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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56화 (56/309)

00056 3. 갈림길에서는 돌아보라 =========================

잠깐 그런 촌극이 있었지만 어쨌든 우리는 방향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달빛에 의지해 한참동안 걸어갔다. 에빌로 누나는 계속해서 마법을 체크하며 우리를 인도하고 있었고, 톨라츠 아저씨는 혹시나 우리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없는가, 또는 우리가 돌아갈 때 문제가 될 것은 없는가 계속해서 관찰하고 있었다. 형은 우리 뒤를 계속 살펴보고 있었고, 아르토 씨, 아니 아르토 누나는 가벼운 흥분과 두려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가끔 내 쪽을 흘금거리다가 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나는... 나는 미안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백작님을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가, 도 계속 머릿속 한 구석에서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뭐랄까... 지금,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 불안한 길이, 한밤중에 도시 밖으로 나와 간간이 농가들만이 보이는 넓은 들판을 걸어가는 이 길이, 내가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내 자의로 걸어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배만 타고 있었으니까.

봄의 밤 공기는 차갑다기 보다는 시원한 느낌이었다. 우리가 걸어가고 있던 길은 포장이 되지 않은 흙먼지 날리는 길이었다. 날 때부터 대요새 안에서 나서 계속 그 안에서 살았던 나는 이런 흙길을 밟는 게 처음이었다. 한밤중의 들판은 전혀 조용하지 않았다. 좀 떨어진 곳에서 흐르는 동니아트 강 소리,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걱정되고 신경쓰여서 죽을 것 같은데, 동시에,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왠지 지금 그런 즐거운 기분을 느끼는 건 분위기 파악 못하고 몹쓸 짓을 하는 것 같아 나는 재빨리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애썼다.

“보일 때가 됐는데...”

톨라츠 아저씨가 나직하게 말했다.

“뭐가 말이에요?”

“아, 밤에는 불빛을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어요. 눈 좋은 사람은 5천 걸음 밖에서도 불빛을 볼 수 있다는 얘기도 있으니까. 여러 가지를 감안했을 때, 지금쯤이면 보일 때가 됐을 텐데...”

두리번거리던 아저씨는, 곧 한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인 것 같군요.”

아저씨의 손가락이 먼 곳을 가리켰다. 그 쪽을 보자 언뜻, 지평선 위에 불빛이 몇 개 걸려 있었다. 형도 그 쪽을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불빛이 몇 개 없군. 아까 그 사람들만 다 모여 있어도 숫자가 꽤 될 텐데, 최소한의 불빛으로 통제를 한다라... 꽤 단련된 사람들인 것 같군... 에빌로. 저기가 맞아?”

에빌로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형이 말했다.

“자, 이제는 톨라츠, 당신이 앞을 맡아줘. 에빌로는 가운데로 오고. 만에 하나 전투가 벌어지면, 기리인과 에빌로가 톨라츠 뒤에서 타격하는 진형이다. 알겠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마음에서 잡다한 생각이 사라지고 앞에 놓여있는 사실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띠링!’

<냉철이 발동됩니다.>

좋아. 차분하게, 냉정하게.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한 후, 아저씨의 뒤를 따라 불빛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몇 분쯤 걸었을까. 맨 앞에서 걷던 아저씨가 손을 들어올리고는 몸을 확 숙였다. 불빛을 향해 다가갈수록 긴장하고 있던 우리도 재빨리 몸을 숙였다.

“아직 우리를 보려면 멀었습니다만, 일단 자세히 관찰하고 들어가는 게 좋겠군요.”

대략 5백 걸음 정도 되어 보이는 곳에 천막이 몇 개 쳐져 있었다. 커다란 다인용 천막이 두 개 있었고, 서너 명 정도 누우면 딱 알맞을 천막이 여남은 개 있었다. 천막 겉으로 등불이 몇 개 달려 있었다. 우리가 보고 온 불빛은 저거였나보다. 천막은 꽤 좋아보였다. 천막 위로 굴뚝이 나와 있었다. 연기가 나오고 있는지 어떤지는 구분하기 힘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야외에서 자는데 불 안 때고는 잘 수 없지 않았을까. 천막의 옆에는 커다란 상자들과 나무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확실하군... 색깔이 바뀌긴 했지만 군용 천막이야. 저 굴뚝을 보면 확실하지. 인원수는 저 천막 크기로 봤을 때 100은 넘지 않겠군.”

