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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177화 (177/309)

00177 7. 황태자의 암살을 막아라...?! =========================

나는 잠시 굳었다가, 아직 긴장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아직 뭐 잘못한 것도 아니고, 이브 씨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니고... 나는 이브 씨와 잠시, 아주 잠시 눈을 맞추었다. 엉뚱한 소리 하지 마요. 그리고, ‘시스템’, 좀 도와줘. 나 혼자만 대처하면 실수해버릴 것 같아.

‘띠링!’

<냉철이 발동됩니다.>

<고급 언변이 발동됩니다. 현재 스탯은 92입니다.>

이제는 나도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 것 같다. 발동되지 않아도 내가 냉철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혀가 잘 안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능력, 그리고 내가 쌓아온 경험들이 반영된 수치가 저것이고, 즉 내가 나대로 지내면 저 수치만큼이 발휘되는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발동’되면, 그 수치가 다시 한 번 나에게 작용한다. 그래서 내가 더욱 집중해서 행동할 수 있게 해 준다. 자, 정신 차리자. 내가 처신 잘못하면 두 여자 모두 나에게 삐지는 결과가 온다.

“선생님, 이쪽은 이브 오르테 씨에요. 제국 대학에서 강의하시는 교수님이세요. 전공은 역사학과 마학이세요. 오르테 씨, 이 쪽은 요안나 이스카 씨. 제 은사시고, 아카데미에서 저를 주제로 공동으로 연구하시는 분이세요.”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둘 사이에 불꽃이 팍 튀는 느낌이었다. 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엄청나게 둘 사이에서 오갔다. 선생님은 은근 자신을 나중에 소개한 것이 기분 좋은 것 같았고, 그와는 반대로 이브 씨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조금 전에 ‘데이트 중’이었다고 했던 걸 기억하는 모양이다. 노예니 어쩌니 해도 질투는 숨길 수 없는 모양이다.

“오르테 씨? 만나서 반가워요. 우리 기리인을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기리인이라니...

“네, 반갑습니다, 이스카 씨. 앞으로 종종 뵐 것 같은데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쉽게 말하면, 선생님은 ‘기리인은 내 꺼니까 손댈 생각은 하지 마’라고 선제공격을 날렸고, 이브 씨는 ‘무슨 소릴, 어차피 같이 연구할 거니까 그런 소리 마시지?’라고 받아쳤다. 현재까지는 동점...이 아니고. 아. 차마 못 끼어들겠다. 누구 편을 들든, 나중에 후폭풍이 장난 아닐 것 같다. 그러는 동안에도 두 사람은 기싸움을 무지 하고 있었다.

“잠시 합석해도 될까요?”

“어머, 죄송해요. 지금은 우리 기리인이랑 개. 인. 적. 인. 이야기 중이라서요.”

“어머, 그렇군요. 어차피 앞으로 공동연구를 위해서는 많이 친해져야 할 텐데, 우리 이스카 씨는 그럴 생각이 적으신 모양이네요. 기리인 경을 위해서는 가능성이 다양한 게 좋지 않겠어요?”

“다양한 가능성도 중요하지만, 연구자가 중심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요.”

“중심을 잡으시는 것이 너무 앞만 보고 나가시는 거 아닐까 걱정이 돼서 드리는 말씀이랍니다.”

으아. 주변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 더 뒀다가는 서로 머리채 붙잡고 싸우겠다. ...그래, 경험이 있다. 머리채 붙잡고 싸우는 두 여자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는 건 정말 못 할 짓이다. 그리고 그녀들이 나보다 싸움을 더 잘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뜯어말리지도 못하는 것도 말이다. 에휴. 그나저나 이런 타입의 싸움은 나만 손해보는데...

“그만.”

은근 두 사람은 나를 의식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만’이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사람 다 씩씩대긴 하면서도 입은 닫았다. 아. 싫다 싫어 정말. 왜 이런 불편한 위치에 있어야 하는 건지.

“오르테 씨.”

“이브라고 불러달라고 했잖아요?”

유들유들하게 나오는 이브 씨와, 두 눈에 갑자기 등불 하나씩 켜고 확 바라보는 선생님. 나는 그만 하라는 듯 두 손을 들어올려 두 사람에게 손바닥을 내보였다.

