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129화 (129/309)

00129 6. 나 좀 가만 내버려 둬요 =========================

“세상에... 그래서 내일 기리인 군이 어전에 서게 되었다고요?”

“그렇다니까. 내일 이 친구 명예 기사직이 서임될거야.”

“어머나... 그럼 ‘기리인 경’이라고 불러야 하나?”

누나는 장난기 다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발 그러지 마세요 누나. 안 그래도 죽겠구만...”

“왜? 적응해야 해. 앞으로도 온갖 사람들이 너를 경이라고 부를 텐데.”

“제발 누나만이라도 그러지 말아주세요...”

아장아장 걸어온 뢰다가 내 바지춤을 잡으며 올려다보며 물었다.

“삼촌, 경이 뭐야?”

당황.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아이들을 도통 본 경험이 있어야지. 이럴 때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나? 다행히 얼른 형이 뢰다를 안아들고는 눈을 맞추며 말했다.

“경은, 황제 폐하가 시키는 일을 열심히 잘 한 사람에게 황제 폐하께서 주시는 거야.”

뢰다는 다행히 물음에 물음을 더하지 않고 알쏭달쏭한 표정만 지었다. 에휴... 형이 뢰다를 자기 의자에 앉히는 동안, 누나가 가운데에 큰 접시 하나를 내려놓았다. 접시에는 양고기가 여럿 놓여 있었다. 누나가 내 앞에 놓인 접시에 먼저 양고기 다리를 하나 집어주고, 그 옆의 그릇에서 소스를 떠서 그 위에 부어주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여보, 여보도 얼른 와서 먹어요.”

“아, 그래. 양고기 맛있겠네!”

“꼬기~ 꼬기~”

“어, 뢰다야. 잠깐만. 엄마가 줄게.”

보통 가정의 평범한 저녁식사 풍경. 가슴 따뜻해지는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내가 아침부터 겪었던 모든 일들이 꿈인 것만 같았다. 내일 일어나면 형이 모든 게 꿈이었다고 무슨 헛소리 하냐고 말하고, 나는 선생님을 찾아가 연구를 시작하는 거다. 별 황당한 꿈 다 꿨네, 하면서 말이다.

물론 꿈일 리는 없다. 좀전에 배달부가 ‘기리인 모스 님’ 앞으로 온 꾸러미를 주고 갔다. 그 꾸러미 안에는 장인의 솜씨로 재단된 셔츠와, 바지, 화려한 수가 들어간 조끼, 그리고 제국 황실기사단의 문양이 수놓인 망토가 들어 있었다. 내일은 저걸 입고, 활도 들고, 어전에 서야 한다.

아이고.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겠다. 어전 회의라니! 내가 기사라니! 몇 달 전까지 마법사를 꿈꾸던, 몸은 좀 약하지만 마법을 잘 쓰던 학생이었던 내가, 지금은 마법을 전혀 못 쓰는 대신에 활을 쏘고, 황제 폐하의 앞에서 포상을 받는다니. 그 후의 연회와, 티타임과, 저녁 무도회까지 모두 내가 주빈의 하나로 참석해야 한다니. 아... 생각만 해도 체하겠다...

“기리인, 어때. 왈츠는 할 만 하냐?”

“그런대로요... 동작이 빨라서 실수를 해도 잘 커버할 수 있을 거라고, 상대의 움직임을 잘 읽고 잘 리드하라고 들었어요.”

“너 레이디들한테 춤도 신청하고 해야 할텐데?”

“으엑?!”

“뭘 그렇게 놀라냐. 그렇게 하면서 서로 자기 소개도 하고, 친분도 쌓는 거지. 너 안 그랬다가는 레이디들에게 찍힌다? 그럼 오히려 역효과 날 걸?”

“으아...”

머리를 뒤흔드는 나를 보며 형과 누나는 가볍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 형이 최대한 네 곁에 있으면서 저게 누구고 저게 누구라는 건 가르쳐 줄게. 그래도 기본적인 건 해야 할 거야. 걱정하지 마, 기리인. 사람들이 너를 기본적으로 좋게 봐 줄 거기 때문에, 설령 네가 네 오른발에 네 왼발을 걸고 넘어지며 텀블링을 한다 해도 사람들은 너를 웃으며 좋게 봐 줄 거다.”

