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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69화 (69/309)

00069 4. 누군가의 즐거움이 누군가에게는 슬픔 =========================

형은 능숙하게 분위기를 주도했다. 이런 게 귀족가의 일원의 소양인 건가. 세자르와 비키의 표정은 약간 떨떠름한 것 같았지만, 형이 딴 와인병이고, 형이 사겠다고 한 거다보니 뭐라고 할 입장은 안 된다고 여겼던지 아무 말 없이 잔을 들어보였다.

“여행길에서 만난 인연을 소중히.”

“인연을 소중히.”

이번에 딴 와인은 아까 것 보다는 약간 덜 떨떠름한 것 같았다. 이 떨떠름한 맛에 입맛을 들이면 와인을 즐기게 되려나? 뭐, 그거야 훗날 일이고. 잠시 식사 자리에는 침묵이 자리했다. 이럴 때 부모님께서는 ‘트리클 신이 저울눈을 잠시 만지시는 중이시다’고 하시곤 하셨는데.

그 ‘저울눈 조절’의 시간 동안 얼마간, 그릇 부딪히는 소리, 나이프와 포크 소리만 났다. 나는 반쯤은 호기심에서, 그리고 반쯤은 알력 다툼의 사이에 낀 사람이 흔히 보여주는 눈치보기 때문에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세자르 씨의 표정은 다소 딱딱했다. 뭐랄까... 할 말이 많은데 해 봐야 소용 없을 거 같고 기분은 불쾌하고 그러니 입이나 다물자... 이런?

그렇다고 크주크의 표정도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이 상황이 떨떠름하다, 불편하다, 이런 상황. 그의 앞에 앉은 뮤리나의 표정은... 뭐랄까. 혹시 사고라도 생길까 좌불안석인 느낌. 어... 사고 많이 치는 아들을 둔 엄마의 표정 같은?

뭔가, 둘 사이에 알력이 있는 걸까? 또는, 둘이 각각 다른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데, 그 집단 사이에 알력이 있는 걸까? 상인과 격투가가 알력을 가진다면 대체 뭘까. 형은 알고 있으려나, 하고 형을 바라보니 형은 나는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평온한 표정으로 기계적으로 고기를 썰어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달칵.

세자르 씨가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았다. 화가 나서 내려놓은 것은 아니고 식사를 마친 것 같았다. 물론 그런 것 치고는 소리가 큰 편이라 우리 모두 그의 쪽을 돌아보았지만. (특히 그의 뒤에 서 있던 급사는 혹시나 접시에 금이 가지는 않았을까 전전긍긍하는 표정이었다.)

“다 먹었으니 먼저 일어나겠네. 이봐, 후식은 방으로 가져다 줄 수 있겠지?”

급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자르 님.”하고 말하자 세자르 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비키가 여전히 그 반쯤 뜬 눈을 유지하며 서서히 일어나자, 세자르 씨가 테이블을 돌아오더니 그녀에게 팔을 내밀었다. 비키가 그의 팔을 잡자, 세자르는 우리 쪽을 보며 말했다.

“에아임 씨, 톨라츠 씨, 에빌로 양, 기리인 군.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내리기 전까지 친분을 더 쌓을 좋은 자리가 있으면 좋겠군요.”

“동감입니다. 좋은 자리가 있다면 좋겠군요.”

“나와 비키는 특1호실에 묵고 있습니다. 혹시 용건이 있으면 그리로 전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까의 껄끄러운 표정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그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저게 상인의 덕목인가? 인맥이나 거래에 있어 감정은 후순위여야 한다는?

‘띠링!’

<상술의 편린 – 1/5>

<당신은 상인이 인맥 앞에서 어떻게 감정을 죽이고 대응하는지에 대한 일말의 단서를 잡았습니다.>

<이러한 단서를 모을 경우 당신에게 상술에 관한 재능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흐음. 그래. 세자르 씨에게서든, 다른 사람에게서든 이야기하다 보면 얻을 수 있겠지.

<바로 그겁니다.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대우하면, 남도 당신을 수단으로 대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인격체로,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십시오.>

그래. 맞는 말이야. 내가 그 메시지를 읽고 있는 동안 세자르와 비키는 식당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그 순간, 크주크가 포크를 내려놓으며 고함인지 한숨인지 모를 것을 내뱉었다.

“파하!”

“오, 오빠!”

뮤리나가 당황하며 크주크를 불렀지만, 크주크는 와인잔에 반넘어 남아 있던 와인을 꿀꺽 한 모금에 삼켜버린 후, 급사에게 손을 들어보였다. 급사가 와인을 잔에 채워주자 그는 우리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맛있는 와인을 대접받았는데, 껄끄러운 자리라 바로 감사 인사를 못 했네요.”

진중한 그의 목소리. 하지만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충분히 싹싹하다고 할 만한 것이었다. 유명한 사람들은 성격이 나쁘지 않나? 아니면, 저런 싹싹한 태도도 훈련받는 걸까? 아무런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나중에 형이나 누나한테 물어볼까. 크주크는 와인 잔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아까 듣기로 제 이름을 모두 아시는 것 같으니, 제가 누구인지는 말씀 안 드려도 되겠군요. 이 쪽은 제 여동생이자 저의 일을 도와주는 뮤리나입니다.”

뮤리나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몸매가 빵빵해서 퇴폐적이라는 첫 인상을 받았는데, 하는 행동이나 몸가짐은 괄괄하다면 괄괄하지 그런 쪽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비키라는 퇴폐 분위기의 큰 별이 있다 보니 오히려 뮤리나는 반사적으로 좀 더 조신하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에아임 로스입니다. 이 쪽은 톨라츠, 에빌로, 그리고 기리인입니다. 제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크주크는 다시 공손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누가 봐도 강해보이는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은 전혀 비굴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멋있어 보였다. 저런 인간적인 매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크게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할 말이 많지만, 우선 건배를 한 번 할까요.”

