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6 7. 황태자의 암살을 막아라...?! =========================
봄바람이 따스하다.
깍지낀 손이 따스하다.
그 때문일까. 마음도 따스한 것 같다.
선생님을 돌아다보자, 선생님은 환하게 미소짓는다.
나는 미소지으려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미소가 나온다.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다. 황궁 외성 앞의 광장은 퇴근하는 사람들과 우리처럼 저녁에 산책을 나온 가족들과 연인들, 그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노점상들로 온통 붐비고 있었다. 지친 표정도 있고, 화내는 사람도 있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미틱 시의 광장은 요란한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그냥 자연스러웠다. 일상을 살아가는 느낌. 그러면서도 전반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였다.
“기리인,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어쩌면 나를 잡아끄는 선생님 때문에 내 기분이 붕 떠있어서, 남들을 전반적으로 호의적으로 해석하는지도 모르지. 아무리 가슴이 두근거리고 붕 떠있어도 냉철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냉철을 발동시키려고 하면 의지력으로 어떻게든 될 것이다. 하지만, 간만에 느끼는 두근거리는 기분이 싫지 않다.
“맛있는 거 뭐요?”
“맛있는 게 맛있는 거지.”
“...선생님 원래 이런 캐릭터 아니셨잖아요?”
“내가 무슨 캐릭터였는데?”
“차가운 제도의 미녀...?”
“내가 차갑다고? 일루와, 요게...”
가볍게 내 팔뚝을 꼬집는 그녀. 아얏, 하며 나는 과장되게 팔을 비틀고, 우리 둘은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막 사귀는 연인들같다. 내가 선생님과 이런 사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냥, 동경하는 선생님을 만나 가끔씩 제도에서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는 정도로 만족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운명이고, 복잡한 퀘스트고 뭐고 지금은 모두 잊고 싶다. 지금을 즐기고 싶다.
“여기야, 기리인.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두 분이신가요?”
“네. 닭튀김 2인분, 맥주 두 잔 주세요!”
“네! 두 명!”
머릿수건을 쓴, 젊은 아가씨가 주문을 크게 외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가게 앞에 놓인 탁자에 앉았다.
광장은 해가 거의 졌는데도 환했다. 마력등 때문이었다. 군데군데 세워진 마력등이 여러 가지 색깔로 빛나고 있었다. 아니, 색깔이 변하고 있었다. 하얀 색에서 분홍 색, 파란 색, 마치 전설로만 전해지는 요정의 날개 색깔처럼. 아까 내가 일상이라고 표현했던 공간에 묘한 색채가 덧씌워지며 한 발쯤 동화 속 세상으로 떠나가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앉아있는 곳, 광장을 건너다보는 노천 카페의, 그냥 밝은 색의 마력등 때문일까, 동화 속 세상에 들어가기는 나이가 좀 있는 어른들이 한 발짝 건너편에서 그 세상을 내다보는 느낌이었다.
“무슨 생각 하니?”
“...동화속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라는 생각이요.”
“아, 그래... 무슨 말 하는 지 알겠어. 나도 그런 생각 하거든. 예쁘긴 정말 예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웃으며, 아직 놓고 있지 않는 내 손을 한 번 꼭 쥐어주었다.
“닭튀김 나왔습니다~!”
아까의 아가씨가 나무줄기로 엮은 바구니에 담긴 닭튀김과 금속으로 된 맥주잔 두 개를 내려놓고, 선생님이 꺼내주는 레블리스 은화 두 개를 받고는 고개를 꾸벅 하고는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제가 사려고 했는데.”
“어허, 아직 직업도 없는게. 아무리 돈을 벌어도 선생님이 제자한테 밥을 사는 거지.”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선생님은 마주 웃어주며 잔을 들어올렸다. 내 왼손을 오른손으로 깍지낀 채 잡고 있어서 선생님은 왼손으로 잔을 들어야 했다.
“건배할까?”
