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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50화 (50/309)

00050 3. 갈림길에서는 돌아보라 =========================

“아, 괜찮습니다.”

나는 아르토 씨를 안심시키려고 한 번 웃어보이고, 가져간 가방을 열었다.

“아르토 씨. 오늘은 좀 중요한 이야기를 하러 왔습니다.”

“중요한 얘기라고 하시면...?”

“오늘 하루 아르토 씨의 시간을 사고 싶습니다.”

아르토 씨는 그 동그란 눈을 크게 뜨더니,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응?!

“저... 이제 고작 두 번 봤는데... 게다가 아직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데... 제 시간을 사겠다고 하시면...”

스물아홉 먹은 분이 그렇게 소녀 같은 대응을 하셔도 됩니까?

“아, 그게 아니고, 아르토 씨의 ‘약제사로서의’ 하루를 사고 싶습니다.”

아르토 씨의 붉어진 얼굴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약에 대해 말할 때는 수줍어하거나 의욕없는 모습이 아닌, 말이 빨라지던 그녀. 과연 어떻게 나올까.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죠.”

역시. 사람이 바뀐 것 같았다. 나는 에아임 형에게서 받아온 서류를 내밀며 간략히 설명했다.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여차저차해서 독이 사용되었다. 독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 그런데 용의자 중에 마탑 소속의 마법사가 끼어있어 마탑에 의뢰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 아르토 씨가 떠올랐다. 포니만 약제상은 평판도 훌륭하고 실력도 호평이 많더라(이건 좀 뻥을 섞었다). 그리고 어제 물에 대해서 조사해 주겠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기왕 하시는 김에 살인의 증거물까지 같이 분석해 주시면 안 되겠냐. 제국 수사기사의 직인이 찍힌 보증서가 있으니 하루 매출을 시청에서 보전받을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시스템의 말대로, 맨 마지막 말이 나오고 나서야 아르토 씨는 혹했다.

“정말 하루 분 보장도 해 주면서 제가 좋아하는 분석도 하루종일 할 수 있는 거죠?”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탁드립니다. 여기 ‘치유의 물’하고, 살인 당시에 사용되었던 잔 두 개와 와인병입니다. 아, 혹시 몰라서 두 사람의 피도 담아왔어요. 이쪽 병이 살해당한 도나위 씨의 피이고, 이쪽 병이 죽지는 않았지만 죽을뻔 한 라움 씨의 피입니다.”

“그건 정말 잘 하셨네요. 그럼 잠시만요.”

아르토 씨는 창 쪽으로 다가가 커튼을 쳐 버리더니, 종이에 급하게 ‘긴급한 사정으로 오늘은 쉽니다.’라고 적은 후 문을 잠가 버렸다. 그리고는 “이것들 좀 같이 옮겨주실래요?” 하고는 병들을 들고 카운터 뒤로 난 ‘조제실’이라는 팻말이 붙은 문을 향해 들어갔다. 나는 별 수 없이 남은 것들을 들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조제실은 실제로 약을 만드는 공간이었다. 온갖 약재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잘 정리된 것들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약재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앞에 손님 오는 영역까지 약재를 말려뒀던 건가. 말린 가지, 말린 풀, 말린 뿌리, 잘 빻아진 가루들이 바닥과 찬장에 잔뜩 들어 있었다.

한 쪽은 화덕이었다. 큰 솥들과 주걱, 장작, 국자 등 큼지막한 도구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작업대로 쓰는지 허리 높이 정도 되는 튼튼해 보이는 테이블이 있었다. 종이와 끈, 약사발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그 곳으로 아르토 씨는 다가가더니, 대충 그 위를 슥슥 치우고는 하얀 큰 종이 하나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깔았다.

“여기 올리면 되나요?”

“네.”

