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142화 (142/309)

00142 6. 나 좀 가만 내버려 둬요 =========================

아르논 양을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알리시아 양은 마법사 출신 답게 몸이 뻣뻣하고 반응이 느렸다. 나도 마법사일 때는 저랬을 거 아냐. 어우. 이제는 그 시절이 꿈만 같다. 하나, 둘, 셋, 둘 둘 셋... 아얏! 발을 밟혔다. 내가 밟은 게 아니고 알리시아 양에게 밟혔다고!

“어머! 죄, 죄송해요, 기리인 경...”

“괜찮습니다, 알리시아 양.”

“죄송해요, 제가 몸을 움직이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

“저도 별로 경험이 많은 게 아니라...”

아르논 양은 당기면 당기는대로, 밀면 미는대로 쫀득쫀득한 밀가루 반죽처럼 착 감겨오는 맛이 있었다. 그래서 왈츠 리듬과 하나가 되고 춤 자체가 너무 즐거웠다. 지금은... 당기면, 한 박자 늦게 당황하며 어어어 딸려오고, 반대로 밀면 또 한 박자 늦게 어어 하며 밀려가고... 아이고, 힘들다. 결국 나는 알리시아 양을 약간 가까이 당겨 몸에 찰싹 붙였다.

“기, 기리인 경?!”

“끝날 때까지 이러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저도 잘은 못하지만. 자. 하나, 둘, 셋, 둘, 둘, 셋.”

귀에다 박자를 속삭이며 나는 좀 더 부드럽게, 좀 더 빠르게 그녀를 인도했다. 한 박자 늦게 오니까, 어색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반 박자 더 빠르게 움직이자. 어제 왈츠 수업시간에 배웠던 기초 움직임 대로.

“당기고, 둘, 셋, 붙어서, 둘, 셋, 왼쪽, 둘, 셋...”

조금씩, 그녀가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여전히 뻣뻣하고 둔하지만, 리듬을 탄 그녀는 충분히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조금씩 춤이 다시 재미있어진다 싶었는데, 딴, 딴, 따안-. 음악이 끝났다.

나는 아까 아르논 양이 그러했듯 알리시아 양을 가볍게 당겼다. 다행히 알리시아 양은 이번에는 바로 반응해 빙글 돌았다. 그녀와 함께 황제 폐하가 앉아 계신 옥좌를 향해 인사하며, 나는 흘깃, 사람들의 반응을 보았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수군대고 있었다. 왜지. 너무 가까이 붙어서 다정해 보여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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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와 같은 과정을 통해 아까와 비슷한 자리에 이번에는 알리시아 양과 함께 샴페인을 들고 앉았다. 먹을 건 별로 먹지 않고 샴페인만 많이 마셨더니 약간 취기가 올라오려고 한다. 조심하자. 우리는 가볍게 잔을 부딪친 후 한 모금 마셨다. 땀을 흘려서 그런지 샴페인이 쉽게 목으로 넘어갔다. 후우.

“기리인 경, 감사해요.”

“뭘 말씀이신지?”

“아까 저를 리드해 주신 거요. 제가 원체 뻣뻣해서, 사교춤에는 소질이 없어서요... 아까도 기리인 경이 청해주시지 않았다면 나서지 않았을 거에요.”

“아닙니다. 춤은 짝이 되어서 추는 거잖아요? 파트너의 위기는 같이 구해야 마땅하죠.”

그녀가 가볍게 홍조를 띄우며, 미소를 지었다. 좋다. 감이 좋다. ‘유도’를 활성화시키며, 나는 서두가 될만한 질문을 던졌다.

“제가 견문이 얕아서 이런 질문을 드리는 걸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뫼르말 영지는 어떤 곳인가요?”

“저희 고향이요...”

알리시아 양은 약간은 꿈을 꾸는 듯한, 그리고 약간은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대륙 동쪽이라 척박하고, 땅은 넓고, 사람은 많지 않고... 그나마 항구가 있고, 배를 만드는 장인들이 있고, 대균열에서 광물을 캐는 광부들이 있고... 그런 곳이지요.”

“말씀만 들어서는 넉넉하다는 인상을 받기는 힘들군요...”

“그런 셈이지요... 대륙의 동부는 아무래도 멸신전쟁의 여파로 인해 많이 척박하니까요. 간신히 입에 풀칠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그래도 제 고향은 이런저런 걸로 돈벌이를 많이 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대균열에서 캐는 광물이면, 보석이나 희귀 광물 같은 것이겠네요?”

“네... 주로 제도의 마탑이나 귀부인들이 사용하시는 것들을 많이 캐죠.”

“그런 것들이면 제도에 와서 팔면 큰 돈을 벌 수 있지 않나요?”

