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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78화 (78/309)

00078 4. 누군가의 즐거움이 누군가에게는 슬픔 =========================

한참을 그렇게 눈물을 흘리던 비키 씨는 간신히 진정하고 몸을 일으켰다. 아직 한없이 슬픈 표정이지만, 그녀는 나를 보며 웃어주었다.

“고마워요...”

뭐라고 말해줄까 하다가 그냥 나는 비키 씨를 꼭 한 번 안아주었다. 간략하게 섹스 후의 뒤처리 - 뭐 몸에 묻은 걸 닦는다던가... - 를 하고, 그녀는 바닥에 떨어졌던 슬립을 주워 입었다. 머리를 한 번 털어낸 후 다듬자, 그녀는 조금 전까지 나와 한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었던 열아홉 스물 때의 비키에서, 부유한 상인의 미스트레스로 돌아갔다.

“당신을 좀 더 일찍 만났으면 반해버렸을지도 모르겠어. 잘생겼고, 치명적으로 자상한데, 그것까지 잘 하다니.”

혼잣말처럼 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오늘 밤 처음으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비키 씨는 그런 나를 보고 쿡 하고 웃음을 터트리더니, 침대에 앉아 있던 나에게 다가와 입을 맞추었다. 짧게, 혀와 혀가 스치고, 입술을 떼어낸 그녀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나를 보며 말했다.

“당신은 너무 훌륭한 바람둥이의 재목이에요. 솔직히 말해봐요. 전에도 경험 많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당신의 다정함과 자상함은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어요. 아무에게나 그러지 말아요. 오히려 기리인 당신을 원망하는 여자들이 줄을 이을 지도 몰라요.”

그녀는 다시 나에게 쪽 하고 입맞춤을 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내일 아침부터는 다시 멀리서 눈만 마주치겠지만, 오늘 밤 일을 잊지 않을게요. 고마워요, 기리인. 다시 소녀가 된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그녀는 몸을 돌려,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문 밖으로 나갔다. 아주 조용히 문을 열고, 좌우를 둘러본 후,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곧 문 밖에서 반대쪽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집중해서 들어야만 들을 수 있을 크기의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대왕의 시대 훨씬 이전에 요정들은 사라졌지만, 이런 꿈같은 밤을 흔히 ‘요정의 밤’이라고 부른다. 오늘밤이 딱 그랬다. 폭풍과 같은 일들이 떠나가고 내 방에는 나 혼자 남아있다. 모든 게 꿈이었던 것처럼.

하지만... 방 안에는 아직, 그녀의 향이 가득하다. 사향과, 이름모를 과일과, 그리고 그녀의 애액의 향. 남이 맡으면 비릿하고 꾸릿한 냄새라 하겠지만, 조금 전까지 이 향기의 주인과 사랑을 나눈 나에게는 조금 전 있었던 일이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는 걸 알려주는 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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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제 못 잤냐? 왜 이리 하품이야?”

나는 머리를 긁으며 아하하, 라고 말한 다음, “어제 낮에 좀 잤더니 밤에 잠이 안 와서요.”라고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형은 그러냐, 라고만 짧게 말한 다음 여전히 오늘도 우리 앞에 놓인 빵 바구니에서 갓 구워 따뜻한 빵 하나를 집어들어 반으로 쪼갠 다음 수프 그릇에 담갔다. 귀족가에서는 아무리 저게 더 맛있게 먹는 법이라고 해도 빵 따로 수프 따로 먹는다고 들었는데, 형은 그런 건 신경 안 쓰는 건가.

내가 참다 못해 묻자, 형은 ‘응?’ 하면서 눈을 크게 뜨더니, 오른쪽에 앉아 있던 내 머리를 막 헝클었다. 아악.

“물론 나도 고귀한 분들이 계시는 데 가면 규범대로 하지. 귀족가가 얼마나 그런 거 엄격한 지 아냐? 나 어릴 적에 많이 맞으면서 배웠다. 그러니까 이런 자리에서라도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살고 싶다.”

그러더니 형은 나를 보면서 히죽 웃었다.

“돌아가는 꼴로 보아하면 너도 그런 자리에 가야 할 것 같은데, 어쩌냐? 너도 에티켓 교육 받아야 하는 거 아냐?”

으악! 내 표정이 가관이었던지 형과 누나와 아저씨가 모두 껄껄대며 웃었다.

