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165화 (165/309)

00165 6. 나 좀 가만 내버려 둬요 =========================

“먼저 말씀드리기 전에 한 가지만 확인할게요, 기리인 경. 경은 아카데미에 지금 연구자로 등록한 분 말고는 지인은 없으신거죠?”

“연구자로 등록한 분이라면...”

“그, 안식년 맞으신 선생님 말이에요.”

“네, 그 분 말고는 다른 지인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어요.”

“저도 한 가지 여쭤볼게요. 저는 정치 관계나 집단간의 알력 같은 것은 잘 모르니까, 이브 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걸 들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브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은 ‘당신이 생각하는 걸 들려달라, 대신 당신의 말은 대도서관 측에 유리한 쪽으로 말했다고 깎아서 생각하겠다’라는 뜻인데, 당연히 알아들었겠지? 지능 96이니까.

“먼저, 이브 씨도 아카데미에서 공부하신 건 맞죠?”

“네. 제국 마법사 등록제에 의해 마법사는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각 영지의 마탑이나 제도에 등록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지요.”

그래, 잘 안다. 내가 마법사였으니까. 내 경우는 졸업시험을 합격했고, 그랜드 아카데미 입학까지 허가받았지만, 등록을 하지 못했지. 이미 그때는 마법사가 아니었으니까...

“그럼 어떻게 아카데미에서 대도서관 쪽으로 오시게 되었습니까? 지금 분위기나, 이브 씨 말이나, 제가 들은 이야기나, 대도서관의 마학(魔學) 연구하는 쪽과 그랜드 아카데미 쪽은 완전히 척진 분위기던데요...”

“옳게 보셨어요, 기리인 경. 둘은 앙숙이 맞아요. 역사가 꽤 오래 되었지요. 마법에 관련된 학문을 학문 자체로 보아야 한다는 대도서관 쪽과, 실제로 마법을 구사하는 것을 구분해서는 안된다는 그랜드 아카데미 쪽의 대립은 10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지요.”

“100년이요... 하루아침에 자, 우리 화해합시다, 할 수 있는 사이는 결코 아니겠군요.”

“경은 마탑이 어떤 곳인지 아시나요?”

“제가 알고 있는 건 있습니다만, 이브 씨가 어떤 이야기를 하실지는 모르겠네요. 말씀해 보시겠어요?”

“사실 제국의 마법 이론은 기본적으로는 치르낙 대왕 때 이후로 발전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어요. 그건 아시죠?”

“네, 르플레스탁의 레어에서 가지고 나온 마법 물품 중에 마법 이론서가 있었고, 그걸 바탕으로 마법 회로에 대한 이론 등이 정립되면서 마법사들이 제대로 된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지요. 치르낙 대왕이 다른 지방 패자들을 거의 외교적인 수단으로 복속시켰지만, 몇 번 있었던 거대한 전투에서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죠.”

“잘 아시는군요. 그건 드래곤과 달리 인간의 뇌가 견딜 수 있는 양이 크지 않기 때문이에요. 경은 대마법사들의 말년이 어떤지 아시나요?”

내가 고개를 젓자 이브 씨는 내 쪽으로 몸을 약간 기울이며 말해왔다. 우리 둘의 찻잔에 담긴 차는 한 모금씩만 줄은 채 그대로 식어가고 있었다.

“그간 몇 명 나왔었던, 8서클 이상을 달성한 대마법사들은 하나의 예외없이, 미쳤어요. 그 중 한 명은 말년에 파괴적인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5대 마탑 차원에서 움직여야 했지요.”

이건 정말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이런 얘기 들으신 적 없을 거에요. 그럴 수밖에요. 어느 누가 늙어서 미쳐버릴 수도 있는 직업을 택하려고 하겠어요? 그러니 다들 쉬쉬할 수밖에요.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마탑주들을 비롯한 고위 마법사들이 이 위험 때문에 높은 서클의 마법을 추가적으로 연구하지 않고 있어요.”

당연히 아카데미 쪽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일이지만, 그리고 이브 씨의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브 씨는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대도서관 쪽과 연결되지요?”

