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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83화 (83/309)

00083 4. 누군가의 즐거움이 누군가에게는 슬픔 =========================

“격투기 가르쳐준다고 하고 나와서는 말만 많이 했네... 목 아프다. 들어갈란다. 내일 아침에 보자.”

“네, 형. 주무세요. 저는 밤하늘 좀만 더 보다 갈게요.”

“밤하늘? 흐. 그래. 하늘 보는거 좋지. 잘 자라.”

“네, 형두요.”

형을 보내고 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아까의 대화를 떠올려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형에게 약 얘기를 억지로 꺼냈던 건, 형의 생각이 궁금해서였다. 약 얘기를 꺼내면, 형은 (나를 죽이려 들지 않는다면) 그 약에 대해, 그리고 그 약을 먹게 된 상황에 대해 말해주겠지. 그리고 그 약을 먹게 된 상황은 비키 씨의 말대로라면 비키 씨와 관련이 있을 것이고.

마법사로서의 마음가짐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의 다툼에서 양 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게 헤어진 연인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서로에 대한 악의와 저주로 뭉친 이야기들 사이에서 진실이 어떤 것인지 알기란 쉽지 않으니까. 물론, 크주크 형과 비키 씨는 그런 것과는 관계 없었지만.

나는 형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형이 비키 씨와 보낸 시간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만약 비키 씨의 회상과는 달리 형이 그 시절에 대해 끔찍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핑계를 대거나 연락을 끊어서라도 비키 씨를 형에게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을 작정이었다. 비키 씨로부터 어떤 원망과 비난을 듣더라도 감수할 작정으로 말이다. 그게 내가 크주크 형에게 지킬 수 있는 신의일 테니까.

하지만 형의 반응을 보고 나니, 나는 반드시 비키 씨를 데려가 우리 옆에, 그러니까 링 바로 앞자리에 앉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형이 시합 전에 비키 씨를 보고 동요할지언정, 그것이 형에 대한 가장 큰 응원이 될 것 같다.

“하이고...”

나이 잡수실 대로 잡수셔서도 아직 솔직하지 못한 두 연인 때문에, 사이에 낀 내가 이게 무슨 고생이냐. 게다가 양 쪽에서 다 받은 게 있다보니 물러줄 수도 없고... 티켓이야 돌려줄 수 있겠지만, 비키 씨와의 섹스를 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사이에 낀 세자르 씨는 무슨 잘못이냐.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기리인.”

뒤에서 누가 나를 불러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티르완 아저씨다. 아저씨는 손에 뭔가를 들고 계셨다.

“아저씨.”

“미안하다. 내가 스케줄을 착각하는 바람에... 나는 하루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착각한 건 저도 마찬가지니까요. 혹시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셨던 건 아니죠?”

“아... 뭐 혼 좀 났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 티르완 아저씨는 나에게 손에 들고 있던 것을 건넸다. 자그마한 종이 봉투였다. 튀김의 고소한 냄새가 났다.

“오늘은 시간이 늦었고, 나도 마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같이 술자리는 못 하겠구나. 대신 니가 신기한 안주 가져다달라고 했으니 이거 먹어봐라.”

“이게 뭔데요?”

“우리 주방장을 다그쳐서 만든 거다. 쉽게 안 해주는 거야. 열어봐.”

나는 그 말대로 봉투를 열어보았다. 어? 이건...? 나는 봉지 한 가득 든 튀김을 하나 꺼내, 불빛에 비춰보았다.

“설마, 생선 뼈 튀김이에요?”

“그래. 너 먹어본 적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호수를 끼고 있는 우리 북부 대요새에서는 어업이 꽤 성행하는 편이지만, 그렇기에 생선은 생선째로 도시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손질되어서 다량으로 유통된다. 대공가에서 유통을 맡아서 중간의 얼마 안 되는 수익이나마 독점하고 있다. 그러니 뼈 튀김 같은 걸 볼 일이 없지... 나는 들고 있던 뼈 튀김을 그대로 입 안에 넣었다. 오도독, 오도독.

“신기하지?”

“네. 짭쪼름하니 맛있네요.”

“일행들하고 나눠먹으라고 넉넉히 넣었다.”

“감사합니다.”

내가 고개를 숙이자 티르완 아저씨는 손사래를 쳤다.

“별로 고마워할 정도는 아니다. 약속을 깬 내가 잘못한 거니까 말야.”

