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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71화 (71/309)

00071 4. 누군가의 즐거움이 누군가에게는 슬픔 =========================

곧 나는 배로 하는 여행의 단점을 다시 한 번 깨우칠 수 있었다. 도저히 시간을 보내는 게 쉽지가 않았다. 배낭에 넣었던 책 한 권은 대륙의 간략한 지리와 여행시 유의사항에 대한 안내서가 고작이라, 이런 건 읽어도 큰 도움이 되질 않았다. 명상으로 활을 표적에 겨냥하고 쏘는 훈련도 한두 번이지. 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

점심 전에 각 방을 돌아다니며 물어본 결과.

“틈틈이 보고서 쓰는 것만으로도 바빠 죽겠다.”

형은 특실의 테이블을 사무 공간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여러 글자와 그림이 쓰여진 온갖 서류가 방 안을 잔뜩 메우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벽에 종이 몇 장이 압정을 이용해 붙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테이블 앞에 머리를 싸맨 형이 앉아 있었다.

“사건 자체의 중요성도 중요성이지만 정치적인 비중이 너무 커. 해결책이 깔끔하게 나왔고, 불만이 없을 북대공이 감사를 순순히 받아들일 거기 때문에 무리가 안 되는 거지. 그러다 보니 보고서를 여러 개 써야 한다. 수사 기사단에 올릴 것, 제국 재상부와 재무부 공동 회람으로 제출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황제 폐하께 직접 올릴 것.”

“황제 폐하께 직접 올린다고요?”

“그래. 내가 말했지? 네가 세운 공훈을 황제 폐하께 직접 말씀드릴 거라고.”

하지만 형은 그 보고서를 쓰는데 엄청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주변에 구겨버린 종이들이 여러 장 나뒹굴고 있는 것만 봐도 알 것 같아서 나는 형에게 수고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5호실로 이동했다.

“아하, 저도 그 문제 때문에 골머리 많이 앓았었죠. 제가 찾은 해결책은 두 가지였습니다.”

일말의 기대를 갖고 아저씨를 바라보았는데, 아저씨는 가방에서 검은 책 하나를 꺼내보였다.

“신의 말씀은 몇 번 읽어도 언제나 같은 감동과 깨우침을 주지요. 그리고 마음을 닦다가 몸이 부대낄 때에는, 육체를 단련하며 힘을 기르다 보면 다시 신의 말씀을 달게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지요.”

“아, 네...”

나는 떨떠름하게 인사하며 방을 나섰다. 결정타는 아저씨가 ‘육체를 단련하며’라고 했을 때 자신의 그 무식하게 크고 두꺼운 방패를 바라보고 있었던 거였다. 저걸 들거나 움직인다고... 차라리 심심해하고 말겠다. 마지막 기대를 갖고 3호실 문을 두드리자 누나가 반개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 누나, 잤어요? 죄송해요.”

“아냐... 무슨 일...?”

“뭐하시면서 시간 보내시나 싶어서...”

“자...”

“밤에 잠 안 오지 않아요?”

“낮에 자는 거랑 밤에 자는 거는 다르니까...”

네, 네, 네. 나는 누나에게 다시 미안하다고 했고 그러자 누나는 느릿느릿 문을 닫았다. 보나마나 다시 누웠겠지. 하이고. 세 방식 모두 내가 따라할 수 있는 건 아니구만. 레카에 가면 책이라도 한두어 권 사든가 해야겠다.

그나저나 뭐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배 안으로는 들어가기 조금 그렇고, 밥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고... 결국 내 발길은 갑판으로 향했다. 바람이나 맞으면서 햇살이나 쬐어야겠다. 점심때까지 개기다가... 그렇게 생각하고 갑판에 갔는데, 갑판은 고즈넉하게 햇살을 쬘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아흔다섯!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아흔여섯!”

“후욱, 후욱, 후욱!”

