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97화 (97/309)

00097 4. 누군가의 즐거움이 누군가에게는 슬픔 =========================

“아악!”

비키 씨가 비명을 질렀다. 비키 씨 뿐만이 아니었다. 약간 비틀거리는 형을 보는 모든 서던쓰들이 비명을 질렀다. 노던쓰들은 이미 피를 흘리며 쓰러져서 바닥에서 꿈틀대고 있는 에프오를 보며 경악하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 링에서 거의 떨어지지 않은 바로 이 자리에서는 저들이 흘리는 피 냄새마저 바로 맡을 수 있었다. 형은 비틀거리다가, 로프를 잡고 허리를 숙였다. 바로 우리의 앞이였다.

“쿨럭!”

형은 기침을 하듯 안에서 핏덩어리를 하나 토해냈다. 검붉은 핏덩어리를 보며 비키 씨는 비명도 못 지른 채, 하얗게 질려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곧, 형은, 약간 비틀대면서도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는, 성큼 성큼 걸어가. 발을 들어, 에프오의 배를 쾅 하고 내려밟았다.

“으억!”

에프오가 아닌, 관객석에서 터져나온 비명. 에프오는 입에서 피를 팍 하고 뿜으며, 다시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그때, 다시 뛰어들어가려는 형을 심판이 막았다. 공이 울린 것이다.

“아, 씨발! 벌써 두 번째야!”

“심판! 공 따위 집어치우고 승부 끝내라! 뭐하냐!”

심판은 간신히 자신 쪽 코너로 기어가 의자에 기어오르듯 주저앉은 에프오에게 다가갔다. 에프오의 피가 낭자한 얼굴을 물로 씻어내리자, 이미 뭉개져 퉁퉁 부어오른 코가 보였다. 심판이 뭐라고 묻자, 에프오는 이를 악물며 고개를 젓더니 두 주먹을 들어보였다.

“허어, 저러고도 계속 싸우겠다고 하네요...”

아저씨의 말이었다. 그런가. 저 자세는 계속 싸우겠다는 건가. 그걸 보았는지, 노던쓰 쪽에서 환호성이 울려나왔다. 그 때, 누군가, 검은 옷을 입은 누군가가 내 앞을 지나, 비키 씨에게 다가왔다. 그 남자와 비키 씨는 서로 아는 사람인 듯 했다. 그 남자가 비키 씨의 귀에다 대고 뭐라뭐라 속삭이자, 비키 씨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안 그래도 하얗게 질려 있던 비키 씨의 얼굴에서 핏기가 하나도 없어졌다. 그녀가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런...”

비키 씨는, 숨을 짧게 들이쉬더니, 말했다.

“이미 내가 가도 늦은 거군요?”

“네, 어, 그리고...”

“오지 않기를 바라는 거군요.”

“네... 죄송합니다...”

비키 씨는 고개를 흔들었다.

“예상하고 있던 일이에요. 나중에 내가 따로 찾아가도록 할게요.”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 후, 뭔가 봉투 하나를 비키 씨에게 건넸다. 그녀는 그 봉투를 조심스럽게 자신의 손가방 안에 넣었다. 그녀의 손은 잔뜩 떨리고 있었다. 가방을 닫고, 그 가방을 꼭 쥔 그녀는,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될 정도로 가방을 틀어쥐더니,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나는, 무슨 일인지 물으려다... 말았다.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아서였고, 그리고... 지금 그 말을 물었다가는, 간신히 진정하고 있는 비키 씨를 터트려버릴 것 같아서였다. 만 명이 넘는 사람들, 하나같이 피를 보고 흥분해 소리지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비키 씨만이, 가운데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슬퍼하며, 형과 함께 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아픔을 공감하고 있는, 이 경기장 모든 사람 가운데 단 한 사람이었다.

쾌앵-

징이 울리고, 두 피흘리는 격투가들은 무대 가운데로 올랐다. 이제 시작한 지 겨우 10분이 약간 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이미 반쯤 죽어가는 것 같은데. 물론, 형은 그저 약간 비틀거리는 정도이지만, 에프오는 상황이 아주 심각했다. 코가 뭉개져 숨을 입으로 쉬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온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쩍! 크주크 형은 작전을 바꾼 듯, 오른발을 아래로 후려쳐 계속 에프오의 아래다리를 집중적으로 노리기 시작했다.

“좋은 작전이군. 머리가 좋은데, 저 코치.”

내가 형을 바라보자, 형은 에프오를 가리키며 말했다.

“코 때문에 숨을 못 쉬잖아. 입으로만 쉬면 체력이 빠르게 떨어져. 그 시점에서 다리를 집중적으로 노리면, 상대의 발을 묶어놓을 수도 있고, 크주크가 유효타를 입은 게 모두 발 때문이니까 그것도 막을 수 있지.”

아... 내가 링 안을 다시 보자, 형은 두 손으로 얼굴과 머리를 잘 가리고, 상대의 간간이 터져나오는 반격을 막거나 걷어내며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다리를 후려갈겼다. 퍼억. 곧, 에프오의 다리가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형은 기회를 본 듯, 마치 매가 하늘에서 병아리를 향해 급강하하듯, 허리를 푹 숙인 채 달려들기 시작했다. 당연히 에프오가 로우 킥으로 견제를 해 왔지만, 이미 다리가 풀린데다 크주크 형의 집중공격에 너덜너덜해진 에프오의 킥은 느려빠지기 짝이 없었다. 형은 대뜸 그 다리가 다 휘둘러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중간에 왼발을 들어 그의 왼발을 링 바닥에 내리누른 후...

