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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72화 (72/309)

00072 4. 누군가의 즐거움이 누군가에게는 슬픔 =========================

“자, 갑니다!”

크주크는 내 말을 듣고, 몸을 가볍게 웅크리며 두 주먹을 턱 앞에 약간 떨어지게 모으고, 약간 비스듬한 각도로 섰다. 그러면서 한 손을 펴 내 쪽으로 까딱까딱 해 보였다. 마치 강아지를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항상 회로 과부하를 경계해야 하는 마법사의 마음가짐을 갖고 지내와서일까? 나는 평생 호승심이라는 감정과 크게 인연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크주크를 보고 별로 도발이라거나 화가 난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크주크의 반응을 좀 보고, 마불살을 쓸지 안 쓸지를 결정해보자. 솔직히 이걸로 마불살을 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리고 나는 크주크의 훈련을 도우려는 게 목적이지, 크주크를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 나는 일단 활을 80%만 당겼다. 빠아아. 활의 비명이 어째 영 불안하다. 어쨌든, 활시위를 놓을 때는, 부드럽게. 툭. 패앵-!

“헛!”

크주크의 몸통을 향해 날아간 화살의 속도는 내가 보기에도 그저 그랬다. 크주크도 별 긴장하는 표정 없이, 왼손을 가볍게 쭉 뻗어 화살을 툭 쳤다. 화살은 가볍게 아래로 튕겨내려졌다.

“좀 세게 해도 괜찮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2발째를 준비했다. 이번에는 최대의 힘으로 활을 당겨보자. 빠아아아. 툭. 패앵-! 이번에는 허벅지 쪽을 노렸고, 크주크는 어렵지 않게 앞쪽에 딛고 있던 왼발을 뻗어 화살을 차냈다. 순간 나는 그의 움직임이 대단히 부드럽다는 걸 깨달았다. 힘과 세기로만 차는 게 아니라, 온 몸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마치 발이 화살을 휘감는 것 같은 동작. 발에 맞은 화살은 부서지는 게 아니라 가운데가 휘어지며 빙글빙글 돌며 부드럽게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의 동작에 감탄한 내 눈길을 그는 ‘이 정도를 튕겨냈단 말이야?’ 하고 착각한 듯하다.

“더 세게 해도 된다니까?”

거 참. 호승심이 숨쉬듯 익숙한 감정인가? 나는 씩 웃고는, 전통에서 세 발을 한번에 꺼내어 들었다. 예고 없이 가보자. 세 발 연속사격이다. 패앵! 패앵! 패앵!

“훗!”

약간 시간차를 두어 머리 쪽으로 두 발, 그리고 가슴 쪽으로 한 발 날렸다. 크주크는 처음으로 한 발 비스듬히 내딛어 첫 발을 피하고, 두 번째 발을 왼손으로 정면으로 후려쳐 저지시킨 후, 몸을 오른쪽으로 틀면서 오른손으로 화살을 위로 튕겨냈다. 튕겨져 올라가는 화살을 바라보지 않고 크주크는 한 스텝 앞으로 밟으며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뻗었다. 아. 저건 바크 선생님이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가상의 적을 상정하고, 그에게 주먹을 뻗는 것이다. 크주크가 처음으로 탄성을 터트린다.

“좋아, 이 정도가 되어야 연습이 되지! 계속!”

나는 씩 웃고는, 다섯 발을 한번에 꺼내어 쥔다. 내 속사는 바크 선생님이 인정한 속사다. 그리고, 약간의 트릭을 섞으면 어떻게 반응할까도 궁금하다. 나는 세 발을 연속해서 날리고, 한 호흡 뒤에 다리를 겨냥하고 두 발을 날린다.

“훗!”

여전히 크주크의 기합은 짧다. 아까 피한 것을 감안해 첫 발과 두 번째 발이 약간 떨어지게 쏘았는데, 크주크는 그걸 예상한 듯 아예 턱을 감싸며 허리를 숙여 버렸다. 그리고는 약간 아래쪽으로 날아오던 세 번째 발을 오른손 주먹 바깥쪽으로 튕겨내고는, 그 동작 그대로 왼손을 아래에서부터 끌어올려 치려다가, 순간적으로 앞에 나와있던 왼발에 힘을 강하게 주며 한 걸음 뒤로 뛰었다. 그러면서 그의 오른발이 유려하게 앞을 쓸고 지나갔다. 날아가던 화살 두 발이 모두 그 궤적에 휩쓸려 옆으로 날아간다.

“제법... 흡!”

