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90화 (90/309)

00090 4. 누군가의 즐거움이 누군가에게는 슬픔 =========================

(* 약간 불쾌한 19금 묘사가 있습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니까. 저 수트 핏을 봐! 캬... 짝 달라붙는 의상을 입혀서 무대에 세우면 레이디들이 홀딱 반할거야. 이봐, 자네, 이름이 어떻게 되나?”

도망갈까? 귀찮아 죽겠는데. 하지만 영빈관 앞 뜰을 둘러본 나는 마음을 바꿔먹었다. 좁아서 도망갈 데도 없다. 무대 때문에 행사 끝날 때까지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시스템, 부탁해.

‘띠링!’

<냉철이 발동합니다. 고급 언변이 발동합니다.>

<상대의 협상 스킬이 퇴치당합니다.>

<상대의 감언이설 스킬이 C+로 격하됩니다. 당신의 짜증 상태를 반영해 C0로 추가 조절됩니다.>

“기리인 모스라고 합니다.”

“그래, 기리인 군.”

“모스 군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오호, 그래. 약간 차갑게 구는 것도 좋아. 자네같은 미남이라면 말야.”

“차갑게 구는 게 아니고 차가운 겁니다.”

그는 그런 내 말에 약간 표정이 굳어졌다. 하기사, 나이도 까마득히 어린 애가 따박따박 말대꾸에 자기 알아주는 척도 안 하니 기분 나쁘시겠지. 제발 좀 가라.

“진심인가? 자네 정말 화려한 삶에 관심이 없나? 내가 보기에 자네라면 반드시 성공한다니까? 이봐. 생각해 보라고. 밤에, 화려한 마력석 불빛을 받으며 공연을 끝내고, 분장을 지우고 극장 문을 열고 나오면, 30명의 레이디가 자네를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그 중에 아무나 마음에 드는 레이디를 골라 가면 돼. 술, 여자, 돈! 어떤 것도 평생 질리지 않을 정도로 누릴 수 있다고. 남자가 어찌 이런 삶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지? ...설마 자네, 그 쪽 취향인가?”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아, 미안하네. 어쨌든! 얼마든지 그런 것들을 누릴 수 있는데, 왜 전혀 관심이 없는 거지?”

길게 말할 수도 있었다. 뿌리박지 못하고 살아가는 삶, 불안정한 미래, 언제나 의식해야 할 남의 눈. 이런 것들에 대해 말하며 그를 돌려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직에 있는 사람을 두고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실례겠지. 저 뒤에 나를 어제와 같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수르키 씨를 보며 나는 하려던 말을 모두 삼키고는 다른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지금 저희 일행과 제도에 가야 합니다. 저희 일행 중에는 황제 폐하를 위해서 일하시는 분이 계신데, 그 분께서 다같이 황제 폐하를 뵈어야 할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정도면 에아임 형을 떠벌린 것도 아니고 형을 판 것도 아니니까 괜찮겠지? 에렌스 씨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황제 폐하’ 언급을 듣고 나서는 적잖이 당황해버렸다.

“아, 황제 폐하, 그래, 그렇지. 황제 폐하께서 부르신다면 당연히 가 봐야지. 암. 제국의 신민 된 자로서 지엄한 황제 폐하의 영이 우선이지. 미안하네.”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말씀드리기 좀 곤란한 내용이어서.”

“이해하네. 방해해서 미안하네. 좋은 시간 보내게.”

그리고 그는, 여전히 나를 아쉬운 눈길로 한번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뒤로 돌아 자리를 떠났다. 수르키 씨만 남았다. 그녀는, 나를 여전히 이글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뭐라 말할 것처럼 하다가... 역시 아무 말 없이 떠났다.

어후... 지친다, 지쳐. 이제는 다시 귀찮게 하지 않겠지. 나는 들고 있던 잔을 홀짝거렸다. 생각보다 맛있다고 생각했을 때, 뒤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세자르 씨 말이야...”

“어유, 무슨 배짱으로 여기에...”

세자르 씨... 비키 씨의 ‘남편’.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이미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바라보니, 배에 탔을 때보다 얼굴이 더 검어진 것 같은 세자르 씨가 보였다. 그 옆에는 오늘도 여전히 아름답다기 보다는 고혹적인 비키 씨가 은색의 자그마한 비늘이 숱하게 달린, 몸매를 드러내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비키 씨는 세자르 씨의 팔짱을 끼고 있다기보다 그를 부축하다시피 하며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 쪽으로,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까 세자르 씨와 비키 씨를 두고 뭐라고 말하던 사람들 쪽으로 이동했다. 펑퍼짐한 몸매 위에 비싸 보이는 재질의 드레스, 그리고 몸에 보석을 여럿 치장한 여자들이었다. 귀부인이라고 불러드려야겠지만 내 눈에는 동네에서 둘러앉아 야채를 다듬으며 수다를 떠는 동네 아줌마들이랑 다를 게 없어보였다.

