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74화 (74/309)

00074 4. 누군가의 즐거움이 누군가에게는 슬픔 =========================

‘정보 확인.’

<이름          : 티르완 플리트

나이          : 45

HP           : 3410/3410

힘            : 85

민첩          : 79

지력          : 73

마나친화력    : 65

매력          : 79

지구력        : 88

특수          :

스킬          : 독도법 A-, 항해 A->

<선원 경력이 30년인 베테랑 선원입니다. 어떤 사정에 의해서 지금은 대양 항해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으음... A-면 꽤 엄청난 선원 아닌가? 아니, 잠깐만. 이봐, 시스템. ‘항해’면, 배를 ‘모는 것’이 들어가 있는 거 아냐?

<맞습니다. 생각보다 고급 선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는 고민하는 것을 감추기 위해 잔을 들어 한 모금 삼키고는, 그 뜨거움을 참아낸 후, 티르완 아저씨에게 물었다.

“바다는, 어떤 곳이에요?”

“바다는...”

잠시 말을 고민하던 티르완 아저씨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이 꼭 즐거운 웃음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기리인, 여자 친구 사귀어 본 적 있니?”

“네.”

“차여 본 적은?”

“있죠.”

“그럼 혹시 이런 거 알려나 모르겠네. 겉으로 보기에는 엄청 평온하고 차분한 사람이야. 그런데 한 번 수틀리면 지옥처럼 변해. 당장이라도 나를 잡아 죽일 것 같지. 그런데, 이 사람은 내가 있건 없건 크게 신경도 안 쓰는데, 이 사람에게서 헤어날 수가 없는 거야. 가끔씩 보여주는 평온하고 끝없는 모습 때문에, 나중에는 나를 죽일 것 같은 성격 개같은 것마저도 매력적으로 보이지.”

“...어떤 건지 알 것 같아요.”

“여기 하나 덧붙여줄까? 결혼한 사람들은 마누라 같다고 하면 한 방에 이해한다.”

“바다가... 아내같은 존재라고요?”

“물론 아내를 사랑하지. 아내도 나를 사랑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싸우지는 않거든. 서로 죽이네 사네 같이 사네 못 사네 난리를 치면서 그릇도 깨고 그렇게 싸우지. 그러면 정말 다시는 꼴도 보기 싫거든. 바다도 그래. 한 번 끔찍한 폭풍우 겪고 나면 진짜 바다에는 다시 나가고 싶지 않다, 다시는 배 안타고 땅 밟고 살 거다 이런 결심을 하지.”

“...그런데요?”

“그러다가도 한 이불 덮고 한 베개 나눠베고 살 냄새 맡으면 어느새 다시 정 붙이고 사는 게 부부야. 치르낙 대왕의 부인이신 리에나 왕비가 이런 말을 남겼잖아. 부부싸움이란 게 포크로 물을 찍으려고 드는 거랑 같다고. 그릇이 상처날 정도로만 찍지 않으면 원위치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고 말이야.”

국어시간에 배우는 격언 중 하나라 알고 있는 말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티르완 아저씨는 ‘회한’이라는 말을 붙이면 어울릴 표정으로 말했다.

“바다도 그래. 다시 안 보겠다고 헤어져 왔어도 늘 생각나지.”

“...”

묻고 싶은데, 아저씨의 표정은 물어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티르완 아저씨는 남은 술을 한 입에 털어넣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아저씨의 잔을 채워주었다. 한참 눈을 감고 있던 아저씨는 웃으며 말했다.

“이거, 먼 곳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준다고 해놓고는 헤어진 마누라 얘기만 했네. 그래, 기리인. ‘남대륙’ 이야기 들어본 적 있니?”

“네? 남대륙이요? 가보셨어요?”

