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119화 (119/309)

00119 6. 나 좀 가만 내버려 둬요 =========================

“다녀오세요. 기리인도 잘 다녀와. 뢰다야, 아빠랑 삼촌한테 인사해야지?”

“안녕히 다녀오세요~”

뢰다는 귀엽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형은 뢰다를 번쩍 안아들어서 입을 맞추고는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누나와 가볍게 입을 맞춘 후 말했다.

“다녀올게, 여보.”

“다녀오겠습니다.”

나와 형은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집 앞에는 이미 마차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차의 마부가 형에게 모자챙을 들어보이며 인사했다.

“반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아아, 좋은 아침. 아침부터 고생이 많네.”

오레즈 할아버지가 마차를 열어주었고, 나와 형은 마차에 올라탔다. 오레즈 할아버지가 “잘 다녀오십시오, 도련님.”이라고 인사하며 마차 문을 닫자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탄 마차는 기사단에서 쓰는 출퇴근용 마차인 것 같았다. 마차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고, 그저 한명에서 두명이 앉아갈 수 있는 의자만 있을 뿐이었다.

“출퇴근용 마차에요?”

“응. 2급 이상만 나오는 거다.”

“형, 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2급이면 어느 정도 높은 거에요?”

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으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수사는, 원래 혼자서 하는 것도 아니고, 한 명이 한 가지 사건만 하는 것도 아니야. 제도에는 오십만 명이 산다. 오십만 명이 얼마나 사건을 많이 만들겠니. 음... 기리인. 수사기사가 어떤 사건을 주로 다룰 것 같니?”

“형이 다뤄온 사건이 일반적이 아니라는 걸 말하는 거죠... 음. 흔히 생각하는 범죄들, 살인, 강도, 강간, 절도...”

“그래. 그런 사건은 5급 수사기사가 다룬다. 자경대나 경비대, 친위군 순찰대 등과 협업하지. 4급과 3급 수사기사는 팀을 이뤄서, 조금 큰 사건, 예를 들면 연쇄 살인이라거나, 암흑가의 조직 검거라거나, 마약 사건이라거나... 이런 것들을 수사하지. 아마 기리인 네가 아는 제국 수사기사의 수많은 전설은 이 3급과 4급 선배님들이 만들어내신 것일 거다.”

“그렇구나... 그럼 2급부터는요?”

“2급부터는 시야가 넓어져야 해. 귀족들 간의 알력, 각 지역의 불만이나 압박요인, 현 영주나 시장의 성향과 정치적 상황... 그래, ‘정치’를 모르면 2급이 될 수 없다. 그래서 2급 수사기사부터는 고위급 취급을 받지. 혼자서 수사반을 꾸려서 다닐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이번에 내가 북쪽으로 갔던 것처럼 말이다.”

“와...”

“좀 더 감탄해도 된다 임마.”

형은 버릇처럼 내 머리를 헤집었다. 나는 에헤헤, 하고 웃다가, 말했다.

“1급은요?”

“1급은... 현장에 안 계시지. 기사단 조직을 위해 일하시지. 우리 기사단 전체에 다섯 분밖에 안 계시다. 그 위에 단장님 계시고.”

“아... 그럼 형이 수사기사단에서 어마어마하게 높은 거네요?”

“그러니까 좀 더 감탄해도 된다니까.”

서른둘, 이제 다섯 살짜리 아이의 아빠일 뿐인데... 가문의 도움이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혼자의 능력으로, 수사기사단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위치까지 올라가다니. 에아임 형은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그러는 동안 마차는 크게 오른쪽으로 돌아, 큰 성벽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세월에 닳아있는 성벽이었지만, 오히려 그게 대단히 아름답게 다가왔다. 나는 왼쪽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성벽을 바라보았다. 화려하게 다듬어진 성벽의 끄트머리에는 간간이 새 모양의 조각들이 아래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 새들의 머리 방향이나 각도가 모두 다 달랐다. 아...