얍삽하다고 비난해도 좋다. 실전에서는 온갖 수가 다 동원될텐데 말이다. 크주크가 한 걸음 뒤로 뛸 때 나는 바로 화살을 재어 연속해서 세 발을, 아래쪽, 복부, 목 쪽을 겨냥해 날렸다. 막 발을 날렸으니 바로 발쪽을 대응하긴 힘들겠지, 했는데. 그는 몸을 반대로 뒤틀며, 왼발을 짧게 내질러 정강이 쪽으로 날아오던 화살을 쳐낸 후, 왼발을 강하게, 뱃전이 울릴 정도로 쿵 하고 내딛으며 왼손을 짧게 두 번 내질렀다. 빠르게 쏘느라 힘이 많이는 들어가 있지 않았던 두 발의 화살은 그 짧은 견제용 주먹에도 툭툭 튕겨져 나갔다.

“지금 거 좋았어!”

순수하게 감탄하는 크주크. 그도 무인의 한 명이라는 걸까? 어린아이같이 감탄하는 그를 보니 미소가 나왔다.

“저, 크주크 씨.”

“크주크 형이라고 불러!”

참 시원시원하다는 느낌이다. 주변 사람까지 경쾌하게, 기분 좋게 해 주는 사람. 사람들이 사랑하는 챔피언은 그런 건가? 아니면 원래 그의 성격인가. 확실한 건 사람들이 그를 많이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네, 형. 좀 특이한 거 해 봐도 될까요?”

“어떤 건데?”

“곡선으로 날아가는 화살이요.”

“곡선? 하늘로 삐웅- 이거?”

“그거 말구요. 음, 주먹을 앞으로 뻗는 것도 있지만 옆으로 휘두르는 것도 있잖아요?”

내가 손짓해 보이며 한 말에 그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래, 스트레이트(straight)와 훅(hook)이 있고, 발차기에도 앞차기와 돌려차기가 있지. 그런데 활로 그런 게 된다고?”

“한 번 해보게요.”

그럼 좋아, 일단 한 발만, 이라고 하며 크주크 형은 다시 자세를 잡았다. 흐음. 형을 이기고 싶다기보다는, 내 생각이 맞는지를 해 보고 싶었다.

아까 말했듯이 배 여행은 시간이 남는다. 어젯밤, 비키 씨의 소리없는 눈물을 본 이후, 나는 방에 들어가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그 광경 때문일까. 그걸 잊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마불살 생각을 했다. 꼭 궤도가 직선이어야 할까? 곡선으로 날릴 수는 없을까? 내 활과 화살로 연습해 볼 수는 없었던 터라 마나의 궤도를 곡선으로 만드는 연습만 하고 있던 차에, 마침 아주 좋은 기회가 아닌가, 이건.

나는 활 시위에 뭉툭한 화살을 걸고, 집중해서, 마나를 불러일으켰다. 마불살을 형에게 직접 날리는 게 아니고, 나는 휘어지는 궤도를 생각했다. 그래. 무지개처럼. 반원을 그리며 턱 쪽으로 날아가는 궤도. 마불살이니 살짝만 당겨도 되겠지.

“갑니다!”

나는 마치 형이 아닌, 저 쪽 뱃전을 겨냥하듯 활을 멀리 돌리고, 활시위는 반만 당겼다가, 가볍게 툭 놓는다. 스르르륵. 아까의 쐐애액 하는 소리가 아닌, 스윽 하고 화살대와 화살깃이 뭔가에 마찰되는 소리가 나며, 화살이 강 건너편 쪽으로 날아가는 것 같다가... 됐다! 마치 누군가 실에 매어 돌리는 것처럼,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둥글게 돌아서 크주크 형의 턱 쪽으로 날아든다!

“흐엑?”

너무 놀란 형은 쳐 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두 손을 들어 턱을 가렸다. 퍽. 형이 가드한 위를 뭉툭한 화살이 쳤다. 그 순간 든 생각은, 맞췄다, 는 기쁨보다는, 세게 안 날아가서 다행이다, 는 생각이었다. 잊은 줄 알았는데, 미틱 시에 가기 전에 습격당했을 때 내 마불살에 머리가 한 방에 날아가던 사람들이 내 머릿속에 아직 남아있었나 보다.

나는 짐짓 고개를 흔들어 끔찍한 기억을 털어내고는 빙긋 웃어보였다. 형은, 그리고 뮤리나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그, 그거 뭐야?”

“아, 이거요. 마나로 인도되는 화살이에요.”

“뭐 그런게 다...”

형은 잊으려는 듯 고개를 빠르게 흔들었다.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맞추면 선물 주신다고 했죠?”

형의 호승심을 빠르게 불러일으키는 게 제정신을 찾게끔 하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니나다를까, 형은 충격에서 헤어나, 재미있다는 표정을 하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한 번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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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남은 열 발의 화살 중 크주크 형에게 적중된 건 단 한 발이었다. 빠르게 쏘면서 마나의 궤도를 여러 개 만들 수 없다는 단점을 발견했기 때문이었고, 덕분에 휘어지는 화살과 바로 날아가는 화살을 연달아 쏠 수가 없었다. 그걸 깨우치고 난 다음 형은 생각보다 빠르게 주먹과 발로 화살을 걷어냈지만, 내가 끝에 날린 화살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쳐오자 한 방을 복부에 허용하고 말았다.

