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43화 (43/309)

00043 3. 갈림길에서는 돌아보라 =========================

“형.”

“어. 와서 앉아라. 무고이스 아줌마의 스튜는 진짜 맛있어. 제도의 내 집에서 지낼 때도 막 생각난다니까?”

형이 굳이 그 말을 하지 않아도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냄새 하나만으로 ‘와, 맛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짭쪼름하면서도 달콤한 냄새. 와. 아까 맛없는 걸 억지로 먹어서 그런가. 입에 군침이 확 돌면서 배가 고파졌다. 나는 형이 앉은 둥근 테이블로 다가가 형 옆자리에 앉았다.

“냄새가 확 맛있는데요?”

“그치? 달짝지근하면서 짭조름한 소스가 감자랑 고기에 푹 배어있는 게 진짜 맛있다니까. 든든하고.”

형은 뭔가 모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테이블을 톡 톡 두들겼다.

“형. 결혼하셨다고요?”

“응? 아. 그럼. 이거 볼래?”

형은 목으로 손을 넣더니 주섬주섬 목걸이를 꺼냈다. 목걸이 끝에는 계란 크기만한 얇은 로켓이 달려 있었다. 형이 로켓을 열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검고 긴 머리의, 에빌로 누나보다 한두살 정도 많아보이는 여자 한 명과,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 아이가 그려져 있었다. 초상화를 그려주는 마법에 의한 꽤 사실적인 초상화였다.

“형수님...하고 아드님이에요?”

형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지? 지금도 제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내 아내와 아들이야.”

뭐라더라. 대왕님이 그러셨지. 마누라 이쁘다고 자랑하는 남자는 반쯤 바보. 자식 이쁘다고 자랑하는 남자는 진짜 바보. 하지만 형의 저 웃음을 보니 바보라고 놀릴 생각이 안 들었다. 형은 진짜 행복해 보였으니까.

“정말 예쁘시네요. 아드님도 정말 잘 생겼구요.”

형은 미소가 가득한 표정으로 로켓을 갈무리해 품 안에 넣었다.

“형수님은 어떤 분이세요?”

“응? 아. 평범한 상인의 딸이지 뭐. 몸밖에 없는 귀족가 넷째 아들한테 레이디는 언감생심 말도 안 되고... 일하다가 만난 집안 딸하고 연애하게 돼서 결혼했지 뭐.”

“형수님은 형 얼굴 보기가 참 쉽지 않겠네요.”

“수사기사 삶이라는 게 그래. 사건이 제도에서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나처럼 급이 올라서 2급 정도 되면 맨날 단독작전으로 지방 돌아다니기 바쁘니까 나가면 한 두세 달은 지방에서 다녀야 하지. 그나마 돈이나 넉넉히 벌고, 처가가 못 살지는 않으니까 다행이지...”

형은 그러다가 흠칫 했다. 나를 묘한 눈길로 보더니 말했다.

“너, 생각보다 잘 한다?”

나는 빙긋 웃었다.

“이렇게 하라는 거죠?”

“의식적으로 물어본 거야?”

“아뇨. 진짜 궁금해서 그랬죠. 형이랑 결혼한 분은 어떤 분일까, 하고 궁금해 하다 보니...”

형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거칠게 흐트러트렸다.

“악!”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목적을 가지고 묻는다는 인상을 주면 안 돼. 진짜 상대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들어줘야 하는 거다. 잘 하는데?”

그때쯤, 나처럼 가벼운 복장으로 갈아입은 톨라츠 아저씨와 에빌로 누나가 식당으로 들어섰다. 형은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손을 들어 보였다. 두 사람이 의자에 앉자, 형은 웃으며 말했다.

“이 친구, 생각보다 잘 하는데? 아주 자연스러워. 나도 정신 안 차렸으면 술술 얘기했을 거 같은데.”

“그렇습니까?”

웃으며 나를 보던 아저씨는, 잠시 후,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습니다.”