“아니. 150년 전에 황제 폐하께서 명하신 거 모르니? 이티클레 대륙의 사람들은 남대륙 땅을 밟을 수 없어. 남대륙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아... 역사 시간에 배우는 거다. 대략 250년쯤 전에, 갑자기, 우리 이티클레 대륙 남단에 섬이 세 개 일렬로 갑자기 ‘솟아올랐다’. 입소문으로 알음알음 알려지던 섬에 어민들이 발을 들이다가 살기 시작하는 데 2~30년 정도 걸렸는데, 어느 순간 피부가 검은 사람들이 제일 남쪽 섬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결국 가운데 섬을 두고 우리같은 피부가 밝은 편의 사람들과 저 쪽 같은 피부가 검은 사람들이 서로 교류와 전쟁을 반복하게 되었다. 그렇게 서로 피흘리기 50년, 이러다가는 끝없이 소모만 되겠다 싶었던 황제 폐하께서 외교 관리들을 보내 협상을 도출했다. 세 개의 섬 중 북쪽 섬은 이티클레 대륙의 해군이 주둔하고, 남쪽은 남대륙의 국가의 해군이 주둔하며, 가운데 섬은 북대륙과 남대륙의 무역선이 만나 양 군의 감독 하에 교역하는 곳으로 삼기로 했다. 그 외에 남대륙 사람들을 허가 없이 접촉하거나 서로의 대륙 땅을 밟는 것은 금지되었다.

“그럼 남대륙 사람들을 직접 보셨어요?”

“보기만 했나. 여러 번 ‘중간 섬’에 갔었지. 남대륙에서 가져온 열대 과일은 시큼하고 즙이 많아서 더울 때 먹으면 정말 맛있어. 그 사람들은 ‘아나나스’라고 부르는데,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 ‘거북이 과일’이라고 하더라. 껍질이 딱딱하고 거북이 모양처럼 구획이 지어져 있거든. 그런 과일을 가지고 과일주를 만들어 파는데, 달다고 마시다가는 금방 취해버리지.”

나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이런 얘기를 듣고 싶었던 거다.내가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세상 이야기를.

“남대륙 사람들이 ‘검다’고 하지만, 검은 것도 되게 다양해. 진짜 밤에 보면 이빨이랑 눈동자밖에 안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 중의 좀 많이 타서 까무잡잡한 사람 정도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어. 입술이랑 머리카락이 워낙 달라서 구분하는 건데 구분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 가끔씩 북대륙 사람이랑 남대륙 사람의 혼혈을 보면 진짜 길쭉길쭉하고 이국적으로 생긴 게 참 신기하게 생겼어.”

그러더니 아저씨는 나를 보며 말했다.

“제도에 가면 월요일 오후 3시에 ‘경비 교대식’이 있거든? 그때 운이 좋으면 경비 5중대가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걸 볼 기회가 있으면 꼭 보렴. 경비 5중대는 남대륙 혼혈자들로만 이뤄진 중대야. 워낙 훤칠한데다가 검은 빛의 피부가 특색있어서 정말 장관이다.”

경비 5중대. 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좋겠다. 아저씨는 잔에 남은 술을 홀짝 마셔버리고는 말했다.

“기리인. 오늘은 잘 마셨다.”

에?

“아직 반 정도 남아 있는데요?”

“술을 많이 마시면 기분이 별로 안 좋아서. 너도 그런 나를 보면 기분이 별로 안 좋을 거다.”

으음... 대체 뭐길래...

“내일은 내가 일찍부터 근무라 저녁에는 시간이 안 나겠고, 마지막 밤에 남은 술을 마저 같이 마시자. 그때는 또 다른 얘기 많이 해 줄 테니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병과 튀김이 든 봉지를 모두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이거는 가져가서 다른 분들하고 같이 드세요. 내일 모레는 제가 또 다른 술 사 올게요.”

아저씨는 잠시 뭐라고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런 아저씨에게 빙긋 웃어보였다. 내가 웃으면 남녀불문 어지간하면 먹히니까. 과연 아저씨는 내 손에 들린 술과 봉지를 받아들었다.