“뭐에 대해 할까요?”
“꼭 말이 필요할까?”
“그럼 제가 ‘그대 눈동자에 건배’ 같은 소리 하면...”
“맞을래?”
나는 그냥 웃으며 잔을 마주쳐갔다. 쨍. 이어 맥주를 입으로 가졌다. 아. 나스프 공작님에게 그 맥주 얻어마셨던 게 며칠 전인데. 그 맥주 맛이 잊히질 않는다. 이 맥주도 맛있긴 했지만 평범한 수준이었다. 그, 마시면 꽃향기가 나는 것 같던 그 맥주. 또 마셔보고 싶다.
“기리인, 그냥 마시지 말고, 이 닭튀김하고 같이 먹어봐.”
나는 잔을 내려놓고, 포크를 집으려다가... 아, 안 되겠다. 왼손을 쭉 뻗은 상태다보니 영 불편하다.
“선생님, 잠시만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의자를 선생님쪽으로 좀 더 가져갔고, 내 생각을 눈치챈 선생님이 일어서주어 선생님 의자도 내 쪽으로 가져와 붙였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손을 마주잡고, 이번에는 나란히, 광장을 향해 앉았다.
“훨씬 낫네.”
“그쵸?”
나는 웃으며 닭튀김을 하나 포크로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오! 맛있다! 어머니가 특별한 날마다 해주시던 것보다 솔직히 훨씬 맛있다! 튀김옷 자체에 간이 되어 있는데다 엄청 바삭하고 속에서 뜨거운 육즙이 흐른다! 나는 얼른 맥주 한 모금을 함께 마셨다. 크으. 이래서 이런 맥주가 나오는구나. 이 닭튀김에 꽃향기 나는 맥주는 서로 안 맞겠다.
“맛있지?”
“네. 진짜 정말 맛있어요.”
우리는 한참, 아무 말 없이, 한 손은 여전히 놓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꼭 붙든 채, 먹고 마셨다. 급한 허기와 목마름이 해결될 때쯤에는 이미 닭튀김은 바구니 바닥에 몇 개만 남아있었고, 두 잔째의 맥주도 반쯤 비워져 있었다. 선생님의 하얀 얼굴에도 홍조가 약간 돌고 있었다.
“기리인...”
“네.”
“내가 준 손수건, 아직 가지고 있니?”
아... 나는 정말 오랜만에 그 손수건을 떠올렸다. 곱게 접혀 상자에 든 채 내 배낭 안에 들어있을 그 손수건.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들이 있게 만든 그 손수건.
“네. 누가 준 건데요. 잘 가지고 있죠.”
“그래...”
선생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킨 후, 주저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사실은... 나, 그 날 엄청 울었어.”
“언제요?”
“너한테 매몰차게 대했던 날.”
“아...”
“나중에, 너 과부하 때문에 마법 못 쓰게 되어서 앓아누웠을 때... 정말 그 날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어. 그냥 돌려보낼걸. 괜히 매몰차게 대해서 끊어내야겠다고 생각해서. 잊지도 못할 걸... 나는, 연애경험이 많은 우리 기리인은 금방 잊고 털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차인 건 처음이었어요. 확신 없이 고백했던 것도 처음이었고요. 그 날은... 글쎄요, 제 자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나는 황급히 덧붙였다. “선생님 잘못은 아니에요. 제가 그랬던 거니까요.”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 날, 더 좋은 방법이 없었을까... 하고 자꾸 생각해. 이렇게 너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고도 더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었을텐데. 아니... 지금처럼, 결국 이렇게 곁에 있을 걸, 왜 그렇게 날선 반응을 보였나 하고...”
아, 진짜.