“뭐가 안 되겠다는 거에요?”

“기리인 군이 수사기사가 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봤는데... 안 되겠습니다.”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에빌로 누나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아쉽지만 수사기사로는 좀...”

억울한 게 아니라 궁금해서 나는 물었다.

“대체 왜요?”

“너무 얼굴이 잘 생겨서 눈에 띄거든.”

누나가 아닌 형이 대답했고, 누나와 아저씨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사람을 앞에 두고 얼굴에 금칠을 하면 재미있으세요?”

“사실이라니까. 니 얼굴은 너무 인상에 남아. 어디 가서 탐문수사한다고 해 봐라. 너 온줄 아무나 다 알지. 원래 수사기사는 나처럼 평범하게 생겨야 되는 거야. 아, 말하면서도 슬프다.”

그러는 형도 꽤 남성적으로 잘 생겼으면서 그러세요. 우리가 그렇게 한참 흰 소리를 하고 있자니, 아줌마가 큰 그릇에 스튜를 담아왔다. 국자로 각자의 그릇에 퍼 주면서 아줌마가 “많이 있으니까, 드시고 싶은 만큼 드세요.” 라고 했다. 돌아서려는 아줌마를, 형이 불렀다.

“무고이스 아주머니.”

“네?”

“무릎이 괜찮아 보이시네요?”

“아? 맞아, 무릎. 완전히 잊고 있었네. 치유의 손 모임에 다녀왔더니 깨끗하게 나았지 뭐유.”

“치유의 손?”

아줌마는 느꼈을까. 형의 기세가 일변했다는 걸. 표정에는 하나 변화가 없지만, 분명히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떤 정보가 나올지 몰라 나도 귀를 기울였다.

“에아임 씨는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하긴, 유행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요즘 이 도시하고 중부하고 ‘치유의 손’ 때문에 난리에요.”

“말씀하시는 게 어떤 거에요?”

“응? 아. 친구 따라 가 봤는데, 좋은 얘기 듣고, 나눠주는 물 마시니까, 세상에, 무릎 아프던 게 하나도 안 아픈거 있죠. 얼마나 신기한지. 그러고도 돈도 쥐꼬리만큼밖에 안 받아요.”

“그래요? 그거 신기하네요. 물 마시면 아픈 게 없어진다구요?”

“그렇다니까. 포션도 아니고, 무슨 약도 아니야. 줄 서서 맹물을 한 잔씩 받아마시는데, 무릎 아픈게 멀쩡해졌다니까? 그래 얼른 그 물 한 통 사왔지. 지금 그 물을 조금씩 계속 마시는데, 그 뒤로는 3층도 쑥쑥 올라가고, 다리가 안 아파요.”

그러더니 아줌마는, “잠깐만요” 라고 말을 남기더니, 카운터로 달려가, 종이 한 장을 가져왔다.

‘치유의 손 셋째주 모임! 미틱 광장에서 열립니다!’

“내일이네요? 미틱 광장이요? 사람들이 꽤나 많이 모이는 모양이죠?”

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이게 입소문이 나서 이제는 큰 건물 같은 거 빌려도 다 못 들어갈 지경이에요. 사람이 좀 많이 와야지. 열흘에 한 번 꼴로 모임을 하는데, 가서 물 한 통 사와서 열흘동안 마시면 아픈 게 안 아프니 얼마나 신통해 그래.”

“그렇군요. 아무나 가면 아무나 물 주는 건가요?”

“기부금을 약간씩은 내야지. 내지 않아도 된다고는 하는데, 다들 내는 분위기고, 또 이런 귀한 걸 받고 그냥 입 씻으면 신의 천칭이 기울어질지도 모르잖우.”

주방에서 “아줌마!”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나자 무고이스 아줌마는 “어이쿠, 내 정신좀 봐. 맛있게들 드세요!” 하며 뛰쳐들어갔다. 형은 웃는 얼굴로 주방 쪽을 계속 돌아보다가, 우리를 바라보았다. 형은, 우리를 둘러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무겁게 말했다.

