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8 3. 갈림길에서는 돌아보라 =========================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갈지는 미리 생각해 두었다.
“먼저 몇 가지 의문점을 풀고, 그 다음에 요뢰브 백작님과 에아임 형님이 서로 이야기를 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지금까지는 잘 되고 있어. 침착하자, 침착하자.
“케브토 씨와는 언제부터 어떻게 연결되었습니까?”
“밑천까지 다 털어갈 셈인가?”
허허 웃지만 불만을 표시하는 백작님.
“북부에 손해되지 않게끔 하겠습니다.”
백작님은 피식 웃고는 말을 꺼냈다.
“시바낙을 재배하기 시작한 건 대략 1~2년 전부터일세. 물론 지금처럼 대량으로 하기 시작한 건 올해가 처음이고. 조금조금씩 규모를 늘려나가며, 재배하는 농부들이 어느 정도로 다치고 아파하는지, 손실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있었지. 그러다가, 갑자기 경작지에 침입해 온 사람 한 명을 잡았다고 하더군. 대공님 앞에 끌려온 사람이 바로 케브토 씨였네. 우리의 이야기를 듣더니 연구 자금을 주면 기술을 전수해 주겠다고 했었지.”
연구 자금이라는 말에 약간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보고 있던 아르토 누나의 고개가 케브토 씨를 향해 홱 돌아갔고, 케브토 씨는 딴청을 피웠다. 이 무슨 진지한 장면에 양념 같은 장면이냐.
“에아임 군, 자네가 믿어줄지는 모르겠지만, 케브토 씨의 기술을 전수받아 시바낙의 중독성을 줄이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계획을 시도하지 않았을 걸세. 지금의 시바낙은 중독성이 많이 줄었다네.”
곧바로 형이 받아치려 했지만 나는 손을 들어 형을 잠시 말렸다. 형은 나에게 중재자의 역할을 맡기겠다는 말을 지키려는 듯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을 삼켰다. 나는 백작님을 향해 물었다.
“‘치유의 손’ 이전까지는 그럼 시바낙의 유통은, 음지에서...?”
백작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리인 군, 자네는 알기 힘들겠지만, 사회에는 어두운 면이 항상 있다네. 그리고 그 어두운 면을 완전히 없애기란 힘들어. 빛이 강할수록 그 반대편 천칭에 오르는 그림자도 커지는 법이니까. 세상의 어두운 면 중에는 마약에 관련된 수요도 항상 있다네. 이 곳 미틱 시도 마찬가지지.”
“그래서 우리는, 질 좋고 중독성이 낮아진 시바낙을 이용해 미틱 시의 암흑가를 장악하고, 나머지 조직들을 궤멸시키기 시작했지.”
“그 조직원들은 북부군 중에서 차출되었겠군요.”
백작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이런 종류의 업무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자질이 아니야. 믿고 맡길 수 있는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신뢰’이지. 그래서 대공님은 나를 믿으셨고, 나는 내 믿는 부하들을 차출해 이 일을 관장하게 했지.”
“그리고, 미틱 시에서 시바낙으로 추정되는 마약이 퍼지고 있다는 첩보가 제도에 들어갔겠군요.”
나와 백작님은 형을 바라보았고,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작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시바낙에 대한 첩보는 수사기사단이 1급으로 다룹니다.”
백작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래서 점차 미틱 시에 알음알음으로 시바낙이 퍼졌지만, 그야말로 찔끔찔끔에 불과했지. 들인 돈에 비하면 수익이 없다시피 했고. 그러던 와중에 케브토 씨를 만났고, 시바낙의 독성을 없앨 수 있다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할 수도 있다는 결론을 얻었지.”
“하지만 독성을 완전히 없애지 못했네. 그래서 직접 파는 건 무리라는 결론을 얻었고, 그렇다면 종교의 형태로 위장해 기부금의 형태로 돈을 걷는 방법이 좋겠다라고 생각을 했지. 이런 기밀스러운 사업을 누군가에게 맡길 수 없으니 내가 직접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거고. 아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저기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기사단의 직속 부하들이야. 철저하게 연습시켜서 사제 흉내를 내고 있지.”
재미있다는 듯 백작님은 하하, 하고 웃었다.
“기사가 사제라니, 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가.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재미있더라구. 하다 보니까 점차 나 스스로 거기에 빠져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가 많네. 처음에는 반쯤은 재미로 반쯤은 어쩔 수 없어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꽤 진지하다네.”
“그것이 사교의 위험성이기도 하죠.”
에아임 형이 한 마디 던졌지만, 백작님은 유려하게 그 공격을 걷어내었다.
“그렇기야 하지. 뭐, 이러다가 진짜 사제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하! 걱정 말아, 아직 나는 북부군 기사단장 에반스 요뢰브가 더 좋으니까.”
“백작님.”
내가 나직하게 그를 부르자, 백작님은 아직 얼굴에 웃음기를 완전히 지우지 않은 채 나를 돌아보았다.
“말하게, 기리인 군.”
“북부는... 왜 돈이 필요합니까?”
질문이 너무 거칠었을까.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질문의 의도가 명확하지 않군.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없겠나.”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어찌보면 가장 민감한, 요뢰브 백작님과 그 뒤에 서 있을 대공 전하에게 물어보고 싶었던 가장 핵심적인 질문.
