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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47화 (47/309)

00047 3. 갈림길에서는 돌아보라 =========================

형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누군가 피를 뿌렸다, 피를 토한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는 이야기군.”

형은 에빌로 누나에게서 나이프를 넘겨받아 그 사람의 옷을 확 찢었다. 상의를 벗겨내고 등을 꼼꼼하게 찾던 형은, 원하는 것을 못 찾았는지 칼로 팔까지 찢어냈다. 거의 코를 박다시피하고 보던 형은 아, 하고 만족스러운 소리를 내며 그 사람의 윗팔을 가리켰다.

“여기 봐.”

과연, 왼팔 윗부분의 피부가 약간 검게 변색되어 있었다.

“모든 독은 흔적을 남기는 법이지. 그래서 독살은 그만큼 어렵다. 독을 어디서 구할 것이며, 흔적을 어떻게 감출 것이며... 이런 문제들 때문이지. 기리인, 가방 안에서 회색 상자를 가져다 줘.”

내가 회색 상자를 가져다주자 형은 상자를 열더니, 그 안에서 접시 여섯 개와 시약 여섯 개를 꺼냈다. 내가 시약을 각 접시에 따르자, 형은 나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상자 안에 잘 정리되어 있던 길이는 한 뼘 정도 되고 날은 손가락 길이만한 자그마한 칼들을 꺼냈다. 그  칼로 변색된 부분을 푹 찌른 다음 각각의 시약이 담긴 접시에 담갔다. 잠시 기다리자 세 번째의 접시가 변색되기 시작했다. 알아냈으니 좋아해야 할 상황인거 같은데, 형의 표정은 오히려 더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세 번째라고...” 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세 번째 접시에 따랐던 시약의 병을 바라보았다. ‘광물독’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 어떤 건지 정확하게는 몰라도 대충 구분은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건가. 형은 내 눈길을 느낀 건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체나 현장을 잘 확보해서 그런지 형은 아까처럼 곤두선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기리인, 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

“네, 쓸 일이 없었으니까요... 마법 시약에 대해 배울 때 어떤 종류가 있다고 배우지만 자세하게는 안 배워요.”

“나도 이런 직업을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거야. 아무튼, 광물독이라는게 왜 문제인지 아니?”

“글쎄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형이 왜 문제냐고 물어본다면. 독이 문제가 될 이유가 있다면.

“별로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인가요?”

“그래. 광물독은 꽤 많은 양을 몸 안에 넣어야만 효과가 발생해. 그것도 이렇게 즉사하는 게 아니고 아주 오래 고통받으며 죽어가게 되지. ‘붉은 죽음’이라든가, ‘은색의 흐르는 금속’이라든가, 들어본 적은 있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형은 말했다.

“만약 독으로 사람을 죽일 거였다면 동물독이나 식물독 중에 훨씬 치명적이고 자취도 적은 독이 있을 거야. 나는 그걸 기대하고 조사를 한 건데, 광물독만 걸릴 줄은 몰랐다.”

“그럼 형 말은, 이건 위장이라는 건가요?”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독살인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거야. 피를 흘려놓아서 1차로 위장하고, 만에 하나 거기에 속아넘어가지 않을 경우에 이걸로 보여주려는 거였겠지. 독은 위장이거나, 적어도 부차적인 역할이었을 뿐이야.”

그때 에빌로 누나가 두 손을 모으며 뭐라뭐라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꽤 캐스팅이 긴 마법이었다. 생각보다 대마법인가.

“흔적 확인(detect traces).”

기묘한 느낌이었다. 내가 신경을 쓰면 마나를 만질 수 있기 때문인가. 방 안의 모든 마나가 순간 마치 젤리처럼 쫀득하게 굳더니, 이전에 새겨졌던 흔적을 풀어내는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배운 적 없는 마법인데, 전문 마법인가. 적어도 5~6서클은 될 것 같은데. 역시 누나도 대단한 마법사였구나.

“에빌로 양, 뭐 좀 나왔어?”

“네. 공기를 움직이는 형태의 마법이에요.”

“마법이라고?”

“네, 마법이에요. 마법에 의한 살인이에요.”

