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110화 (110/309)

00110 5. 세 가지 이야기 =========================

으음. 뭔가 번뜩 올 거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 에아임 형을 바라보자 형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는 답을 알고 있어, 기리인.”

“네?”

나 뿐만 아니라 누나도 고개를 홱 형쪽으로 돌렸다. 형은 누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약간은 씁쓸하게 말했다.

“에빌로. 내가 이래뵈도 제도에 있을 때는 어지간한 사건 보고서는 다 읽어본다는 건 알잖아. 그 보고서에는 두 사람의 여자와 한 사람의 남자만 나오지, 에빌로 당신이 없었지. 그래서 그게 당신 이야기인 줄 몰랐을 뿐이야. 이제 당신이 그렇게 이야기해 주니 내 머릿속에 있는 사건의 보고서와 연결되는군.”

그러더니 형은 톨라츠 아저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톨라츠, 어때. 당신은 알겠나?”

“글쎄요... 관건은 두 가지로군요. 첫째, 어떻게 밀실을 만들었는가. 열쇠가 없이 어떻게 문을 열고 닫을 수 있었는가. 둘째, 집 안에서 어떻게 레레라는 분을 죽이고,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을 수 있었는가.”

“그리고 세 번째, 누나는 어떻게 그 오비르라는 분을 의심하게 되었는가.”

아저씨의 정리 덕분에 대략적인 내용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말이... 응, 돼. 되는 거 같아.

“기리인, 설마, 우리 수사 기사들도 자백이 없었다면 알아내기 힘들었던 사건인데...”

형이 약간은 놀라 물어보았다. 나는 ‘말 속에 모든 답이 들어 있던데요’하고 거만하게 굴 수도 있었지만, 형에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이해타산적인 이유와 형을 좋아하는 이유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그냥, 맞는지 틀리는지 아직은 모르겠어요. 음... 누나에게 몇 가지만 물어볼게요. 세 번째에 대한 건데요.”

누나는 나를 보며 말하라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가 오비르라는 분을 의심하기 시작한 건, 장갑을 벗어보라고 말했을 때 이후가 아닌가요?”

누나가 놀란 듯 나를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맞았어. 싫다고, 격렬하게 거부했어. 자신의 손에 흉터가 있다는 핑계를 댔지. 하지만 학교 다닐 때 그런 건 없었어. 그렇게 말했더니 우리와 헤어지고 온갖 힘든 일을 하다 보니 생겼다고 말하면서, 죽어도 손을 내보이지는 않겠다라고 말했어. 그래서 더욱 의심이 갔지.”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어떻게 했을 것 같니?”

“글쎄요...”

“틈을 봐서 휙! 하고 잡아당겼지.”

...뭔가 대단한 방법이라도 쓴 줄 알았더니... 누나는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

“예상대로였어. 오비르의 손에는 흉터 같은 건 없었어. 밧줄 자국만 있었을 뿐이었지. 그 자국의 너비는 레레를 죽인 밧줄의 너비와 비슷해 보였어. 그러니까... 밧줄을 손에 감아 무거운 것, 이를테면 사람 같은 것을 당기면 그렇게 되었을 것 같은 자국이었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다는 형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톨라츠 아저씨가 이야기를 재촉해왔다.

“그럼, 어떻게 흔적이 남지 않았을까요?”

누나는 대답 대신 나를 건너다보았다. 그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벨트에요, 톨라츠 아저씨.”

“벨트?”

“그, 오비르라는 사람이 하고 있었다는, 두꺼운 가죽 벨트요.”

아직 아저씨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목의 자국이 그렇게 났어도, 사람을 밧줄로 목을 졸라 죽이기는 쉽지 않죠. 더군다나 여자의 힘이라면요. 직선으로 당기는 것보다, 중력의 무게를 이용해서 도르래처럼 당기는 게 가장 편한 방법이에요. 하지만 집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죠. 집에서 가장 쓰기 쉬운 것이 문일거에요.”

“문?”

“네. 열고 닫는 문이요. 문 위로 밧줄을 넘겨서, 밧줄을 건다음, 자신의 체중까지 이용해서 아래로 당기는 거죠.”

