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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146화 (146/309)

00146 6. 나 좀 가만 내버려 둬요 =========================

“기리인, 정리해보자.”

형은 손을 허공에 글씨쓰듯 저으며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는 황태자 저하가 뫼르말 가문의 여식과 혼담을 할 의사를 밝혀왔고, 그리고 그 때문에 살해 협박장이 자신에게 배달되어 왔다고 하셨다. 그러나 스스로 정보를 알기 힘들기 때문에 사교계에서 정보를 알아내 보라고 우리에게 부탁하셨지.”

“네. 그래서 사교계의 정보를 알아보고 나서 저는 몇 가지 결론을 얻었어요.

첫째, 나스프 공작가와 황후 전하, 그리고 궁내부의 결합은 생각보다 탄탄하다.

둘째, 황태자 저하와 공작가의 사이는 많이 좋지 않은 편이다.

셋째, 나스프 공작가는 그간 뫼르말 백작가에 대해 압박을 행사해 왔으며, 넉넉하지 못한 뫼르말 백작가로서는 나스프 공작가에 대한 불만이 있어왔을 것이다.

넷째, 최근 나스프 공작가를 비롯한 남부 지역의 기근으로 인해 식량이 부족해진 나스프 공작가는 남대륙에서 식량을 수입하려고 하고 있다.

다섯째, 나스프 공작가가 식량을 수입하기 위해서는 뫼르말 가의 항구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여섯째, 그래서 지금 나스프 공작가와 뫼르말 백작가의 힘의 균형은 매우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 그렇지. 그 상황에서 황태자 저하가 알리시아 양과의 혼담을 선언하셨지만, 아직 공개는 하지 않으신 상황이다. 만약 실제로 혼담이 성사된다면 남부의 패자라고까지 불리던, 폐하의 처남 나스프 공작의 위세는 예전같지 못할 거야. 파괴력이 어마어마하겠지.”

“그런데 황태자 저하는 혼담을 성립시킬 생각은 없으신 것 같아요. 한시적인 이야기인 거 같더라구요. 알리시아 양은 이 혼담이 밝혀지는 것 자체를 엄청 무서워하고 있고요.”

“폐하께서도 의지가 없으시다면 이 혼담은 정략결혼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다. 즉 목적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겠군.”

“저하께서는 아마... 정보를 흘리고, 정보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아내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아주 위험한 행동을 하시는구나. 스스로를 칼 앞에 내놓겠다는 뜻이잖아.”

“자기에 대한 암살시도가 있었다는 건 모르셨던 모양이에요.”

“뭐?”

형은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다행히 오늘 뭐 상황이 진전된 게 없으니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지지야 않겠지만, 그래도 너무 위험한 거 아닌가 모르겠네...”

“내일 오전중에 집에 찾아오시기로 하셨어요.”

“저하께서?”

“네.”

“공식 방문은 아니니 다행이다. 만약 공식 방문이었다면 준비할 시간이 너무 없으니까...”

끼익-! 갑자기 마차가 멈추었다. 어이쿠.

“무슨 일이지?”

황궁에서 나온 마차를 몰던 궁내부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앞에 마차를 막고 있는 놈들이 있는데요?”

“뭐라고?”

형은 마차 앞쪽, 마부석과 통하는 창문을 통해 앞쪽을 바라보았다.

“제길. 위치가 좋지 않군. 마차 한 대만 지나갈 수 있는 길인데 다른 마차에 막혀버렸네. 사람은 대략 여섯 명 정도... 내가 저 놈들이라면 우리 뒤에서도 따라오는 놈들이 있을 거야. 이보게, 마부. 뒤쪽에 마차 없는가?”

“아... 있습니다요. 백 걸음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요.”

“여기는 주택가다. 저 놈들도 시끄럽게 할 생각은 아닐 거야. 하지만 위험한 상황은 맞긴 한데...”

“형, 시간을 벌면서 위기를 알리면 경비대원들이 오지 않을까요?”

“그렇기는 할텐데... 아! 그래! 너 활!”

“네?”

“너 활에 그 불내는 그거 있잖아! 그걸로 하늘을 향해 쏘면 경비대에서 이 곳을 향해 출동할 거다!”

“아...!”

“일단, 나가자.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겠냐?”

“어렵지 않을 것 같네요.”

형은 망토를 끌러내고, 마차 좌석 밑에 넣어두었던 롱 소드를 빼냈다. 스르릉 하는 소리가 내 목 뒤의 털을 서게 만들었다. 나도 형을 따라 망토를 끌러냈고, 좌석 밑에서 활이 든 케이스를 꺼냈다. 나는 허벅지에 화살통을 차고, 활을 꺼내어 등에 매었다. 그리고 오른손에 릴리즈(release)를 찼다.

