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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52화 (52/309)

00052 3. 갈림길에서는 돌아보라 =========================

“일이 너무 커졌어.”

형은 다시 한 번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런 말을 할 사람은 아니니까 뭔가 더 말하지 않을까. 아니나다를까 형은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리며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지금 인원이 너무 적다. 원래라면 이런 사건은 영주에게 보고하고 영주의 지원을 받아 관리나 병사들을 모아서 지휘하면서 해야 할 사건이야. 그나마도 사건이 여러 지점에서 얽히고 섥혀 있기 때문에 역할을 분담해서 조사할 사람, 단서들을 짜맞출 사람, 뒤를 받쳐줄 사람 등으로 해야 될까말까 한 상황이란 말이다.”

“지금이라도 시장님께 말씀하시면...”

아르토 씨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형은 고개를 저으며, 친절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설명했다.

“아뇨. 시장님께 말씀드리면 도시의 관리들과 병사들을 쓰라고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아르토 씨에게 독의 분석을 부탁드렸던 계기를 잊지는 않으셨죠?”

“아... 마탑 관계자가 관여되었기 때문에...”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눈빛. 상대를 재어보는 듯한 저 눈빛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안다. 상대의 지능 정도를 재는 눈빛이다. 어느 정도로 풀어서 설명해야 상대가 이해할지 알아보는 그 눈빛. 요안나 선생님이 가끔씩 아이들을 볼 때 보이곤 하던 눈빛. 선생님에게 이야기듣지 않았다면 나도 종종 그런 눈으로 상대를 평가한다는 걸 몰랐을 그 눈빛. 아. 오늘따라 선생님 생각이 자주 난다. 형은 설명을 이어갔다.

“마찬가지입니다. 시청의 관리가 독살당했어요. 그의 손님도 당할 뻔 했구요. 바보가 아닌 이상 그에게 와인을 가져다주는 심부름을 했던 관리를 의심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하긴 내가 할 생각을 형이 못 할 리가 없겠지. 독이 무엇인지 확정하지 못했을 뿐, 그가 수상하다는 건 누구나 할 만한 생각이니까. 잘난 척 하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다.

“하지만 이 관리에게 뭐라고 물어볼까요? 독을 어디서 구했느냐고? 누구의 사주를 받았느냐고? 잡아떼지나 않으면 천만 다행이게요. 관리들 중에 누가 우리의 뒤를 칠지 모릅니다. 재수없는 경우에는 시장에게까지 올라가야 할 수도 있어요. 거기에 대응하기에는 우리는 인원이 너무 적습니다.”

“어쩐지, 아까 우리보고 잘 수 있을 때 자 두라고 하면서 방으로 밀어넣더니...”

톨라츠 아저씨가 말했다.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 상황을 정리하고, 증거를 정리해 두는 게 다야. 심문이야 해야겠지만, 긍정적인 정보를 얻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아. 그러니 이 살인 사건 수사는 지금으로서는 보류야.”

그러더니 형은 내 얼굴을 보았다.

“왜?”

“네?”

“왜 그런 표정을 짓느냐고.”

“제가 어떤 표정이었는데요?”

“별로 이미지가 좋지 않은 범생이가 수업시간 끝나기 3분 전에 다들 싫어할 줄 알면서도 지금 막 떠오른 궁금증을 물어보려고 손을 들까 말까 하는 표정.”

뭐야 그게. 다행히 형의 실없는 소리에 아저씨와 누나 뿐만 아니라 아르토 씨까지도 피식 웃었다. 무거웠던 분위기가 다행히 다소 가벼워졌다. 노린거겠지? 형은 어둡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원래면 여기서 살인 사건 수사는 미궁에 빠지고 나는 미제 사건을 남긴 수사 기사가 되겠지. 하지만 우리는 아직 연결고리 하나를 놓치지 않고 있어. 게다가 이 연결고리는 저들이 숨길 수 없는 거야.”

“숨길 수가 없다고요?”

에빌로 누나가 물었다. 음. 사람을 납치하거나 필요하면 죽이기도 하는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숨길 수가 없다. 숨을 수가 없다... 아!

“‘치유의 손’!”

형은 역시,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역시 너는 눈치챌 줄 알았다.”

그러더니 모두를 향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까 기리인이 준 전단지와 설명을 듣자면 ‘치유의 손’의 모임이 오늘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치유의 스승’들이 나온다고 하네요. 확실한 것은 이들이 사건의 중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다량의 시바낙이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정황 증거가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아르토 양의 아버님도 이들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형은 잠시 생각하더니, 아르토 씨를 보며 말했다.

“아르토 양. 혹시, 도나위, 라움이 먹은 시바낙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 전에 제가 한 가지만 물을게요. 오늘 기리인 씨가 가지고 왔던 시료들에는 보존 마법이 펼쳐져 있었나요?”

형은 에빌로 누나를 바라보았고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직접 펼쳤어요.”

“그렇다면 믿을 수 있겠군요. 그 분들의 피에서 발견된 시바낙은 요즘 유행하는 ‘치유의 물’ 때문이 아니에요. 치유의 물보다 훨씬 진한, 시바낙 원액이 투여되었을 거에요. 그렇지 않고서야 바늘에 찔린 줄도 몰랐다는 게 말이 안 되죠.”

“좋습니다. 그러면 시바낙과 ‘치유의 손’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이 살인 사건의 배후에도 저들과의 연관성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들은 오늘 대중 앞에 나서야 합니다. 대중 앞에 나서야 하는 사람들이 어디 편한 곳에 숨는다거나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들을 추적하면 이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자들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지.”

