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5 6. 나 좀 가만 내버려 둬요 =========================
“에엑?!”
박수소리 가운데 몇 사람이 비명을 지른다. 그도 그럴 것이 100보 거리에서 직사로 날려 과녁 한 가운데 적중을 시켰으니까. 저게 대단한 걸 넘어서 상식을 파괴하는 수준인 걸 알아보는 것은 몇 명 밖에 없다. 나는 애써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나의 뒤에 쏴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 사람들을 보면 모욕이 될 것 같아서 참았다.
나는 다시 화살을 꺼내 활에 잰다. 다시 마나를 불어넣는다. 빠아아아. 톡. 쐐애애액! 터엉. 다시 파란 깃발이 올라간다. 다시 한 번 더, 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빠아아아. 톡. 쐐애애액! 터엉. 오밀조밀하게 검은 화살대들이 꽂혀 있는 것이 보인다.
“오오-”
뭘 세 발 가지고 놀라시나. 나는 씨익 웃고는, 화살을 한 번에 세 발 손가락 사이에 끼워 꺼내들었다.
“자, 잠깐, 지금 저 친구...”
“맞지? 속사 준비를 하는 거지? 100보 거리에서? 허참...”
뒤에서 아까 떠들던 사람들이 좀 더 크게 말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더 크게 얘기하는 걸로 봐서 눈치를 주기는커녕 그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더욱 집중하고 있는 모양이다. 흐음. 내가 활을 다 쏘고 나면 어떤 반응들을 보이시려나.
나는 다시 마나로 레일을 만든다. 활시위를 길게 당길 수는 없기 때문에 아까보다는 레일을 좀 더 길게. 하지만, 속사가 한 발 한 발 쏘는 단사보다 빠르면 안 되니 조심해서 레일의 길이를 조절한다. 나는 활 시위에 화살을 걸고, 숨을 고른다. 후우. 호흡이 충분히 안정되었다는 판단이 들었을 때,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시위를 당긴다. 활 시위를 당기고, 레일을 따라가게끔 놓고, 빠르게 당기고, 놓고, 빠르게 당기고, 놓는다.
터엉! 터엉! 터엉!
거의 간격을 두지 않고 날아간 검은 화살들은 손가락 하나 접을 시간 간격을 두고 차례대로 과녁에 들이박힌다. 멀리서 당황하여 과녁을 바라보던 시종이, 파란색 깃발을 들어올렸다. 내렸다가, 다시 들어올리고, 다시 내렸다가, 다시 들어올린다. 세 발 모두 명중이다.
“오오오-!”
아까보다 확연히 커진 박수소리. 하긴, 이 정도는 문외한이 봐도 신기하다고 느끼겠지. 아까 떠들어대던 아저씨들도 입을 닫은 모양이다. 여섯 발 쐈으니, 아홉 발 남았다.
빠아아아. 톡. 쐐애애액. 터엉. 파란 깃발이 올라간다. 빠아아아. 톡. 쐐애애액. 터엉. 파란 깃발이 올라간다. 한 발 한 발이 꽂힐 때마다, 파란 깃발이 들어올려질 때마다 오오- 하는 탄성 소리와 박수 소리, 간간이 섞여 들리는 “잘한다!” 소리가 들린다. 잘한다!는 보나마나 린베크 아버님 소리겠지. 아이고, 아버님. 화끈한 분이셨군요.
나는 어느새, 기계적으로 레일을 만들고, 화살을 재고, 시위를 당기고, 놓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빗나갈 수가 없는 화살을 쏘는 것은 아무리 어전에서라도 지루한 일이었다. 어느새, 화살을 집기 위해 뻗은 내 손가락은 마지막 한 개 남은 화살을 집는다.
다시 한 번, 씨익 웃는다. 기대들 하시라구요. 나는 화살을 활에 재고, 아직 시위를 당기지 않은 채, 활을 비스듬히 위로 들어올린다. 마치 머나먼 하늘을 향해, 높이높이 쏘아낼 것만 같은 자세로.