나는 잔을 놓고, 오른손을 선생님의 머리 뒤쪽으로 가져가 받친 채, 기습적으로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놀라 동그랗게 된 눈이, 서서히 감기고, 그녀가 자신의 머리를 받친 내 팔의 옷깃을 꼭 잡는다. 천천히 녹아내리듯 그녀의 빗장이 열리고 그녀의 혀가 나를 마중나온다. 우리 둘의 혀가 뜨겁게 얽힌다. 나는, 지근거리에서 맡는 선생님의 향에 질식할 것만 같다. 나에게 흘러들어오는 선생님의 침마저도, 맥주와 닭튀김의 남은 맛이 아닌, 그 향이 나는 것 같다. 내 볼에 닿아오는 선생님의 숨결이 뜨겁다. 내 왼손을 쥐고 있는 선생님의 오른손에 힘이 꽉 들어간다. 얼마나 그렇게, 남의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키스를 나누고 있었을까. 우리는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아직 내 가까이 있는 선생님을 향해 나는 말했다.
“결국 이렇게 될 거였나 보죠. 선생님 탓도 아니고, 선생님 원망한 적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 생각 더 이상 안 했으면 좋겠어요. 알았죠.”
선생님은 눈꼬리에 눈물을 매단 채 환히 웃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 눈물을 훑어주고는,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내 손에 얼굴을 기대고, 말없이, 눈을 감았다. 맥주 때문일까. 내 손에 닿는, 선생님의 매끄러운 볼의 감촉은, 약간은 뜨거운 것 같았다.
잠시 그렇게 있던 선생님이 몸을 바로 하며 일어섰다.
“저기,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아, 네...”
선생님은 손을 놓고, 일어서서 가게 안쪽으로 향했다. 흘깃 바라본 선생님의 뒷모습은 얼굴에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나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마치 첫 연애처럼 말이다. 이게 무슨 일일까.
나는 남은 내 잔의 맥주를 비우고, 손을 들어 맥주 한 잔을 추가로 주문했다. 그리고 광장 쪽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을 구경하며. 제도에는 선남선녀들이 많구나. 잘 생긴 남자도, 예쁜 여자도 많다. 예를 들면 저기 지나가는... 어?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이 내 쪽으로 다가온다. 어라?
“주인님?”
“...남들 앞에서는 그 얘기 하지 말라고 그랬죠.”
“주인님!”
아주 작게 ‘주인님’ 하고 부르며 이브 씨가 내 앞에 쪼르르 달려왔다. 아. 곤란하다. 곤란해 죽겠다. 이 여자는 또 왜 하필이면 지금 여기를 지나가냐. 선생님이 이 여자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제발, 이상한 발언은 하지 마라...
“어쩐 일이세요? 광장까지?”
“데이트 중입니다.”
그녀의 안색을 유심히 살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냥 ‘그러시구나~’ 하는 느낌?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궁금해하는 것도 아니다. 뭐지, 정말...
“저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광장 건너편 저 쪽이 저희 집이거든요.”
“아... 네.”
소리없는 축객령이었는데, 그녀는 그 축객령을 무시하고 가까이 다가왔다.
“주인님, 어쩜 그 뒤로 연락을 한 번도 안 주세요. 이 노예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주인님 소리 하지 말라고 했죠.”
“괜찮아요. 다들 안 들릴 거에요.”
아오...
“이렇게 말을 안 듣는 주제에 무슨 주인님이에요.”
“그래요, 저 말 안 듣는 노예에요... 주인님의 훈육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아악! 진짜! 이 여자가 그 때 완전 미쳐버렸나!
“기리인? 이 분은 누구시니?”
내 등 뒤에서, 약간은 차가운 느낌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작품 후기 ============================
자, 캣파이트, 레디!
eastarea 님 // 여름 쯤에 챕터 사이에 오마케 하나 넣을까요? ㅎㅎ 감사합니다!
melontea 님 // 그러게요 월요일이네요... 모두모두 힘내세요! 님은 더 힘내세요!
화이트프레페 님 // 제가 저 사람들 대화 상상해보다가 머리가 막 아픕니다 ㅠㅠㅋ
|라랄라랄라| 님 // 추천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