그건 더 싫다고요... 나는 양고기를 나이프로 잘라 입 안에 넣고 거칠게 씹었다. 누나의 요리 솜씨는 꽤 대단했다. 양고기에서 누린내가 안 난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소스도 고기의 풍미를 더해주는 고소하면서도 감칠맛 있는 소스였다. 나는 식사를 얼른 마쳐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열심히 고기를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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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끝나고, 누나가 뢰다를 씻기고 재우러 데리고 나가고, 형은 차주전자에서 차를 한 잔 따라 나에게 건넸다. 나는 찻잔을 받아들며, 문득 형에게 기초적인 정보를 수집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이 들어 물었다.

“형, 뫼르말 가문은 어떤 가문이에요?”

형은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자기 잔에 차를 따르고는, 내 앞에 앉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로 대답했다.

“뫼르말 가문은, 기리인 너 대균열이 뭔지 알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서 배우는 간단한 지리 지식이지 그건. 대륙 중부와 남부를 가로지르는,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고 왜 생겼는지도 모르는, 왼쪽으로 눕힌 Y자 모양의 큰 균열. 학계의 정설은 창세전쟁 때 전쟁의 여파로 대륙이 갈라졌다는 쪽이라고 한다.

“대균열의 끄트머리 쯤에 위치한 백작 영지야. 바다에 면해있어 대륙의 동쪽 해안을 따라 무역을 하기도 하고, 농사를 짓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별 볼일 없는 영지지. 다행히 대균열 아래로 내려가 희귀 광물을 캐는 광업이 있어 그럭저럭 먹고는 사는 모양인데, 자체적으로 식량 해결이 안 되고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남공작령에 의존하는 면이 많은가 보더라고. 희귀 광물을 남공작령에 팔고 그걸로 식량을 사온다거나 말야. 반쯤은 예속된 거나 다름없다고 봐야겠지.”

“음... 백작가라면, 만약 황태자 전하와 성혼을 한다 했을 때, 신분상 차이의 문제는 없나요?”

형은 약간은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말이다. 기리인 너는 알려나 모르겠다. 귀천상혼(貴賤相婚)이라고 해서, 높은 귀족과 낮은 귀족, 또는 귀족과 평민의 결혼에 대해서는 거리끼는 분위기가 없지는 않아.”

“그런데요?”

“백작가면 거기 걸린다고 보기도 안 걸린다고 보기도 애매한 정도거든. 독립 영지의 백작이니까 후작과 맞먹는다고 따지고 들 수도 있고, 애초에 우리 나라는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귀천상혼을 적용시키지 않기도 하고... 그런데 아무래도 백작가가 황실의 안주인 자리에 들어온다면 좀 이런저런 소란이 있겠지?”

음? 그럼 잠깐만... 좀 이상한 거 같은데?

“그럼 형, 만약에 지금대로 황태자 폐하와 그 가문의 여식이 성혼을 한다고 치면요. 지금이야 나스프 공작가의 인물이 황후 전하시니까 상관없겠지만, 만약 황태자 전하가 황위를 물려받게 되면, 나스프 공작가와 뫼르말 백작가의 권력이 뒤바뀔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형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 점이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나스프 공작가가 뫼르말 백작가를 끝까지 손아귀에 묶어 둘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거든? 나스프 공작가가 지금 황태자와 뫼르말 백작의 여식 사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알아봐야 해.”

‘띠링!’

<메인 퀘스트(3) - 황태자의 암살을 막아라>

<#1. 단서 수집 - 업데이트!>

<퀘스트 목표

1) 뫼르말 가문에 대해 단서를 수집하세요 – 1/3

3) 나스프 공작과 남부 공작령의 상황에 대해 단서를 수집하세요 – 1/5>

오. 다행이다.

형은 차를 한 입에 털어넣더니 크게 기지개를 켜고 나서 말했다.

“기리인, 내일 아침에 정신없을 테니 일찍 자라. 예복은 미리 꾸려놓고. 황궁에서 갈아입을 곳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아침에 입고 가야 한다. 대신 망토는 황제 폐하께서 기사 서임 하고 나서야 두를 수 있는 거니까, 들고만 가고. 활과 화살은 아침에 가져가서 궁내부원에게 맡겨두면 될 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

“응?”

“이것저것 고마워요. 제 일처럼 신경을 써 주셔서.”

형은 나를 뻔히 보더니 다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으윽.”

“낯간지러운 소리 할 거면 가서 자라 임마.”