“으응?!”
“아니 저 친구...!”
하지만 내가 마나의 레일을 무지개처럼 크게 휘어지게끔 하여 과녁 한가운데로 이어지게끔 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나는 바람을 표시하는 깃발들을 관찰한다. 다행히 지금은 바람의 영향이 별로 없다. 숨을 고르고, 나는 릴리즈를 가볍게 놓는다.
톡.
쐐애애애애액!
하늘 높이 날아올라간 화살은,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과녁과 나의 중간 지점까지 솟아오른다. 거기에서부터 하강궤도를 그리며 내려온 화살은, 빠르게, 과녁 한 가운데에 터엉- 하고 들이박힌다.
다시 파란 깃발이 올라간다.
“와아아아!”
추밀원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이 이티클레 대륙에서 고귀함으로 치면 어디 가서도 뒤지지 않을 사람들이, 마치 운동경기를 보는 것처럼, 예의따위 모두 잊어버리고 환호성을 냈다. 내가 활을 내려트리고, 뒤로 돌아 고개를 숙이자, 그 환호성과 박수소리는 더 커져갔다. 몇몇 남자분들은 숫제 자리에서 일어난 채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약간은 민망하다. 이건 순수한 내 실력은 아니고 마불살이니까. 하지만, 직사가 곡사로 바뀔 뿐이고, 한두 발 정도는 원 밖에 맞혔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마불살을 동원하지 않아도 잘 쏠 수 있다. ...물론 마지막 발처럼 높은 궤도를 그리는 곡사는 힘들겠지만 말이다.
갑자기 황제 폐하께서 일어나셨다. 그러자 모두가 박수를 멈추었다. 폐하는 몇 번 더 박수를 치고는 말했다.
“기리인 경, 이 쪽으로 오게.”
나는 폐하의 앞으로 가, 아까처럼 무릎을 꿇었다. 아까의 환호성이 거짓말이라는 듯 모두가 입을 다문 가운데 황제 폐하가 말했다.
“정말 감탄했네, 기리인 경. 자네는 마치 치르낙 대왕의 옆에 있었던 명궁 온케오 님을 보는 것 같군.”
“과찬의 말씀 거두어주소서, 폐하. 그저 고귀하신 분들의 여흥을 위해 미천한 재주를 보여드렸을 뿐이옵니다.”
“겸양이 지나치군, 기리인 경. 이 정도 솜씨면 자네는 대륙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거야. 아니, 자네는 마법사가 되기 위해 공부했다고 하지 않았나? 대체 언제 이런 활 솜씨를 익힌 겐가?”
“황공하옵니다, 폐하.”
“기리인 경, 혹시 더 보여줄 것이 있나?”
있을까? 흐음... 크주크 형과 배에서 연습해 보지 않았다면 하기 힘들었을 것이 있긴 하지.
“폐하와 고귀한 분들 앞에서 누가 되지 않는다면 보여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사옵니다.”
“그런가? 좋다!”
폐하께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는 활을 든 채 다시 사대로 다가갔다. 사람들을 흘깃 바라보자, 다들 얼굴에 잔뜩 기대하는 빛을 띄운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몇 나이 어린 여자들, 예를 들면 나스프 공작 옆에 앉아 있는 딸 같은 여자들은 얼굴에 홍조를 띤 채 약간 멍하니 입을 벌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저런 고귀한 여자들은 잘못 먹었다간 탈난다. 코 꿰어 버리면 앞으로의 일생은 내 뜻과 상관없이 살아가게 될 지도 모른다. 그저, 나중에 있을 무도회에서 좀 더 정보를 쉽게 캐낼 수 있는 계기가 된 걸로만 만족한다. ...물론 일이 풀리다보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어느새 시종들이 과녁에 꽂혀 있던 내 화살을 모두 뽑아서 내 화살통에 채워준 후였다. 나는 화살 두 개를 꺼내어 살펴보았다. 갈라지거나 틀어지지는 않았다. 역시 마수목. 나는 그대로 일어서서, 자세를 잡았다.