그렇게 말한 형은 잠시 고민하더니, 에빌로 누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에빌로. 어느 천막인지까지 특정이 가능할까?”

에빌로 누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집중하며 캐스팅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가장 가운데 있는 천막이에요.”

“혼자 있으려나?”

“해당 인물이 누워 있는 걸 보면 그런 거 같아요.”

형은 나를 돌아보았고, 우리는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간까지 기다리기로 한 우리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해서였다.

“기리인. 더 다가가는 게 좋을까?”

나는 잠시 생각해보고, 고개를 저었다.

“더 다가가면 너무 강해서 천막을 찢어놓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아요. 딱 천막을 뚫고 가운데 기둥에 박힐 정도로만 해야 하니까 지금 여기서 해 볼게요.”

“빗나가면, 보초에게 걸리면 큰일난다. 네 활의 무시무시함을 믿고 시도하는 거다. 두 번의 기회가 없다. 아까도 얘기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준비를 시작했다.

마수목 화살 중 하나를 꺼내어 미늘이 달린 촉을 결합한다. 천막을 찢고 들어가야 하니까. 화살대와 깃을 점검하고,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조그만 통 하나를 꺼냈다. 이 통에는 내가 백작님께 적은 편지와, 다른 한 가지, 백작님이 내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 들어 있었다. 이 통이 날아가다가 떨어지지 않게끔, 나는 톨라츠 아저씨에게 부탁해 두꺼운 철사로 그 통을 화살에 꽁꽁 묶었다.

이어 등에 매어놓았던 활을 꺼내어 상태를 점검한다. 밤이슬을 약간 맞았지만 상태는 나쁘지 않아 보인다. 가볍게, 활을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위를 건드려 장력을 시험해본다. 괜찮다. 도르래도 잘 돌아간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활에 화살을 걸고, 호흡을 안정시킨다. 정신을 집중한다. 마나를 느끼며, 그 마나가 내 몸 안으로는 전혀 다가오지 않지만 활과 화살을 둘러싸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쉬며, 활 시위를 당긴다. 빠아아아아아. 활이 휘어지며 삐걱이고, 나는 화살 주변을 감싼 마나를, 화살을 인도하는 길을 만들듯 조심스럽게 조심스럽게 앞으로 길게 길게 뻗는다.

전보다 더 길게 뻗어지는 느낌이다. 마치 멀리까지 손을 뻗어 짚듯, 나는 예전에는 스무 걸음이 한계였던 마나의 길을 대략 쉰 걸음까지 뻗는다. 겨냥이 훨씬 쉬워지고, 마나로 활을 감싸 고정시키니 흔들리지도 않는다.

나는 조용히, 내 몸의 다른 어떤 부분도 움직이지 않은 채, 손만 움직여, 오른손에 쥔 릴리즈(release)를 놓는다.

톡.

스르르륵.

빵!

쐐애애액.

마나의 길이 길어서였을까. 화살은 전에 배에서 쏘았을 때보다는 작은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날아갔다. 약간 비스듬하게 위로 쏘아올린 화살은, 내가 쏘기 전에 계획했던 궤도 대로, 바람의 영향 없이 날아가, 날아가... 내가 목표했던 천막의 윗부분을 찢고 들어갔다.

텅.

좋아. 내가 목표로 했던 천막의 천이 온통 파르르 떨린다. 목표했던 대로 천막을 지탱하고 있는 뼈대가 될 나무들을 노렸는데, 그 나무들을 맞춘 것이다. 나는 화살이 날아간 후에도 유지하고 있던 자세를 풀며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나머지 네 사람을 돌아보았다.

활에 대해 잘 모르는지 담담한 아르토 누나를 제외하고, 형, 에빌로 누나, 톨라츠 아저씨는 모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그 활, 대체 뭡니까?”