“여기가...”

“그래. 황궁의 외성벽이다. 무슨 생각이 드니?”

“군사적인 기능이 거의 없네요. 저 위에 있는 사람이 보호를 받지 못하고, 활이나 돌, 기름 같은 무기를 쏟아붓기 힘들게 되어있네요.”

“흐음. 역시 북부에서 온 사람 답구나.”

“그런데 아름답긴 아름답네요. 와...”

북부 대요새의 성벽을 밖에서 본 적이 몇 번 있다. 학교에 다닐 때 요새 바깥으로 학교 소풍을 나갔을 때 몇 번, 그리고 이번에 배를 타고 내려오면서 봤다. 하지만 뭐랄까, 북부의 벽은 무서운 느낌이 강했다. 여기 가까이 오면 너 죽어. 접근하지 마. 이런 느낌. 그 위를 순찰하는 병사들도 장비나 기합이 꽉 들어있고 말이다.

하지만 황궁의 외성벽은 그 자체로 예술품 같았다. 세월이 오래 지나며 비바람에 깎인 그 모습 마저도 멋스러움과 예스러움의 표시 같은 느낌. 아무 장식도 없는 그냥 성벽인데, 자꾸 멍하니 바라보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한참 그렇게 성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차는 슬슬 다른 마차들과 섞여 달리기 시작했다. 출근길 모습인 것 같았다. 수많은 마차들이 줄지어 황궁 외성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큰 마차도, 작은 마차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우리가 타고 있는 것 같은 별 장식 없는 마차들이었다. 약간 속도가 느려졌지만 그래도 걷는 것보다는 빠른 속도로 마차가 안으로 접어들었고, 주도로에서 벗어나 오른쪽으로 꺾자 다시 원래의 속도를 회복할 수 있었다. 5분 정도 달리자 우리는 두터운 담벼락 사이로 난 경비초소를 지나, 웅장한 4층 건물 앞에 멈춰섰다.

“내리자, 기리인. 다 왔다.”

형이 마차 문을 열고 내렸고, 내가 형을 뒤따라 내렸다.

제국 수사기사단 본부는, 음. 딱딱하고 고지식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건물에 곡선이 하나도 없었다. 벽돌의 색깔마저도 좀 칙칙한 듯한 느낌이었다. 웬지 모르게 위축되고, 어깨가 짓눌리는 듯한 느낌.

“어깨 펴 임마. 너 여기 죄 지어서 온 거 아니잖아.”

형은 다 안다는 듯 나를 쿡 찌르며 말했다. 내가 놀라서 몸을 쭉 펴자, 형은 웃으면서 앞장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형이 마차 안에서 해 준 이야기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형을 본 많은 사람들, 파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 옷 위에 브레스트 아머를 입은 사람들,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모두 형에게 군례를 올리기 시작했다. 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널찍한 기사단 입구를 통해 계단을 걸어 올라가다가... 흠칫했다.

형 옆에 서서 보니... 1층, 넓은 로비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서 있었다. 한가운데에 한 손에는 검, 그리고 한 손에는 천칭을 든 젊은 기사의 동상이 서 있었다. 트리클 신의 천칭을 수호하는, 즉 정의를 구현하는 기사단이라는 이야기인가. 그 동상 앞에, 머리도 수염도 흰 색이 되었고, 눈가에는 잘 웃을 것처럼 주름이 많이 진, 하지만 역시 하얀색의 눈썹은 마치 호랑이의 그것처럼 기세를 지닌 채 위로 뻗어나간 보통 체격의 아저씨 한 명이 서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그 아저씨의 존재감은 확실했다. 그 남자의 옆, 한 세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는 톨라츠 아저씨와 에빌로 누나가 긴장한 채 서 있었다. 그 큰 톨라츠 아저씨의 덩치가 가려져 보일 정도였다.

