 듣고 환해졌다.
“감자와 고기를 넣은?”
“미틱 스튜.”
“얼른 내려오죠!”
형은 열쇠를 받아들더니 쏜살같이 위로 달려갔다. 나는 아저씨를 바라보았고, 아저씨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주머니께서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아주머니가 하시는 미틱 스튜는 정말 맛있거든요. 뜨끈한 국물을 먹으면 강바람 맞아서 생긴 몸 안의 한기가 다 날아갈 겁니다.”
누나도 고개를 끄덕이는 걸 봐서는 정말인가보다. 나는 키를 받아서 아저씨와 누나에게 나눠주고, 나무로 튼튼하게 짜진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방에 배낭을 놓고, 빨래바구니에 배에서는 하지 못했던 빨래감들을 담아놓고, 활과 화살을 침대 아래에 잘 넣어두고, 북부에서부터 입고 왔던 두꺼운 옷을 벗어놓고 가벼운 셔츠와 바지 차림에 부츠를 신고, 문을 잠근 후 아래로 내려가니 이미 형은 1층 안쪽의 식당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며 식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제 너무 졸려서 많이 못 썼더니...
화이트프레페 님 // 두산의 토끼라고 하셔서 응? 야구팀 두산? 이라고 1초간 생각했던 건 비밀....
제르디엘 님 // 언제나 응원 감사합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고 가시면 더 정진하겠습니다. 특히 코멘 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