“내가 바깥으로 나가서 저 놈들을 상대할 거다. 너는 기회 봐서 활을 쏴라.”

형은 그러면서 마차 문을 열었다. 내가 마차 지붕을 잡자 형은 내 발을 밀어주었고, 나는 그 도움을 받아 지붕에 펄쩍 하고 올라갔다.

앞에는 얼굴에 검은 천으로 복면을 한 놈들이 여섯 명 있었다. 칼은 아직 뽑아들고 있지는 않았지만, 언제든 뽑기 편하게 왼손을 칼집 위에 올려두고 있었다. 그들의 뒤에는 검은색 쌍두마차가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내가 마차지붕으로 올라가자 놀란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무릎을 꿇고 활에 화살을 쟀다. 이 활은 당기면 쏴야 한다. 그러니, 일단 잠시만 상황을 보자.

뒤쪽을 돌아보니 저 멀리에서 서서히 마차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연관이 없는 보통 마차일 수도 있겠지만, 그럴 리는 없을 것 같았다. 마차가 멈추어서더니 그 안에서 복면을 한 남자들이 여럿 내렸기 때문이다. 다섯 명.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지막한 건물들, 1층짜리 건물들이 대부분인 좁은 골목길이었다. 이 거주구역만 지나면 다시 너른 길이 나올텐데, 그래서 이 놈들도 여기를 노린 거겠지. 다행히 건물 옥상 위에 궁수가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좁은 길이라지만 마차 두 대가 나란히 달릴 정도의 너비는 되었기 때문에, 만약의 사태에 건물 지붕으로 올라간다거나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웬 놈들이냐?”

형은 우리 마차 앞에 서서, 마차를 지키려는 듯 칼을 뽑아들고, 편안하게 늘어트린 채 두 발로 당당하게 서서 큰 목소리로 물었다.

“에아임 경?”

“누구냐고 물었다.”

“알 것 없고, 잠깐 같이 가시지.”

“한 번 더 묻겠다. 누구냐.”

“거친 수단을 사용하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당신은 몰라도 당신의 의형제까지 지킬 수는 없을 걸. 그리고 우리가 관심있는 건 당신도 맞지만 당신의 의형제가 더 크거든.”

형의 온 몸이 순간적으로 뻣뻣하게 굳는 것 같았다.

“대체 왜? 기리인은 그저 이제 막 제도에 올라온 열아홉 살에 불과하다.”

“그게 다가 아니란 건 당신도 잘 알텐데? 시간이 많지 않아. 얼른 협조해 주면 좋겠군.”

막무가내다. 형은 나를 돌아보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활시위를 당겼다. 빠아아아아. 나서서 말하던 복면의 남자가 부하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활이다. 걱정하지 마. 설령 한두 명이 맞는다 해도, 그 동안 마차로 달려들어 끝장낼 수 있을 거다.”

“넷!”

의외로 훈련이 잘 된 놈들인가보다. 사지로 달려들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지시에 ‘넷!’이라는 단순한 대답만이 돌아오다니. 나는 활을 들어올렸다. 하늘을 향해. 그리고... 아까 궁도장에서 했던 대로, 휘어진 마나의 레일을 그린다. 그러면서, 왼손으로 활에 박힌 붉은 보석을 건드렸다. 화살 끝이 붉게 빛나기 시작한다.

“명심해라! 첫 발을 쏘면 그대로 달려드는 거다!”

흘깃 뒤를 돌아보니, 뒤에서 다가오던 마차에서 내린 놈들은 대략 쉰 걸음 정도로 다가와 있었다. 시간이 없다. 얼른 속전속결로 끝내자. 나는 그대로 활시위를 놓았다.

톡.

스르르륵.

빠앙!

화르르륵!

화살 하나를 소모해야 하지만, 절대로 아깝지 않다! 활에 저장된 화염 마법이 화살을 마치 화염의 창처럼 만든다. 화염의 창이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동시에, 화살이 공기의 벽을 뚫는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가 주변을 울린다. 쐐애애애애애액! 공기를 찢으며 하늘 높이 솟아오른 화염의 창은, 내가 만든 레일대로 허공을 한 바퀴 돌더니, 그대로, 그 놈들이 타고 온 마차를 향해 내리꽂혔다.

쐐애애애애액!

콰아아앙!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며 내리꽂힌 화살이 마차를 문자 그대로 산산조각냈다. 화염의 창에 꽂힌 마차는 조각조각이 되어 불타기 시작했다. 길 한가운데에서 순식간에 마차가 사방으로 불똥과 불붙은 나무조각을 날리며 불탔다. 당연히, 마차에 달려있던 두 마리 말이 미친 듯 날뛰기 시작했다. “이히히히힝!” 그 놈들 앞에 서 있던 복면의 남자들이 순식간에 말들에 휩쓸려 진영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저 놈들이 달려들기는 당장은 힘들겠다. 좋은 기회군. 나는 뒤쪽으로 돌아서 활에 화살을 하나 먹인 채, 하지만 당기지는 않은 채 큰 소리로 외쳤다.