그 말을 들은 형은 즉시 그 남자를 끌어내려 바닥에 눕혔다. 머리와 목이 전체적으로 시퍼런 빛을 띠고 있었고, 동시에 붉은 반점들이 군데군데 나타나 있었다. 그 남자는 억울했을까,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눈 흰자에도 핏빛 반점들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형은 에빌로 누나에게 “라이트 마법을 좀.” 이라고 요청하더니, 누나가 시전해 준 빛덩어리를 손가락 끝에 단 채 반대쪽 손으로 시체의 입을 벌리고 목구멍 안을 살펴보았다.

“목 안에 상처는 없는 것 같아. 상처가 있었으면 아까 피를 닦아낼 때 피가 묻었겠지. 공기의 흐름 자체를 차단했다고 봐야 할 것 같은데. 혹시 홀드(hold) 마법의 가능성은 없나?”

누나가 고개를 젓기 전에 나부터 고개를 저었다.

“홀드 마법으로 죽었으면 지금 형이 턱을 벌릴 수 없었을 거에요.”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생각하다가, 누나에게 물었다.

“그런 고난이도의 마법을 멀리서 정확하게 사용해서 사람을 질식시킨다는 건 대마법사의 개입이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미틱 시 마탑의 탑주는 시원찮은 걸로 기억하는데, 맞죠?”

에빌로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 마탑주들이 그렇지만 마력보다는 정치력이 높은 분이죠. 미틱 시 마탑은 최고가 6서클이에요. 그나마도 상업이나 치안유지와 관련된 마법이 더 많고요.”

“혹시 모르니 그 사람들 중에 이런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을 용의자로 올려야겠군. 그보다는, 여기 근처에 왔던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겠지. 근처에서 보고 썼다는 게 더 신빙성이 있을 테니까.”

형은 그러더니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 거기 없나?”

문이 열리더니, 아까의 병사 한 명이 고개를 내밀었다.

“부르셨습니까?”

“헨스를 오라 해라.”

병사는 “넷!” 하며 경례하고는 문을 닫고 사라졌다. 형은 잔사용한 도구들을 정리해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나는 혹시나 싶어, 형이 아까 코르크 마개로 밀봉한 와인을 보고 생각했다.

‘정보 확인.’

<물품 정보>

<와인병. 와인이 반쯤 비워져 있다.>

<와인 제조과정에서 들어가는 것 이외의 불순물은 없는, 보통의 술이다.>

어. 이런 정보도 확인이 가능한거야?

‘띠링!’

<시스템으로서는 손쉬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정보 확인’.

<물품 정보>

<와인잔. 누군가 입을 대고 마신 흔적이 있다.>

<입을 댄 부분에는 정상적이지 않은 물질이 발라져 있다.>

뭐? 정상적이지 않은 물질? 그때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고 헨스 씨가 들어왔다.

“부르셨는지요?”

“음. 사건이 발생한지 한 시간도 안 되었지?”

헨스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현장에 있던 상단주가 비명을 질러, 옆방에서 근무하고 있던 상공부 소속 관원이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이미 절명한 후였습니다. 그 관원은 즉각 제게 달려왔고, 저는 병사를 보내 이 방 문을 단속하는 한편 청사의 출입을 통제했습니다. 그 직후, 상단주가 자기의 일행 중에 제국 수사기사가 있다고 얘기했고, 그래서 즉시 기사님을 모시게끔 한 것입니다. 아직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둘러보았다.

“이 방에는 창문이 없군?”

“네, 그렇습니다. 다른 방과는 달리 상공담당관실에는 금고가 있어 창문을 둘 경우 도난의 위험이 있다고 봤기 때문에...”

“그거 다행이군.”

“네?”

“아니야. 나는 지금부터 시체 발견자와 상단주를 심문하러 가겠다. 헨스. 이 방의 경비를 두 배로 늘리고, 문을 단단히 잠그도록. 아무도 내 허락없이 들어가거나, 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알았나.”

