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113화 (113/309)

00113 5. 세 가지 이야기 =========================

으음. 형의 표정을 보니 아무리 봐도, 이거, 함정이 있는데... 하지만 함정이 있다는 생각 자체가 함정이 될 수도 있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한다. 생각을... 으음. 문득 고개를 드니, 형과 아저씨가 나를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보니 에빌로 누나도 그런 표정이었다.

“...왜들 그러세요?”

“마술사가 다음에 뭐 할지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는 중?”

저 말을 에빌로 누나가 할 줄이야! 아, 부담돼. 일단 물어볼 건 물어봐야지.

“형. 그 학생들 어디서 나온 학생들인지 아셨어요?”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처에 유명한 요리사가 하는 직업학교가 있었어. 시험을 봐서 성적대로 등급을 나눈다고 하더라. 성적이 좋으면 다른 식당 같은데 취직하기도 쉽다고 하고.”

“그래서 빵, 케익, 파스타 같은 게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었군요...”

아저씨의 감탄. 감탄하는 포인트가 약간 빗나간 거 같은데요, 아저씨. 나는 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형은 빙글빙글 웃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맞출 수 있겠지?’ 하는 표정.

“그 두 명, 그러니까 키가 크고 작은 두 사람 말이에요.”

“응.”

“다른 사람들하고 사이가 별로 안 좋았나봐요? 성적이 엄청 좋던지, 성격이 별로던지, 밉보인 게 있던지.”

“그것까지야 모르지... 그런데 왜?”

“여섯 명 모두 공범인 거 같아서요.”

누나와 아저씨의 얼굴이 크게 떠졌다. 형은 여전히 빙글거리는 표정이다. 다행이다. 형도 나와 같은 결론을 내렸구나. 틀리든 맞든 형의 마음을 아프게 할 일은 없겠구나.

“왜 그렇게 생각했지?”

“어... 우선 깊은 컵에 들어있던 초콜렛에 기름과 소금을 붓고 빨리 휘저으려면 길쭉한 도구가 필요한데, 그 길쭉한 도구가 없었다는 건 이미 나온 얘기죠.”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몇 가지 길쭉한 도구가 남아있긴 해요.”

“어떤 거?”

누나가 내 쪽으로 다가앉으며 물어왔다. 누나의 눈은 그 때 크주크 형의 경기를 볼 때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 부담스럽다고요.

“우선은 손가락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겠지요. 손가락으로 휘휘 저은 다음에, 입으로 묻은 초콜릿을 쭉 빨아먹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초콜릿을 케이크에 바르기 위해서는 약간 녹은 상태였을테고, 그럼 적어도 손으로 쉽게 휘저을 수 있을 정도로 미지근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뜨거웠을지도 모르죠. 그러면 손으로 하기는 힘들었을테니 이건 제외.”

“그 다음으로는 반죽을 사용하던 사람들이 있어요. 반죽을 막대기 모양으로 만들어서 넣고 휘휘 저은 다음, 꺼내서 다시 파스타 면 반죽을 만들면 되긴 하죠... 하지만 그러면 면에 분명히 초콜릿 색깔이 들어갈 텐데, 들킬 위험이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남의 요리를 망치다가 자기 요리까지 망칠 수도 있잖아요. 초콜릿이니까요. 그러니까 이것도 제외.”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아저씨는 나를 왜 보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가 이 일행의 요리사시잖아요?”

“그런데요?”

“파스타 건면은 딱딱하죠?”

“그렇... 아하! 건면을 뭉쳐서 저으면 되는군요?”

“네. 이 방법이 가장 좋은건 증거 인멸하기가 너무 좋아요. 휘저은 후에 건면을 먹어버리면 그만이거든요.”

“아하...”

“그러면 건면을 이용한 사람들이 용의자잖아. 왜 모두가 공범이라고 한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건면을 이용한 사람들이 무슨 요리를 하려고 했는지 기억하세요?”

“미트 소스 파스타라고 하지 않았던가?”

“네. 미트 소스 파스타죠.”

나는 형의 표정을 보았다. 형은 여전히 빙글빙글 미소였다.

“요리를 하시는 아저씨는 아시겠지요. 미트 소스 파스타는 어떻게 만들죠?”

“면을 삶고, 건져내고, 고기와 양파, 야채를 볶다가 토마토를 으깨서 같이 볶아서 소스를 만들고... 거기에 건져낸 파스타와 파스타 삶던 물을 약간 넣어줘서...”

“네, 아저씨. 맞아요. 이 사람들은 올리브 오일을 거의 쓰지 않아요.”

아저씨와 누나의 눈이 확 커졌다.