“세자르 씨 이제 남은 게 뭐 있지?”

“없지~ 몸도 저 지경 됐고, 상단은 이미 아들이랑 마누라한테 넘어갔고, 어유~ 쯧쯧. 여자 하나 잘못 만나서 말년에 저게 무슨 고생이래~”

“그런데 이제 남은 것도 없는데 왜 옆에 붙어있는거지?”

“낸들 알아~ 결국 숨통이 끊어질때까지 쭉쭉 빨아내야 만족할 모양이지~ 어유... 지 서방 잡아먹는 년이...”

“그러게, 진짜 무슨 배짱으로 여기까지 나타났대?”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 아니, 들으라는 듯 두 여자는 험한 말을 내뱉고 있었다. 비키 씨가 눈을 돌려 그들을 바라보자, 두 ‘아줌마’들은 눈만 약간 피했지만, 뱉은 말을 후회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내가 배에서 가졌던 의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자르 씨에게 왜 비키 씨 말고는 아무런 수행원이 없었는가. 그는 자신의 말과는 달리 이미 영락해버린 상인이었던 것이다. 왜 그가 미틱 시까지 올라갔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마지막 남은 기회 중 하나를 잡고자 하는 시도였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 시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배에서 봤을 때부터 점점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다. 오늘 그를 보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비난을 비키 씨에게 돌리고 있었다.

그녀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배에서 우리가 보낸, 요정의 밤 같던 그녀와의 섹스를 떠올렸다. 꿈 같았던 그 하룻밤. 내 위에서, 내 물건을 물고 헐떡이던 그녀. 끝난 후, 내 위에 엎드려 흐느끼던 그녀. 그녀의 몸과 내 몸이 맞닿아 있었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아마 크주크 형을 바라보고 있었을 그녀. 그녀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고개숙여 나에게 인사했다. 나도 마주 고개를 숙였다. 두 아줌마가 뒤에 있는 나를 그제서야 눈치채고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세자르 씨를 부축해 저 안쪽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는 비키 씨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매는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심지어 지금 이 도시에서 잘 나간다는 여배우보다도 매혹적이었지만, 내 마음은 조금도 음심이 들지 않았다. 그저, 생명의 불꽃이 조금씩 꺼져가는 것 같은 세자르 씨 곁에 있는 비키 씨가 참 안쓰럽고 안되어 보였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잠시 비키 씨 생각을 하느라 이리저리 정처없이 걸어다니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시간이 좀 지나 있었다. 나는 파티장으로부터 약간 벗어난 곳에 와 있었다. 영빈관 정문 앞의 마당에 차려진 파티장 옆쪽은 가슴 높이까지 오는 관목들과 나무들, 그리고 잘 관리된 잔디밭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파티장 중심에 비해 어둡고 으슥했다.

“아앙! 앙! 앙!”

“이봐 뢰프스, 다리 좀 더 벌려봐.”

“네, 단주님. 엇차...”

응? 뭐야 지금 소리는? 웬 여자의 교성이...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 내 눈을 비벼야 했다.

수많은 남녀가, 주로 젊은 여자와 나이든 남자가 살색을 이곳저곳에서 드러낸 채 여기저기서 얽혀 있었다. 남자 하나에 여자 하나, 여자 하나에 남자 둘... 다들 얼굴이 시뻘개서, 서로를 물고 빨고 쑤시기 바빴다. 나는 사람을 잘 알아본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까 분명, 서로 팔짱을 끼고 있던 남녀가 지금은 각각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아! 아! 아파! 아파!”

“자, 조금만 참아...”

저 쪽 나무 그늘 뒤에서 남자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그 남자는 치마가 허리께까지 들려올라간 여자 한 명에게 자신의 물건을 찔러넣고 있었다. 마치 개구리처럼 그 남자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는 여자 뒤에, 바지를 발목까지 내린 약간 늙수그레한 남자 하나가 그렇게 크지 않은 물건을 세워든 채 다가가고 있었다. 서, 설마... 뒤로...? 내 나이 치고는 숱한 경험을 해 본 나이지만 나도 그 쪽으로 해 본 건 단 한 번 뿐이었고, 그것도 경험이 꽤나 있던 어느 누님과 단 한 번 뿐이었다. 별로 좋지도 않았고. 그런데, 저렇게 앞뒤로 동시에...? 그것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 여자에게?

“뢰프스, 그걸.”

“네, 단주님.”

