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156화 (156/309)

00156 6. 나 좀 가만 내버려 둬요 =========================

주교님이 길게 한숨을 쉬셨다.

“하아... 기리인 경, 지금의 기리인 경의 답변은 닳고 닳은 외교관 같군요.”

“좋게 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유도, 유도. 이런 식으로 나가서는 서로 말싸움 밖에 할 게 없다. 신전과 말싸움 해봐야 나한테 뭐가 남겠냐. 그런데, 내 유도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그러게 내가 애초에 이래서는 안된다고 하지 않았었나.”

“대사제님!”

“교단은 세상에서의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인정을 바라는 것도 아니며, 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교단은 신께서 인정하시고, 신의 사랑과 공정함을 전파하는 것으로 족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몰라줘도 좋고, 알아주면 더욱 좋을 그런 것이어야지, 내 그렇게 이 일을 가지고 교단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들거나 하면 안 된다 일렀거늘...”

“그 말씀은 너무 이상적입니다!”

반박은 주교가 아닌 평사제에게서 나왔다.

“대사제님의 말씀은 현실을 모르시는 겁니다. 그랜드 아카데미가 우리 사제들의 치유술이나 부여된 재능을 연구하기 위해 얼마나 집요하게 노력하는지, 그리고 우리 교단이 치유술을 펼쳐 얻는 재능과 헌금을 노리고 얼마나 집요하게 끼어드는지 아십니까? 경전을 학문적으로 해석해 자꾸 자신들의 아래로 편입하려 하는 대도서관 쪽은 또 얼마나 오만한 지 아십니까?”

“그 모두, 신의 사명에 비하면 부차적인 문제이다. 우리는 신의 사명을 실천하는 신의 종이면 되는 것이야.”

“그 신의 사명을 더욱 잘 실천하기 위해 이러는 것입니다!”

“신의 사명은 돈으로 실천하는 것이 아니야! 너희들이 신전 개축파에 속해 있는 것을 모를 줄 아느냐!”

“아무리 대사제님이라도, 저희를 모독하시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으아, 이거... 말만 예의바르지 곧 누가 칼 꺼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 때, 내 오른쪽에 앉아 있던 톨라츠 아저씨가 조용히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가죠, 기리인 군. 에아임 씨.”

형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눈에 걸리지 않게 조용히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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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생전 처음이지? 하긴 나도 사제님들이 회의하면서 저렇게 싸우는 건 처음 봐.”

“교단의 안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 정말 창피하군요.”

아저씨는 아닌 게 아니라 얼굴이 팍 굳어 있었다. 우리는 아까 지나온 기나긴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미 해는 정오를 넘어 오후로 접어드는 모양이었다. 창 밖으로 햇살이 이제는 약간 뜨겁다는 느낌마저 주는 걸로 보아 곧 더워질 모양이다. 긴 복도는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나는 안에서 본 격렬한 대립 때문에 아까 이 복도를 반대방향으로 걸을 때만큼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잠시 주저하다가, 결국 아저씨에게 물었다.

“저, 아저씨. 사제님들이 두 파로 나뉘어 있는 거에요?”

아저씨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하셨다.

“기리인 경, 이 신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웅장하고, 크고... 동시에 좀 너무 단순하고 휑하달까요?”

“바로 그겁니다. 트리클 교는 천칭 이외에 다른 어느 상징이나 상징물, 상들을 세우지 못하게 교리로 금하고 있습니다. 그 분위기가 이어지다보니 저희 교단의 신전은 어디 가나 스테인드 글라스 이외에 아무런 장식도 없습니다. 그 돈을 아껴서 빈민구제에 조금이라도 더 쓰자 이런 것이 치르낙 대왕이 첫 교황님이 서시는 것을 도와줬을 때부터의 모토이죠.”

“그 말 자체에 잘못된 점은 없는 것 같은데요?”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씁쓸한 표정으로.

“그렇지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기리인 경처럼 이성적이지는 않습니다. 경도 그건 잘 아시죠? 모든 상이나 상징들을 모두 제거하다 보니, 일반 평민들이 상상하거나 보고 믿을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보통 백성들이 관혼상제나 특별한 명절 때를 제외하고는 예배시간을 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말씀도 그냥 좋은 말, 이 정도로만 여기고 있고요.”

“아...”

그러고 보니 확실히 그러하다. 나도 어릴 적에 트리클의 날마다 신전 가는게 너무 싫었는데, 그건 심심해서였다. 부모님도 막상 예배에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으셨다. 그냥, 가는 거니까 가는 거였다. 그런 문제가 있구나.

“혹자는 트리클 교에 끊임없이 생기는 이단 문제가 그 성상(聖像) 금지에서 기인한다고도 합니다. 그 정도로 뿌리깊은 문제이죠.”

“아... 그렇겠군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저씨는 여전히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늘 있어 왔습니다만, 올해 돌아와서 보니 좀 많이 심해졌군요. 대사제님에게 직접 저렇게 대놓고 반박할 줄이야...”

“그 젊은? 아니,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을 젊다고 하면 이상하지만, 그 사제분들은 그럼, 교단이 현실적인 영향력을 지녀야 한다고 하시는 거에요?”

“맞습니다. 교단은 사실 대사제님 같은 태도를 지닌 분들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갈구하는 것은 신의 애정이요, 전파하는 것도 신의 애정이니, 지상의 애정은 필요없다는 거죠. 하지만 세상에서 치인 젊은 사제들의 이야기는 다르죠. 우리가 조금 더 힘이 있다면, 돈이 있다면, 좀 더 꾸미고 좀 더 편리하게 좀 더 쉽게 만들어 놓는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 더 많이 신을 섬기지 않을까? 이런 고민인거죠.”

