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93화 (93/309)

00093 4. 누군가의 즐거움이 누군가에게는 슬픔 =========================

“후우...”

입술이 떨어지자 그녀는 나를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내 얼굴을 잡아당겨 짧게 키스한 후 떨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크게 한숨을 쉬었다.

“어쩜, 올해 성인이 됐다는 애가...”

“이제는 애 아닌 줄 알겠죠?”

그녀는 내 농담에 피식 웃은 후, 가볍게 몸서리를 쳤다.

“아니 농담 안 하고, 왜 이리 잘 해? 이렇게 느껴보긴 처음이야...”

“젊은 남자랑 한 번 해 보고 싶었다면서요. 온 힘을 다 했죠. 좋았다니 다행이네요.”

그녀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내 양 뺨을 붙잡고 다시 매달리듯 키스해왔다. 섹스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키스가 아니었다. 감사? 애정 표현? 그런 키스였다. 혀와 혀가 잠시 얽히고, 입술과 입술이 부벼진 후, 그녀는 내 두 뺨을 잡은 채로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고마워. 오늘 여기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 줄은 몰랐어.”

그녀는 앉은 채로 옷매무새를 다듬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슥슥 쓸어넘긴 다음 손목에 있었던 머리끈으로 뒤로 묶어버렸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었다.

“머리스타일이 바뀌면 했다는 건 알지 않나요?”

“알지. 알지만 모르는 척 하는 거지.”

“...그게 그렇게 돼요?”

“응. 안 그런 부부도 가끔씩 있다고는 하는데, 대개는 이런 파티에 오면, 남편이든 아내든 다른 여자나 남자 만나서 섹스하고, 서로 모르는 척 하는 거야. 임신만 안 되게 조심하는 거지.”

아까 토했을 때처럼 역겹지는 않지만 어쨌든 내 상식과 양심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나는 에아임 형의, ‘얼마나 구역질나는지’라는 말을 잘 알 수 있었다.

멍하니 그녀가 치마를 내리는 모습을 보다가, 부랴부랴 나도 바지를 올린다. 내 발목에 걸쳐있던 바지는 꽤 지저분해져 있었고, 군데군데 그녀가 흘린 애액으로 젖어 질척거렸다. 하지만 이건 우리 둘이 즐긴 결과라는 생각에 나는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 바지를 도로 입은 후, 주머니 속에 있던 그녀의 속옷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가져주면 안 될까?”

“네?”

“기념으로 말야. 너한테는 앞으로도 여자가 끊기지 않겠지? 그러니 나 같은 여자는 잠시 스쳐지나간 듯, 이 도시에서 떠나면 바로 잊겠지?”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속옷이 올려져 있는 내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서 주먹쥐게 한 후, 손을 놓지 않은 채 꼭 잡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이걸 주는 거야. 조금이라도 오래 나를 기억하라고. 어느 날 짐을 정리하다가 이걸 보고, 아, 그때 레카 시 최고의 여배우랑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기억하란 말야.”

그녀는, 다시 처음 그녀와 이야기했을 때처럼, 싸가지없는 말투로, 하지만 그때보다는 한결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

“야, 나 수르키야. 레카 시 최고의 여배우란 말야. 보통은 나한테 뭐 하나 못 줘서 안달들인데, 귀한 거 받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농담처럼. 그래서 나도 농담처럼 받았다.

“그럴게요. 깊숙한 데 잘 넣어놨다가 생각날 때 꺼내서 볼게요. 여자 없을 때 이걸로 수르키 씨 생각도 하구요.”

그녀는 손을 떼어서는 내 팔뚝을 찰싹 때렸다. 그리고는 우리 둘 다 피식 웃어버렸다. 조금전까지 엄청난 기세로 섹스를 한 주제에 동정소년같은 농담을 한 내가 웃겨서였다.

“저기... 빈 말이 아니고, 정말 고마워. 정말 좋았어. 평생 기억할게.”

“네. 저도 좋았어요. 저도 오래오래 기억할게요.”

그녀는 내 손을 꼭 잡아주고는, 누가 볼세라 사방을 살피면서 수풀을 빙 돌아 자리를 떴다. 나는 그녀의 움직임에 맞추기 위해 반대쪽으로 움직여, 은근슬쩍 수풀을 빠져나왔다. 밝은 곳에서 구겨진 바지를 대충 펴고 파티장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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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파티는 이후 별 일 없이 마무리되었다. 내가 수르키 씨와 섹스를 하고 있는 동안, 이미 크주크 형도, 에프오도 내일 시합을 위해 돌아간 후였고, 비키 씨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는 세자르 씨를 데리고 파티장을 떴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먼 발치로 수르키 씨와 에렌스 씨가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르키 씨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렸고,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가볍게 서로에게 고개를 꾸뻑 했고, 마차의 문이 닫혔고, 그녀는 떠났다.

그리고 우리 일행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애초에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던 톨라츠 아저씨는 파티장의 음식을 배불리 먹고 술도 몇 잔 하셔서 기분좋은 상태셨고, 에빌로 누나는 추근대는 아저씨들을 따돌리느라 마법을 몇 번 써서인지 많이 피곤한 기색이었으며(가만히 두면 선 채로 졸 것만 같았다), 형은... 형도 꽤 지쳐 보였다. 형은 형 곁에 다가서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갑자기 오른팔로 내 머리를 자신의 팔 안에 말아넣고 힘을 주기 시작했다. 윽윽.