“그런데, 거기에 벨트가 왜 들어가나요?”

“그냥 밧줄을 대면 문에 밧줄이 지나가며 자국이 남잖아요. 쓸리거나 해서. 수사기사나 수행원들이 그런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했잖아요.”

“그랬지요.”

이제 누나는 잔도 내려놓고 정좌한 채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 언제나 졸린 듯 반쯤만 떠진 누나의 눈이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약간 민망해져 시선을 약간 돌렸다. 에아임 형은 아주 약한 미소만을 짓고 있었고, 톨라츠 아저씨는 이야기의 결론이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저는 범죄나 어두운 세계에 대한 경험도 지식도 없지만... 제 생각은 그래요. 만약에 그게 정말 중요한 증거물이었다면, 어디 버려두거나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오비르 씨가, 만약 자기가 범인으로 지목되어 집을 수사 기사들과 수행원들이 뒤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어요. 그렇다면 몸에 지닐 수 있는 것들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했어요. 누나가 아까 벨트가 두껍고 컸다고 했지요. 그런 벨트라면, 반이나 반의반으로 접어서 문 위에 잘 대놓기만 해도 문에는 자국이 남지 않을 수 있겠지요. 벨트의 뒷면이 쓸린 거야, 벨트를 하고 있으면 잘 모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현관문은 어떻게 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에빌로 누나의 질문에 나는 그건 쉽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오비르 씨는 아마 이렇게 했을 거에요. 레레 씨의 집에 먼저 가서,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말해요. 그러면 레레 씨는 아무런 의심 없이 문을 열어주겠죠. 그러다가, 레레 씨에게 뭔가 핑계를 대서 유인해요. 아마 ‘깜짝 놀랄 선물을 준비했다’고 말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래야 레레 씨가 치마까지 머리 위로 올리면서 완전히 눈을 가렸겠죠.”

나는 목이 타는 것 같아서 맥주 한 모금을 마신 후, 말을 이었다.

“레레 씨가 문 앞을 지날 때, 오비르 씨는 미리 가죽 벨트로 밑을 댄 후 그 위에 밧줄을 걸어두었다가 레레 씨의 목을 걸었을 거에요. 그렇게 레레 씨를 살해한 오비르 씨는, 강아지를 보고 이 녀석이 살아있으면 레레 씨가 움직이지 않게 된 것을 보고 짖어댈 거라고 생각해서 함께 죽였겠죠. 왜 천으로 머리를 뒤집어 씌웠을까요?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있었을까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다시 한 모금. 나는 약간 혀가 꼬이는 느낌을 받으며 어쨌거나 말을 이었다.

“강아지까지 처치한 오비르 씨는, 레레 씨의 손가방을 찾았을 거에요. 레레 씨가 거기에서 집 열쇠를 꺼내는 것을 전에 보지 않았을까요. 그걸로 현관 밖에서 현관문을 잠그고, 가방 안에 열쇠를 넣은 후, 열린 창문 안으로 그걸 던져넣었겠죠. 마법이 일체 사용되지 않았으니, 기본적으로 마법사인 오비르 씨가 의심받는 경우가 덜할 거였구요.”

“기리인.”

에빌로 누나가 나를 나직하게 불렀다. 누나를 바라보자 누나는 나직하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생각해보렴. 오비르가 왜 레레를 그렇게 끔찍하게 죽였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추정일 뿐이에요. 하지만 오비르 씨는 레레 씨라는 분을 질투했을 거 같아요.”

“질투...라...”

톨라츠 아저씨가 한숨 섞어 그렇게 말했다.

“어디까지나 제 예상이지만 레레 씨는 내년에 안식년을 맞으면 약혼자와 결혼식을 올릴 거라고 자랑하듯이 말했겠죠. 그 말을 듣는 오비르 씨의 가슴 속에는 불길이 확 타오르지 않았을까요. 나는 쉬는 날도 얼마 없이 공방에 출근해 계속 같은 일만 하는데, 너는 멋진 마탑에서 일하고, 좋은 집도 있고, 너를 사랑해주는 약혼자도 있고, 왜 너는 내가 가지지 못한 모든 걸 갖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이 출발점이 된 게 아닐까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니?”