“아까 반죽하던 사람들의 문제와 같아요. 만약 이 사람들의 올리브 오일 통이 확 비어 있다면, 누구나 이 사람들이 범인이라는 걸 알 수 있죠.”

“그럼...”

“모르긴 몰라도, 면을 직접 반죽하는 파스타는 오일을 많이 쓰는 파스타일 거에요. 마늘 파스타, 조개 파스타... 뭐 할 건 많죠... 이 사람들이 오일을 썼다면, 어차피 많이 쓰는 사람들이니까, 얼마나 썼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 않을까요?”

아저씨와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누나가 물어왔다.

“그럼 마지막, 같이 초코 케익 만들다던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왜?”

“이 사람들은 약간 추측이 있긴 해요. 그런데... 어, 똑같은 초코 크림 케이크면 견제하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 아닐까요? 그리고 나머지 네 사람이 요리에 장난질을 치고 있는데, 두 사람이 그걸 봤다면, 그리고 선생님이 그렇게 닦달을 하고 조사를 했다면... 오히려 그 네 사람을 고발해서 떨어트릴 수 있을 기회잖아요. 그런데도 가만히 있었잖아요. 그렇다면 나머지 두 명도 공범이라고 봐야죠. 망을 봤다거나, 도와줬다거나...”

형은 박수를 쳤다.

“대단해, 기리인. 역시. 나는 그 분이 조금조금씩 도와줘서 알게 됐는데 너는 모두 짐작해내는구나.”

나는 머리를 긁었다. 그러다가, 의문이 들어서 물었다.

“그 노신사분이 형의 스승님이셨어요?”

“응. 비번이라서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시던 중이셨지.”

---

처음에는 나도 건면을 쓰던 두 사람을 의심했었어. 그러다가, 오일을 생각했지. 어떻게 그 생각을 했냐고? 어릴 때 ‘안 들키겠지’ 하면서 누나의 사탕 상자에서 사탕 빼 먹다가, 자기 사탕 상자가 내 사탕 상자보다 너무 가벼워져서 들킨 적이 생각났었거든. 오일 병이 비면 알아챌 거라는 생각을 했지.

‘파스타 네 명은 모두 공범이군요.’

‘그래. 그러면 나머지 두 명은 어떨까?’

그제야 나는 나머지 두 명에 대한 생각을 했지. 그리고 기리인 네가 했던 생각을 똑같이 했다. 그래서 그 얘기를 그 분께 드렸지. 그 분은 껄껄 웃으며, 박수를 치셨어.

‘훌륭하군. 로그푸스 가 사람들은 올곧고 매서운 줄만 알았더니 이제 보니 영민하기까지 하군.’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지.

‘저를 아세요?’

‘책에 이름이 적혀있잖나.’

나는 그 때 누님이 만들어주셨던 책 커버를 쓰고 있었거든. 그 책 커버에는 누님의 솜씨로 ‘에아임 로그푸스’라는 이름이 수놓여 있었지. 나는 내 머리를 한 대 쿡 쥐어박았고, 그 분은 다시 껄껄 웃으셨어.

‘아니, 하지만 자네를 아는 건 맞아. 내가 누군지 모르겠나?’

알 턱이 있어야지. 그런 분을 알려면 집에서 열리는 사교계 파티에 꼬박꼬박 얼굴을 비춰야 하는데, 나는 뺀질이라 그런 걸 잘 안 했거든. 만약 나가도 얼굴만 비추고 슬쩍 빠져나왔고.

‘죄송합니다. 모르겠어요.’

‘몇 달 전에 자네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자네를 봤었지. 따분한 표정으로 잠시 서 있다가 빠져나가더군. 이렇게 영민한 사람인 줄 알았으면 붙들어서 이야기를 해 볼걸 그랬는데 말이야.’

그 분은 잠시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드시더니 다시 말씀하셨어.

‘나는 제국 수사기사단 제도부 부장, 플레이크 모툼이라고 하는 사람이다.’

‘네에?’

내가 어마어마한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지. 말했지? 우리 집안은 정의를 숭상하고 황제 폐하에게 충성을 바친다고. 그런 집안의 가풍에서, 황제 폐하의 수족이 되어 정의를 실천하는 수사기사단 이야기를 좋아하고 동경하며 자라는 건 당연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 제국 수사기사단에서도 열 손가락에 꼽히는 분을 만난 거야. 응? ‘그’ 플레이크 모툼 경이 맞냐고? 그래! 제국 해군을 지휘해 남부 해안가를 암약하던 해적단을 모조리 때려잡고, 해적단과 연결되어 있던 동남부의 어느 백작가를 수행원들만 데리고 박살낸 그 모툼 경이 맞아. 그런 대단한 분이 내 앞에 앉아있었단 말이야.