크주크가 잔을 높이 들어 보였고, 우리는 급사가 채워준 잔을 같이 들어올렸다.

“맛있는 술을 맛있게.”

“맛있는 술을 맛있게.”

우리 네 사람의 표정은 가벼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저런 건배 선창이라면 아무런 부담없이 할 수 있지. 크주크는 반쯤 남은 와인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후, 짧게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아까 에아임 씨가 말하던 내용을 들었습니다. 제도파와 융파트파의 알력이 있다고 설명하셨지요.”

형은 어깨를 쭉 펴며 말했다. 당당했다기 보다는 긴장한 모습이었다.

“네, 그랬었습니다. 혹시 불쾌하셨다면...”

크주크는 손을 내저어보이며 말했다.

“아뇨, 불쾌라뇨.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이니까요. 세자르 씨는 아무래도 미틱 시나 그 위의 북부 쪽과의 교역을 자주 하시는 분이다 보니 노던쓰(northerns) 소속이고, 저는 체육관도 경기장도 남쪽에 있다 보니 서던쓰(southerns) 소속인지라, 서로 좋은 분위기로 이야기하기는 힘들지요.”

노던쓰, 서던쓰... 북쪽 사람들과 남쪽 사람들이라는 건가. 응? 그럼...

“도시가 물길이나 큰 길 같은 걸로 반쯤 갈라져 있는 모양이군요?”

내 말에 크주크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가, 나를 보며 말했다.

“기리인...이라고 했었지. 맞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물길을 파서 도시 한 가운데를 흐르게 했지. 우리는 운하(canal)라고 부른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게 참, 저 같은 몸 팔아 밥 먹고 사는 사람에게는 그렇습니다. 솔직히 저는 노던쓰건 서던쓰건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그냥 내가 열심히 수련하고, 이기고, 노던쓰건 서던쓰건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은 모두 같은 사람인데 말이죠. 어우, 노던쓰 애들이 도전해 오면 아주 그냥...”

“그렇군요. 그 대립이 이제 정치 영역이 아닌 다른 영역에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했군요.”

“그렇게 된 지 오래 됐어요. 이러다가는 노던쓰 쪽도 별도로 극장이랑 경기장 만들어서 자기네들 리그 만들지도 몰라요. 그런 얘기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고요.”

그 얘기를 듣는 에아임 형과 에빌로 누나의 표정은 심각해졌지만, 나는 레카 시를 아직 밟지도 않아서 그런지 마냥 남의 이야기 같았다. 그래서일까. 내 눈은 뮤리나 양 쪽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녀가 혹시나 오빠가 말실수 같은 걸 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것을 보았다. 음. 화제를 돌리는 게 좋겠는데. 잠시 머리를 굴려본 나는 말했다.

“미틱 시에서 오시는 길이세요?”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치고 들어간 내 말에 크주크는 별 이상한 낌새를 못 느꼈는지 순순히 대답했다.

“아, 그래. 미틱 시에서 오는 길이지. 나는 원래 미틱 시 출신이거든. 부모님 계신 고향에 다녀오는 길이야.”

“아... 부모님은 같이 안 계세요?”

“거기가 좋으시다더라고.”

간단히 말한 크주크는 고기를 크게 잘라 입 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내 눈이 뮤리나 양의 눈과 마주쳤다. 뮤리나 양이 가볍게 눈웃음을 지으며, 아주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해한다는 뜻을 담아 마주 눈짓했다. 잠시 천칭 조정 시간이 지나고 형이 말했다.

“곧 방어전 기간이 아니던가요?”

크주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1주일 후에 열립니다.”

형은 그 소리를 듣고 기겁했다.

“에? 아니! 챔피언이, 시합 1주일 전인데, 이렇게 배를 타고 술도 마시고 하면 됩니까?”

크주크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당연히 안 되죠! 아마 방으로 돌아가면 뮤리나의 잔소리를 끝도 없이 듣게 될 겁니다. 오늘 망가진 만큼 운동도 더 해야 할 거구요.”

그러더니, 아직 요리가 1/3 정도 남아있는데, 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에아임 씨, 그리고 여러분. 내리는 동안 더 즐거운 시간 가졌으면 좋겠군요.”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저희는 특6호실을 같이 쓰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크주크는 뮤리나에게 “자, 가자! 뛰러 가야지!” 하고 말하고는 성큼성큼 식당을 나가버렸다. “아, 진짜!”하고 외친 뮤리나는, 우리 쪽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같이 가, 오빠!” 하면서 크주크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우리 네 사람은 그 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서로를 돌아보고는, 피식 하고 웃었다.

“남매라는 게 저런가요? 저는 외동이라.”

“저 정도면 사이가 매우 좋은 편이야.”

에빌로 누나의 말. 으음. 진짜 그런 걸까. 그러고 보면, 나랑 사귀었던 수많은 여자애들이 오빠나 남동생 욕을 했던 일이 꽤 있었구나.

============================ 작품 후기 ============================

아무래도 챕터 초반에는 챕터에서 쓸 만한 사람들도 좀 보여주고 해야 하다보니 좀 루즈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립관계가 나와서 그런게 좀 덜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어떠신가요? 지금도 루즈하다면 다른 방식으로의 전개를 고민해 보겠습니다.

제 소설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회수가 올라가는 게 제 보람입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시는 분들께 더더욱 큰 감사드리며 더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리리플)

화이트프레페 님 // 뭔가, 썸씽이 생기겠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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