그리고 형은 아르토 씨를 잠시 보더니 말했다.

“그리고, 아르토 씨의 아버님의 행방도 알 수 있겠지.”

아르토 씨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자 그럼, 시간이...”

“곧 오후 다섯 시가 될 겁니다.”

톨라츠 아저씨의 말이었다. 시계도 보지 않고 대단하다, 정말. 정확한 육감이라는 게 이런 건가. 형은 휘유- 하고 휘파람을 불더니, 말했다.

“가자. 여관방으로 돌아가서 잠시 씻고, 준비해서, 여섯 시에 벌어진다는 그 ‘치유의 손’ 모임에 나가봐야지. 그 이후에 그 사람들을 추적하든 어쩌든 해 보자구.”

그러더니 형은 톨라츠 아저씨를 불러 뭐라뭐라 지시를 내렸다. 궁금했지만, 여기서는 들리지 않았다. 억지로 들으려 하면 분위기기 이상해질 것 같아서 나는 못 들은 척 했다.

“자,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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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넓은 광장이 사람으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북부군은 1년에 한 번, 열병식을 대중에 공개한다. 대요새 안의 병영, 넓은 연병장에 북부군 5만명 중 절반인 2~3만명이 질서정연하게 – 아버지의 표현 대로라면 ‘오와 열’을 맞춰서 – 서 있는 모습은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그 뒤에 펼쳐진 무술 시범, 마법 시범 같은 것보다 나는 그 많은 사람들 자체가 위압감이 느껴지고 더 좋았다.

그 광경,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광경을 여기서 또 보게 되다니. 하지만 북부군과는 달랐다. 내가 처음 이 미틱 시에 왔을 때, 한 쪽으로만 움직이는 북부 사람들에 비해 온갖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정말 인상깊었던 것처럼, 오히려 줄 같은 것 맞출 생각이 없이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이 사람들이 줄을 칼같이 맞춘 북부군들에 비해 더 많아보이고 더 압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거, 이 도시 사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온 것 같은데.”

형은 주변을 둘러보며 약간 질린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광장 뿐만 아니라,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집들의 2층 발코니나 옥상에까지 사람들이 많이 들어차 있었다.

“대충 세어도 5만명 정도 모였군요.”

톨라츠 아저씨는 여전히 여유로운 목소리였다. 그에 비해 아르토 씨는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기어들어가고 싶어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에빌로 누나가 아르토 씨를 부드럽게 달래주는 광경을 보던 형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저기 가 보자.” 하면서 아직 사람들이 오지 않은 발코니가 있는 집으로 갔다.

“오기로 한 사람들이 있는데...”

주인의 말에 형은 드로그 금화 세 닢을 꺼내어 주인에게 쥐어주며 말했다.

“두 닢은 아주머니께서 가지시고, 한 닢은 미안하다고 하면서 그 쪽에 내 주세요. 그러면 되겠죠?”

구멍이 두 개 뚫린, 석양을 받아 반짝이는 금화를 보던 아주머니가 두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에게 2층을 비워주었다.

2층에서 내려다 본 광경은 아까보다 더 압도적이었다. 그 넓은 광장을 사람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쪽에는 나무로 연단 비슷한 것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연단 뒤쪽에는 어린아이 머리 만한 나무통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어이쿠, 나무통이 대략 5천개 정도 되네요...”

“5천 개...”

아르토 씨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저 많은 나무통을 어디서 만드는거지? 나무통 기술자가 있어야 할텐데... 저거 만드는데 든 재료나 돈만 해도 어마어마할 거라고. 그 돈을 쏟아부어서 얻으려는 게 뭐지?”

형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때였다.

뎅-

시청 건물의 종탑에서 여섯 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광장의 동쪽에서 후드가 달린 하얀색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작했어.”

흰 로브의 사람들이 연단 위로 오르자, 관객들 사이에서 함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와아! 와아!”

“치유의 손이다! 치유의 손!”

“밀지 마!”

광장에 서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연단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아직 사람들이 연단 앞쪽에 신경을 쓰느라 정신 못차리고 있던 그 순간, 흰 로브의 사람들이 계속 줄지어 들어오더니, 마치 광장에 있던 사람들을 포위하듯 빙 둘러싸기 시작했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손에 뭔가를 들고 있었다.

“저건... 향로인가요?”

에빌로 누나의 말처럼 그 사람들이 두 손에 들고 있던 것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향로를 든 사람들은 연단 위에도, 사람들의 둘레에도 계속해서 늘어서기 시작했다. 곧, 사람들은 향로를 든 흰 로브의 사람들에 의해 포위되었다.

“무슨 생각이지?”

형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만약 저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뭔가를 이용할 거였다면 실외를 택한 건 멍청한 짓이야. 바람만 조금만 불어도 향은 효과가 없을텐데... 그래서 저 많은 사람들을 동원한 건가?”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두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 중 한 명이 들고 온 커다란 공(gong)을 콰앙- 하고 치자, 시끄럽게 떠들던 함성이 모두 가라앉았다.

============================ 작품 후기 ============================

반응이 안 좋은 거 봐서는 이번 파트는 실패인 것 같네요;

개연성을 망가트리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빨리 정리키시도록 하겠습니다.

조회수가 낮은 것에 멘탈이 쉽게 흔들리는 걸 보면 제 멘탈이 참 약한가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얘는 걸 할아버지가 없어서 무리입...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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