“고맙다. 내일 모레 안주는 내가 준비해 올게.”

“못 먹어 본 희한한 걸로 부탁드릴게요.”

아저씨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보이고는 선실로 들어갔다. 나는 고개를 들어 별만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잘 한거겠지...?

---

생각보다 더 취했었나보다. 술이 내 생각보다 더 독했던 모양이다. 나는 빠르게 오른 술기운을 약간 가라앉히러 의자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약간은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내 방으로 돌아갔다. 밤이 늦어서인지 복도의 등도 어둑어둑했고, 각 호실들의 불빛도 꺼진 것 같았다. 정말 다행히 내 방이 복도 첫 번째 방이라, 다른 사람의 방에 헷갈려 잘못 들어갈 일은 없었다. 나는 방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가볍게 씻은 후 잠이 들었다.

어느새 나는 내가 평소에 소망하던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무 것도 나를 잡아당기지 않는 세상, 무게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내 몸에 와닿는 밤 공기는 약간 차가우면서 오히려 상쾌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위로 솟아올랐다가, 땅 쪽으로 뚝 떨어졌다가, 몸을 뒤집으며 방향을 꺾을 수 있었다. 길지는 않은 열 아홉의 내 인생동안 맨 처음 만나는 자유. 아아. 그래. 나는 이런 자유를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어서 마법을 배우고 싶었었지. 지금이야 내 몸이 건강하지만 그래도 하늘을 나는 건 언제든 꼭 해보고 싶었다. 아아. 이런 비유 좀 그렇지만 여자랑 같이 자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짜릿하다.

갑자기 내 몸이 짧게 흔들린다. 아. 허공을 날다 보면 바람이 엉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가? 덜거덕. 어, 생각보다 꽤 흔들린다. 흔들. 흔들. 그게 아니다. 누가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달이 뜨지 않은 밤이라 별빛에 의지해 보이는 것은 사물의 흐릿한 윤곽선밖에 없었다. 하지만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내 코에 훅 들어온 향 때문이었다. 세련되고 정제된, 뭔지 모를 꽃의 향기 뒤에 숨어있는, 사향의 향기. 익숙한 향이다.

그리고 그 향은 여기 있으면 안 된다!

“쉬이...”

내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그녀는 내 가슴 위에 자신의 손을 얹으며 반대쪽 손을 입가에 가져다대고 나를 조용히 시켰다. 평소의 담비털 목도리도, 몸의 곡선을 잘 드러내어주던 드레스도 없었다. 하늘하늘한 얇은 슬립 한 장 차림의 그녀는 머리마저 풀어헤친 채였다. 너무 어두워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소리를 내지 말아요.”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허스키했다. 새삼 나는 이불 아래에 속옷 한 장 차림이라는 걸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도 내 모습을 잘 볼 수 없을 테니까.

“조용히 하겠다고 약속해 줘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 가슴에 얹힌 손을 치우더니, 침대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 상황에 대한 의문과, 사향 냄새가 불러일으킨 흥분으로 내 가슴은 두방망이질치고 있었다. 대체 왜 이 여자는, 부유한 상인의 미스트레스는, 전혀 관계없는 남자의 방에 들어온 걸까. 내가 경험이 적었다면 아마 ‘이 여자가 나한테 마음이 있나?’ 하고 착각하며 얼굴을 붉혔겠지만, 나는 그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 상황이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건 맞았다.

============================ 작품 후기 ============================

네, 통속적인 전개죠? ^^;

취향타는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고 가시면 더욱 재미있는 글을 쓰게끔 노력하겠습니다.

(리리플)

subbidese 님 // 늘 제게 힘이 되는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한두 편 정도 기다려보시면 나올듯합니다 ㅎㅎ

melontea 님 // 격려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힘내겠습니다.

eastarea 님 //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