알리시아 양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저희 입장에서는 이웃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어요. 저희 영지만으로는 농산물이 불충분해서... 고기만 먹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띠링!’

<메인 퀘스트(3) - 황태자의 암살을 막아라>

<#1. 단서 수집 - 업데이트!>

<퀘스트 목표

1) 뫼르말 가문에 대해 단서를 수집하세요 – 3/3 완료!

- 뫼르말 가문은 무역업과 어업, 광물업을 주요 산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 그간 나스프 공작령에서는 농산물을 미끼로 하여 뫼르말 가문을 압박해 왔습니다.

뫼르말 가문은 광물을 직접 제도에 팔지 못하는 것 등을 이유로 불만을 가져왔으며,

나스프 공작령 역시도 고분고분하지만은 않은 뫼르말 가문이 늘 골치였습니다.

- 나스프 공작령이 곡물을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되며 이 관계의 역전 조짐이 있습니다.>

<2) 뫼르말 가문의 여식에 대해 단서를 수집하세요 – 1/4

- 아카데미 출신의 마법사입니다. 친한 친구 중 하나로 이브 오르테가 있습니다.>

흐음... 그럼 대충 뫼르말 가와, 나스프 공작령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 파악한 것 같군.

“그렇군요... 그래도 그리우시죠?”

“그럼요.”

알리시아 양은 즉답을 해왔다.

“이곳 제도에서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그 뒤로도 수도에서 아버님의 대리인 역할을 하며 사교계에서 지내고 있지만, 언제나 고향은 그리워요. 사람들도 척박한 땅을 상대하지만 순박하고, 아버님 외의 다른 분들도 정말 잘 대해주시고요.”

그거야 당신이 백작 영애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뭐 어쨌든.

“그럼 고향을 몇 년째 못 보셨겠군요?”

“네에... 가끔씩 꿈에서 볼 정도에요. 잠깐만이라도 다녀오고 싶을 때가 많아요.”

“그러시군요... 그래도 잠깐이라도 다녀오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

갑자기, 알리시아 양이 굳었다. 어라. 이 단순한 대화에 왜? 제도를 못 떠나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그녀는 주저주저하다가, 누가 들어도 ‘둘러대기 위한 말’이라는 티가 역력한 투로 말했다.

“영지의 대리인이 함부로 제도를 떠나면, 공백이 생길 수가 있어서...”

흐음. 나는 고민했다. 여기서 더 치고 들어갈 것인가? 그러면 그녀가 조개처럼 입을 다물어버리거나, 나에게 화를 낼 확률이 있다. 하지만 지금 캐낼 수 있는 정보는 꽤 중요할 거 같은데.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정공법으로 들어가야 하나? 아니면... 음... 우회공격을 해 볼까.

“그렇군요. 저, 만약에 말입니다, 가문에 경조사 같은 급한 일이 생기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그러면야 파발을 이용해서라도 잠시 다녀올 수 있지요.”

“그렇군요... 이를테면, 혼인이라거나?”

가볍게 던진 내 질문은 그녀에게 의외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녀는 황급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듣는 귀가 있는가를 살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누군가를 찾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안 찾아질 걸? 내가 일부러 황태자 저하가 당신 등 뒤에 가게끔 위치를 잡았거든.

“어떻게...”

“네?”

알리시아 양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는, 양 뺨을 손으로 부볐다.

“죄송해요, 기리인 경. 제가 말실수를 했군요.”

“실수랄 것이 딱히 있었는지...”

“아니에요. 죄송해요.”

명백히 동요했고, 아직 동요를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이 추가 공격 기회다.

“이런 물음이 실례가 되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혹 지금 주저하시는 이유가 혼담이 오가는 단계이기 때문이신가요?”

“!!”

그녀는 뺨을 부비던 손 모두 입 앞으로 가져가 입을 가렸다.

“어떻게... 아는 분들이 거의 없는데...”

“그저 추측일 뿐입니다. 괘념치 마시고, 혹 실례가 되었다면 용서해 주시길.”

“아... 기리인 경, 부탁드릴게요. 비밀을 지켜주셔야 해요.”

이거이거. 어렵지 않을 것 같군.

“물론 비밀을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혼담이라는 것이 물론 확실해질 때까지 공개가 되지 않을수록 더 좋다는 것은 이해하겠습니다만, 그걸 감안해도 알리시아 양께서는 지금 너무 겁에 질리셨군요...”

