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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45화 (45/309)

00045 3. 갈림길에서는 돌아보라 =========================

“분석에 성공하시면 제가 보수를 지급하겠습니다. 내일 모임 후에 내일 저녁이나 늦으면 모레 아침에 물을 들고 이 약제상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기리인 모스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손을 내밀자, 그녀는 뭐 하는 건가... 하고 뚱하게 보다가, 아차, 하고는 자기 손을 가운에 슥슥 닦더니 내밀었다.

“아르토 포니만입니다.”

나는 아르토 씨와 악수를 짧게 나눈 후, 아까 산 근육통 약을 주머니에 넣고 몸을 돌렸다. 그러다가, 하나 더 물어봐야겠다 싶어서 다시 어깨너머로 아르토 씨를 보았다.

“아, 그런데, 아버님이 안 돌아오고 계신다고요?”

아르토 씨의 표정이 다시 흐려졌다.

“네... 아버지가 작년부터 연구하고 계셨던 게 있는데, 이번에 그 연구를 위해 북부에 가서 재료를 구해 올거라고 하셨거든요... 보름쯤 전에 인편으로 잘 있다, 재료 구했다, 열흘 후쯤에 돌아가겠다고 편지를 보내 주셨는데, 아직 안 돌아오셨네요...”

“아...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르토 씨는 별다른 말 하지 않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는 마주 고개를 숙이고는 가게 문을 닫고 큰길로 나섰다. 저 여자분, 귀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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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도시 구경을 실컷 하고, 사람들 구경도 많이 했다. 인구 10만이 산다는 대도시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컸다. 걸어서 돌아보기만 하는데도 아마 사흘은 넘게 걸릴 거다. 애초에 다 돌아볼 생각도 없었고. 그저 나는 정해진 곳 없이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

사람들은 전부 갈 곳이 정해져 바삐 돌아다니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가벼운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모든 방향으로 걷고 뛰고 있었다. 북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북부 대요새의 절반은 북부군을 위한 병영이다. 그 나머지의 반은 북부군을 위한 창고와 아카데미 등이다. 그 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북부군이거나, 북부군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같은 시간에 나서서 병영으로 출근해, 모두가 같은 시간에 퇴근한다. 아침에 보면 모든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저녁에도 방향만 반대로 바뀔 뿐이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모두가 자기 좋을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바쁘게 뛰어다니고, 큰 길을 마차와 소달구지가 지나다닌다. 사방에서 고함소리와 웃음소리, 말소리가 들리고, 큰 길가에 늘어선 노점상들의 포장마차에서는 고소한 냄새들이 풍겨나고 있었다. 나는 내 첫인상이 틀리지 않았다고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미틱 시는, 살아있었다.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이 생기로 넘치고 있었다.

물론 사람 사는 곳에 어두운 구석이 없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만은, 고작 사흘 머무를 여행자에게 그런 것이 보일 리 없지 않은가.

아 물론 나는 내 할 일을 잊지 않았다. 노점상에서 간식거리를 사 먹으면서도 – 이름이 뭐라더라, 크레페라던가? - 아저씨에게 말을 붙여보고, 광장에서 오셀로(othello)를 두고 있던 할아버지들에게도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어느 길거리의 찻집에 앉아 뭔지도 모르는 차를 한 잔 시켜 마시면서,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에 대해 가만히 들어보기도 했다.

수확은 꽤 있었다. 생각보다 ‘치유의 손’은 엄청난 화제였다. 치유의 손을 운영하는 ‘사도’님들 이야기, 그 물의 엄청난 효과 이야기, 그런 엄청난 걸 거의 공짜에 가깝게 준다니 얼마나 관대하냐 이런 이야기. 내일 갈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엄청 많았다. 노점상 아저씨도 장사를 접고 가볼 거라고 하셨으니 말 다했지.

마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물의 치유 효과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모른다. 진짜 내가 알지 못하는 뭔가일 수도 있고, 내가 짐작했던 대로 마약에 의한 효과일 수도 있다. 그거야 물을 확인해 보면 알 수 있겠지. 내가 궁금한 건, 그들은 대체 왜 이 많은 돈을 쏟아부으면서, 별 이득도 없을 것 같은 일을 왜 하는 거냐 이거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대체 무엇을 노리는 걸까.

대충 볼 만큼 봤다 싶어서 아까 왔던 길을 되짚어 여관으로 돌아왔다.