“당연히 이 ‘미치는’ 현상에 대해 원인을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는지, 또는 막을 수 없다면 다른 방식으로 회피는 가능한 것인지를 알아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 동안 여러 대마법사들이 이에 대한 시도를 했지만, 모두 실패했죠.”

“아까 모두 미쳤다고 했으니 알 만 하네요.”

“그렇죠. 그래서, ‘마법에 대해 마법을 쓰지 않고 학문적인 체계를 잡아야 하지 않나’ 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나왔어요. 기리인 경도 아시겠지만, 마법사는 마나에 안겨 있지요. 그 느낌을 결코 잊지 못하지요. 기리인 경도 그래서 마법사가 다시 되고 싶어하시는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부정해봐야 소용 없겠지. 마법사라면 그 느낌을 잊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그런 주장을 했던 사람들은 즉각, 마치 트리클 교단이 이단을 몰아내듯이, 밀려났어요. 마탑에서 쫓겨나서, 갈 곳 없던 사람들이 모인 곳이 다름아닌 대도서관 쪽이었지요. 안 그래도 대도서관 쪽은 마탑이나 그랜드 아카데미에게 자료보관소 정도의 취급을 받는 데 설움을 갖고 있던 차에, 마침 잘 됐다 하면서 모여든 거죠.”

“그렇군요... 사이가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대도서관 쪽에서는 저를 어떻게 연구할 생각이신지?”

“기리인 경은 대도서관이 왜 대륙 5대 신비에 들어가는지 아시나요?”

대륙 5대 신비... 북쪽의 백색 산맥, 남쪽의 솟아오른 섬, 중부와 남부의 경계가 되는 대균열, 중부의 블루 아이리스, 그리고 대도서관 이었던가. 나머지 넷은 신이 만들었거나 자연이 만든 것이지만, 대도서관만은 인간이 만든 신비라고 배웠다.

“사실 저는 대도서관에 대해 잘 모릅니다.”

“대도서관에는 마법진이 있어요. 재미있는 건 그 마법진은 마력석으로 기동하지 않아요. 그 위를 걸어다니는 사람의 마나를 빌려 기동하고, 그 기동한 마나로 그 사람이 현재 가장 필요로 하는 책이나 자료의 위치를 바닥에 불빛으로 표시해주죠. 표시된 불빛을 밟으면 마나가 다시 흡수되니 마나 고갈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요. 5대 신비에 들어가는 건 그 마법진 때문이에요. 일설에는 그 마법진을 만든 것이 인간 세상에서 유희를 즐기던 드래곤 르플레스탁이라는 얘기마저 있을 정도로, 어느 누구도 그런 마법진을 만들지 못했죠.”

“그랬군요...”

“그래서 우리는 기리인 경을 그 마법진으로 데려갈 생각이에요.”

“...제 상태가 어떤지는 정확하게 아시는 겁니까?”

“대충은요. 마치 몸 주변에 마법 무효화 장이 펼쳐진 것 같다고 들었어요.”

“그럼 그 마법진에 영향이 가지 않겠습니까?”

“음... 다행히 그 마법진을 새로 만들지는 못해도 있는 마법진은 수리는 할 수 있으니까 괜찮아요. 물론 그거 수리하는 동안은 도서관을 못 쓰겠죠.”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닙니까?”

“그건 부정할 수 없겠네요. 그래도 뭔가 방법이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그리고, 우리 쪽이 마법 이론은 마탑이나 그랜드 아카데미에 비해 더 정교할 거에요. 기리인 경의 상태에 대해 대도서관 소속 마법사들과 함께 연구하고, 해결책을 찾아보는 거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되물을 차례다.

“성실하게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브 씨. 그럼 한 가지 여쭤볼 게 있는데요.”

부지불식간에 이브 씨는 등을 펴 자세를 바로 하며 말했다.

“말씀하세요.”

“제가 대도서관 쪽과 손을 잡고 연구하는 것이, 대도서관 쪽에 이득이라는 건 알겠습니다. 마탑이나 그랜드 아카데미에게 엿을 먹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 상태를 연구하여 지금까지의 마학에 대해 새로운 돌파구가 생긴다면 그 역시 대도서관과 마학계의 성과가 될 테니까요. 그럼, 그게 저한테는 어떤 이득이 있습니까?”