“일단...”

우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먹고 얘기하자.”

아 이 아저씨가 진짜! 형은 우리의 벙찐 표정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여기서는 어차피 귀를 의식해야 하니 깊은 얘기를 할 수 없어. 그리고 배가 든든해야 사고에도 여유가 생긴다고. 먹을만큼 먹고, 내 방, 301호에서 얘기하자고.”

말인즉슨 틀린 말은 아니라 우리는 열심히 퍼먹기 시작했다. 형이 자신있게 추천할 만큼 스튜는 맛있었다. 우리는 두 그릇 세 그릇씩 퍼먹고, 아줌마가 가져다 주신 빵까지 써서 그릇까지 다 닦아먹을 정도로 배를 빵빵하게 채운 후, 배를 두드리며 3층에 모였다.

“톨라츠, 어떻게 생각해?”

“의심스럽긴 하군요.”

톨라츠 아저씨는 내가 아저씨를 본 이래 가장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픈 사람들에게 참 가혹한 요구이긴 합니다만, 바로 통증이 없어지는 건 오히려 천칭의 반대쪽을 무겁게 만드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당장 아픈 사람들에게 그런 이성적인 말이 먹히기는 쉽지 않겠지요...”

“신전에 가서 헌금하고 치료받는 것보다 싸게 먹히기도 하겠고, 편하기도 하고 말이지.”

“말씀드렸다시피 쉽게 통증이 없어진다는 건 천칭의 반대쪽이 무거워진다는 겁니다. 게다가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아무에게나 같은 물을 줬는데 평이 좋아진다는 건...”

“조사해 볼 가치가 있겠군. 경우에 따라서는 이단심문의 대상이 될 수도 있어.”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신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닌 모든 이적은 이단을 의심해 봐야 하니까요.”

“그리고 그 물이 어떤 물인지도 알아봐야겠어.”

“맞아요. 물을 마시고 통증이 없어졌다면 물에 뭔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크죠.”

아니 그런데, 이 사람들이... 왜 이걸 모르는 거지.

“형.”

“응? 왜 기리인?”

“그냥 우연의 일치라고 보시는 거에요?”

“뭐가 말이야?”

“시바낙이 미틱에 풀린 것과 이 ‘치유의 손’ 모임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지 않으세요?”

세 사람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갑자기 나타났고, 통증을 줄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안 아프다고 했고, 좀 더 조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미틱 광장이면 시에서 관리할 거 아니에요? 거기서 행사를 한다면 비호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 같은데요. 여러 가지로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드는데, 형들 생각은 어때요?”

형이 무겁게 말했다.

“몇 가지 빈 고리가 있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단순히 우연히 시간이 겹쳤다고만 보기에는 정황이 잘 들어맞아. 그 방향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에빌로 누나가 조용하게 입을 열었다.

“나도 동감이에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일이 커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단심문 이야기를 떠올렸더니 그 쪽으로밖에 머리가 안 돌아갔군요. 우리의 불찰입니다. 기리인 군, 훌륭합니다.”

“아뇨, 뭘 그 정도는...”

“아냐, 큰 공이었다. 여러 번 네 덕만 보는구나.”

형은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었다. 나는 뿌듯함과 함께 묘한 감각을 느꼈다. 이게 누군가의 ‘동생’이 된다는 느낌인가.

============================ 작품 후기 ============================

가족 얘기를 언급하는 건 사망플래그인데... 음음.

본격 서스펜스 사건물? 탐정물? 추리물? 암튼 재밌으면 장땡이라고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고 가시면 더욱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네 그거죠 그거 ㅋㅋㅋ

크리스펠로 님 // 늘 응원 감사합니다. 힘내겠습니다.

제르디엘 님 // 그렇죠. 문제는 지금 소스가 없이 레몬즙만 있어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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