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7 6. 나 좀 가만 내버려 둬요 =========================
나는 처음으로 파란 보석을 건드렸다. 활에서 싸늘한 느낌이 난다. 화살로 밀려든 음한한 마나는 싸늘한 푸른 빛을 내며 빛났다. 나는, 나와 제일 가까운 놈의, 이번에는 다리 쪽을 겨냥했다. 그리고, 직사가 아닌, 휘어지는 레일을 만든 후, 시위를 놓았다. 파앙! 쐐애애액!
쩌저저적!
내 겨냥대로 그놈의 발을 꿰뚫은 화살은, 순식간에 하반신 전체를 뒤덮는 얼음을 만들어냈다.
“으아아아아악!”
아픔과 공포, 당황에 그 놈은 골목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그 놈의 동료들이 황급히 그 놈의 발을 떼어내려 했지만, 이미 바닥까지 달라붙어 꽝꽝 얼어버린 얼음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그 놈은 두고 가라! 물어볼 것이 있다!”
그러면서 나는 활에 화살을 쟀다. 내가 활쏘기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그놈들은 공포에 떨겠지. 아니나다를까, 황급히 마차를 돌린 그 놈들은 하반신이 얼어붙어버린 놈을 내버려둔 채 마차에 올라타고 떠나버렸다. 고개를 돌려 다시 앞을 보니, 형이 이미 한 놈을 제압한 후 – 어떻게 제압했는지조차 모르겠다 - 허리춤에서 포승을 꺼내 그 놈과 무릎 아래가 날아간 놈의 손목을 각각 뒤로 묶고, 재갈을 물리고 있었다.
“기리인! 저 놈 자살하지 못하게 해!”
분부대로 합죠. 얼굴이 약간 질렸지만 깡좋게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던 궁내부원이 마차에 만일의 경우를 위해 비치된 지저분한 걸레와 밧줄을 내어주었다. 나는 등에 활을 멘 후, 그걸 받아들고 마차에서 펄쩍 뛰어내려, 하반신이 얼어붙은 그 놈에게 다가가 손을 뒤로 묶었다.
“너, 대체...”
“닥치고 입 벌려요. 구멍나기 싫으면.”
하반신 얼음남은 질린 얼굴로 입을 벌렸다. 나는 지저분한 걸레를 꼬아서 그 놈에게 재갈을 물렸다. 뭔지 모를 것을 닦은 그 걸레를 당분간 맛보게 될 그 놈에게 좀 미안하지만, 애초에 습격한 네놈들이 잘못이야.
“후우...”
나는 허리를 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 집들에 불이 켜지며 사람들이 내다보다가, 골목의 참상을 보고 얼른 창문을 닫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골목이 아수라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산산조각난 채 불타며 연기를 뿜어올리고 있는 마차, 골목 사방에 터진 피와 살점, 뼛조각. 우엑. 미틱 시 전에 배에서 싸웠을 때는 멀어서 감각이 없었는데, 이 골목에서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피냄새가 그대로 나서일까, 욕지기가 났다.
“우욱...”
“기리인, 괜찮냐?”
“네, 저야 뭐...”
애써 괜찮은 모습을 보이려 했지만 형이 내 꼴을 모를 리가 없었다. 형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했어. 네 덕에 살았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형의 ‘잘했어’ 한 마디를 들으니 드디어 상황이 끝난 거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우리가 타고 왔던 마차 벽에 기대어 섰다.
“너의 화살이 만든 불꽃과 화재와 연기 때문에 경비대와 마법사들이 출동할 거다. 그리고 후배들도 출동할 거야.”
그러더니 형은 나를 보며 말했다.
“니가 저 놈들을 죽이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다. 만약 그랬다면 오늘 밤에 꼼짝없이 기사단에서 보내야 할 뻔 했는데.”
“에엑?”
“이러니저러니 해도 살인 아니냐. 정황이야 명확하지만, 그래도 살인을 한 사람이니 조사가 필요하겠지.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그 전 단계에서 멎었고, 정당방위가 인정될 거니까. 그래도 나는 가봐야겠지만.”