크주크와 뮤리나 남매가 갑판 한 구석을 점령하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 뮤리나는 나무판에 압정으로 종이 한 장을 끼워서 그걸 들고 있었다. 흐음... 훈련하는 건가보다. 매일 약간씩 달라지지만 전체적으로 비슷한 훈련을 되풀이하며 몸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나에게 저걸 가르쳐 준 바크 선생님이 말씀하셨지. 물론 나도 아침에 일어나서 방 안에서 짧게 저런 운동을 했고.

하지만 크주크의 그것은 보는 내가 다 토나올 정도의 강훈련이었다.

“하나, 둘, 셋, 속도가 늦어져! 여섯, 일곱, 아흔일곱!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아흔여덟!”

크주크는 ‘하나’에 쪼그리고 앉았다가, ‘둘’에 전신에 탄력을 주며 엎드려 뻗쳐 자세로 확 전환했다가, ‘셋’과 ‘넷’에 절도있게 팔굽혀펴기를 한 후, ‘다섯’에 다리를 당겨 다시 쪼그리고 앉았다가, ‘여섯’에 일어서서, ‘일곱’에 제자리에서 힘껏 온 몸을 젖히며 뛰었다. 뮤리나가 세는 걸 보면 저 ‘하나’부터 ‘일곱’까지 하는 모든 동작을 한 세트로 하는 모양이었다. 그걸 100개나 했다고? 와...

“마지막!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백!”

“후욱! 후욱, 후욱, 후우...”

“쓰러지지 마! 일어나서 숨 골라!”

우와. 매섭다. 트레이너를 겸한다더니, 뮤리나는 크주크를 혹독하게 몰아치고 있었다. 크주크는 고분고분히 일어나서, 가볍게 제자리뛰기를 하며 숨을 골랐다. 챔피언이 되려면 저래야 하나...?

“어?”

그때 크주크가 내 쪽을 보았다. 뮤리나의 고개도 내 쪽을 향했다. 아, 이거. 미안스럽네. 나는 고개를 숙여보였다.

“안녕하세요. 방해가 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시끄럽게 한 우리가 미안하지 뭐. 어차피 레카의 체육관에 가도 나 이런거 하는거 보려고 사람들 많이 와서 익숙해. 괜찮아. 뮤리나, 괜찮지?”

뮤리나는 고개를 끄덕 해 보였다. 다행히 어제 식사자리에서 첫인상을 좋게 잡아둬서인지 그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크주크는 진짜 토나오는 스케줄을 실시했다. 물구나무 서서 두 팔로 팔굽혔다 펴기, 한 다리로 앉았다 일어서기. 괜찮은 곳이 있었으면 턱걸이까지 했을 거다. 이어 뮤리나가 속이 빈 나무토막 하나를 가져왔고, 뮤리나가 힘껏 휘두르는 나무토막을 크주크가 팔과 정강이로 막아내고 있었다. 으윽.

‘띠링!’

<내구력 88의 근원이 저런 겁니다.>

으. 머리로야 알지. 계속 저렇게 맞고 맞는 연습을 하면 맷집이 더 늘어난다는 거. 특히 정강이 같은 곳은 저런 식으로 단련을 해 줘야 한다는 거. 하지만 퍽 퍽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휘두르는 뮤리나나, 얼마나 저런 단련을 했는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막아내는 크주크나, 대단한 사람들이다.

한참동안 나무를 휘두르던 뮤리나가 나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5분간 휴식!”

“아이고! 어제 하루 쉬었다고 벌써부터 몸이 지친다, 지쳐!”

“오빠, 방어전이 이제 6일 남았거든? 불길하게 그게 할 소리야?”

“야, 너는 매니저라는 사람이, 선수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생각을 해야지, 꼭 그렇게 닦달을 해야겠냐?”

‘저 정도면 사이가 좋은 편’이라고요, 에빌로 누나? 거친 숨을 몰아쉬던 크주크는 어느새 회복한 듯 제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통통 뛰고 있었다. 나보다 주먹 하나는 큰 거한이, 온 몸에 근육이 가득한 거한이 저렇게 가볍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었다. 크주크는 가볍게 몸을 풀더니 내 쪽을 보며 말했다.

