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120화 (120/309)

00120 6. 나 좀 가만 내버려 둬요 =========================

단장님의 마차는 우리가 아침에 타고 왔던 마차에 비해 훨씬 크고 화려했다. 일단 말이 네 마리였고, 의자도 훨씬 푹신했고, 마차 안의 기둥에는 장식도 되어 있었다. 하지만 불안해서인지 아까 탔던 마차보다 더 불편한 느낌이었다.

“저, 단장님. 저를 부르시는 거라면 알 만도 합니다만, 이 친구까지 함께 부르셨다고...?”

건너편에서 묵묵히 팔짱을 끼고 앉아 있던 모툼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이네만 자네보다는 이 친구를 보시고 싶으신 모양이야.”

“네에?”

이건 또 무슨 소리래. 제국의 황제께서, 정확히 집계되지 못하지만 인구가 천만 명이 넘으리라는 이 넓디넓은 이티클레 대륙에서 모든 사람의 위에 군림하는 황제 폐하께서, 나를? 아무 특이할 것 없는, 아니, 아니지. 뭐 조금 특이한 면이 없진 않지.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면이 있지. 하지만 그 분에게 비하면 아무 것도 없는 거나 매한가지인데, 나를 보시고 싶으시다고?

“어찌 된 일인지...”

천하의 형조차도 당황했는지 말꼬리를 흐렸다. 모툼 경은 여전히 팔짱을 풀지 않고 말했다.

“에아임, 자네의 보고서는 특급 중요도로 평가되었기에 요약본과 전체 사본이 황제 폐하께 올라갔다네. 나도 읽어 보았으니 기억하네만, 거기에는 저 기리인 모스 군의 공헌이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되어 있었지. 그 친구가 시바낙의 해독과 정제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고, 북대공의 시도를 북대공이 전혀 서운하지 않을 방식으로 저지하였으며, 동시에 북대공에게 그가 절실히 원하는 경제적인 이익을 주어 만족하게 했다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융파트 공작의 손길을 미틱 시에 다다르기 전에 잘라내기도 했다고 말일세. 시청 관리의 살인사건의 진상을 밝혀낸 건 덤이고.”

원래대로면 쑥스러워해야 할 타이밍인데, 너무 긴장해서 그럴 기분도 안 나온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고, 모툼 경은 내 얼굴을 잠시 보더니, 내가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었던 듯 피식 웃으며 팔짱을 풀고 말을 이었다.

“그 뿐만 아니야. 자네가 파발을 이용해 보낸, 레카 시 정세보고서에도 저 친구의 이름이 꽤 나오더군? 물론 실질적인 배후 일은 자네가 다 했지만, 남북 대립의 단초가 될 수 있었던 격투기 대회에 개입할 수 있었던 건 저 친구가 친화력을 발휘한 덕분이라고 말일세.”

“그게 사실이니까요.”

“그래, 자네는 보고서를 정확하게 기록했지. 그래서 황제 폐하께서 보고서에 명시된 첨부문서에 대해 관심을 가지셨고, 자네가 평가한 기리인 모스 군에 대한 보고서도 보시겠다고 하셨네. 그걸 보시고, 자네가 그 친구와 의형제를 맺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주 흥미를 보이시며, 공식적인 자리 이전에 자네와 기리인 군을 보시겠다고 하셨네. 그래서 나를 부르셔서는 자네가 출두하는 대로 자네와 기리인 군을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셨지.”

“아아...”

형은 후회하는 표정이었다. 형이 내 자랑을 너무 해 둔 나머지 이렇게 되었다고 자책하는 것 같았다. 모툼 경은 나를 보시고는, 손을 뻗어 내 무릎을 가볍게 다독이며 말했다.

“기리인 군, 걱정하지 말게. 황제 폐하께서는 그저 자네가 궁금하신 듯해. 저 에아임 군이 그렇게까지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라면 대체 어떤 사람인지 보시고 싶으신 것일 거야.”

“아...”

나는, 잠시 모툼 경의 눈치를 보다가, 그가 만약 에아임 형이 말한 대로의 사람이라면 기분나빠 할 것 같지는 않다고 결론을 내리고, 말을 꺼냈다.

“저, 모툼 경,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만...”

약간 놀란듯한 모툼 경은, 그러나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게.”라고 말했다. 나는 짧게 숨을 들이킨 이후 물었다.

“아까 말씀하시기로, ‘저 에아임이 그렇게까지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라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지.”

“그 말 속에는 이 두 가지의 뜻이 있지 않겠습니까? 먼저, 에아임 경이 평소 인물 평가가 적어도 냉정한 편이며 심한 경우 야박하다는 말까지도 나올 수 있다. 둘째, 그럼에도 그가 저라는 인물을 높이 평가했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이며, 그러기에 저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모툼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정확한 정리일세.”

“저, 그렇다면... 황제 폐하께서는 에아임 경과 평소 친분이 있으셨습니까?”

약간 눈이 커진 모툼 경은 나에게 되물었다.

“왜 그리 생각하는가?”

“형, 기분나빠하지 마세요.”

형은 고개를 저어 신경쓰지 않는다는 뜻을 말했다. 나는 괜히 군침을 한 번 삼킨 후 말했다.

