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141화 (141/309)

00141 6. 나 좀 가만 내버려 둬요 =========================

신의 도우심일까, 이브 씨가 뫼르말 양을 향해 걸어가, 서로 반가워하며 인사를 나누고, 이브 씨가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이고, 뫼르말 양이 깜짝 놀라고, 고개를 끄덕이고, 그들 주변의 여자들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내 쪽으로 걸어오는 짧다고만은 할 수 없는 시간동안, 아무도 나에게 와서 말을 걸지 않았다. 내가 가서 말을 걸었다면 아마 대화가 진행되었을 거라는 점에서 신의 도우심이라고 봐야겠지. 사실, 주변에 내가 와서 말을 걸어주기만을 바라는 눈빛으로 나를 강렬하게 바라보는 레이디가 적어도 셋은 있었지만, 반쯤은 의도적으로 나는 무시했다. 지금은 레이디들과 친교를 다질 때가 아니다. 임무를 수행할 때다.

“알리시아, 이 쪽은 기리인 모스 경이셔. 오늘의 주빈이시니 알지? 나와는 기리인 경이 마법과 관련해 수행하시기로 한 연구 때문에 알게 되었어.”

그러면서 나를 향해 눈을 깜빡이는 이브 씨. 이어 이브 씨는 나를 향해 말했다.

“기리인 경, 이 쪽은 알리시아 뫼르말이에요. 제게는 아카데미 후배가 되고, 아끼는 동생이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이상한 수작은 할 생각 하지 말라는 건가? 할 생각도 없으니 너무 걱정 마시죠. 알리시아 양은 흥미와 의문, 그리고 약간의 불안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보 확인.’

<이름          : 알리시아 뫼르말

나이          : 23

HP           : 1080/1080

힘            : 73

민첩          : 75

지력          : 81

마나친화력    : 80

매력          : 76

지구력        : 73

특수          :

스킬          : 정통마법 B0 (4.0서클)

으음. 미묘하다.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그래, 생각났다. 내가 왜 익숙하다는 생각이 드는지 알았다. 그녀는 리미를 떠올리게 했다. 생각해보니, 여러모로 비슷하다. 지방의 백작가. 부유하지만은 않을 집안. 마법사 출신. 약간은 어정쩡한 능력치. 나는 리미의 능력치를 떠올렸다.

<이름          : 리미 요뢰브

나이          : 18

HP           : 1040/1040

힘            : 72

민첩          : 74

지력          : 80

마나친화력    : 79

매력          : 75

지구력        : 72

특수          : 카리스마 70

스킬          : 정통마법 B0 (4.0서클)>

이 정보는 리미가 ‘여왕님’ 시절에 본 거였고, 그러니 지금은 좀 더 달라졌겠지. 특히 매력이 더 올라갔겠지. 나와 식사를 하고, 하룻밤이지만 사랑을 나누었던 리미는 분명 매력적인 레이디였으니까. 하지만, 리미의 능력치는 알리시아의 능력치와 거의 같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사교계 데뷔를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리미가, 준비를 잘 해서 사교계에 데뷔하면, 알리시아 양처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머릿속으로만 하며 나는 자연스럽게 알리시아 양이 내민 손등에 무릎을 꿇으며 입을 맞추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기리인 경.”

“반갑습니다, 레이디 뫼르말.”

“알리시아라고 불러주세요.”

좋아,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수순이고.

“사실은 놀랐어요, 기리인 경.”

“무슨 말씀이신지?”

“다른 고귀하면서도 아름다운 레이디들이 많으신데, 저를 지목하셨다 들어서요.”

무슨 수작이냐, 이거지? 내가 여기서 ‘별다른 의도는 없다’고 하면 그거야말로 내가 수상하다고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일 테고, 그렇다고 ‘아름다우셔서’라고 하면 빈 말인줄 뻔히 아니 실례인데다가 실없이 작업이나 거는 한량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 이럴 때는 형의 핑계를 대면 어떨까.

“제 후견인이 되어주신 에아임 로그푸스 경께서 오늘 이 무도회장에 들어오기 전에 제게 당부하셨던 것이 있었습니다.”

“당부를 하셨다고요?”

“네. 가능한한 많은 분들에게 제 이름을 알리고 인사를 나누라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많은 분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게끔 소개를 해 주시는 수고로움도 감당해 주셨지요.”

“그런데요...?”

“이제 홀 안의 대부분의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레이디 알리시아를 비롯한 몇 분만 남아서, 실례를 무릅쓰고 부탁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푸훗!”

먹힌 것 같지? 그녀는 장갑 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는 알리시아 양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역시... 첫 인상이 맞는 것 같다. 자신의 영지에서야 영주님의 딸로 미모를 자랑하겠지만, 이 사교계에서 그녀는 ‘수수하다’는 평을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얼굴도 빼어나게 예쁘다고 할 정도는 아니고, 옷이나 보석이 시선을 잡아끄는 것도 아니고. 스킬이 없는 걸 보면 언변이 유달리 뛰어난 것 같지도 않고.