“아... 이름이... 기리인 군이었던가요?”

“무고이스... 씨였었죠?”

“무고이스 아줌마라고 불러주세요. 도시 구경은 잘 했나요?”

“네. 재미있었어요.”

내 표정을 본 아줌마는 따라 미소짓더니, 말했다.

“식당에 가 있어요. 내가 차 내 줄게요. 에아임씨네 일행이 오면 들어가라고 해 줄게요.”

“감사합니다. 방에서 짐만 정리하고 올게요.”

나는 방으로 돌아가, 아까 샀던 약 같은 것들을 배낭에 잘 찔러넣고, 활과 화살을 꺼내어 상태를 확인한 다음, 식당으로 내려왔다. 종이와 깃털펜, 잉크병을 들고서. 혹시 생각을 정리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어서 같이 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여관은 저녁 장사를 시작하려는 모양이었다. 아줌마는 나에게 차 한 잔을 내어준 후 계속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줌마 뿐만이 아니라, 주방 안에서는 한참 바쁘게 다지고 볶는 소리가 났고, 여관에서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열 살 정도의 남자아이가 바쁘게 테이블을 훔치고 바닥을 쓸고 있었다.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는 아까 점심에 먹었던 스튜 이상으로 정말 맛있을 것 같은 냄새가 났다. 차도 마시고 크레페도 먹어 꽤나 배부를 줄 알았는데 저 냄새를 맡으니 배가 고파지는 느낌이었다.

아줌마가 가져다 준 계피차를 마시고 있자니 식당 입구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에빌로 누나였다. 내가 손을 살짝 들자 누나는 가볍게 웃으며 내 쪽으로 다가와 내 앞에 앉았다. 누나의 얼굴은 꽤 지쳐 보였다. 나는 차주전자에서 차를 한 잔 따라 누나에게 주었다.

“수고하셨어요.”

“너도 고생했어. 별 일 없었니?”

“저야 뭐, 이리저리 돌아다녔죠. 갔던 일은 잘 되셨어요?”

누나는 가타부타 대답없이 예의 약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잘 안됐나보다. 얘기는 있다가 다 모이면 하는 게 낫겠다. 누나가 말이 없어서 나도 별 할 말이 없어 차만 홀짝거리고 있는데, 때마침 형과 아저씨가 식당으로 들어오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형은 책상 위에 종이 몇 장을 접은 걸 던지더니 거창하게 의자에 주저앉았다. 반면 아저씨는 언제나 그렇듯 여유있는 움직임이었다. 힘과 지구력이 많아서 그런가.

“밥은 시켰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뭘 어떻게 얼마나 시켜야 할지 몰라서요. 얼마나 배고픈 지도 모르고...”

형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줌마! 저녁 특선 4인분!” 하고 외쳤다. 저런 건 줄 알았으면 진작 시킬걸. 아줌마가 “네에!” 하고 대답하자, 형은 우리를 보더니 말했다.

“아까랑 똑같이, 식사 자리에서는 일 얘기 하지 말고, 다 먹고 올라가서 내 방에서 모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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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냄새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저녁 특선 스테이크, 대륙 중동부의 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은 소로 만든 스테이크는 정말 입 안에 들어가자마자 살살 녹았다. 하물며 함께 나온 가니쉬(garnish)조차도 정말 꿀맛이었다. 우리는 너무 많이 먹어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올라가, 형의 방에 모였다.

형은 내가 들고 있던 종이와 펜을 보더니, 아무 말 하지 않고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아. 중독되겠다. 그러더니 형은 입을 열었다.

“각자 들은 얘기부터 해 볼까요. 음, 기리인. 너부터 하는 게 낫겠다. 우리는 다들 전문영역이라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읽은 네가 먼저 틀을 잡아주는 게 어떨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까 식당에서 차를 마시며 정리했던 이야기를 했다.

“일단 제 느낌은 이 도시 인구의, 적어도 중앙광장이나 중심가를 지나는 인구의 7~80%는 ‘치유의 손’에 대해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 중에서 90% 이상이 치유의 손에 호의적인 느낌이에요. 특히 자주 아픈 노인층은 묻는 사람마다 효과를 많이 봤다고 하고요. 대부분 그 물 받아가서 지금 마시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가장 놀랐던 건 크레페 사 먹은 노점상 아저씨가 내일 자기도 장사 접고 광장에 가 볼거라고 했던 거였어요.”

