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160화 (160/309)

00160 6. 나 좀 가만 내버려 둬요 =========================

시스템, 부탁해.

‘띠링!’

<고급 언변의 하부 기능인 ‘유도’가 발동합니다. 당신은 대화 상대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거나, 그 이야기를 토대로 당신이 원하는 쪽으로 협상을 전개하거나 할 수 있습니다. 유도의 스킬레벨은 현재 Lv. 2이며, 고급 언변 스탯 92의 보정을 받습니다.>

<고급 언변의 하부 기능인 ‘외교’가 발동합니다. 협상 자리에서 외교술에 준하는 매끄러운 화술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외교의 스킬레벨은 현재 Lv. 1이며, 고급 언변 스탯 92의 보정을 받습니다.>

좋아. 나는 아주 잠깐, 내가 할 말과 전략을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황궁 안에 믿을 수 있는 눈과 귀의 존재가 없음을 한탄하셨습니다.”

첫 마디부터 공작님의 얼굴이 팍 구겨진다. 그럴 수밖에. 이건 내가 해야 할 말 중에서 가장 강한 말이거든. 처음부터 왜 강한 말을 했냐고? 그래야 ‘나를 믿게’ 유도할 수 있잖아.

“허, 참. 물론 그 사람 입장에서야 그럴 수 있겠지만... 그리고 에아임 경과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냈다지만... 너무 하는군.”

“공작님께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폐하께서 한 말을 그대로 전해 드리느라 심기를 어지럽혀 드려서...”

“됐네. 경이 일부러 그런 말을 했다고도, 지어냈다고도 믿지 않아. 설마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을리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첫 단추는 잘 꿰었고.

“또 황제 폐하께서는 황태자 저하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고 계셨습니다.”

“혼인 문제 때문인가?”

“그러합니다, 공작님.”

오늘 아침까지 나는 공작이 황태자와 알리시아 양의 이야기를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좋은 기회다. 나스프 공작에게 내가 아는 바를 말하지 않으면서 끌어낼 수 있을까? 유도가 잘 먹히기를 바라며 나는 말했다.

“첫 번째 문제 때문에, 황제 폐하께서는 황태자 저하에 대한 소문을 잘 알기 힘들다고 우리에게 토로하셨습니다. 황태자 저하께서 마음에 있는 여성이 따로 없는 것 같은데, 사교계에 나가서도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렇긴 하지. 나이가 벌써 스물여섯인데, 그 녀석은 참...”

아르논 양의 말이 맞는 듯하다. 황태자를 언급하는 공작의 표정은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혹시 공작님께서 좋은 신붓감을 주선이라도 해 주실...”

“그런 소리 하지 말게. 내가 그랬다간 대번에 추밀원에서 난리가 날 걸세. 황후도 배출한 집안이 다음 황후도 배출하려 하느냐고 말이야.”

“아, 그렇겠군요...”

“전쟁이라도 각오하지 않는 이상에야 그건 불가능할 걸세.”

좋아. 이걸로 내가 뭘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거고.

“그래서 황제 폐하께서는 저에게, 그리고 에아임 경에게 거래를 제안하셨습니다.”

공작님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거래라니?”

“사실 아까 아르논 양이 있는 자리에서는 말씀 못 드린 게 있습니다.”

나는 내 특이하게 변한 마법적 체질에 대해 말했다. 지금까지는 분명 내 얘기가 설득력은 있다. 하지만 그저 설득력 있는 얘기라면 완전히 믿기지도 않을 것이다. 좀 심한 경우에는 공작님이 ‘자, 이제 자네의 얘기는 들었으니, 진실에 대해 말해보게.’ 이런 식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아까 밝히지 않은, 내가 숨기고 있는 패를 하나 열어보이고, 그것 때문에 그랬구나 하는 식으로 상대를 유도해야 한다. 다행히 시스템이 내 유도를 보좌해 주고 있으니까.

“말해보게. 지금은 자네와 나 둘 밖에 없으니 말이야.”

분위기가, 좋은 거 같은데. 나는 내 마법적 체질에 대해 설명했다. 마나 친화력이 없어졌다고. 나를 목표로 한 마법은 듣지 않는다고. “그럼 자네를 죽일 수 있는 마법사는 없는 것인가?”라는 예상 가능한 질문에 준비된 답도 내놓았다. 전기로 죽일 수는 없지만, 돌멩이를 만들어 내 머리 위에서 떨어트리면 맞는다고.

“하하하, 그거 재미있군? 크게 쓸 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어쨌든, 그래서, 자네가 그랬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황제 폐하와 어떤 거래를 했다는 말인가?”

“제 증상이 마법사 나부랭이였던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아는 마법사마다 모두 그렇게 생각하지만, 대륙 마학계에 처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랜드 아카데미, 대도서관, 대신전 모두 저를 노리고 있습니다.”

“...물론 연구 대상으로 노리고 있다는 거겠지?”

“네, 공작님. 사실 오늘 점심은 대신전에서 먹고 오는 길입니다.”

“그랬군...”

내가 대신전에 다녀왔다는 건 아마 공작이 확인해보려면 쉽게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고, 공작 스타일이라면 확인해 볼 것 같다. 그럼 내 말을 더 믿겠지.

“그래서, 사실 에아임 경이 제 의형제가 되어주기로 한 것도, 저를 보호하고 싶어하는 경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경이 제 의형이다라고 소개하면 어느 곳도 저를 함부로 하지 못 할 것이니까요.”

“그렇지.”