글쎄요, 그런 거 치고는 엄청 많은데요. 이걸 만드시려면 주방장 아저씨에게 머리 깨나 숙이셔야 했겠는데 말이죠... 하지만 그런 말을 꺼내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그저 감사합니다, 라고 다시 한 번 말했을 뿐이었다. 아저씨는 그저 웃더니, 말했다.

“시간이 된다면 레카 시에 가서 선원들이 어떻게 노는지를 체험시켜 주고 싶다만, 그런데는 너처럼 아직 닳지 않은 사람을 데려가기엔 좀 꺼려지는 곳이라서 말야.”

나는 아무 말 없이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나로서도 그런 데까지 따라갔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슥삭 되는 일은 삼가고 싶었다. 우리 일행 중 한 명을 데려갈 수 있는 곳이면 모르겠지만, 에아임 형은 유부남이고, 톨라츠 아저씨는 신의 사제고, 에빌로 누나는... 음... 여자니까. 게다가 누나라면 그런데 가자고 하면 “그냥 잘래” 해 버릴 것 같다.

“나는 아마 특별한 일이 없으면 계속 이 배를 탈 거다. 만약에, 너의 길이 이 니아트 강과 겹치게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네. 저도 아저씨가 들려주는 저 먼 곳의 이야기 정말 좋았어요. 다음에 꼭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저씨. 니아트 강의 별칭을 아세요?”

“아니. 그런 얘기는 잘 안하니까 말야. 뭐길래?”

“니아트 강은 유속이 빨라질 지점이 없어요. 처음 시작이 커다란 니아트 호수니까요. 언제나 천천히, 느리게, 모든 것을 품어주면서 가는, 마치 어머니 같은, ‘평온의 강’이라고 하죠. 아, 물론 동니아트는 빼구요.”

아저씨는 약간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니아트 강이 주는 평온이 아저씨와 함께 하기를 기원할게요.”

“......고맙다. 선량한 너의 마음씨가 신의 천칭에서 공정하게 평가받을거다.”

아저씨는 약간 잠긴 목소리로 그렇게 말을 남긴 후, 선원들의 선실 쪽으로 내려갔다. 나는 내려가는 아저씨가 눈꼬리를 슥 만지는 모습을 보았다. 아저씨, 잘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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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아침부터 에아임 형이 서두르라고 난리였다. 도착은 점심식사하기 조금 전에나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으면서도, 형은 아침 식사 전부터 짐 챙기라고, 빨리빨리 준비하라고 닦달을 해 댔다. 대체 왜 그러냐는 질문에 ‘다 너를 위해서다’라는, 역사상 씨알이 잘 안 먹혔던 말을 남긴 형이었는데... 나는 결과적으로, ‘다 너를 위해서다’라는 말이 결과적으로는 맞는 일이 훨씬 더 많다는 점을 레카 시로 접근하는 갑판 위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미틱 시에도 배를 타고 접근했었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그 시간에 본 미틱 시는, 막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아 회색에서 주황색으로, 그리고 노란색으로 점차 다채롭게 깨어나는 미틱 시는 ‘살아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인상은 배에서 내려서 돌아다녀 본 미틱 시의 거리에서도 그렇게 느꼈었지.

하지만 레카 시는 ‘살아있다’는 인상 그 이상이었다. 뭐랄까. 미틱 시의 ‘살아있음’이, 나나, 적어도 에아임 형 정도 되는 청년이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는 그런 완전히 통제되지는 않는 활력에 가깝다면, 레카 시는... 그래. 요뢰브 백작님 정도 되는, 중장년의 알 거 다 아는 사람의 느긋함이 있었다.

배를 타고 도시 한 가운데에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이 분명한 운하로 들어가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배의 좌현과 우현을 왔다갔다하며 사방을 살펴보기 바빴다. 촌놈 티를 낸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남쪽을 향한 좌현과 북쪽을 향한 우현은 그 풍경이 완전히 달랐으니까.

“그러고 보니 나도 처음엔 저랬지. 에빌로, 당신은 어땠어?”

“저도 마찬가지였죠. 남쪽과 북쪽은 완전히 다르니까요. 아닌 말로 서로 파벌이 나뉘어 싸우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에요.”

두 사람의 만담을 들을 시간이 없다. 나는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돌리며 풍경을 비교해 보기에도 바빴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같은 도시의 남북쪽이 이리도 다르지?