“괜찮아, 네가 황제 폐하 바로 건너편에 앉을 것도 아니고. 너무 걱정하지 마. 설령 네가 포크로 수프를 뜨고 스푼으로 고기를 썰어도 다들 오죽 긴장했으면 저러나 하고 귀엽게 봐 줄 거다.”

...진짜 그럴까봐 더 무서워요... 내가 한숨을 쉬며 스푼으로 수프 한 모금을 떠 먹었을 때,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나타났다. 아아... 세자르 씨와 비키 씨였다.

“아, 에아임 씨.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세자르 씨, 비키 양. 잘 주무셨나요?”

“하하, 요즘 먹는 약이 있는데 이 약을 먹으면 밤에는 눈만 감았다 떴는데 아침이 되더군요. 다들 잘들 주무셨습니까?”

어제 비키 씨에게서 들은 얘기가 있어 나는 세자르 씨를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얼굴의 기름기 아래로 감출 수만은 없는 파리한 안색이 보였다. 가만 보면 가벼운 동작도 조심해서 하는, 병약한 사람들의 특징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세자르 씨는 크주크 형이 없는 오늘이 기회다 싶은지 우리 옆자리까지 와서 의자를 당겨주었고, 비키 씨가 거기에 앉았다. 그리고 세자르 씨는 테이블을 돌아 와서 내 옆자리에 앉았다.

급사가 접시를 날라와서 두 사람의 앞에 수프를 내려놓고 물러났다. 나는 과일 바구니에서 딸기를 하나 집어드는 척 하며, 비키 씨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어젯밤 눈물을 흘렸던 것 때문인지 눈은 약간, 미미하게 부어 있었지만, 표정은 차분하고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연기력’ 때문인가.

아주 짧게, 우리 둘의 눈이 마주쳤다. 아무도 의심하지 못할 정도로 짧은 시간동안, 우리는 눈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아주 긴 것 같은 찰나가 흐르고 우리는 다시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형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끌어왔다.

“그러고 보니 좋은 와인을 함께 마셨는데도 서로 이야기를 못 나눠 봤군요. 세자르 씨는 미틱 시에는 어떤 일로 다녀오시는 길이신가요?”

“아. 상인이 뭐 다닐 이유가 여럿 있겠습니까. 좋은 거래가 있어서 갔지요. 마침 지금이 목재가 내려오는 때 아닙니까? 그것과 더해서 북부 상단에 상품도 팔고 하려고 갔었습니다. 하필이면 사건이 생겨서 목재 거래가 스톱되어 버리는 바람에, 목적했던 것의 절반밖에는 못 하고 온 게 아쉽군요.”

우리 일행은 잠시 서로를 짧게 돌아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사건’이라는 게 뭔지 정확하게 아는 건 우리밖에 없었으니까.

“뭐, 그래도 겸사겸사, 우리 비키와 바람도 쐬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큰 배를 타니 불편한 것도 없고요. 하하하!”

그는 다소 과장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의 벌어진 입 안의 혀 색깔을 보고 다소 께름직하다고 생각했다. 혀 색깔이 어두운 편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저러면 건강이 정말 안 좋은 모양이구나. 얼굴이야 어떻게 가릴 수 있겠지만...

“그러시군요. 여행이 즐거우시다니 다행입니다.”

형은 더 대화를 캐물으려다가는 실례라고 여겨질 것 같아서인지 한 발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한 발만큼 세자르 씨가 들어왔다.

“에아임 씨 일행은 어떤 일로?”

“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공무원입니다. 톨라츠와 에빌로는 제 아랫사람들이고, 저기 기리인은 우연히 가는 길이 같아 동행하고 있는데, 저희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호오, 하고 세자르 씨는 나를 돌아보았다.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말씀 편히 하십시오. 올해 성인이 되었습니다.”

내 오른쪽에 앉은 세자르 씨는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놀랐다.

“어이쿠! 생각보다 나이가 어리군? 성인이 되자마자 이 먼 길을 그것도 홀로 나서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겐가?”

에아임 형을 본받아, 미소를 머금고, 공손하게.

“아, 네. 제도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몇 명 있습니다.”

“그렇군. 다행히 좋은 분들과 동행하게 되어서 잘 됐군.”