그 여자를 들고 있던 남자가 한 손을 자신의 웃옷 주머니에 찔러넣더니, 뭔가 조그맣고 동그란 환약 같은 걸 여자의 입에 넣었다. 여자는 먹지 않으려 이리저리 머리를 돌리며 반항했지만, 앞뒤에서 뻗어오는 남자의 억센 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걸 삼키고 말았다. 약효가 돌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데, ‘단주님’이라는 남자는 그걸 기다리지 않고, 뢰프스가 약간 낮춰주는 여자의 엉덩이 쪽으로 자신의 물건을 찔러넣었다.

“아아아악!”

“엇차...”

익숙하게, 뢰프스라는 남자가 여자의 입을 막았다. 그 동안 단주라는 작자는 앞뒤로 열심히 엉덩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약간 불빛에 의지해 나는 볼 수 있었다. 그 여자의 뒤에서 피가 흘러내려, 남자의 물건을 타고 다리로 흘러내리는 것을.

“흐흐, 미스트레스들도 뒷구멍은 처녀들이거든. 언제나 처녀 개통은 즐겁단 말이야. 이봐, 뢰프스. 손 놔봐.”

“아아....”

아. 보고 말았다. 그 여자의 눈. 이미 초점이 사라져 풀려 있었다. 입이 헤 벌어지기 시작했다. 침을 흘리는 그녀를 앞뒤에서 두 남자가 번갈아가며 열심히 찔러대는, 역겨운 광경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곳에서는 살집이 두툼한 어느 귀부인이 드레스를 허리에까지 말아올린 후 나 정도 되는 나이의 남자 위에 올라가 열심히 깔아뭉개고 있었다. 고개를 잔뜩 젖힌 채 하늘을 바라보며 잔뜩 느끼고 있는 그녀의 아래에서 그 남자는 찌푸린 것이 아니라 모든 걸 포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익숙한 체념, 이라고 이름붙여야 할까.

욕지기가 나서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수가 없었다. 몸을 돌려 얼른 파티장 쪽으로 되돌아가는 중에도 나는, 족히 쉰은 넘어보이는 귀부인의 치마를 젖히고 아래로 기어들어가는 젊은 사내, 싫어하는 젊은 아가씨의 손목을 거칠게 잡아채며 땅으로 쓰러트리는 대머리 배불뚝이를 보았다. 이 곳에서 남녀간의 섹스는 사랑도 쾌락도 아니었다. 권력관계의, 상하관계의 확인이고, 거래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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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웨엑-!”

나는 얼마 먹은 것도 없는 속을 게워내어야 했다. 그나마도 사람이 없는 수풀 쪽을 찾아서 해야 했다. 머리 속에서 자꾸만, 그 여자가 뒤에서 흘리던 핏물이, 바닥에 누워 있던 남자의 체념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걸 떠올릴 때마다 나는 다시 한번 메스꺼워졌다.

“하아, 하아...”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모든 걸 게워내었다. 간신히 연미복을 더럽히지 않은 나는 헐떡이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 옆에서 뭔가를 내밀었다.

“자요.”

나는 고개를 들어 그 사람 쪽을 바라보았다. 보라색 손수건을 내밀고 있는 손의 주인은, 다름아닌 여배우 수르키 밍이었다.

============================ 작품 후기 ============================

씬이 나오려나요...? ㅎㅎ;;

음. 제가 1편, 프롤로그에 연재했던 '반복되는 인간의 일곱가지 실수'에 대해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으신가 모르겠네요. 저는 기리인이 제도로 가는 동안, 제도에서, 그리고 그 이후의 여정에서 이런 것들을 보고, 경험을 쌓으며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것을 기본 뼈대로 잡고 있습니다. 이번 챕터도 그 중에서 '양심 없는 쾌락(Pleasure without conscience)'에 대해 다루는 챕터인 셈이지요.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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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플)

longway 님 // 네, 유명세라는 게 그렇죠. 자기를 팔아서 돈을 버는 느낌일테죠. / 외모지상주의를 부정할 수 없는 더러운 세상...ㅠㅠ 글에서나마 미남으로 살아보게 하고 싶었습니다..ㅠㅠ

화이트프레페 님 // 아줌마한테 인기있는 남자가 나중에까지 인기있다던데...

이문세 님 // 차마 남자들까지 홀리는 건 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ㅠㅠㅋㅋㅋ

eastarea 님 // 그러게요. 크주크의 심리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재 과정 중에서 풀려나올 겁니다.

melontea 님 // ㅋㅋㅋ 사실 귀족가의 파티라고 하면 선남선녀들보다는 저런 아줌마 아저씨들이 더 많지 않을까요 ㅋㅋ;;;; 아 물론 제도에서 '진짜 파티'도 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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