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131화 (131/309)

00131 6. 나 좀 가만 내버려 둬요 =========================

“제법 잘 생겼군. 그렇지 않나, 다르임?”

“그러게 말입니다, 아버님. 저도 어디 가서 꽤나 뒤지지 않는 외모라고 생각했었는데 저 친구에 비하면 좀 빛이 바래는군요.”

아버님이라고... 부른 걸 보면, 저 분은 에아임 형의 둘째 형인가보다. 나는 두 사람의 정보가 궁금해졌다.

‘정보 확인.’

<이름          : 린베크 로그푸스

나이          : 64

HP           : 4600/4600

힘            : 92

민첩          : 88

지력          : 85

마나친화력    : 78

매력          : 86

지구력        : 80

특수          : 정의감 94

스킬          : 마나 에지 Lv. 5>

<로그푸스 변경백. 제국 황실기사단 단장. 에아임 로그푸스의 아버지입니다.>

오. 마나 에지(mana edge). 마나로 순간적으로 절삭력을 강화하는 검술. 그러니 저 분이 기사인데도 마나친화력이 78이나 되시는 거겠지. 그러면...

‘정보 확인.’

<이름          : 다르임 로그푸스

나이          : 40

HP           : 6200/6200

힘            : 94

민첩          : 96

지력          : 91

마나친화력    : 85

매력          : 86

지구력        : 98

특수          : 정의감 96

스킬          : 마나 에지 Lv. 3>

<에아임 로그푸스의 둘째 형이자, 황실 기사단의 부단장입니다.>

...정의감은 저 집안 특징인가? 에아임 형한테도 있더니...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두 사람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침묵이 불편해져 쌀쌀해질 때까지 말이다. 그러다가, 아버지 쪽이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 에아임을 어떻게 홀렸나?”

“네?”

“자네같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사람과 의형제를 맺겠다고 하니 말이야.”

갑자기 확,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첫인상과는 다르게, 린베크 단장은 나에게 비열한 말투로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 옆의 다르임 부단장도 비웃음이 명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아임은 어릴 적부터 그랬지요. 쓸데없는 동정심이 많아서 어디에나 얽히고, 이곳저곳 오지랖넓게 끼고 다니고. 그러다가 사고도 많이 쳤지요.”

“허, 참. 이봐, 기리인이라고 했나? 설마 우리가 웃으며 반겨주기를 기대한 건 아닐테지?”

물론 그건 아니다. 하지만 설마 이 정도로 면전에서 비웃음을 날릴 줄은 몰랐다. 나는 에아임 로그푸스라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그 가족들도 그런 좋은 사람들일 줄만 알았는데. 내가 너무 성급했나보다.

“저런 어디서 뭘 했는지도 모르는 평민 따위를 데려다가 의형제를 맺겠다고 하니, 에아임도 참... 그 사람 보는 눈 다 갔군요, 아버님.”

“그러게 내 뭐랬느냐. 수사기사단 같은 이상한 곳에 있으니까 이상한 물이 드는 것이 아니냐. 에잉... 망칠 거면 자신만 망칠 것이지, 왜 저런 걸 데려와서는 집안 망신을 주고...”

참아야 하나? 아니. 나를 위해서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모욕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에아임 형을 위해서는 그리 못 하겠다.

“알겠습니다.”

“뭘 알겠다는 건가?”

“저는 에아임 로그푸스라는 사람의 선의를 믿었습니다. 저 역시도 그를 선의로 대했고요. 하지만 두 분께서 저라는 사람의 선의를 믿지 않으시니, 에아임 형님의 선의가 오히려 그 자신에게 역으로 작용하고 있네요. 저는 제 존재가 에아임 형의 발목을 잡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건가?”

나는 어느새, 목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진정, 진정해야 한다. 눈물을 흘리면 지는 거다. 시스템, 부탁해.

‘띠링!’

<냉철이 발동합니다.>

후우. 가볍게 숨을 들이쉰 후, 내쉬었다.

“저를 얼마든지 비난하시고 낮추어 보셔도 상관 없습니다. 하지만 제 존재가 에아임 형님에게, 아니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싫어하시겠죠. 에아임 님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은 견딜 수 없습니다. 신전에 가서 의형제의 맹세를 취소해 달라고 하겠습니다.”

“허, 제멋대로 의형제를 맺더니, 이제는 제멋대로 취소하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두 분께서 다시 에아임 님을 잘 봐주실 수만 있다면 그리 하겠습니다.”

잠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정의감이 저렇게 높은 분들이... 물론 정의감이라는 게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따르는 것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의감이 높은데, 악인이라고 확정되지도 않은 나를 이렇게 비꼬고 비웃고 비난한다고?

“역시 평민이라 제멋대로군. 저런 놈을 데려오다니 에아임도 참...”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사과하십시오.”

“뭐?”

“저를 모욕하시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에아임 님이 저로 인해 모욕당하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사과하십시오.”

“못 하겠다면?”

다르임 부단장은 빙글빙글 웃으며 나를 도발해왔다. 싸구려 도발이다. 넘어가서는 안 된다, 고 냉철이 말하고 있다. 하지만 냉철은 다른 것도 말하고 있다. 저 도발을 오히려 맞서 싸우라고. 왜일까. 내가 아직 머릿속으로 정리하지 못한 것을 냉철이 먼저 알아챈 건가? 그리고 내 마음은 저 도발을 받아치는 쪽으로 기운다. 그래. 형이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는 것을 참을 수는 없다.