점점 황태자 저하에 대한 의문이 점점 커진다. 왜? 저하는 이 레이디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왜 황태자 저하는 이 레이디를 고른 것일까? 그리고, 만약 어떤 목적에 의해 이 레이디를 황태자비로 세우려고 한다면, 소문을 먼저 내었어야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파티장에서 알리시아 양은 지금처럼 유유자적하게 주변의 다른 레이디들과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분명 어떻게든 끈을 대어보려는 사람들로 주변이 북적거렸겠지.

그리고, 잊지 말자. 이번 퀘스트의 목적은 ‘황태자가 알리시아 양과 무엇을 하려 하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황태자를 암살시도하려는 조직이 어디인가’를 알고 그들을 막는 게 목적이다. 황태자와 알리시아 양이, 아직 약혼도 만난다는 소문도 안 났는데, 그들의 만남을 막으라는 협박을 그것도 황제의 서재에 넣을 수 있는 조직이다. 막강한 조직, 황제 폐하마저도 누가 그들일지 몰라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에아임 형과 아무와도 연결고리가 없을 나에게 의뢰를 부탁하실 정도의 조직. 새삼 겁나네. 황제 폐하가 시켰으니 안 할 수도 없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알리시아 양에게 흥미도 있었습니다.”

“네에?”

아차. 느끼한 작업멘트처럼 들렸겠구나. 나는 황급히 덧붙였다.

“저도 비록 제도는 아니지만 마법 아카데미를 나왔거든요. 지금은 마법을 쓰지 못합니다만.”

“아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마법을 쓰지 못하신다고...?”

“네에, 영지에서 화재가 나서 그걸 끄려다가 마법 회로에 과부하가 일어나서...”

마법사라면 그게 무슨 말인지 안다. 순식간에 알리시아 양의 표정이 환한 표정에서 사제의 힘으로도 치유되지 못하는 불치병 환자를 병문안 온 사람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 너무 안타깝네요... 괴로우셨겠어요.”

“이제는 괜찮습니다.”

그녀는 쉬이 표정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같은 마법사라, 마법을 잃는다는 게 얼마나 큰 상실감인지 아는 거겠지. 그러다가 알리시아 양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기리인 경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어떤 말씀이신지...?”

“마법사가 마법을 잃었는데도, 온케오 님에 버금가는 활솜씨를 닦으신 것도 그렇고, 기사 서임을 받으실 정도의 공훈을 세우신 것도 그렇고... 만약 저라면 그렇게 못 했을 것 같아요, 대단하세요.”

마법사임을 밝힌 게 좋은 시도였나보다. 그녀의 눈은 정말로 반짝인다는 수식어가 어울릴 정도로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그저 신의 도우심과 행운이 있었기에...”

“겸양의 미덕까지 갖추시고. 훌륭하세요.”

아. 칭찬은 감사합니다만 너무 띄우시면 오히려 불안한데요. 그때, 기다리던 소리가 났다. 다시 악단이 왈츠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나는 오른손을 내밀며 말했다.

“레이디, 오늘 두 번째 왈츠를 저와 추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저에게는 오늘 첫 번째 왈츠가 되겠네요. 가실까요?”

그녀는 내 오른손 위에 자신의 왼손을 가볍게 맡기듯 올렸다. 우리는 손을 맞댄 채 홀 한가운데로 걸어나갔다. 이미 많은 남녀들이 짝을 지어 홀 한가운데로 나오고 있었다. 저 멀리서 아르논 양도 어느 이름모를 남자의 손을 잡고 무대로 나오고 있었다.

나는 주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중 황태자 저하의 얼굴을 발견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눈이 마주쳤다. 황태자 저하는 우리를 보고 있었다. 충격받은 듯 멍한 표정만은 확실하다. 확실한데... 이상하다. 화가 난 것 같지가 않다.

나는 내 나이 치고는 많은 연애경험이 있다. 차이기도 하고 차기도 해보고, 애인을 뺏기도 하고 뺏기기도 해 봤다. 물론 뺏긴 것보다 뺏은 횟수가 훨씬 많지만, 어쨌든 그 더러운 기분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 뒤로 내가 차마 애인 있는 여자에게 수작을 부리지 못한 것도 그래서였다. 너무 기분이 더러워서 그 기분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적인 생각이었을 거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 황태자의 표정이 이해가 안 간다. 만약 약간이라도 황태자가 알리시아 양에 대해 마음이 있다면 저런 표정일 수가 없다. 분노하는 표정을 지어야 정상이다. 적어도,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적의를 보여야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황태자 저하가 연기의 달인이라 해도, 저런, ‘초조한 표정’은 말이 안 된단 말이다.

============================ 작품 후기 ============================

컨디션 조절 실패로 낮 연재분이 너무 늦어버렸네요. 죄송합니다.

야간에 다시 분량 빵빵하게 해서 돌아오겠습니다.

많은 응원리플 감사합니다.

리리플은 야간 연재분에 몰아서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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