“네?”

“못 알아들은 척 하지 마십시오. 그 제안은 저에게 유리한 제안이 아닙니다. 대도서관 쪽의 손을 잡는 대신, 아카데미와 척을 지게 되는 것 아닙니까. 저의 상태를 해결해 줄 대안이 대도서관 쪽에서만 나오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대도서관 쪽의 유리함을 위해 저에게 가능성을 반, 혹은 그 밑으로 줄이라는 제안을 하실 거라면, 그 제안 자체의 유효성을 제하고라도, 적절한 댓가나 보상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

처음으로 이브 씨는 말문이 막힌 모습을 보였다. 나는 거창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이브 씨는 나를 아직도 갓 성년이 된 어린 사람으로밖에 보지 않는군요.”

“그건...”

“부정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브 씨가 동등한 상대에게 협상을 제기할 거였다면 결코 이렇게 하시지 않았을 겁니다. 자신의 제안에 대해 설명하고, 어떠한 장점과 단점이 있으며 어떠한 보상을 드리겠다, 이렇게 설명했겠죠. 처음에는 나를 유혹하려다가 실패했고, 이제는 내가 감언이설에 넘어가서 협상의 주요 부분을 보지 못하고 넘어가기를 바라는 것 아닙니까. 너무 어설픈 거 아니에요? 저를 얕보지 않았다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죠.”

“...”

어쩜 저러냐. 학자라서 그런가? 좋은 대화상대이자 어른이라는 느낌과, 설명을 잘 한다는 느낌은 들지만, 말로 잘 꼬신다는 느낌은 안 든다. 반대 입장이었으면 내가 훨씬 더 잘 했을 것 같다.

“이브 씨. 오늘 점심 때 제가 어디로 갔었는지 말씀드렸었나요?”

“아뇨,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디트리클 시의 대신전에 다녀왔습니다.”

역시 지력 96이 헛것은 아닌 듯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그냥 ‘오, 대신전?’ 하는 게 아니고 경악하는 수준이었다.

“대신전에서도 기리인 경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나요?”

“그런 셈이죠. 사실 신전에서는 저에게, 신전 쪽에 서서 두 단체를 중재시키고 신전 쪽의 주관으로 연구를 들어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마치 달려들 듯,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이브 씨는 황급히 말했다.

“그래서, 그래서요? 받아들이셨어요?”

어우. 입은 로브의 헐렁한 앞섶 너머로 그녀의 탱글한 두 가슴이 보인다. 속옷은 어딜 간거야... 나는 얼른 눈을 돌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들 역시도 나를 도구로 써서 어떻게든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려고만 할 뿐, 나에게 무엇이 좋은지는 생각해주려 하지 않더군요. 이브 씨 처럼요.”

이브 씨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지막 야유는 너무 심했으려나.

============================ 작품 후기 ============================

베스트에 들면 행복해하며 글만 쓸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역시나 그건 제 착각이더군요. 순위가 오르나 내리나 몇번씩 새로고침을...ㅠㅠㅋㅋ

그래도 옛날에 비하면 매우 행복한 고민이겠지요. 모두 읽어주시는 여러분 덕입니다.

조금만 더 울리면 스스로 함락될 것도 같긴 한데...

시간내셔서 꼭 제목에 대한 설문조사 해 주시고 가세요!

제목 추천안이 당첨되신 분께는 딱지 50장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이브 씨 캐릭터를 설정할 때 원래 약간 짜증나는 스타일로 잡았습니다 ㅎㅎ; 말에 비해 실력이 좀 부족하죠. 지능은 높아도 허당들은 어디에나 있잖아요 ㅎㅎ

Euphoria17 님 // 오늘 잠시 우울한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님의 코멘트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게끔, 늘 내가 읽어도 재미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늘 감사합니다! 읽어주시고 코멘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니코틴 님 // 아, 네. 안 그래도 3챕터의 추리 요소는 많이 다듬어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목은 님의 아이디어가 제게 영감을 주는 게 있네요. 의견과 코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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