“아까 제가 ‘안식년’이라고 말했을 때 누나의 표정이 너무 안 좋았거든요. 괜히 얘기 꺼냈나 싶을 정도로. 왠지, 누나가 ‘레레가 그 말만 하지 않았어도’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게... 아닌...”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흐릴 수밖에 없었다. 누나가 갑자기 두 손을 얼굴에 대고 흐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뚝. 저 쪽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마저도, 카운터에서 이야기하던 두 병사들도 말을 멈추고 이 쪽을 바라보았다. 왜 여자의 울음소리가 나는가. 그만큼 여자의 울음소리라는 건 강력한 울림이고 무기였다.

그리고 나는, 괜히 누나를 울려버린 것 같은 꼴이 된 나는 좌불안석으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누나의 등이라도 다독여주고 싶기도 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지만, 전부 내 잘못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미안... 기리인. 미안해. 네 잘못이 아닌데. 미안. 다들 미안해요. 오늘은 먼저 들어가볼게요.”

누나는 간신히 저 말만 남긴 후 그대로 식당을 달려나가 버렸다. 우리 세 명을 포함해 식당 안의 모든 남자는 누나가 달려나간 방향을 한참 보고 있었다.

“후우...”

가장 먼저 충격에서 회복한 것은 에아임 형이었다. 형은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부르더니, 뚜껑이 있는 그릇 하나를 달라고 했다. 종업원이 가져온 그릇에 형은 아직 아무도 손도 대지 않은 요리 이것저것을 담았다.

“있다가 배고플 수도 있으니까, 에빌로 갖다줘야지.”

형은 그러더니, 나를 보고는, 웃으면서 내 팔뚝을 툭, 쳤다. 분명 세지 않게 친다고 친 것이었을 텐데 내 팔은 온통 울려왔다.

“윽!”

“표정 풀어, 임마. 에빌로가 저러는 건 에빌로 말대로 니 잘못이 아니니까.”

“네?”

“니 잘못이라면 너무 정확하게 맞춘 거다. 살인의 동기까지 모두 정확하게 맞췄어.”

그 말이 왜 조금도 기분이 좋지 않을까. 슬퍼하던 누나 때문일까.

“보고서를 읽어봤다. 에빌로는 오비르의 손에 있던 밧줄 상처를 보고, 사태를 대략 짐작했어. 그래서 에빌로는 수사 기사를 부른 다음, 사정을 설명하고, 정신의 방어를 낮추는 마법을 걸었지. 다행히 오비르는 레레를 죽인 동기나 방법에 대해 끝까지 감추지 않고 술술 불었지. 그녀가 몸에 하고 있던 그 큰 벨트의 뒷면에 밧줄로 쓸린 흔적도 확인했고.”

“아...”

“그래. 동기도, 레레가 자랑하듯 하던 말들이 자신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말이 되었다는 점이 컸지. 외곬으로 레레만 생각하다가, 레레가 없으면 내가 레레의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어 갔다, 이런 거 같더구나.”

형은 나를 보더니 말했다.

“대단해, 기리인. 벌써 몇 번째냐. 마법사가 안 되면 내가 책임지고 입단시킬 테니까 수사기사로서 살아보는 건 어때? 내가 책임지고 키워 줄 테니까...”

그러던 형은 내 표정이 영 풀리지 않는 걸 보고, 안 되겠다는 듯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안 되겠구만. 어이, 좀 더 독한 거 없나? 어, 그래. 그거 한 병만 주게.”

============================ 작품 후기 ============================

언제나 진실이 가장 아프고 가장 강력한 법이지요.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부탁드립니다. 숫자가 1, 2 올라갈 때 저는 10, 100의 보람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약하다고 하시는 것 치고는 엄청 잘 맞추시... 물론 트릭이 단순해서 그렇겠지만요 ㅎㅎ;

eastarea 님 // 고생많으십니다 ㅠㅠ 직장인들 모두 화이팅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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