이런 단순한 사실 지적만으로도 그녀는 더 겁에 질렸다. 그냥 ‘잘못 보셨겠지요’ 정도로 가볍게 튕겨내면 될 일을. 이래서 내가 레이디들을 직접 공략하자는 생각을 한 거지. 당주 본인들이나 대리인 본인들에 비해서는 훨씬 쉬울 것 같으니까 말야. 오늘은 레이디들과 내가 대화하는 것을 막을 사람도 없고.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녀는 마치 금기(禁忌)를 범한 사람처럼 가슴에 두 손을 끌어모은 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메인 퀘스트(3) - 황태자의 암살을 막아라>

<#1. 단서 수집 - 업데이트!>

<퀘스트 목표

<2) 뫼르말 가문의 여식에 대해 단서를 수집하세요 – 2/4

- 아카데미 출신의 마법사입니다. 친한 친구 중 하나로 이브 오르테가 있습니다.

- 지금 혼담이 오가고 있습니다. 이 혼담이 밝혀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상대가 황태자이니까. 하지만, 오늘 황태자의 태도, 그리고 알리시아 양의 태도를 보고 나는 확신했다. 이 혼담은 가짜이거나, 적어도 뭔가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나는 사회생활 경험이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안다. 혼담은, 서로 사랑하는 두 남녀가 각자의 집에 요청해서 이루어지거나, 혹은 서로의 집안에서 사랑하지 않는 두 남녀를 필요에 의해 맺어주기 위해 접근하는 것. 후자를 정략결혼이라고 하지.

하지만 어제 황제 폐하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셨다면, 황제 폐하는 뫼르말 가문을 정략결혼 시킬 생각이 없으시다. (이 점은 좀 더 생각해보자. 나스프 공작가와 뫼르말 가문이 약간 긴장관계라면, 황제 폐하께서 이 혼사를 탐탁찮게 생각할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황가와 정략 결혼을 하는데, 아무리 궁내부를 황후 전하가 장악하고 있다 한들, 황태자 저하, 그리고 황제 폐하의 의사에 반해 혼사를 추진할 리가 없지.

그리고, 아무리 봐도, 황태자 저하나, 적어도 알리시아 양은 사랑에 빠진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 만약 두 사람이 사랑해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추진할 정도였다면, 적어도 알리시아 양은 지금 내 앞에서 저렇게 혼담이라는 말 자체에 ‘공포’를 느끼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을 거다. 치르낙 대왕의 부인이셨던 오르테아 대왕비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지. 세상에서 가장 숨길 수 없는 것이, 재채기와, 가난과, 사랑이라고.

그러니, 정략 결혼도, 사랑에 의한 결혼도 아니라면. 남은 건 하나지. 이 혼담을 이용해 뭔가를 하기 위한, ‘음모’가 배후에 있는 것이 아닐까?

“기리인 경...”

“걱정하지 마십시오. 비밀은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시골뜨기에 갓 사교계에 데뷔했을 뿐이라 설령 제가 가십을 얘기한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겁니다.”

이것도 거짓말의 축에 들어가려나? 음음. 모르겠다. 트리클 신의 천칭이 약간 유도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감사해요...”

“아닙니다. 제가 괜한 걸 물어봤군요.”

“아니에요...”

그녀는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비웠다. 나는 마침 지나가던 궁내부원에게 손을 들어보여, 그녀의 빈 잔을 받아가게 하고 새 잔을 내려놓게끔 했다.

“그런데 알리시아 양이 이토록 두려워하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그건... 말씀드리기 곤란해요.”

무적의 방패가 나왔다. 훗. 하지만 방패를 들고 있는 팔이 저렇게 흔들려서야.

“혹시, 역량 이상의 보물이 생길까봐 걱정하시는 건가요?”

알리시아 양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 몰아붙이기가 참 좋지.

============================ 작품 후기 ============================

멘탈 깨져서 쓴 후기에 여러 분들께서 좋은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내일부터 낮 연재를 세이브하고, 당분간 하루 1연재만 하겠습니다.

다음 주 토요일에 10편을 한꺼번에 올려보겠습니다.

만약 그래도 충분하게 선작수가 늘지 않으면,

나중에 페스티발 같은 걸 기다렸다가 리부트할 수 있게끔 비축분 쌓는다는 의미로

큰 부담 느끼지 않고 계속 연재하겠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연중은 하지 않겠습니다.

아껴주고 칭찬해주시는 분들의 코멘트가 있는 한 말입니다.

모두 정말 감사드립니다.

칭찬코멘트 주셨던 카드보험 님, 오페라귀신 님, 체크필통 님, eastarea 님, 진리의소설 님(1편) 감사합니다. 연재방식에 대해 의견 주셨던 네리시안 님, |라랄라랄라| 님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코멘트 모두 소중히 기억하였습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말씀하신 대로 퀘스트창 좀 수정해 봤습니다. 그리고, 기리인 같은 사람은 신경쓰지 않던 먹이가 다른 사람 찾아가는 것도 기분나빠 할 타입...이었죠. 옛날에 모범생 날라리 시절에는 말이죠 ㅎㅎ;

체크필통 님 // 내일이나 모레 연재분쯤에 그 이야기가 나오겠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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