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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76화 (76/309)

00076 4. 누군가의 즐거움이 누군가에게는 슬픔 =========================

비키 씨는 한참동안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더 이상 울지는 않았지만, 표정은 너무나도 슬퍼 보였다. 뭐랄까... 너무 많은 것들이, 슬픔과 추억 같은 것들이 그녀에게 밀려와, 그 밀려오는 것들을 곱씹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걸까. 비키 씨가 크게 한숨을 쉬더니, 말을 시작했다.

“원래 크주크와 나는 연인이었어요.”

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키 씨는 그런 나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놀라지 않는군요.”

“마음 한 구석에서 그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비키 씨는 내 얼굴을 조금 더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스물, 내가 열여덟일 때 처음 만났어요. 그는 이제 막 격투가로서 훈련을 시작한 애송이였고, 나 역시 집안의 생계를 위해 화류계에 투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꽃봉오리일 뿐이었어요. 나를 끌고 가려는 사람들에게서 그가 나를 구해준 인연으로 우리는 친해졌죠. 내가 왜 아까 당신이 크주크와 친해졌다고 했을 때 그렇게 놀랐는 줄 알아요? 그 사람은 자신과 친한 사람이 아니면 곁을 내 주지 않아요. 친절하긴 하지만 그 뿐이죠. 나조차도, 그의 마음 속에 들어가기까지 석 달이나 걸렸으니까요.”

그녀는 약간 시선을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바라보는 것은 천장의 나무장식이 아니라 그보다 먼 무언가인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고백했지만, 그는 나를 피해다니기만 했어요. 나중에야 알게 됐죠. 그가 화류계의 꽃인 나를 싫어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고 이 곳 레카 시에 혈혈단신으로 내려와 격투기 선수가 되기 위해 애쓰는 그로서는 불확실한 미래를 나에게 강요하기 싫었을거라는 걸 말이에요.”

“그래서 나는 어느 날 밤 그의 방에 몰래 찾아갔어요. 마치 지금처럼 말이에요.”

후훗, 하고 가볍게 웃으며, 그녀가 몸에 둘러진 이불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그 때 크주크도 나에게 이렇게 이불을 둘러주었죠. 내가 부끄럽고 민망해서 펑펑 우니까 나를 꼭 안아주었고, 그 때 그에게 매달렸어요. 그는 매달리는 나를 차마 밀어내지 못했죠. 그 날 밤 우리는 같이 잤고, 그리고 연인이 되었어요.”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듯, 비키 씨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볍게 피었다.

“행복했어요. 많이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훈련하고, 나는 낮에는 잠들고 초저녁부터 새벽 전까지 일하니까요. 잠깐씩, 내가 일을 나갈 때, 아니면 내가 일을 마치고 들어올 때 짧게 만나는 게 고작이었어요. 내가 술냄새와 다른 남자의 체취를 풍기고 있어도 그는 조금도 싫은 내색 하지 않고 나를 안아주었고요. 정말 행복한 날들이었어요. 그렇게 2년이 흐르고, 그는 시합에 나가 이기기 시작했지요.”

사랑에 정답이 없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가난한 격투가 지망생과 화류계 여성의 만남. 둘이 서로 사랑했다면, 남이 뭐라 할 요소는 없겠지. 비키 씨 표정을 보면 형과의 시간이 정말 행복했던 것 같고.

“시합에 나가는 그를 보는 건 너무 마음아프고 끔찍했어요. 격투기를 본 적이 없다고 했죠? 최소한의 방어장구만 하는 격투기는 피가 튀는 게 일상이에요. 한 사람이 완전히 쓰러져 일어나기 전까지는 서로를 때리고 차는 것을 멈추지 않죠. 연인이 온 얼굴이 뭉개져 피를 흘리면서도 상대방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모를 거에요...”

비키 씨는 숨을 잠시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는 아파하기 시작했어요. 마음은 언제나 강한 사람이었죠. 하지만 격투기에서 입은 부상이 그를 계속 괴롭히기 시작했어요. 어쩌다 그와 밤을 보내는 날이면, 서로 섹스를 하고 잠들었다가, 그의 신음소리에 잠에서 깨고는 했죠. 그 빈도가 점점 더 잦아지던 어느 날, 그가 나 몰래 뭔가를 먹기 시작했어요.

“서, 설마...”

그때 형의 방을 지나가다가, 열린 문 틈으로 형이 화장실에서 뭔가를 입에 털어넣던 것을 봤던 것은, 설마...

“그게, 혹시, 봉지에 싸인, 검고 밀알만한 동글동글한 약들입니까?”

비키 씨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 약을 먹는 것을 보았나요?”

“지나가다가 아주 우연히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심지어 형 마저도 내가 그 약을 먹는 걸 봤다는 걸 모를 겁니다.”

비키 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 약은 아픈 걸 잊게 해 주고 몸을 강하게 해 주는 약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나는 다른 손님들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화류계 여자만큼 소문에 빠른 사람들도 몇 없거든요. 격투가들 중에서는 앞으로의 수명을 당겨서 지금에 폭발적으로 써서라도 성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아... 그럼 형이 먹는 그 약이...”