확실히 사람이 달라진 아르토 씨는 간결하게 말하고는, 내가 올린 것들을 받아 차례대로 늘어놓더니 펜을 집어들어 종이에 ‘잔 1’, ‘잔 2’, ‘와인’, ‘사망자의 피’, ‘생존자의 피’라고 적었다. 안심이다. 왠지 몰라도 첫 인상은 좀 덤벙대고 불안했는데, 이 정도면 믿고 맡겨도 불안하지 않을 것 같다.

“기리인 씨.”

그녀가 나를 불렀다.

“네?”

“저를 좀 도와 주실 수 있을까요? 혼자 하는 것보다 조수가 있다면 훨씬 빨리 끝날 것 같은데.”

음... 어차피 형들은 지금 정말 바쁘고, 내가 형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이 결과를 빨리 얻는 것이고, 도시 구경은 뭐 할 만큼 했고. 상단에 가 봐야 지금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시간을 빨리 보내려면 그게 낫겠다. 아르토 씨의 작업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리고 아르토 씨는 분명 귀엽고 예쁜 사람이니까 같이 시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럼 제가 묵고 있는 여관에 전갈을 좀 넣고 오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보지도 않고, 손을 뻗어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그 쪽을 보니 조그만 쪽문이 있었다. 그리로 나가라는 얘기 같아서 나는 그 쪽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 약간 헤맨 끝에, ‘머물다 가는 바람’에 도착했다.

“기리인 군? 아이구, 얼굴이 좀 상했네? 무슨 일 있었어요? 에아임 씨네는 오지도 않고...”

“아... 시청에서 좀 일이 있어서요. 에아임 씨는 시청에 가 계세요.”

“시청엘? 거기서 밤새워서 무슨 일을 하시나그래... 그럼 계속 거기 계시는 거에요?”

“아마도요?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필요하면 전갈을 보내주실 거에요. 아, 아줌마. 저 형이 부탁한 일 때문에 지금 포니만 약제상에서 일을 좀 보고 있는데요.”

“포니만 씨네? 잠깐만, 포니만 씨는 지금 성에 안 계시잖아. 아르토 양하고 있다고?”

아줌마의 어투가 어째 떨떠름하다.

“어... 네...”

“하이고, 고생이 많아요.”

진심으로 나를 위로하듯 아줌마는 내 어깨를 토닥였다. 그러더니 말했다.

“그 나이를 먹었으면 시집이나 갈 것이지, 포니만 씨가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는데도 아빠를 모셔야 한다고... 아니 그 말이 진짜면 효녀라고 생각이나 해 주지, 자기가 약에 미쳐서 가게 뒷방에서 벗어나지를 않으니... 포니만 씨도 참 딱하지... 말이나 잘 통하면 또 몰라. 에휴...”

음... 그런 뜻이었구나.

“아무튼, 그래서 지금 포니만 약제상에 있다고?”

“네. 만약 누가 저를 찾는 전갈이 오면 그리로 좀 보내주세요. 그리고, 도시락 좀 싸 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배가 안 고프지만 아르토 씨는 혹시 모르니까... 그런데 무이고스 아줌마는 의외의 말을 했다.

“아르토 양은 일할 때는 아무 것도 안 먹어요. 배가 부르면 머리가 멍해진다나 뭐라나. 참 희한한 사람이지... 그러니까 기리인 군 것만 챙겨줄게요. 괜찮죠?”

“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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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가서 속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고 내려와, 아줌마에게 건네받은 샌드위치 도시락을 들고 길을 되짚어 약제상으로 돌아갔다. 쪽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안은 이미 아까보다 더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화덕에 불이 지펴져 있었다. 솥에는 물이 끓고 있었고, 테이블 위에 여러 유리로 된 기구가 꺼내져 있었다. 장인의 손길로 만들어진 듯한 기구들은 좁은 관이 이리저리 비비 꼬여서 돌아가고 있었다. 아르토 씨는 정말 진지한 눈빛으로, 그릇에 담은 숯을 유리기구 아래에 놓고 불을 조정하고 있었다. 어두운 실내에서 숯불의 빛을 받아 오렌지빛이 된 아르토 씨의 얼굴은 참 예뻤다.