“기리인, 이라고 했었지?”

“네, 크주크 씨.”

“난 올해 스물여섯이야. 나보다 어리지? 말 편하게 해도 될까?”

무례하다기 보다는 스스럼이 없었다. 표정이 웃고 있는 표정이라서 그런가? 별로 기분나쁘지 않았다.

“네, 그러세요. 전 올해 열아홉이에요.”

휘유~ 하고 크주크가 휘파람을 불었다.

“이야, 올해 성인이 됐어? 그런 것 치고는 꽤 대단한 분들하고 같이 다니던데? 체격도 좋고, 몸도 탄탄하고.”

아하하. 나는 웃으며 머리만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크주크는 여동생을 돌아보며 말했다.

“야, 뮤리나. 열아홉이라는데?”

“그래서 뭐?”

아. 저거 뭔지 알아. 괜히 부끄러우니까 뾰족하게 대하는 거야. 아르토 누나와는 또 다른 맛이 있네. 나는 웃으면 그걸 빌미로 트집잡힐까봐 속으로만 큭큭 웃었다. 크주크는 다시 나를 보면서 말했다.

“지금 할 일 없지? 나를 좀 도와줄 수 있을까?”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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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주크와 뮤리나는 방에서 커다란 배낭 하나를 내왔다. 그 배낭을 활짝 열자, 그 안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들어있었다. 크주크의 훈련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인 것 같았다. 어?

“저 활은 뭐에요?”

“아, 이거? 너 활 좀 쏠 줄 아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명사수랍니다.”

“오, 잘 됐네. 뮤리나. 그거 할까?”

뮤리나도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가방에서 그리 크지 않은 활과 끄트머리에 뭉툭하게 솜이 대어져 있는 짧은 화살이 담긴 전통을 꺼내왔다.

“이게 뭔가요?”

“아. 우리가 하는 훈련 중의 하나인데, 몸통을 노리고 쏘아진 화살을 주먹이나 발로 튕겨내는 연습이야. 몸을 노리고 오는 타격을 중간에서 차단할 수 있으면 좋거든.”

“아...”

“저 활로 저 화살을 나한테 쏴주면 된다. 한 발씩도 쐈다가, 연속해서도 쐈다가 하는 식으로 말야.”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활을 받아들고 구부려 활줄을 매고는, 활을 몇 번 튕겨보았다. 내가 쓰는 컴파운드 보우 보다 장력도 약하고, 애초에 크기 자체가 작아서 뭐 위력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보관 상태도 좋지 않고. 딱, 연습용이구나. 화살도 깃이 엉망인데다가 화살의 탄력도 별로 좋지 않았다. 나는 전통과 활을 들고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섰다.

“이 정도면 되겠죠?”

크주크는 다시 휘유- 하고 휘파람을 불었다. 저게 버릇인가보다.

“꽤 익숙한가보네? 좋아. 내기하자. 니가 내 몸에 그걸 맞출 수 있다면 내가 너한테 선물 하나를 해 주마.”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 자신있나? 좋아요, 아저씨. 당황하게 해 드리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크주크는 웃으며 선실 벽을 등진 자세로 섰다.

“자, 갑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진심으로요.

늘어나는 조회수 하나, 추천 하나, 코멘트 하나에 이렇게 기분 좋을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선삭이 있거나 조회수가 줄면 스트레스지만...ㅡㅡ;

감사합니다. 자정에 돌아오겠습니다.

(리코멘)

화이트프레페 님 // ㅎㅎ;; 상할 수 있는 음식은 먹을 때 조심해야죠. 엔간한 남자면 넘어가겠지만, 얘는 배가 부른 애라...

subbidese 님 // 정말 감사합니다. 님의 코멘트를 볼때마다 더 열심히 써야지 하고 다짐합니다.

melontea 님 // 말씀 감사합니다. 쿠폰 5장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보다 더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하겠습니다.

eastarea 님 // 기리인식 어장관리...일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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