“아...”
“그 쪽도 수고 많았어요.”
형은 궁내부원을 보며 말했다. 궁내부원은 아직 파랗게 얼굴이 질린 채였지만 모자를 벗어 형과 나에게 경의를 표하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저야 말들 가만히 앉아있게 한 게 다인데요. 두 분 덕분에 살았습니다. 두 분이 끌려가셨으면 저는 아마...”
그때 길 양편에서 땡강땡강- 하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마차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 마차들은 우리의 앞, 그러니까 불타는 마차 건너편과, 그리고 뒤, 반신이 얼어붙은 남자가 있는 곳 앞까지 와서 섰다. 앞에서 온 마차는 붉은 색의 마차였고, 뒤에서 온 마차는 어제 아침에 내가 형과 함께 타고 갔던 수사기사의 마차였다.
두 마차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그리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서, 선생님!”
“어? 기리인?! 네가 왜 여기 있니?”
요안나 선생님이 빨간 마차에서 내렸다! 투구를 쓴 병사들 몇 명과 내린 선생님은 나를 보고 안 그래도 큰 그 눈을 더 크게 뜨며 놀랐다. 선생님은 평소와는 다른, 노란 띠가 들어간 검은 색의 로브 차림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왜 여기 계세요?”
“돌아가면서 경비대 근무 도와주는 날이거든... 오늘이 이번 달 우리 아카데미 차례인데, 참... 너랑은 뭐가 있나보다, 마주칠 일이 없는데도 자꾸 이렇게 마주치는 걸 보면 말야. 그치? 우리 제자?”
찡긋. 아아. 심장에 안 좋다고요, 그런 건.
“자, 일단 불부터 끄고.”
선생님은 지긋이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우더니 손을 앞으로 뻗었다. 손에서 파르스름한 냉기가 발사되며 불을 그대로 얼려버리듯 덮쳤다. 이미 상당부분 타 버렸던 마차는 냉기가 덮치며 완전히 불이 꺼져 버렸다.
그러고 있는 동안 우리 뒤편에서 나타난 마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우리에게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제국 수사기사... 어? 에아임 반장님?”
“어, 나크, 그노. 오늘 당직이냐?”
“네, 반장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습격당했다.”
“네?”
“마차를 타고 가는데 앞뒤에서 열 명이 넘는 놈들이 덮쳤어.”
“어... 그런데 지금 현장은 꼭 반장님이 그 사람들을 습격한 것 같습니다만?”
큭 하고 웃은 형은 대답했다.
“저기, 저 친구가 활로 저렇게 만든 거다. 내가 잡은 놈은 한 놈에 불과해.”
“정말입니까? 저 활이 무슨 아티팩트라도 되나요?”
“아티팩트 맞아. 저 친구가 전설의 명궁인 것도 맞고. 아무튼, 저기 말에 깔린 놈들하고, 얼어붙은 놈, 내가 묶어놓은 두 놈들 챙겨다가, 기사단 지하에 가둬 놔. 나도 지금 바로 기사단으로 갈 거다.”
그렇게 지시한 형은, 뒤를 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 어제 뵈었던... 요안나씨?”
“네, 에아임 경. 어떻게 여기서 뵙게 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카데미에서 비상근무 맡는 날인가 보네요?”
“네, 하늘에 불의 선이 번쩍이더니 땅으로 떨어졌는데, 거기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듣고 달려왔더니...”
“그거, 기리인이 한 겁니다.”
선생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네에? 기리인이요? 어떻게요? 기리인은 마법을 못 쓰잖아요?”
“제가 들고 있는 활이 특별한 활이에요, 선생님. 장인이 만든 아티팩트죠.”
“그래? 그럼 저기 얼어붙은 사람도?”
“네, 이 활에 내장된 마법이에요.”
“흐음...”