“그래서 황제 폐하께서는 에아임 경의 의도를 읽으시고, 그것을 더 화려하게 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제가 기사에 서임되고, 무도회에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렇군. 그게 자네에게 어떻게 이익이 되었는지는 알았네. 하지만 황제 폐하에게는 어떤 이익이 있었지? 명예라고는 하지 말게. 황제라는 직위에 명예가 더해질 건 없으니 말야.”

“황제 폐하께서는 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시고, 저의 화술을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자랑 같아서 말씀드리기 민망합니다만, 얼굴이 사교계에서 잘 먹힐 거라고 하셨고...”

“그건 칭찬이 아니고 공정한 평가야.”

“칭찬 감사합니다, 공작님. 아무튼 황제 폐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고, 사교계에서 혹 황태자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 그가 말을 건 이성은 없는지에 대해 좀 조사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허어...”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앞의 얘기를 계속 밑밥을 뿌렸던거지. 황제 폐하는 지금 궁성 사람을 믿지 못한다, 황태자 때문에 고민이다, 나를 잘 봐줬다, 나는 사교계에 데뷔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둘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그럼 기리인 경, 그 날 우리 아르논과 춤을 추었던 것도 그 정보 수집의 일환인가?”

“그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공작님. 아르논 양은 매력적인 여성입니다. 대화도 잘 통했고, 훌륭한 레이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황태자 저하의 사촌이며 공작님의 따님이라는 점도 중요했지만... 이런 말씀 죄송합니다, 결코 삿된 의도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니 양해를... 아르논 양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여성 본인에게든, 다른 이에게든, 여성을 칭찬할 때는, 진심을 담아서.

“그런가. 하긴, 내 딸이지만 엄마를 닮아 예쁘긴 하지.”

부스럭.

응? 부스럭이라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보자 아르논 양이 얼굴을 붉히며 서 있었다. 아까보다는 다소 간편한, 하지만 하얀 색의 여성용 블라우스와 검은 색 바지를 입고, 은빛의 머리를 뒤로 묶어 틀어올린 아르논 양은, 내 ‘아름다워서’라는 말이 빈 말이 아님을 온 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들었다는 것도.

“아, 아르논. 언제 온 거냐? 왔으면 인기척을 할 것이지.”

“두 분께서 제 이야기를 하시는 듯 하여...”

까무잡잡한 얼굴인데도 빨개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되기도 하는구나... 다행히, 앞의 중요한 이야기는 못 들은 것 같다. 아니, 그보다! 잠깐만! 이거... 어째 이상하게 꼬이는 것 같은데...

“알았다. 기리인 경, 이야기 고맙네. 자네의 말이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되네.”

‘띠링!’

<유도에 성공하셨습니다. 유도 스킬에 경험치가 축적됩니다.>

시스템의 도움으로 나는 공작님이 내 말을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건 다행이다. 그건 다행인데.

“그럼, 늙은이는 자리를 비켜주도록 하지. 아르논, 기리인 경에게 정원을 잘 구경시켜 드려라.”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공작님은, 떠나려다가, 아르논 양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리인 경은 저 나이에 황제 폐하로부터 인정을 받아 ‘비밀 임무’를 수행할 정도로 능력이 좋은 인재구나. 화술도 좋고, 사귀어 두면 좋은 사람이라고 이 애비는 생각한다.”

“네, 아버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르논 양이 말했고, 나는 겉으로는 평온을 가장했지만 속으로는 큰 소리로 절규하고 있었다.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닌데, 대체 왜 이렇게 되냐고!

“허허, 그럼 있다가 식당에서 보세, 기리인 경.”

인사를 받는둥 마는둥 등 뒤로 대충 손을 내저으며 공작님은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셨다. 테라스에는 이제, 얼굴을 붉힌 채 우물쭈물거리고 있는 아르논 양과, 속으로 절규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평온한 척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나 두 사람만이 남았다.

에휴. 뭐가 어떻게 됐든, 여기서 이러다가는 저녁때까지 둘이서 우물쭈물하고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말을 걸었다.

“아르논 양.”

“네, 네에?”

“우선 너무 놀라지 마시고...”

“네에...”

참, 신기하다. 어제도 불안한 매력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 와! 무도회가 어제였잖아 그러고 보니?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열흘은 된 것 같았는데! - ‘또래의 남자가 예쁘게 봐주었다’는 사실에 이렇게 당황할 만큼 경험이 없나? 당황스러워라...

“정원, 구경시켜 주시겠습니까?”

“아... 네, 그렇게 하시죠.”

설마, 혹시나... 하지만 아까도 계단 올라올 때 손을 잡아줬잖아. 설마... 하며, 나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우연인 척 옆으로 왼팔의 팔꿈치를 내밀자, 그녀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오른손을 내 팔꿈치에 얹어왔다. 아악! 고전적인 연애담의 주인공이잖아, 이건.

전혀 내색하지 않으며 나는 물었다.

“어느 쪽으로 갈까요?”

“우선은 1층으로 가셔야겠죠?”

“...우문에 현답이군요.”

“푸훗!”

별로 우습지도 않은데 입을 가리면서 아르논 양이 웃었다. 아. 울고 싶다.

============================ 작품 후기 ============================

그래서 한 번 말했잖아, 기리인. 너의 매력은 저주일 수도 있다고.

다시 1일 2회 템포로 돌아가겠습니다.

다음에 또 떨어지면 그때 한주간 원기옥 또 모으겠습니다 ㅎㅎ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여러분 덕택입니다.

카드보험 님 // 그간 여러 조언 감사합니다. 약간 손봤습니다.

Shadow3932 님 // 과분한 칭찬 정말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체크필통 님 // 기리인 이제 그동안 받은 외모랑 머리값 해야죠! 굴러라 기리인!

연구생 님 // 타입문넷에 추천글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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