“에아임 경이 아무리 훌륭한 수사기사이자 변경백가의 일원이라 해도, 그가 내리는 인물 평가에 대해서까지 황제 폐하께서 일일이 아신다는 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거꾸로 뒤집어 생각해 보았죠. 황제 폐하께서 원래 에아임 경과 친분이 있으셨다면, 그것도 에아임 경이 평소 인물 평가에 후하지 않다는 것까지 아실 정도의 친분이 있으셨다면... 황제 폐하께서 저라는 사람을 궁금해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모툼 경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이야! 에아임, 이 친구, 역시 자네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하군? 자네 이야기해 주지 않았지?”

“네.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기리인이 스스로 추론해 낸 겁니다.”

“자네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훨씬 뛰어난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사부님을 처음 만났을 때 있었던 일을 기리인에게 문제로 내 보았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제가 못 맞췄던 부분까지 맞추더군요.”

“과연 자네가 수사기사단에 입단시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만하군.”

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대대로 황가는 황가의 방패가 되었던 로그푸스 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그 가운데서도 지금의 황제 폐하께서는 제도에 있는 로그푸스 가의 저택에 자주 드나드실 정도로 친분이 있으셨던 분이었다. 황태자가 되시기 전까지 나는 그 분을 삼촌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까.”

“아...”

“물론 황태자가 되시면서는 그리 하지 못했지만, 황제 폐하와 친분이 있고, 폐하께서 나를 잘 아신다고 할 정도는 된다.”

그렇구나...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맞췄다, 하는 걸로 기분좋아할 틈이 없다. 나는 계속 머리를 맹렬하게 굴렸다. 폐하께서는 나에게 관심이 있다. 폐하께서는 에아임 형과 내가 의형제를 맹세할 정도로 친한 걸 안다. 폐하께서는 에아임 형을 신뢰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마차는 어느새 황궁 내성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성 안에 마차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모툼 경과 에아임 형, 그리고 나 순서로 내렸다. 황궁 정문 앞에는 단정하게 정복을 차려입고 콧수염을 기른 남자 한 분이 서 있었다. 콧수염에는 하얀 수염이 몇 가닥 섞여 있었고, 머리도 그랬다.

“오셨습니까, 모툼 경. 오랜만에 뵙는군요, 에아임 경.”

“반갑습니다, 프그단 경.”

“이 젊은이가...?”

“폐하께서 찾으셨던 바로 그 친구입니다.”

그는 이채를 띤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인사를 하거나 하지는 않은 채, “이쪽으로 오시지요.”라는 말을 남기고 앞장섰다. 우리 셋은 프그단 경의 뒤를 따라,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입이 쩍 벌어지려는 것을 억지로 꽉 눌러 닫아야 했다. 안 그러면 저절로 감탄이 새어나올 것 같아서였다. 아치형의 지붕이 올려진 기나긴 홀에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기둥들 하나하나마다 대리석이었는데, 하나하나마다 섬세한 부조가 조각되어 있었다. 그 하나하나마다 대가의 솜씨가 동원된 듯,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 역동적인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지금 내가 지나가며 흘깃 본 장면은 바로 커다란 드래곤 앞에 등을 보이고 선 어느 남자의 뒷모습이었다. 그는 두 손을 펼쳐보이며 뭐라뭐라 말하는 것 같았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그것이 치르낙 대왕이 드래곤 르플레스탁을 만나는 장면임을 알 수 있었다.

벽에 걸려있는 태피스트리(tapestry)마다, 그림마다 정말 나 같은 문외한이 보아도 감탄이 나올 솜씨로 만들어졌고, 천장에는 금과 수정이 빛나는, 하나하나마다 마력석을 이용한 마력등이 잔뜩 달린 샹들리에가 조밀하게 달려 있었다. 애써 나는 내 앞에서 걸어가는 형의 등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언젠가, 나중에 볼 기회가 있겠지. 촌뜨기 같은 모습을 보이지 말자. 형에게 망신을 주지 말자.

프그단 경은 홀을 지나, 복도에서 오른쪽으로 꺾었다. 순간 형이 헉 하고 놀라며 물었다.

“집무실에 계신 것이 아니신지요?”

“황제 폐하께서는 서재에 계십니다.”

형과 모툼 경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놀랄 일...이군. 공식으로 만나겠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공간에서 비공식적인 이야기를 하겠다는 건가? 어느새 우리는 화려한 문 – 하긴, 황궁의 모든 문이 화려하긴 했다 – 앞에 섰다. 프그단 경이 문 앞에 선 경비병들을 일별했고, 경비병들이 비켜서자 문을 가볍게 노크하며 말했다.

“폐하, 소신 프그단이옵니다.”

“왔는가?”

“네, 폐하. 제국 수사기사단장 모툼 경과, 수사기사 에아임 로그푸스 경, 그리고 평민 기리인 모스가 폐하의 부르심을 입어 이 앞에 섰사옵니다.”

“들라 하라.”

문이 열리고, 나는 지금까지 태어나 걸었던 것 중 가장 긴장되는 몇 발자국을 방 안으로 낻딛었다.

============================ 작품 후기 ============================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연참이라고 봐줄 만한 정도로 글을 올렸네요.

스토리 진행이 늘어지지 않게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황제도 만났으니 기리인 출세했네~ 출세기념으로 굴러보세~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부탁드립니다. 하나하나마다 글쟁이는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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