괜히 쑥스러워서 하는 소리.

“네, 형도 주무세요.”

나는 짐을 가지고 내 방으로 가, 억지로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제발 내일 실수 같은 거 하지 않고 모든 것이 무사히 끝나길.

---

“기리인 님, 이 쪽입니다.”

나는 예복 차림으로 지시한 곳에 다가가 섰다. 이제는 긴장이 뭔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 의지력, ‘시스템’이 대륙 최고 수준일 거라고 칭찬했던 그 의지력만이 내 발을 떨지 않게 붙들어두고 있을 뿐이었다. 내 뒤에는 쟁반 위에 검집째 검을 받쳐든 시종 한 명, 그리고 어제 맞춘 망토를 잘 접어서 쟁반 위에 올려 들고 있는 시종 한 명이 뒤따라 서 있었다.

내 앞에 있던 문이 크게 열리고, 나는 앞을 걸어가고 있는 궁내부원을 따라 걸어갔다. 최대한 단정하고 흔들림 없는 걸음걸이로, 경박하지 않게, 하지만 너무 긴장되지도 않게. 궁내부원이 나에게 자리를 안내해 주고, 나는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어전 회의의 사회를 보고 있던, 궁내부 장관 프그단 경이 종이를 보며 말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포상 순서입니다. 먼저, 북부 대영지 출신, 기리인 모스.”

두 명의 시종이 내 비스듬히 앞으로 가, 쟁반을 머리 위로 든 채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황제 폐하께서 보좌에서 일어나, 서서히 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검을 든 시종 앞에 선 황제 폐하는 검집을 집어들더니 검을 뽑았다.

스릉-.

아주 잘 갈린 검이 내는 섬뜩한 소리와 날빛이 순간 이 호화찬란하기 그지없는 방의 분위기를 일변시켰다. 그러거나 말거나, 황제 폐하는 칼을 뽑아든 채 내 앞에까지 와서 섰다. 나는 지시받은 대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 황제 폐하를 직접 바라보는 것은 불경이니까.

“북부 대영지 출신 기리인 모스는, 황제 폐하의 보살핌과 다스림을 받는 신민의 도리를 충실히 따랐으며, 특히 지난 달에 있었던 미틱 시의 소요 사태로 이어질 수 있었던 사태를 사전에 원만히 해결하는 한편, 그 소요 사태를 일으키는 데 원인이 되는 세력간의 대립을 원만히 중재하여, 대륙 내에 참혹한 내전이 벌어지는 것을 막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또한, 그는 이 과정에서 미틱 시의 황제 폐하의 관료가 살해당한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도 역시 지대한 공을 세운 바 있다. 또 그는 여행을 계속하여 레카 시에 이르러서는 레카 시가 남북으로 갈리어 내전을 벌일 위기에 개입하여, 이 대립이 원만히 진정될 수 있게끔 하는 한편, 이를 보고해 제국 정부가 대처할 수 있게끔 하기도 하였다.”

폐하는 칼을 자신의 가슴까지 들어올리셨다.

“이에 제국의 정당한 지배자이며 대륙 모든 생물들의 주재자이며 신앙의 수호자이신 황제 폐하께서는 기리인 모스의 공훈을 기려 그를 제국 황실 기사단의 명예 기사로 임명하기로 결정하셨다.”

들어올려진 칼이 천천히, 내 왼쪽, 그리고 오른쪽 어깨에 와닿았다.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폐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칼집에 칼을 집어넣었다. 나는 미리 지시받은 대로,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머리위에 들어올려, 황제 폐하께서 하사하시는 칼을 받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제발, 신의 가호가 함께 해 주세요.

============================ 작품 후기 ============================

아이고. 몇 분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읽어주시고 선추코쿠 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저의 힘입니다.

후원쿠폰 주신 Blue+ 님 정말 감사합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일단 열심히 빵빵하게 써 보려구요!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역시 고기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마력이..ㅎㅎ 감사합니다!

melontea 님 // 어디 가셨었어요. 안 보이셔서 걱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급급여율령 님 // 네놈추 네놈추 신나는 노래... 아 이게 아니지. 기리인 이미지는 "간사합니다!"에 가까울 것 같기도...ㅎㅎ; 감사합니다!

체크필통 님 // 끝까지 모르게 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카드보험 님 // '개띵명작'이라고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개글을 좀 더 다듬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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