에아임 형은 그 아저씨를 본 즉시 두 발을 모으며 가슴 앞에 한 손을 가져다 댔다. 군례를 올린 형을 보며 그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 분이 그러면, 형의 스승이고, 이 기사단의 단장이라는... 플레이크 모툼 경이신가보다.

“2급 수사기사 에아임 로그푸스, 귀환을 신고합니다.”

“수고했다. 올라가서 보고를 들어야 겠...지만,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힘들겠구나.”

형은 깜짝 놀랐다.

“네? 단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미안하지만 보고는 저 두 친구에게 듣기로 하지.”

단장님은 톨라츠 아저씨와 에빌로 누나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하고는, 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친구가 자네가 말하던 기리인이라는 친구인가?”

“네. 보고드렸던 기리인 모스라는 친구입니다. 기리인, 인사드려라. 제국 수사기사단 단장이신 플레이크 모툼 백작님이시다.”

나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평민이 귀족을 대하는 예법 대로였다. 그러며 고개를 숙였다.

“기리인 모스라고 합니다.”

“일어서게.”

내가 일어서자 그 분은 어느새 내 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 분은 손을 내밀었고, 나는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두 손으로 그 분의 손을 맞잡았다.

“플레이크 모툼이다. 이 친구의 직장 상사이고, 그리고 사부 정도 되는 사람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미안하지만 그 말은 내가 해야 되겠군. 이보게, 아도스.”

대략 마흔 정도 되어 보이는, 형보다는 나이 많고 모툼 경보다는 나이 적은 것 같은 기사 한 분이 앞으로 나왔다.

“미안하네만 내가 곧 나가야 하니 정세보고와 사정 청취는 자네가 맡아주게.”

“알겠습니다.”

“저, 단장님. 어디를 가십니까?”

에아임 형이 물어보자 모툼 경은 형을 향해, 아니, 형 옆의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황명이시다. 에아임 자네와 저 기리인이라는 친구를 데리고 바로 어전으로 출두하라신다.”

“네에?”

형은 화들짝 놀랐다. 아니, 놀라기는 내가 더 놀랐지만, 나는 아예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놀라서 입만 헤 벌리고 서 있을 뿐이었다.

“어어...”

황명이다. 거부나 이의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 사정을 봐달라고 애원할 수도 없다. 나와 형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띠링!’

<냉철이 발동합니다. 주변 상황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고맙다, 시스템. 나는 형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잖아요. 우리가 거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형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인 후, 단장님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황명을 받듭니다.”

“마차를 준비해 뒀네.”

그렇게 말하며 모툼 경은 우리를 지나쳐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북부군은 1년에 한 번, 4월에 신병 징집을 실시한다. 그 신병들이 북부 대요새 중앙 광장에 모였다가, 어설프게 줄을 맞춰 병영으로 걸어들어가는 모습은 나름 장관이다. 얼굴에 떠 있는, 숨길 수 없는 불안함과 겁, 그럼에도 모인 사람들과 앞에서 살기등등하게 바라보는 모병관의 눈빛을 의식해 어떻게든 당당하게 보이려는 그 신병들.

로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마치 그 불안한 신병들처럼, 나름 불안하지만, 어떻게든 당당하게 보이려 애쓰며, 모툼 경의 뒤를 따랐다.

============================ 작품 후기 ============================

일단 먼저 한 편 올립니다.

지난 몇 편의 전개가 너무 늘어져서인지 오늘 조회수가 너무 뚝 떨어졌네요.

오늘 밤 안으로 한 편 더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좀 부탁드립니다. 여러분께서 보내주시는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큰 의욕이 됩니다.

melontea 님 // 지금 생각하는 스토리 대로면 꽤 길게 쓸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ㅎㅎ;;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감사합니다. 늘어지지 않게끔 열심히 쓰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마법적 변기 하나 갖고 싶습셉습...ㅠ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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