“그 약이었어요. 수명을 깎고, 몸을 상하게 해서라도 미래의 건강을 당겨서 지금의 강함으로 바꿔주는 약. 그 약을 먹기 시작하자 그는 곧 승승장구하기 시작했어요. 1년 후 그는 처음으로 왕좌에 오르게 되었지요. 레카 시의 모든 사람들은 ‘가하의 한 방’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는... 그 약을 달고 살게 되었지요.”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얘기를 멍하니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키 씨는 그 시절을 떠올리듯 다시금 슬픈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약은 또, 사람의 성격을 바꿔놓는 약이에요. 전의 그는 격투가 답지 않게 다정다감하고 조용한 성격이었어요. 하지만 그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그는 호탕하고 과격하고 승부욕 넘치는 남성적인 성격으로 바뀌기 시작했지요. 기리인 씨가 아는 크주크는 그 성격일 거에요. 대중들은 그런 그의 성격을 좋아했지만, 나는 너무나 싫었어요. 그가 미래와 건강과 수명을 깎아 그러지 말았으면 했어요.”

비키 씨는 다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때쯤부터 우리는 계속 싸우기 시작했어요. 약 때문에 잦아진 싸움은 온갖 사소한 걸로도 촉발되기 시작했죠. 그의 성격이 거칠어진 것도 한 몫 했구요... 나는 무엇보다, 그가 왜 그렇게 약을 먹어가면서까지 승리를 추구했는지 몰랐어요. 그는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거든요. 내가 집요하게 추궁했지만 그 점만은 입을 조개처럼 꼭 다물었어요.”

“우리는 지쳐갔고, 싸움이 잦아졌고, 그렇게 헤어졌어요. 그 후 그가 넉 달에 한 번씩 방어전을 하며 모두 승리하며 3년 내내 왕좌를 지킨 격투왕이 되어갈 때, 나는 화류계 생활을 하며 조그만 가게의 마담이 되었다가, 세자르 씨를 알게 되어, 그의 구애를 받아 미스트레스로 일하게 되었구요. 그게 1년 전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왜 이번 경기를 보고 싶어 하시는 건가요?”

“세자르 씨는 몸이 많이 좋지 않아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는데...

“그의 미스트레스가 되기 위해 나는 간호술을 어느 정도 배워야 했어요. 그는 지난 1년간, 사업체를 정리하고, 따뜻한 곳에서 요양을 하기 위해 준비했어요. 그것만 해도 1년이 꼬박 걸렸지요. 이번에 미틱 시에 다녀온 것도 그 때문이에요. 이번에 레카 시에서 일이 정리되면, 이제 당분간 요양지에 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에요.”

아...

“그래서, 떠나기 전에 그를 보고 싶었어요. 내가 돌아올 때면 그는 이미 격투가로서는 살고 있지 못하겠지요. 그의 시합을 마지막으로 보고,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그에게 묻고 싶었어요. 왜 그 때 나를 그렇게 떠나갔는지. 왜 그렇게 무모하게, 미래를 팔아 현재를 사려 했는지... 나는 그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는지... 묻고 싶었어요...”

그녀는 다시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흐느끼는 그녀를 보며, 나는 내가 아까 그녀에게 가졌던 불만이나 좋지 않은 감정들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하시면 어떨까요, 비키 씨.”

그녀가 눈물을 닦지도 않고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새삼 그녀의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절감하며, 나는 약간 쑥스럽고 민망해 눈을 약간 돌리며 말했다.

“그 입장권은 다섯 명까지 사용이 가능해요. 다행히 저희 일행은 네 명이구요.”

“그럼...!”

“비키 씨 혼자만이라면, 제가 저희 일행에게 말해서 같이 관람할 수 있게끔 주선해볼게요. 세자르 씨에게는 비키 씨가 설명하셔야 할 거고, 크주크 형이나 뮤리나 누나의 시선도 감당하셔야 하겠지만, 그래도 좋다면...”

비키 씨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눈물로 젖은 뺨이 불빛을 난반사시키고 있었다.

“어디로 연락을 전하면 될지를 알려주세요. 저희가 숙소를 잡으면, 그리로 연락을 드릴게요. 그래서 경기 날 만나서 같이 들어가요.”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이제 얼굴에 두 손을 묻고, 조용히,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조용히, 무릎걸음으로, 여전히 이불을 두른 채 내 앞으로 다가와서...

나에게 안겨들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그녀는 내 몸을 끌어안고, 계속 조용히 흐느꼈다. 나는 좀 민망한 자세로 들어와버린 그녀의 몸을 가볍게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미안해요. 그런 사정이 있는 줄 몰랐어요. 아까 떽떽거렸던 거 미안해요.”

비키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그 아름다운 뺨이 눈물자욱으로 더러워져 있었다. 나는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뺨에 흐른 눈물자욱을 지우고,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손끝으로 닦아주었다.

순간, 그녀가 내 손을 붙잡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강한 힘으로, 내 손을 확 잡아당겼다. 내 상체가 그녀 쪽으로 끌려가자, 그녀는 반대쪽 손으로 내 목을 휘감으며, 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 작품 후기 ============================

네. 이렇게 해서 내일 정오에는 씬을 연재하겠습니다.

뭐랄까, 이번 챕터를 생각하며 최대한 통속적인 스토리를 짜 보려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이건 너무나도 고전적인 전개네요...^^;;;

취향 타는 소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시면, 더욱 열심히 더욱 정진해 달리겠습니다.

(리코멘)

melontea 님 // 저... 저주하지 마세요... ㅠㅠ;; 이제 알려드렸으니까요!

화이트프레페 님 // "벗으면 믿겠습니까?" 기리인 기자회견 충격!

subbidese 님 // 좀 더 안전하게 먹는 길을 찾느라...ㅎㅎㅎ;;;

eastarea 님 // 사실 제가 머리와 얼굴 몰아줘놓고 보니 저도 부러울때가 있습니다. 쟤는 어느 여자든 쉽게 꼬시는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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