“저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자르 씨는 반쯤밖에 먹지 않았는데 포크와 스푼을 이미 내려놓았다. 건너편의 비키 씨 역시 음식을 꽤 남긴 후 – 이건 에빌로 누나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아 레이디들의 일반적인 식사량 정도인가보다 – 냅킨을 들어 입을 닦자, 세자르 씨는 “그럼, 먼저 실례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하고 짐짓 힘차게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팔짱을 끼고 사라지는 두 사람의 뒤를 잠시 바라보았다. 비키 씨는 세자르 씨에게 은근히 신경을 많이 쏟고 있었다. 팔짱도 레이디의 그것처럼 살짝 얹어놓는 것이 아니라, 세자르 씨가 만에 하나 균형을 잃어도 받아줄 수 있게끔 든든하게 잡고 있었다. 그제 밤과 어제는 왜 저런 사실을 몰랐을까.

‘띠링!’

<구체적인 건강 상태나 숨기고 싶은 정보를 알고 싶으면 정보 확인의 레벨을 더 올려야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빵을 하나 더 집어들어 쪼갠 후 그릇에 남은 수프를 빵으로 삭삭 닦아서 입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크주크 형의 훈련을 도와주러 갈 차례다.

“먼저 실례할게요!”

“아, 기리인, 잠깐만.”

형이 나를 불렀다. 뭐, 뭐지. 내 태도에서 이상한 낌새라도 비쳤나? ‘냉철’! ‘냉철’!

‘띠링!’

<당신의 간절한 기원에 응답하여 냉철이 발동합니다.>

얌마! 다행히, 형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여상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있다 오후에 나 좀 도와주라.”

“아, 네. 뭐 도와드리면 될까요?”

“내가 서류작업할 때 보조하는 거지 뭐. 혼자서는 심심하기도 하고.”

“그럼 어제 부르시지 그러셨어요. 어제도 도와드릴 수 있었는데.”

“지금 막 생각났어. 제도에서는 부려먹을 사람이 많지만, 밖에 나오면 나 혼자 일 처리하는 게 습관이 돼서. 점심 때 보자. 얼른 가 봐.”

“네, 형. 누나, 아저씨. 식사 맛있게 하세요!”

나는 바삐 방으로 향했다. 옷을 갈아입고, 열쇠를 챙겨 문을 잠그려는데, 반대쪽 방, 그러니까 세자르 씨와 비키 씨가 함께 쓰는 방에서 맹렬한 기침 소리가, 두꺼운 나무문 너머 작게 들려왔다.

“쿨룩, 쿨룩 쿨룩, 쿨룩! 쿨룩!”

안에서 뭔가 부산스러운 소리가 나더니, 잠시 기침소리가 멎었다. 약이라도 먹이는 모양일까. 그런데 저런 증상에 약이 있기는 할까. 저래서 본부인이 아닌 비키 씨와 함께 다니는 건가...

순간 나는 뭔가를 깨달았다. 세자르 씨가 본인이 말하는 그런 큰 상인이라면, 그는 혼자 다녀서는 안 된다. 우리 북부 영지의 상단조차도, 라움 상단주 말고도 여러 명의 직원이 그를 보좌한다. 물론 이 배의 아래쪽에 타고 있을 수도 있고, 그래서 내가 못 봤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 세자르 씨는 너무 ‘한가해’ 보인다. 에아임 형은 돈을 버는 일이 아닌데도 저렇게 바쁜데, 세자르 씨는 정리할 것이나 결정할 것이 엄청 많을 텐데. 혹시...

...아니, 아니다. 섣부른 추측은 금물이다. 일단 앞에 주어진 일을 먼저 하자. 이미 갑판 쪽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여섯, 일곱, 서른여덟! 하나, 둘, 셋...”

============================ 작품 후기 ============================

생각해보면 벌써 배에서 3일째네요.

밑밥을 까는 작업을 하느라...

가능하다면 배를 워프시켜서 레카 시로 빨리 보내버리고 싶기도 합니다 ㅋ;;;

오늘 롤챔스 보고 아직까지 멍합니다.

아니 왜 보는 내가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려......

읽어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시는 여러분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리코멘)

eastarea 님 // 늘 코멘트 정말 감사드립니다.

디마프 님 //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원래는 그럴 계획까진 아니었는데... 세자르씨 미안해...

그런말하지마오 님 // 아무래도 같은 키스나 애무라도 저같은 평범한 얼굴이 하는 것과 원빈이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겠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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