“칼을 한 번도 잡아본 적 없는 사람이지만, 그리고 오늘 막 기사가, 그것도 진짜 기사가 아닌 명예 기사가 된 몸이지만, 명예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로 인해 에아임 님의 명예가 더럽혀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나는 오른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다르임 부단장의 발치에 내던졌다. 기사가 아니라도, 기사의 무용담을 한 번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결투의 도전장이다.

“결투를 신청합니다.”

“허어!”

린베크 단장의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탄성. 다르임 부단장은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죽고 싶나?”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 이건 무슨 의미이지?”

“제가 죽는다 해도 저를 좋게 보아주셨던 에아임 님의 명예는 지켜지겠지요. 그거라면 만족합니다.”

“제 정신인가?”

“제 정신입니다.”

다르임 부단장은 린베크 단장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이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르임 부단장이 장갑을 집어들었다.

“좋다. 결투를 받아들인다. 결투의 방식은 신청받은 사람이 정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알고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없이 두근거려야 정상일 것 같은데, 아까 어전에서 크게 긴장하고 온 뒤라서 그럴까, 아니면 냉철의 힘일까. 내 마음은 평온했다.

“그럼 이 자리에서 결투의 방식을 정하겠다. 결투의 방식은 술 내기다. 술을 많이 마셔서 끝까지 정신이 말짱한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다. 지는 사람은 크게 절을 한 번 하고 졌습니다, 라고 외치는 것이 조건이다.”

“네?”

어안이 벙벙해서 바라보고 있는 나를 향해, 린베크 단장과 다르임 부단장은 껄껄거리며 웃었다.

“하하하! 이봐, 기리인 경. 마음 놓게. 일부러 연기 한 번 해 본 거야.”

“네에?”

“아버님이 짓궂은 장난을 너무 좋아하셔서 말이지. 한 번 꼰대같은 귀족들처럼 굴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하시고, 나도 궁금해서 해 봤는데, 하하하!”

아아... 어쩐지. 정의감 높은 분들이 막나간다 했어. 이봐, 시스템. 너도 그걸 파악한 거지? 괜히 내가 저 분들에게 맞서고 싶었던 것도 그 영향이 있는 거지?

‘띠링!’

<좀 더 일찍 눈치챌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군요. 좀 더 노력하십시오.>

한참 껄껄거리던 린베크 단장님은 웃음을 거두며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실없는 장난만은 아니었다네, 기리인 경.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네.”

“그 말씀은...”

“자네라는 사람의 결의가 얼마나 큰지를 알아보고 싶었던 거지. 사교계는 복마전이라네. 사소한 실수 하나로도 온갖 추문들이 생기는 곳이야. 자네의 결의가 크지 않다면 그곳을 버텨내기 힘들다네. 더불어, 자네가 에아임을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를 알아보고 싶기도 했고 말일세.”

“검도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사람이, 자기 모욕도 아니고 의형의 모욕을 못 이기고 결투를 신청하다니요. 그것도 황실 기사단의 부단장에게 말입니다.”

“에아임도 그렇게 말했지만 이 친구 물건일세.”

“역시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요, 아버님.”

두 사람은 책상을 돌아 내 앞으로 다가왔다. 에아임 형과 비슷한 키의 두 사람은, 나를 약간 내려다 볼 정도였다. 린베크 단장님이 팔을 올려, 내 두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시험해서 미안하네, 기리인 경. 하지만 이 시험으로 자네를 온전히 믿게 되었다네. 에아임의 의형제라면 나에게도 의붓아들이나 다름없지. 자네가 신의와 명예를 지키는 인물이라니, 로그푸스 가문에게도 부끄럽지 않겠군.”

단장님은 내 어깨를 꽉 쥐어주며 말했다.

“에아임의 편지에서 자네가 최근에 실부모 했다는 것을 들었다. 아직은 상실감을 쉽게 이기지 못 할 줄 안다. 하지만 언제고 마음이 정리되거든, 나를 아버님이라고 불러도 좋다. 에아임이 너를 형제로 대하는 것처럼 나도 너를 자식에 가까운 존재로 대할 것이다.”

“나도 똑같이 생각한다, 기리인 경. 아니, 기리인. 나이차이가 많이 나니 에아임처럼 편하게는 못 부르겠지만 ‘형님’이라고 불러도 좋다.”

아까는 그렇게 안 나오던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나는 목이 꽉 메어,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만 할 뿐이었다. 두 분은 다정하게 내 어깨를 다독여 줄 뿐이었다.

로그푸스 가문의 남자들은 남자를 울리는 재주가 있나보다. 그런 실없는 생각과 함께, 나는 트리클 신의 천칭 생각을 했다. 부모님이 신의 곁으로 가셨지만, 동시에 나서서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하는 에아임 형과 그 일가가 있다. 너무나 큰 행복감과 안도감이 들었지만, 동시에, 너무 큰 행복이 오면 그에 짝이 되는 불행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의 신뢰에 보답하고 싶다. 나는 슬쩍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형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작품 후기 ============================

완성되는 대로, 다음 편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로그푸스 가문 남자들이 좀 단순무식한 데가 있긴 합니다.

지능이 높아도 세상을 단순무식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죠. 그게 더 좋을 때도 있고요.

오히려, 신뢰를 먼저 주면 신뢰가 돌아온다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 헬조선에서는 안 통하는 얘기일지도 모르지만요.;;

읽어주시고 선작/추천/코멘트/쿠폰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이 저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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