“형! 아! 아파요!”

“아프라고 하는 거다, 임마. 대체 누구야?”

“네?”

“이 형이 시장 만나고 협회장 만나고 하면서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너는 대체 어디서 누구랑 재미를 본 거냔 말이다.”

나는 덜컥 굳어버렸다.

“티 나요?”

“아니. 근데 너 반응 보니까 티가 난다. 바지가 좀 많이 구겨져있다 싶어서 찔러봤는데 쉽게 넘어가네.”

아.. 이것이 제국 수사기사의 심문 기술인가.

‘띠링!’

<남을 칭찬하여 높인다 해서 자신의 바보스러움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아 이 자식 간만에 속 긁네.

<저 정도 심문에 넘어간 자신을 탓하십시오. 냉철 94와 고급 언변 92가 아깝습니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얘랑 오래 말을 섞을수록 점점 더 울화통이 터지는 것 같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후, 이미 정신이 반쯤 꿈나라로 떠난 에빌로 누나와, 남은 음식을 향해 접시를 들고 걸어가는 톨라츠 아저씨를 잠시 흘깃 보고, 내 옆에서 흥미돋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형을 향해 말했다.

“형이 사교계가 왜 그리 구역질나는 곳이라고 말했는지 알았어요.”

형은 내 말을 돌리려는 수작을 뻔히 알았겠지만 모른척해주려는 듯 말을 이었다.

“지저분하지?”

“네. 쾌락을 위해 양심이나 상식을 버린 사람들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았어요.”

그리고 나는 내가 본 것을 형에게 얘기해주었다. 앞뒤로 찔리며 약을 강제로 먹여져서 이지를 순간적으로 상실한, 뒤로 피를 흘리던 여자 얘기를 할 때는 다시 몸서리가 쳐졌다. 형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누구인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짧은 시간에 약효가 들었다면 그건 마약성이겠군. 레카 시 정세보고에 추가해서 올리도록 하마.”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형에게 물었다. 아까부터 형을 만나면 꼭 묻고 싶었던 거였다.

“형. 제도에서도 이래요?”

형은 내 심하게 단축된 말이 무슨 뜻인지 다 알아들은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제도에서는 아무래도 귀족들이 많다 보니 품위나 에티켓 같은 걸 지켜야 한다는 압박이 많지. 그리고 가문들이 있고, 그 가문들에서 선남선녀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 젊은 층은 젊은 층끼리 교류하고, 그 사이에서 연애담도 있는 편이다. 물론 귀족가의 레이디들이 평민 처녀들에 비해서 훨씬 문란한 건 사실이지만, 여기에 비할바는 아니지.”

“그럼 여기만 왜 이렇게 됐을까요?”

“견제는 받지 않고, 돈은 많은데 그 돈이 몰려 있고, 부유한 사람은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다보니 욕망이 너무 진해진 거야. 그 욕망이 현실화된 나머지 사교계가 추악해지고, 아무리 문란하다 해도 사랑과 애정이라는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 제도나 다른 도시와는 달리 오로지 쾌락, 그 중에서도 정복욕과 지배욕만이 비대해진 거지. 너가 본 광경도 그런 장면이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의 말에 공감이 갔다. 형은 한숨을 쉬며, 두 손을 자신의 머리 뒤에서 깍지를 끼고 하늘을 비스듬히 올려다보았다.

“걱정이다. 시장은 아무런 권한이 없고, 누군가가 씨앗을 뿌린 노던쓰와 서던쓰의 대립은 이제 같은 자리에 앉기조차 싫어할 정도로 커졌어. 게다가 노던쓰와 서던쓰의 대립에는 경제 문제, 그러니까 도시 부의 집중 문제가 있어서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그런 상황에서, 모두가 기름을 뒤집어쓰고 있어서 불씨 하나만 붙이면 모두가 펑 하고 터져버릴 그런 상황에서 이 10차 방어전이 열린단 말이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형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형, 형은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말씀이세요?”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어. 그래서 시장님에게 강권해서 시청 경비병들을 상당수 경기장에 배치했고, 들어갈 때 몸수색을 하게 했다. 그리고 노던쓰 쪽에서 요청한 자리 분리도 하게 해 줬고. 그런데...”

형은 깍지낀 손을 풀고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기리인. 수사기사를 오래 하다 보면 ‘감’이라는 게 생기거든. 이 감이라는 게 묘해. 이것만 믿고 일하는 사람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아. 그렇다고 이걸 완전히 무시해서도 나중에 크게 망하는 경우가 있거든. 그래서 감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해. 그런데, 내 감이 지금 그렇다. 불길해. 크주크를 노린 음모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데, 없어도 뭔가 큰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크으! 시원하다아!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부탁드립니다. 숫자가 1, 2 올라갈때마다 글 쓰는 보람이 팍팍 느껴집니다.

(리리플)

nnuhgwyegd 님 // 연참은... 노력해보겠습니다... ^^;; 리플 감사합니다.

melontea 님 //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쿠폰 정말 감사합니다. 더 힘내서 열심히 쓰겠습니다. melontea 님도 조별과제 복마전에서 승리하시길 기원합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직 기리인은 1차 목적지인 제도에도 도착하지 않았으니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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