그 때, 갑자기, 우당탕쿵쾅! 하는 소리가 들리며 병사 한 명이 넘어졌다. 우리가 고개를 돌리자, 다른 병사 한 명이 갑자기 누군가 잡아당긴 것처럼 어어어, 하더니 같이 넘어지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일어섰는데, 이미 형은 문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와 누나는 재빨리 형을 따랐다. 형이 허리춤으로 손을 뻗어, 허리에 찼던 체포용 포승을 풀어내어 대여섯 걸음 정도의 길이로 쥐더니 빈 복도를 향해 몇 차례 휘둘렀다. 질긴 포승이 마치 채찍처럼 날카롭게 휘둘러졌다. 쉭. 쉭. 찰싹!

“아윽!”

허공에서 소리가 났다. 형은 득의만면하게 외쳤다.

“에빌로!”

“감지(detect).”

누나가 마법을 영창하자, 곧 복도의 공기가 사르르 물들기 시작했다. 아니, 물드는 게 아니다. 움직이며 몰려든다. 마치 마법 화살을 날릴 때처럼, 공기가 밀집한다. 복도에 쭈그려 앉은 투명한 사람 그림자 위로. 마치 김이 서린 것처럼 사람의 모양이 드러나고, 형은 어느새 포승을 올가미 모양으로 바꾸어 그 모양 위로 던졌다. 멋지게 올가미가 그 그림자 위로 씌워지고, 형은 잽싸게 포승을 잡아당겼다.

“으윽!”

에빌로 누나가 포승에 묶여 발버둥치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며 외쳤다.

“마법 해제(dispel).”

곧, 투명화 마법이 사르르 걷히며, 로브를 입은 한 남자가 포승에 묶인 채 모습을 드러냈다. 형은 씩 웃으며 말했다.

“자, 너를 상공담당관 살해의 중요 참고인으로 체포한다. 너에게는 황제 폐하에 의해 공정한 수사와 재판의 권리가 주어졌다. 허나 정황을 고려할 때, 합리적인 이유가 없을 시 너는 범죄자로 구금되게 될 것이다.”

그러더니 형은 놀라서 다가온 헨스와 병사들에게 말했다.

“이 놈이 그 사무실 안에 투명화 마법을 사용한 채 숨어 있었다. 창문도 없고, 나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사건이 조용해지면 슬쩍 자리를 비우려 했는데, 내가 경비를 두 배로 늘리라고 하자 이대로면 여기 갇히겠다 싶어 병사들을 밀치며 도망가려 한 것이다. 이 놈의 얼굴을 아는가?”

헨스는 유심히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미틱 마탑의 마법사 에카프스 크캅 이라는 자입니다.”

“좋다. 헨스. 경비는 그대로 유지하고, 굳게 문을 걸어잠그라는 내 말은 그대로 유지하되, 시체는 장례를 치러도 좋다. 가족에게 인계하기 전에 장의사를 불러 시체를 단장해 줄 수 있으면 좋겠군.”

헨스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동안 에빌로 누나는 허리춤에서 가느다란 밧줄과 나무토막 하나를 꺼내어서는 그 남자에게 다가가, “입을 벌리세요.” 하고 말했다. 그 남자가 자포자기한 듯 순순히 입을 벌리자 그 나무토막을 재갈처럼 물린 후 밧줄로 입을 벌리지 못하게끔 머리 뒤쪽으로 감아 매듭을 꽉 지었다. 마법사라서 캐스팅을 못하게 하는 거구나.

“그리고 나는 지금부터 이 에카프스라는 자와, 상단주, 그리고 최초 발견한 상공부의 관원에 대해 심문에 들어가겠다. 조용한 방이 필요하군. 그리고 시청 지하에는 구금 시설이 있나?”

“네, 방에는 여유가 있습니다.”

“좋아. 우선 이 자부터 심문하겠다. 어디로 가면 되지?”

============================ 작품 후기 ============================

마법이 있는 시대이니만큼 살인사건도 마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죠.

아, 물론, 이대로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긴 합니다만? ㅋ;;;

어떤 분의 조언을 받아 제목에 가볍게 손을 댔습니다. 마지막이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ㅠㅠ

조회수가 다시 떨어지기 시작하네요. 뭐가 문제일까요; 좀 늘어지나요?

사소한 감상이나 비평이라도 코멘 주시면 적극 참조하겠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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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플)

화이트프레페 님, 이문세 님 // 나중에 진짜 그거 시켜볼까요? "범인은 이 안에 있다!"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그런데 명예를 걸 할아버지가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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