우리 배가 견인선의 도움과 자체 수차의 도움을 받아 운하 가운데로 지나갈 때, 운하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양 쪽으로 번쩍 들려져 있었다. 그 다리와 다리 사이로 보이는 도시의 남쪽은, 높은 건물들이 얼마 없었다. 간간이 큰 건물들이 몇 개 보였지만, 위로 높다기보다는 옆으로 넓었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건물이었다. 한 건물에는 ‘레카 극장’이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아. 남쪽은 예술가들이나 크주크 형 같은 운동선수들이 많이 산다고 했지. 그 말을 기억하면서 보니,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의 복장이 확실히 뭐랄까, 아직은 봄일 뿐인데 너무 헐벗었다거나, 색깔의 맞춤이 제멋대로라거나... 예술가 같은 티가 난달까. 몇몇 사람들이 이젤(easel)을 놓고 우리 배를 포함한 풍경을 스케치하고 있었고, 아이들이 우리 배를 가리키며 웃으면서 강둑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어어, 기리인 군, 발 조심!”

엇차. 톨라츠 아저씨가 시간맞춰 경고해 준 덕에 나는 배 한 가운데에 내려놓았던 짐에 발이 걸리지 않고 점프해서 뛰어넘을 수 있었다. 아저씨에게 목례한 후 나는 우현쪽의 난간에 붙어 도시의 북쪽을 구경했다.

북쪽은 남쪽에 비해 건물들이 높고, 더 각진 느낌이었다. 사람들은 바삐 돌아다녔지만, 정해진 곳으로 가는 바쁜 발걸음들이었다. 남쪽보다 사람들이 더 나이가 많아 보이고, 더 묵직해 보였다. 아이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도 차이였고, 우리 쪽을 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도 신기했다. 옛날 얘기에서는 부둣가에서 어린 애들이 짐 나르면서 잔돈푼이라도 벌려고 난리라고 하던데.

대신 북쪽에서 눈에 띄는 것은 수레였다. 말들이 끄는 수레와 마차가 남쪽보다 넓어보이는 길을 이쪽저쪽으로 짐을 싣고 오가고 있었다. 규격화된 짐도 있고, 뭔가 천에 덮인 것도 있었고, 하다못해 물고기를 잔뜩 담은 배럴들도 지나가고 있었다.

남쪽이 예술가의 여유라면, 북쪽은 부자의 여유였다.

“기리인, 레카 시의 감상이 어떠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렇게 다르면 다툼이 안 생기는 게 이상하겠는데요.”

아까 에빌로 누나가 한 얘기였다. 누나는 내 말을 듣고는 피식 웃어버렸다. 내가 누나의 얘기를 인용했다는 걸 안 눈치였다. 형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새삼 걱정스럽게 말했다.

“걱정이야. 그때 크주크 얘기를 들어보면 노던쓰와 서던쓰라는 집단 이름까지 붙었던데, 원래 집단간의 다툼이 격화되는 건 이름이 붙는 게 시작이거든. 아마 노던쓰 자체적으로 예술가 조직이나 격투가, 검투사 등의 조직도 만드는 모양이던데. 그때 얘기 들었지? 크주크가 왕좌 방어전할 때 북쪽에서 내려온 선수들이랑 붙으면 더 죽기살기로 달려든다고.”

확실히 그런 얘기를 했었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형은 말했다.

“이러면 숙박업소 잡는 것도 눈치가 보인단 말야. 다들, 몸 조심해. 이 도시에서 공무는 없지만, 3일 후 크주크의 왕좌 방어전을 볼 때까지는 이 도시에 있어야 하니까. 어느 한 쪽으로 몰려버릴 빌미를 주지 말자고.”

아저씨와 나와 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작품 후기 ============================

레카 시에 도착했습니다.

몇몇 사건들을 겪은 후, 메인 이벤트인 크주크의 왕좌방어전 및 크주크와 비키, 그리고 세자르의 관계, 그리고 뮤리나, 관찰자 기리인 등의 이야기가 나오겠네요. 너무 늘어지지 않는 차원에서 잘 정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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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플)

화이트프레페 님 // 뭐 그렇긴 하죠? 근데 심순애도 지가 싫어서 떠났던 건 아니었던거 같은데... 이수일 뒷바라지하려고 어쩔수없이 갔던거였던가...

melontea 님 // 그러게요. 가운데서 지켜보는 우리 인공이 마음이 참 복잡하겠어요. 어떤 게 행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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