오른발을 가슴까지 끌어올렸다가, 에프오의 무릎을 강하게 내리찼다. 뚝. 분명히 들었다. 뭔가 부러지는 소리. 뭔가 끊어지는 소리.

“끄아아아아아악!”

모든 소리를 뒤엎을 정도로 에프오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노던쓰 쪽에서도 여러 명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이를 꽉 악물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온 몸이 떨릴 것 같았다. 에프오의 무릎은, 마치 새들의 그것처럼 거꾸로 꺾여 있었다.

형은 다시 통통 튀는 스텝을 회복해 있었다. 형이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자, 에프오는 완전히 뒤틀려버린 오른다리를 포기한 채 왼다리로만 서 있었다. 심판을 기다리지 않고, 크주크 형은 다시 스텝을 밟으며 에프오에게 치고 들어갔다. 형은 살을 주고 뼈를 치려는 듯, 에프오가 스텝 없이 어정쩡하게 날린 왼손 주먹을 피하고, 상대가 왼손을 끌어당기는 것에 맞춰 들어가며 오른손으로 에프오의 복부를 후려갈겼다. 에프오가 충격에 몸을 앞으로 꺾었지만, 형도 에프오가 이판사판으로 날린 오른주먹에 갈비뼈 쪽을 얻어맞았다.

형은 온통 얼굴을 찡그렸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아래로 내려온 에프오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고, 그대로 위로 뛰었다. 퍼석.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형은 무릎으로 그대로 에프오의 머리를 쳐올렸다. 형이 에프오를 놓아주자, 에프오는 뒤로 그대로 넘어가, 링 바닥에 드러누웠다.

형이 손을 번쩍 치켜들고, 관객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심판은 에프오에게 다가가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서던쓰 쪽이 합창하여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일곱, 여덟, 아홉, 열. 심판이 손을 휘젓고, 사회자가 공을 크게 세 번 쳤다. 쾌앵- 쾌앵- 쾌앵. 코치가 링 안으로 뛰어들어가 크주크 형을 치켜올리고, 서던쓰 쪽이 환호하고, 노던쓰 쪽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박수를 치는 가운데, 사회자가 다시 확성기를 집어들고 말했다.

“오늘의 승자는! 4라운드에 상대를 눕힌! 대륙 중부 격투왕이자, 10회의 방어전을 성공시킨! 레카 시 사상 세 번째의 왕중왕! 크주-크— 가하-!”

손바닥이 얼얼할 정도로 박수를 치면서도, 나는 옆을 돌아보았다. 에빌로 누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감격의 눈물인 것 같았다. 톨라츠 아저씨는 사제답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직도 링 바닥에 눕혀진 채인 에프오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아마 아저씨가 마흔다섯이 넘었으면, 그래서 자신이 사제임을 공공연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바로 링 위로 뛰어올라가 치유술을 시전했을 것 같은, 그런 눈빛이었다) 형은 나처럼 열렬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비키 씨는...

비키 씨는 울고 있었다. 여전히 백지장같은 얼굴이었지만, 그리고 기뻐하는 표정이라고는 볼 수 없었지만 – 그래도 그녀는 두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비키씨의 앞에, 링의 로프를 벌리고 나온 크주크 형이 섰다. 비키 씨가 아무런 말도 못한 채 입을 가리고 형을 올려다 본 순간, 형은, 환하게 웃으며, 비키 씨를 끌어안았다. 뜨거운 환호성과, 일부 비키 씨를 알아보는 사람들(특히 우리처럼 링 가까이에 앉았던 귀빈들)이 내는 놀라움의 소리가 뒤섞이는 가운데, 비키 씨는 눈물을 흘리며 형을 마주안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그 후로 그들은 행복하게’라는 동화 속 연인들을 연출하듯 서로 얼싸안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동화같지 않았다.

형은, 갑자기 비틀거리더니, 비키 씨 쪽으로 쓰러졌다. 비키 씨가 함께 넘어질 뻔 했지만, 그녀의 옆에 있던 에아임 형과 톨라츠 아저씨가 늦지 않게 받아내어 주었다. 나는 그 때, 보았다. 형의 눈이 하얗게 뒤집혀 있었다. 형이 온 몸을 경련하기 시작했다.

코치와 뮤리나 누나가 놀라서 뛰쳐내려오고,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성 대신 웅성거리는 소리를 내고, 하얀 가운과 로브를 입은 사제들과 치유마법사들이 뛰쳐들어오는 이 와중에도,

비키 씨는 바닥에 눕혀진 형 곁에 가만히 무릎꿇고 앉아, 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두가 모르겠지만, 나는, 어쩌다보니 저 둘 사이, 아니, 세자르 씨, 아니, 고인이 되었을 고(故) 세자르 씨까지 세 명의 사이에서 이야기를 제일 잘 알게 된 나는, 비키 씨의 지금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진짜 곧 4챕터가 끝납니다.

허리케인 조와, 록키 1편의 "에이드리언!"과, 그리고... 고 최요삼 선수를 생각하며 썼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부탁드립니다. 숫자가 하니 둘 올라갈때마다 글쟁이는 보람을 느낍니다.

(리리플)

체크필통 님 // 그래서 선수 가족은 보러 가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더라구요.

화이트프레페 님 // 이번 챕터의 기리인은 관찰자로 설정해봤으니까요... 직접 출전시킬 수는 없잖습니까? ^^;;;;

eastarea 님 // 감사합니다. '룰이 없는 환타지 세계에서의 격투기는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니, 이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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