“아르토 씨, 저 왔어요.”

“잠시만요. 곧 끝나요.”

그녀는 나를 뒤에 멀뚱히 세워두고는 바삐 움직였다. 시약을 꺼내 그릇에 붓기도 하고, 금속 막대를 찍어 다른 시약에 찍어보았다가, 천에 묻혀보았다가... 나는 멀뚱히 모든 과정을 보다가, 서 있는 내가 바보같아서 근처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언제 내 앞에 왔을까. 그녀가 의자 앞에 앉아있는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내 무릎에 손을 얹고 나를 올려다보던 그녀는, 갑자기 팔을 뻗어 내 목을 휘감더니 내 목을 끌어당기며 입을 맞추었다. 내가 너무 놀라서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사이에 그녀는 나를 의자에서 끌어내려, 그 조그만 덩치에 걸맞지 않는 강한 힘으로 나를 조제실 바닥에 눕게 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가쁜 숨을 쉬며 내 바지에 손을 뻗어, 벨트를 끄르고 바지를 아래로 끌러내렸다. 그러더니 내 셔츠의 단추를 뜯어낼 기세로 옷깃을 확 젖히고는, 입으로 내 젖꼭지를 물며 손으로 덥석 내 물건을 잡아 흔들기 시작했다.

“왜, 왜 이러세...”

“쉿.”

그녀는 내 위로 몸을 올리며 말했다.

“집중하고 나면 너무 흥분돼요.”

그러면서 그녀는 나를 흔들며 말했다.

“저기요, 저기요?”

“으응...”

“저기요!”

깜짝. 나는 번쩍 눈을 떴다. 나는 의자에 앉아 있는 채였고, 그녀가 내 앞에 다가와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뭔가 했더니, 의자에 앉은 채로 잠들어 버렸나보다... 아. 갑자기 왜 이런 야한 꿈을 꿨지.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과. 아르토 씨가 귀엽다고는 생각했지만 여성으로서 매력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아이고. 나는 괜시리 뜨거워진 얼굴을 식히듯 손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어젯밤 잠을 못 자서 그랬나봐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화난 것 같지는 않다.

“이 쪽으로 와 보세요. 대략 분석 결과가 끝났어요.”

벌써? 그럼 아까 왜 나보고 도와달라고 했지? 이렇게 금방 끝날걸... 그냥 있다가 오라고 하지. 그럼 민망한 꿈 안 꿔도 됐을텐데. 내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괜히 그녀를 보기에 조금 민망했다.

“우선, 두 사람이 마신 와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증류해서 검사해 봤지만 우리가 흔히 와인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 말고는 나오지 않았어요. 독성물질도 없고. 병이 문제인가 하고, 와인을 다른 병에 옮기고 병에 뭔가 묻었는지 닦아서 검사해봤지만, 물에도 기름에도 검출되는 것이 없었어요. 그러니 와인이나 와인병은 문제가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알고 있는 내용이었으니까.

“뭔가 나온 것은 이 잔이에요.”

그녀는 잔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입에 대는 부분으로 빙 둘러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이 묻어있었어요. 입술을 대게 되면 입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죠.”

이것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놀라지 않으시네요?”

“와인에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잔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점점 속도가 늦어지네요.;

좀 더 속도를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고 가시면 더 열심히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리리플)

화이트프레페 님 // 주인공이 갓 성인이라, 얘보다 더 어리면 미성년자니까요 ^^; 물론 인공이는 그런거 신경 안 쓰고 했지만.. 그렇다고 지금 또 그걸 서술하기는 좀 그렇... 그리고 얘 전에 리미는 동갑이었으니까요 ㅎ

c ㅏ 님 // 리플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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