세 사람의 표정이 이야기 듣기 전보다 더 심각해졌다.

“혹시 몰라서 중심가 사거리에 있는 카페에 한 시간 정도 앉아있었는데, 귀기울인 이야기 중에 반 이상이 ‘치유의 손’ 이야기였구요. 무엇보다 호의적인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래. 대략적인 인상이 그렇단 말이지. 그리고?”

“그리고 약제상 세 군데를 들어갔는데, 세 군데 모두 치유의 손이 들어온 이후에 파리를 날리고 있다고 이를 갈고 있더라구요. 그 중 한 곳에서는 물을 가져다 주면 자기네가 이 물에 대해 분석해 주겠다고 해서, 내일 그렇게 하기로 했어요.”

“그래? 그건 잘 했네. 에빌로 양이 마탑에 분석해 온 결과와 비교를 하면 되니까.”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에빌로 누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마탑도 아주 비협조적이에요. 이야기를 묻는 사람마다 신경질적인 반응을 하고, 얘기도 잘 안 하려고 하고요. 전부 다는 아니지만 마탑주님을 비롯해 몇몇 사람이 치유의 손에 연관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성분 분석 의뢰는 꿈도 못 꿀뿐더러, 만약 우리가 그 사실을 찾아다닌다는 걸 알게 되면 오히려 우리를 방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을 받아 톨라츠 아저씨가 말했다.

“신전 쪽은... 음, ‘유의 경계’ 상태입니다. 기리인 군의 말을 들으니 좀 안일하지 않나 하는 걱정이 듭니다만, 교단이라는 게 좀 보수적이잖아요. 그리고 ‘치유의 손’이 아직 무슨 사이비 기적을 보여주며 돈을 뜯거나 트리클 신을 모독했거나 한 게 아니라서 나서기 좀 애매한 것도 있고, 아직 생긴 지 얼마 안 된 단체라 좀 더 두고 보자 하는 생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 물론 확실한 증거가 나온다면 신전은 우리의 편이 되어 줄 것입니다. 신전과 치유의 손은 관계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내가 이야기를 들으며 정리된 내용을 종이에 적고 있자니, 형이 말했다.

“내 쪽은 좀 처참해. 잡목류나, 배럴(barrel)을 만드는 좀 값싼 목재를 다량으로 매입하는 상인이 있긴 있었어. 그런데 이 사람들을 찾아가 봤더니 자신들도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서, 목재를 사서, 나무판 형태로 잘라서 제공만 해 줬다고 하더라고. 이번에 북부에서 내려온 목재를 사 갈 사람이 있긴 있는데, 인도는 3일 후래. 우리하고는 인연이 없게 된 거지. 정식으로 수사를 개시하기 전에는 누가 그랬는지 말하라고 시킬 수도 없고. 혹시 몰라서 배럴을 만드는 기술자들을 수소문해 봤지만 자리를 비우거나 한 사람은 없었어. 자체적으로 기술자를 보유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아.”

형은 한숨을 푹 쉬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3일밖에 없고, 그 중에 하루를 이제 썼는데, 정작 알아낸 건 거의 없네. 이거 참...”

그 때, 여관방의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쾅쾅쾅. 다소 다급한 손길이었다.

“누구세요?”

“성에서 나왔습니다!”

응? 톨라츠 아저씨가 다가가 문을 열어주자, 내 나이 정도 되어 보이는, 사환 내지 하위 공무원 정도 되는 남자 하나가 서 있다가, 톨라츠 아저씨의 덩치에 질린 표정을 짓더니, 방 안을 향해 말했다.

“여기 에아임 로그푸스 님이 계시다 해서 찾아왔습니다.”

로그푸스라는 성을 알고 있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싶었다. 과연 에아임 형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무슨 일이지?”

“미틱 시장님의 수사 요청입니다. 성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현장에서 검거된 용의자가, 북대공령 상단의 라움 상단주입니다.”

우리는 눈을 크게 뜨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 작품 후기 ============================

이렇게 사건은 미궁 속으로~!

읽어주신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재미있나요?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고 가시면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특히 코멘트 좀 ㅠㅠ 외로워요 ㅠㅠ

(리리플)

c ㅏ 님 // 정말 감사합니다.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음, 너무 먼치킨 캐릭터인가요...? 좀 디버프를 시켜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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