선생님은 묘한 눈빛으로 내 쪽을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활을 받아서 보고 싶어하는 눈빛인가, 저건? 형은 잠시 주변을 돌아보다가, 대략 정리가 끝난 걸 보고 – 물론 정리가 정말로 끝나려면 멀었다. 일단 다리부러진 말들이나 불타다가 얼어붙어버린 마차들을 못 치우고 있으니까. - 선생님에게 말을 걸었다.
“경비대 일은 대략 끝나셨습니까?”
“네, 저희는 대략 끝났어요. 남은 일들은 경비대에서 청소와 정리를 해야 할 거고... 시체는 수사기사단 쪽에서 가져가실 건가요?”
“네, 저 녀석들이 정리할 겁니다. 저,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저는 지금부터 저 녀석들을 지휘해서, 저 놈들의 심문에 들어가야 합니다. 추가적인 습격은 없겠지만, 기리인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은데 손이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선생님께서 손을 좀 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 네. 그런데 저는 에아임 경의 댁의 위치를 모르는데...”
형은 궁내부원을 바라보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궁내부원의 내통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일까?
“기리인, 너 길 대충 아냐?”
“네, 저 끝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쭉 가다가 큰 나무 있는 집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서 세 번째 집이잖아요.”
“아는구나. 그럼 선생님하고 나란히 마부석에 앉아서 다녀와라. 원래는 기사단을 호위로 붙여줘야 하는 건데... 너도 스스로 지킬 수 있고, 선생님도 마법사시니까 어떻게 되겠죠?”
선생님은 별 어려울 것 없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약간 씁쓸한 표정의 궁내부원이 선생님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동안, 형은 나를 보며 한 쪽 눈을 찡긋했다. 확 하고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아, 이 사람이 진짜.
“형... 저 혼자 가도 되는데 왜...”
“말했잖아. 아직 완전히 위험이 해소된 게 아니라니까. 그리고, 너 피 가까이에서 본 것이 처음이지? 아까 욕지기 올라오는 거 같던데. 형 말 들어. 지금은 누가 옆에 있는 게 좋아.”
“그래도...”
“어허. 우리 가문 식으로 해 볼까? 형 말 안들으면 맞는다?”
장난스럽게 내 어깨에 팔을 두른 형은 나를 마차 쪽으로 데려갔다. 한 번 더 저항해보려다가, 무익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얌전히 선생님 옆 자리에 올라탔다.
“길은 기리인이 안내해 줄 겁니다. 마차 모는 거 어려움은 없으시죠?”
“네. 금방 다녀올게요.”
우리 앞에 와서 섰던 빨간 마차가 자리를 비켜주자, 선생님은 가볍게 고삐를 휘둘렀다. 순하디 순하게 훈련되었을 두 마리의 말들은 주인이 바뀌었는데도 아무 불만 없이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밤이 이미 늦은 시간이라, 아무리 ‘밤이 오지 않는 제도’라 해도 이미 많은 불들이 꺼져 있었다. 길거리에 서 있는 마력등만이 노랗게 거리를 밝히고 있었지만 그나마도 띄엄띄엄 떨어져 있었다. 길 끝까지 달려가, 고삐를 오른쪽으로 당겨 오른쪽으로 회전할 때까지 우리는 말이 없었다.
============================ 작품 후기 ============================
요즘은 요일 감각이 엉망이네요. 오늘이 화요일이구나...
연재분량이 반으로 줄었는데도 많은 분들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토요일 10연참 후 다시 페이스를 찾도록 하겠습니다.
(안 되면 또 다음 주에 한 번 더 해볼까요? ㅎㅎ;;;)
4월 2일에 후원쿠폰 5장 더 주신 이문세 님, 4일에 1장 주신 아엘시아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원고료쿠폰 주신 분도 감사합니다. 힘내서 열심히 쓰겠습니다.
melontea 님 // 그 말씀이 맞는 거 같아요 ㅎㅎ
화이트프레페 님 // 알아서 주워다 줄겁니다 ㅎㅎ
|라랄라랄라| 님 // 그래서 이번주에 한 번 해 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궁수가 누커가 되는 길은 이거밖에 없는거 같더군요 ㅎㅎ
니세시키 님 // 정주행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