“내 화살은 보통의 활과는 다르다! 맞으면 머리가 터져버린다! 요행수를 바랄 수 있는 보통의 화살과는 다르단 말이다! 죽기 싫으면 돌아가라! 한 걸음이라도 더 다가오면 다가온 놈부터 머리를 터트려버리겠다!”

과연 너희들이, 아무리 훈련이 잘 돼 있다 한들, 머리가 터지고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언어도단적인 광경 앞에 그 훈련과 규율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게다가 불까지 나서 경비대가 이 곳의 위치를 알아챘을텐데 말야.

“제길! 쳐라!”

한 놈이 칼을 뽑아들고 ‘쳐라!’고 외쳤다.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위를 당긴 후, 마불살을 만들어 그 놈에게 바로 날려버렸다. 톡. 빠앙! 쐐애애애애액!

퍼억!

그 놈의 칼을 뽑아든 팔이, 아래팔 절반이, 마치 도려낸 듯 깨끗하게 터져버렸다. 퍼엉. 커다란 마수가 한 입에 칼까지 뜯어먹은 것처럼 순식간에 날아간 팔. 잠시, 정적이 흐르고,

“크아아아아악!”

팔에서 뿜어져나오는 핏줄기를 싸쥐며 그 놈이 비명을 지르며 땅을 뒹굴었다. 달려들려고 준비하던 부하들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처음은 경고다! 달려드는 놈이 있다면 머리가 저렇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을러준 후 나는 활에 화살을 하나 더 먹이며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형은 말에 휩쓸려 쓰러진 세 명의 복면남과, 말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한 명의 복면남을 제외하고, 두 명과 치열한 검격을 나누고 있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형의 무위는 유려하면서도 동시에 살벌했다. 두 명의 협공을 형은 칼 한 자루와 빠른 발놀림으로 걷어내고, 쳐내고, 역습을 노리고 있었다. 두 명을 상대로도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형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역시 고위급 제국 수사기사의 무위는 환상적이다.

그래도 좀 도와줄 요량으로, 나는 활시위를 당겼다. 뒤쪽에서 다가오던 놈들이 아직 얼어붙어 있는 것을, 순식간에 장애인이 된 놈 주변에 몰려 서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나는 형을 상대하고 있는 두 명의 남자 중 한 명을 노렸다. 빠아아아. 형이 맞는 일은 없어야 할텐데.

그 순간, 형은 몸을 한 쪽으로 홱 빼내어, 두 명을 한 번에 상대하던 태세에서 빠져나와 두 명이 나란히 형의 앞에 서 있게끔 만들었다. 설마 내가 이러고 있는 걸 알았을까? 어쨌든, 이 기회를 놓치면 병신이지. 나는 순식간에 마나의 원통 레일을 뒤쪽 놈의 무릎에 연결한 후 시위를 놓았다. 톡. 빠앙! 쐐애애액!

퍼억!

그 놈의 왼쪽 다리 아래가 마치 수박이 돌에 부딪혀 박살나듯 산산조각나며 사방으로 거무죽죽한 액체와 조직이 팍 하고 터져나갔다. 퍼억! 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칼부림하던 복면남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아아아아아아악!"

그 놈이 다리 아래를 붙잡고 땅을 뒹굴었다. 나머지 한 놈은 형이 해결할 수 있겠지... 아직 방심하긴 이르다. 나는 화살을 하나 더 걸며 뒤쪽을 바라보았다. 저 놈들은 전의를 상실한 것 같군. 그대로, 손목, 아니 사라진 아래팔을 천으로 감싸 부여쥐고 있는 남자를 부축해 마차에 태우고 있었다. 흥, 가게 내버려둘까봐?

============================ 작품 후기 ============================

간만의 액션씬이군요.

불살...이 아니고, 죽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간 제가 정말 아무 생각없이 다른 분들 작품을 읽고 있었나봅니다.

신인작가는 처음에 10~20연참을 하는게 당연한 수순이더군요?;;

뒤늦게나마 비축분 쌓으면서 그러려고 하고 있는데... 어떨지 모르겠군요.

카드보험 님 // 대신 더 방심할 수 없게 되죠. 언제든 상상치 못한 방식으로 뒤통수를 칠수도 있어서... 감사합니다!

melontea 님 // 홈즈를 만나는 아이린 애들러처럼요? ㅎ 감사합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아직 기리인은 그간의 업보(!)를 청산하려면 더 굴러야죠~

eastarea 님 //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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