“제가 묻고 싶은 것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시바낙과 그 시바낙을 물에 희석하여 ‘치유의 물’이라고 나눠주는 ‘치유의 손’을 통해 미틱 시를 장악하다시피 한 것, 그를 통해 자금을 뽑아내는 것은, 북부군과 그 가족들을 포함한 북부 영지 주민들을 위한, 소위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수단입니까? 아니면, 점차 관계가 악화되어가는 제도로부터 지원이 줄어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몸부림 같은 것입니까? 혹은 그 외에 다른 목적이 있습니까?”
“자네 너무 민감한 질문을 너무 가리지 않고 물어보는군.”
나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경험이 모자라고 식견이 부족하여 생긴 일이니...”
“됐네. 자네가 진정 그런 사람이었다면 이런 자리에서 그런 질문을 하지도 못 했을터.”
백작님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말했다.
“북대공 전하는 사리사욕을 추구하시지 않는다. 이건 내 기사로서의 명예를 걸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벌어들인 수익은 모두, 미틱 시 및 레카 시에서 북부군과 북부 영지 주민들을 위한 생필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는데 쓰고 있다.”
“모두요?”
“뭐, 10할 모두는 아니지만 말일세.”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 백작님은 한층 더 진지하게 말했다.
“제국과의 관계를 말했는가. 제국에서 애초에 북부군에게 지원해 주는 게 뭔지 대충 아는가? 전부 군대를 위한 보급품이야. 철, 말, 군량... 그나마도 제 때 주는 게 아니라네. 이보게, 기리인 군, 에아임 군. 군대는 돈을 버는 집단이 아냐. 돈을 쓰는 집단이지. 북부 영지에서 돈을 벌 수 있는게 뭐가 있겠나. 뗏목? 가공된 나무를 파는 게 훨씬 더 돈이 많이 벌리지. 안 그런가? 오죽했으면 우리가 이런 짓까지 하겠나 말이야.”
백작님의 말투는 점점 열변조가 되어갔다.
“물론 우리가 미틱 시의 시민들에게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건 아네. 하지만 나는 북대공 전하의 가신이고, 북부 영지 사람들이 더욱 소중해. 트리클 신의 천칭에 올라갈 악업은 우리가 책임지고 갈 각오도 되어 있어.”
하아... 나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수준급이군. 책임 회피와 말 돌리기, 신까지 끌어다 쓰기. 하지만 가장 문제는, 백작님은 이걸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아마 내가 지금 논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그걸 자신의 신념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겠지. 모든 사람들이 그런 면이 있지만, 귀족들은 훨씬 심하고, 또 자신들의 오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니까...
뭐, 각오는 했던 일이다. 나는 형을 바라보며 내가 담을 수 있는 최대한의 정중함을 담아 말했다.
“에아임 형님. 제국 2급 수사기사로서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형은 부지불식간에 자세를 바로 하더니 말했다. 나에게 말한다기보다는 백작님에게 말하는 것처럼.
“제국 수사기사단이 가장 신경쓰는 것은 황제 폐하에 대한 반역의 조짐입니다. 우리 제도는 다른 대공령이나 공작령과는 산맥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수사기사들은 제도 주변에서는 반역을 일으킬 수 있는 결사단 같은 것을 잡아내는 데 신경을 쓰는 한편, 이렇게 전국을 돌 때는 기존 군사조직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애쓰지요. 백작님께서도 익히 아시겠지만, 제국군에도 저희 정보의 끈이 닿아 있습니다.”
놀라야 할 일 같은데 백작님은 평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럴까... 아. 어차피 막지 못하니 통제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막으려는 건가. 내가 군대 지휘자라면 그렇게 하겠다. 핵심적인 정보에는 접근하지 못하게 하다가, 만약 필요한 일이 생기면 일시에 슥삭.
“그래서 저는, 이 사태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는, 그리고 황제 폐하를 거스르는 반역이 아니라는 백작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실제로 북부군의 전력이 증강되었거나, 군의 배치가 변경되었거나 하는 일이 없었고, 군대의 물자 비축 같은 것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이런 일들을 소문이 일체 나지 않게 처리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동원된 인원이 많지 않았던 건가요?”
형은 나를 대견하다는 듯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반역이 아니라면 문제는 격하되지. 내가 애초에 북부에 파견되었던 것은 시바낙이 미틱 시 주변에서 점차 퍼지고 있다는 거였다. 내가 북부에서 이런저런 조사를 하는 동안, 갑자기 ‘치유의 손’을 통해 시바낙이 확 퍼져버린 것이 문제다.”
============================ 작품 후기 ============================
자꾸 낮 연재가 시간이 늦어지네요; 죄송합니다.
점점 시바낙 커넥션이 종점을 향해 치닫습니다.
배째라고 나오는 백작과 즈엉이를 외치는 에아임 사이에서 주인공은 줄을 타야 합니다 ㅎ;;;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고 가시면 더욱 감사히 더욱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리리플)
화이트프레페 님 // 그러게요. 다음에는 좀 단순무식과감형 주인공을 기용할까봐요.
c ㅏ 님 // 감사합니다. 더욱 힘내서 열심히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