두 발을 동시에 손에 쥔 채, 한 발을 시위에 걸고, 아까 맨 마지막 발을 쏘아올렸을 때처럼 하늘을 향해 활을 들어올린다. 빠아아아. 충실한 활은 이번에도 약간의 비명을 내며 충분히 휘어져 주고 있었다. 나는, 활 끝을 보던 눈을 내려, 과녁을 바라본다. 크주크 형의 연습을 도울 때, 다양한 궤도로 마나의 레일을 만든 연습을 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나는 아까 만들었던 큰 포물선 궤도와, 직선으로 과녁까지 뻗어가는 궤도 두 개를 동시에 만든다. 숨을 고르고, 나는 아무런 충격이 없게끔 릴리즈를 놓는다.
톡. 쐐애애애액! 활이 날아가는 것을 쫓을 새가 없다. 나는 두 번째 레일 위에 화살을 실은 채, 시위를 끝까지 당겨, 바로 놔 버린다. 쐐애애애액! 두 화살이 동시에 과녁으로 날아가고,
터터엉-
아. 두 발이 완전히 동시에 꽂혔어야 성공인데. 아쉽다. 소리가 두 번 들렸다. 약간 시간차가 있었다.
“와아아아아!”
아까보다 더 큰 환호성이 들렸다. 나는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그제야, 뒤에서 보기에는 동시에 두 발이 꽂힌 것으로 보이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뻔뻔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 마치 왈츠를 청할 때처럼 가슴 앞에 손을 가져다 대며 허리를 숙인다. 박수와 환호성이 겨우 서른 명 남짓한 사람이 보내는 것 치고는 꽤 크게 들렸다.
‘띠링!’
<서브 퀘스트 – 실력의 증명 성공!>
<15발 중 15발을 모두 원 안에 적중시켰습니다.>
<전설속의 명궁 온케오 님이 거론될 정도로 당신의 솜씨는 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목표 달성 보상으로, 이 자리에 모인 귀족들의 당신에 대한 평판이 올라갑니다.>
<추가 목표 달성 성공! 마지막 보인 곡예에 가까운 활솜씨는 황제 이하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의 뇌리에 깊이 남았습니다.>
<추가 목표 달성에 대한 보상으로, 오늘 밤 있을 무도회에서 당신이 사람들에게 접근하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특히, 당신과 나이가 비슷한 나이의 레이디들이 당신에게 큰 호감을 갖게 됩니다.>
좋았어. 어릿광대 신세가 되어 고귀한 분들 앞에서 활을 쏘아야 한다 한들, 이런 보상이 있다면 그 정도 고생이야 할 수 있지.
============================ 작품 후기 ============================
음. 아무래도 칼이 아닌 활이다 보니 액션이라고 해도 정적이네요.
얼른 줄거리를 진행시켜서 액션씬을 좀 넣어줘야겠습니다.
머리로만 구르지 말고 몸으로도 좀 굴러줘야 제맛이죠!
읽어주시는 여러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선작, 추천, 코멘, 쿠폰 주시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응원 덕분에 저는 글을 씁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그러게요. 얼른 무도회 하고 얼른 진도 나가야겠어요. 감사합니다!
nnuhgwyegd 님 // 아.. 안그래도 쓴 지 오래돼서 저도 며칠 안으로 만들어 넣으려고 계획중입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쓰굴 님 // 꼼수를 터트리려면 기반을 만들어 둬야겠죠? 그리고 이 친구 민첩도 100입니다. 민첩을 이용해서 기반을 만들고, 파티장에서 지능과 언변을 사용해서 레이디들을... 음음. 감사합니다!
longway 님 // 그러게요. 얼른 무도회 장면으로 넘어가야겠어요. 감사합니다!
melontea 님 // 몸 잘 챙기면서 건강하세요. 저도 건강할게요.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감사합니다! 기리인의 변화에 대해서는 제가 의도한 대로입니다. 냉철한 천재이지만 따뜻한 구석이 있는 사람을 그리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