‘우와! 모툼 경 맞으세요?’

그 분은 그냥 그렇게 껄껄 웃으실 뿐이었지. 그러다가 말씀하셨어.

‘에아임 군, 자네 나이라면 지금 기사 아카데미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쉬는 날이라 나왔습니다.’

‘그렇군...’

나는 너무 흥분해서 내 앞에 있는 코코아 잔을 잊었어. 그 분은 다시 조용히 커피를 한 모금 드시더니 말씀하셨지.

‘아직은 이르지만, 졸업하면 어떻게 할 작정인가?’

‘아...’

나는 말문이 막혔지. 그때까지도 별 생각이 없었던 주제였거든. 그냥 대충 아카데미 졸업해서, 대충 어느 기사단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하고 있었지. 뭔가를 잘 해야 한다는 생각도 그리 많지 않았어.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몸은 약간만 노력해도 상위권 성적을 내는 건 어렵지 않았거든. 그냥 그 정도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눈 앞에서 모툼 경을 본 거야.

‘흐음... 에아임 군.’

그 분이 약간 진지한 기색으로 말씀하셨어. 저절로 내 허리가 쭉 펴지는 진귀한 경험을 하게 됐지.

‘혹시 말야, 뭔가, 꼭 해야 할 게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노려볼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어.

‘어떻게...’

‘어떻게 알았느냐고? 귀족가의 첫째가 아닌 아들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거든. 이봐, 에아임 군. 어차피 자네의 가문은 자네가 물려받을 수 없는 것이고, 그리고 자네 가문과 연관된 기사단 같은 곳에는 자네가 들어갈 수 없을 것 아닌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 어릴 적부터 정해진 것이었거든. 아버지는, 둘째 형님이 황실 기사단에 들어가시자, 셋째 형님과 나는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어. 첫째 형님을 위협할 파벌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야.

‘그럼 우리는 어떤가?’

‘네에?’

그래, 기리인. 난 아까 너처럼 반응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거든. 그 분은 인자하게 웃으면서, 아까 내가 너에게 했던 얘기를 하셨어. 무력은 갈고 닦으면 되고, 로그푸스의 피가 흐른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거다. 경험은 일하면서 쌓을 수 있다. 선배 기사들만큼의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걱정할 것 없다... 그런 말씀을 하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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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요?”

“그래서... 나는 그 날부터 훈련량을 배로 늘렸지. 그냥 대충 졸업하자, 인생을 즐기면서 살자 이런 마음이었는데, 아마 그런 마음으로 졸업했었으면 어디 변경에서 대충 아무나 잡아서 결혼해서 그냥저냥 살았을 것 같아. 하지만 제국 수사기사단에 들어가려면 그럴 수 없잖아? 낮에는 죽어라 뛰고, 밤에는 죽어라 공부를 했지. 아, 진짜 미치는 줄 알았다.”

“고생 많으셨네요...”

“고생은 뭐. 좋아서 한 일이었어. 모툼 경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버텼지. 그래서, 아카데미를 3등으로 졸업하고, 제국 수사기사단에서 운영하는 하이 아카데미에 들어갔어. 거기서 3년동안 구르며 고생하고 나니 다행히 수사기사가 되었지.”

“다행이라뇨, 에아임 씨. 겸손이 지나치시네요. 기수 수석졸업자시면서.”

톨라츠 아저씨가 한 마디 거들어왔고, 형은 “그런 걸 자기 입으로 어떻게 말하나?” 하면서 싫지는 않은 기색으로 아저씨를 타박했다.

“그럼 모툼 경과도 만나셨어요...?”

“만나다마다. 지금 그 분은 제국 수사기사단 단장이시다.”

아...!

============================ 작품 후기 ============================

조금 늦었습니다.

일요일 저녁은 항상 이러네요.

이번 편 후반부는 나중에 다시 살펴보며 수정할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읽어주시고, 선, 추, 코, 쿠 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초보 글쟁이의 보람입니다. ;)

sudhwucs 님 // 맞추셨네요! ;)

eastarea 님 // 역시 맞추셨네요! :)

nnuhgwyegd 님 // 비슷하셨네요 아쉽습니다 ;)

화이트프레페 님 // '히바리' 크~ 맞추셨네요! :)

경직 님 // '왜 이리 사람이 적죠?' 그러게요...ㅠㅠ 저도 참 가슴이 아프네요. 어떻게 하면 더 늘어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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