“우욱! 어우, 아프다!”

과장되게 복부를 끌어안고 바닥을 뒹구는 형. 누가 봐도 장난인 게 뻔해 보였기 때문에 나와 뮤리나는 눈빛을 마주치며 큭큭 웃었다. 아니나다를까 형은 금세 툭툭 털고 일어났다.

“야, 기리인! 그거 멋지다! 간만에 신선했어. 연습도 잘 되고. 고맙다!”

“아뇨, 심심했던 차에 저도 형이 한 명 새로 생겨서 좋네요.”

크주크 형은 하하! 하고 호탕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으윽. 몸이 울리는 것 같다.

“뮤리나, 어때? 꽤 좋은 훈련 같지?”

뮤리나도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뜻밖의 곳에서 뜻밖의 도움을 받았네. 역시 부모님께서 우리를 보살피시는가봐.”

어째, 눈치가. 미틱 시에 계시다는 부모님이 살아계신 게 아닌 것 같다. 그럼...

“기일... 이셨군요? 그래서 방어전을 앞둔 민감한 시기인데도 다녀오시는 거죠?”

크주크 형과 뮤리나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알았니?”

“그냥... 왠지 두 분 표정이 좀 옛날 일을 떠올리는 것 같아서요.”

두 사람은 지긋이 미소지을 뿐이었다. 슬프거나 기분이 나쁜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형은 무거워진 분위기를 해소하려는 듯, 크게 박수를 짝, 하고 쳤다.

“암튼! 기리인, 나 훈련하는 것 좀 도와줘. 배에서 내리기 전까지 이 훈련을 한두 번 정도 더 하고 싶은데?”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이런 방식의 화살 쏘는 거 훈련도 해야 하고, 좋죠. 대신 남의 눈을 피해야 하니까 이 시간처럼 다른 사람들이 없을 때 하기로 해요.”

크주크 형은 “고맙다!”하고 크게 웃으며 다시 어깨를 두드렸다. 아. 좀 아프다. 멍든 거나 아닌가 몰라. 뮤리나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와 말했다.

“일행이 네 명...이었죠?”

“네. 아, 말 놓으세요. 저도 편하게 누나라고 부를게요.”

“뭐 몇 살이나 차이난다고. 그래, 대신 말 높이기는 없기다. 알았지?”

이런 걸 말하는 건가?

“응, 알았어, 누나.”

뮤리나 누나는 빙긋 웃으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손으로 툭 꺾었다. 양손에 둥근 원판의 반쪽이 각각 놓여 있었다. 원래 그렇게 떼어지게 만들어져 있었나보다. 누나는 반쪽을 내게 내밀며 말했다.

“자, 받아.”

“이게 뭐에요?”

“곧 있을, 오빠의 왕좌 방어전 입장권.”

“...저는 잘 모르지만, 이거 되게 귀한 거 아니에요?”

옆에 있던 크주크 형이 ‘당연하지!’라고 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반쪽을 가지고 있다가, 입장할 때 특별 손님용 입구로 가서 내보이면, 우리가 가져간 반쪽이랑 맞춰보고, 확인해서 입장시켜 줄 거야. 너랑, 네가 데려온 손님 네 명까지 같이 들어올 수 있는 입장권이니까, 일행이 다같이 들어가는데 무리가 없을 거야.”

“감사합니다.”

내가 고개를 푹 숙이자 두 사람은 빙긋이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고개를 들던 나의 시야 한 쪽에 뭔가 특이한 것이 잡혔다. 저기, 특실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 하얀 담비털 목도리.

비키 씨였다.

그녀는 예의, 반쯤 뜬 눈으로, 이 쪽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나를 보는 걸까? 글쎄. 멀어서 잘 알 수 없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걸까. 나와 그녀의 눈이 마주치고, 그녀가 가볍게 목례했다. 나도 마주 가볍게 목례했다. 내 시선을 눈치챈 크주크 형과 뮤리나 누나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녀는 이미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날이 따뜻해지니까 좋네요.

정말 봄이 오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많은 분들이 읽어주셔서 좀 놀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이 헛되지 않게 더 열심히 더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리리플)

백사열 님 // 화살촉 대신 솜덩어리가 달린 화살이니까, 한조 궁(...)이라도 쓰기 전에는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을듯요 ㅎㅎ;;;;

화이트프레페 님 // 저렇게 잘 수 있는 것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기 때문인듯 합니다.

melontea 님 //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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