“마냥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게 문제로군?”

“네, 에아임 씨. 맞습니다. 그 평사제들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신을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러는 거긴 하지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기리인 경을 이용하여, 교단의 영향력을 넓히고 아카데미와 대도서관의 영향력을 깎는 데 쓰려고 하다니... 이건 명백히 잘못된 거지요.”

아저씨는 화를 내고 있었다. 그 커다란 아저씨가 온건하게 하지만 강하게 화를 내고 있었다. 마치 태산이 우르릉 거리는 것을 형상화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래서야 내가 기리인 경의 친구이고, 그러기에 경을 교단의 친구로 여긴다는 말이 허방해지지 않았습니까. 친구를 이용하는 친구는 친구가 아니지요.”

무슨 트라우마라도 있으신 건가... 나는 조용히, 아저씨의 곁으로 다가가, 아저씨의 팔에 손을 올려놓았다.

“화내지 마세요, 아저씨. 저는 아저씨의 진심을 믿어요. 아저씨가 말씀하신 대로 저는 아저씨의 친구잖아요?”

아저씨는,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곧 그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팔뚝 위에 놓여있던 내 손 위에 자신의 두툼한 손을 포갰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이 충분히 전해졌다.

“음, 두 사람. 연인도 아닌데 연인 흉내 내는 건 여기까지로 하지? 이봐, 톨라츠. 어쩔 셈이야? 자네 아무래도 선배 사제들한테 좋은 소리는 못 듣지 않겠나?”

“뭐, 그렇겠지요? 그래도 견디는 건 자신있습니다.”

“그러지 말고, 내가 다시 파견을 요청할테니 나와 함께 하는 건 어때?”

“피정(避靜, 사제들이 조용하게 신과 대면하며 세속의 때를 벗고 명상하는 기간) 기간도 없이 말입니까?”

“피정이 오기 전에 당신이 많이 괴로울까봐 그러지. 그리고, 우리의 유망주 기리인 경께서 열심히 사건을 끌어모으는 중이야. 안 그래도 엄청 큰 건이 걸려서, 도움이 필요해.”

톨라츠 아저씨는 고민했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아저씨는 부리나케 건물을 나서, 부속 건물 중 하나로 달려갔다. 우리가 대신전의 마굿간에서 우리가 타고왔던 쌍두마차를 찾아 신전 입구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아저씨가 여행 다닐 때와 똑같은 가방과 방패, 짐들을 들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아저씨는 재빨리 짐을 마차에 싣고 마차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얼른 출발하시죠!”

우리는 그 서슬에 놀라 함께 마차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덩치 큰 아저씨가 함께 타니 마차 안은 비좁았다. 마부가 우리가 문을 닫는 것을 확인하고 마차를 출발시켰다. 마차가 신전의 경계인 하얀 돌로 만든 선을 넘을 때까지 아저씨는 몸을 푹 낮추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톨라츠 당신, 명을 받지 않고 움직이는 거군? 이거... 나중에 문책받게 되는 거 아닌가?”

“에아임 경께서 해결해 주셔야죠.”

“내가?”

“형, 황태자 저하와 관련해 급박한 사건이 있는데 수사에 톨라츠 아저씨가 필요해 급하게 데려가게 되었다고 편지 한 통만 보내면 될 일이잖아요.”

짝. 아저씨가 박수를 딱 한 번만 쳤다.

“역시 기리인 경이네요.”

“그 경이라는 경칭 좀 어떻게 안 될까요...”

“그렇다고 예전처럼 기리인 군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나중에 실례라도 하면 어떻게 해요. 그렇다고 기리인 씨라고 부르기도 좀 그렇고.”

그런 말 하실 거면 빙글빙글 웃으시지는 말아야죠. 하아. 나 놀리는게 재미있나들.

“일단, 톨라츠, 기리인을 우리 집에 데려다주고, 함께 본부로 가자고. 에빌로는 밤새 일하고 지금 자고 있을 거야. 깨워서 점심이나 먹으러 가지.”

“좋지요. 기사단 앞의 스튜 앤 라이스?”

“그거지. 오랜만에.”

“기리인 경도 함께 가면 안 됩니까?”

“기리인 경은 오늘 무려 나스프 공작님께 애프터눈 티타임 초대를 받으셨다네.”

톨라츠 아저씨는 눈을 크게 떴다.

“호오, 역시. 에아임 씨, 기억합니까? 기리인 경을 사교계에 데뷔시키면 어떻게 될지 이야기했던 것?”

“그래. 나 스스로도 그 예측이 너무 잘 맞아들어가고 있어 놀랐어. 오늘 아침에 말야, 선물이 다섯 개, 편지가 30통 넘게 왔더라니까?”

“정말입니까? 이야...”

하아. 두 아저씨가 나를 찧고 빻고 씹고 뜯는 동안 나는 ‘안 들린다’는 자세로 창밖만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원래 신부님들도 싸우시면 살벌하게 논쟁한다고 들었습니다.

더더군다나, 지금 케이스는 저 분들이 사리사익을 위한 게 아니니 더더욱 그러시겠죠.

스튜 앤 라이스는 뭘까요? '국밥' 아닐까요? ㅋㅋㅋㅋ

10연참은 정말 쉽지 않네요. 아마 8~9 정도에서 그치지 싶습니다.

앞으로도 이벤트성으로... 할 수 있을까요...?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만...ㅎㅎ;;;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 읽어주시는 여러분 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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