그 침착한 톨라츠 아저씨가 저 정도로 말을 더듬다니. 나는 별 것 아니라는 듯 활을 갈무리해 아까처럼 등에 걸며 말했다.

“말했잖아요. 수도에서 장인이 만든 활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5백 걸음 떨어진 곳에서 천막의 기둥을 정확히 맞출 정도라니...”

“기둥이 하나가 아니니까요. 가운데 큰 기둥이 있지만, 저 천막은 위에 대들보가 여럿 달려 있는 모양이잖아요. 대들보든 기둥이든 하나만 걸려라 하고 날린 거죠. 다행히 걸린 것 같구요.”

“거기까지 일단 날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 형은 말했다.

“기리인.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그 활의 힘은 모두 드러내지 않는 게 좋겠다. 거의 마법에 준하는 전략병기 급의 위력이야. 보물은 화를 부르는 법이다. 잘못했다가는 니가 원하지 않는 곳에서 이용당하게 될 수도 있어. 이건 너의 안위를 위해 하는 말이다. 꼭 명심해 줬으면 좋겠다.”

형의 진심이 느껴지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부산스러워지는 것 같은 저쪽을 보더니, 고개를 돌려 모두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사정거리가 기니 우리가 여기 있다고는 생각 못할 장점이 있군. 자, 얼른 움직입시다.”

내 활 이외에는 아무것도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발을 돌려 오던 길을 되짚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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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겠습니까?”

걱정스럽게 묻는 톨라츠 아저씨의 말에 형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괜찮아. 뭐, 어떻게야 하겠어. 아직 우리 일행에 대해 정확히 모르니 좀 뻥좀 쳐도 될거야. 혹시 모르니, 두 사람은 여관에서 나와 신전에 가 있으면 좋겠군.”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 사람의 위에 트리클 신의 공평무사한 천칭의 가호가 있길.”

가볍게 손을 들어 우리를 축복한 톨라츠 형과 에빌로 누나는 고개를 숙여보인 후 뒤를 돌아 성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형은 두 사람의 등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내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르토 누나가 내 팔을 잡은 채 서 있었다. 누나는 내 팔을 놓으면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은 안색을 하고 있었지만, 표정만은 단호해 보였다.

“괜찮겠습니까? 아르토 씨.”

아르토 누나는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약간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누나를 보았다.

“힘드시면 저희가 얘기를 전달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거기에 포니만 씨가 없을 수도...”

“아뇨, 있을 거에요.”

누나는 고개를 저었다.

“직접 아버지를 보고,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아버지의 자의였다면, 왜 이런 무리한 짓을 하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누나의 표정은 단호했다. 형은 더 이상 설득하는 게 무리일 거라고 생각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나를 보고서는, 누나 쪽으로 눈짓을 했다.

‘어떻게 하라구요?’

‘진정 좀 시켜 봐. 저러다가 오기도 전에 쓰러지겠다.’

쩝. 나는 별 수 없이 누나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저, 누나. 괜찮아요.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 금방 끝나요.”

누나는 나를 그 둥근 눈으로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면 잠깐 앉아 계세요.”

“아냐, 그럼 더 불안해서... 미안하지만...”

그러면서 내 팔을 더 꽉 붙드는 아르토 누나. 나와 형의 눈길이 마주쳤고, 서로 표정으로만 으쓱 한 순간.

두구두구...

저 쪽, 저들의 천막이 있던 쪽에서 말을 달리는 소리가 났다.

“온다. 많은 말 소리가 아니군. 두 필 정도 될 것 같아.”

그러더니 형은 나를 돌아보며,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너의 조건이 통한 모양이다.”

말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자꾸 일이 생겨서 조금씩 늦네요.; 저녁 연재는 제 시간에 할 수 있게끔 노력하겠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그리고 쿠폰 주고 가시면 더더욱 감사히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리리플)

화이트프레페 님 // 나중에 더 좋은 데서 만나야죠. 가출하면 고생...ㅎㅎ;

c ㅏ 님 // 정말 감사합니다. 힘내서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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