“우선 진정하시죠. 오르테 씨 말대로 두 사람 모두 앞으로 공동연구를 하며 자주 봐야 할 사이인데.”

지금의 내 발언도 사실은 엄청 정치적 고려를 한 발언이다. ‘오르테 씨’라고 말해서 ‘지금은 너랑 친밀한 관계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보여주어 선생님의 손을 한 번 들어주었지만, 동시에 ‘앞으로 자주 봐야 한다’는 이브 씨의 논리를 수용해 주었다. 그게 먹혀서일까, 두 사람은 다시 씩씩대면서도 말을 멈추었다.

에휴.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박쥐 스타일로 갈 수는 없다. 언제나 가운데 낀 사람만 힘들지 뭐... 우선 정리할 건 정리하자.

“오르테 씨. 죄송하지만 오늘은 돌아가주시면 어떨까요. 제가 연락드리죠.”

확 서운한 표정을 짓는 이브 씨. 하지만 나는 짐짓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저 표정에 말려서 ‘여기 있어요’ 하는 순간 난리난다. 내 표정을 살피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부탁하시니까 그렇게 할게요. 대신, 나중에 부탁 하나 들어주셔야 해요?”

...따지고 싶지만, 따지면 또 한참 소동이 벌어지니까 참자, 참아. 내 표정을 살피던 이브 씨는 씨익 웃더니, 갑자기 내 귓가로 입을 쑥 가져왔다. 선생님이 눈을 부릅뜨거나 말거나 그녀는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주인님, 불쌍한 노예를 너무 혼자두지 마세요. 얼른 주인님의 늠름한 물건을 다시 맛보고 싶어요.’

그리고는 웃으며, 어디까지나 겉으로는 정중하게 인사한 후, 발랄한 걸음걸이로 걸어갔다. 으아. 나는 선생님 편을 들어준다고 들어준 건데, 저래버리면...

“기, 리, 인, 군? 우리 얘기 좀 할까?”

그래, 이렇게 돼 버리지... 아오 진짜... 저럴 거면 노예 운운 하지나 말지. 주인을 잔뜩 곤경에 빠트려놓고는 무슨 노예야, 노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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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흥, 이라고 말은 안 했지만 그런 말이 환청으로 들려오는 동작으로 선생님은 단단히 팔짱을 끼고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하아. 이럴 거라고 생각은 했다. 진짜로 삐졌든, 아니면 삐진 척을 하는 거든, 한참 꽁해 있을 거라고, 그리고 그걸 달래줘야 하는 건 온전히 내 몫이라고... 아오. 진짜. 이브 씨, 다음에 보면 꼭 혼내줄테다.

우리는 다시 광장을 바라보는 자세로 나란히 붙어 있었다. 아까 사람들 눈을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맞추며 다정하게 붙어있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온통 ‘나 삐졌어!’라는 티를 내며 앵돌아져 있는 선생님을 내가 자꾸 달래려 드는 게 다를 뿐. ...그나저나, 연상녀가 저러니 귀엽다. 연상녀를 귀엽다고 여기는 건 아무래도 내 특기인가 보다.

“선생니임~”

“왜에.”

“저 안 볼 거에요?”

“흥.”

나는 속으로만 한숨을 삼키고 더 바짝 붙었다. 진짜 삐졌으면, 내 손길 자체를 거부하겠지. 나는 조심스럽게 선생님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선생님은 거부하려는 움직임 없이, 내 품 안에 어깨를 맡긴 채, 고개만 저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하하. 삐진 척 하는 선생님은 더 귀엽다. 나는 내 품 안의 선생님의 입가에 귀를 가져갔다.

“선생님. 얼굴 보고 싶어요.”

“치.”

말은 그렇게 해도 몸을 빼지는 않는 선생님. 보나마나 ‘나 삐진 척 할 거거든? 어서 나를 달래 줘!’하는 액션이다. 여기서 내가 잘못 대하면 진짜로 삐진다. 그때는 몇십 몇백 배는 대처하기 어려워진다. 나는 오른손을 뻗어 선생님의 왼쪽 뺨을 감싸안고, 부드럽게, 부드럽게 내 쪽으로 돌렸다.

“우읍!”

문답무용. 뭐라 말하려 하는 선생님의 입술을 나는 얼른, 하지만 부드럽게 내 입술로 덮어버렸다. 곧바로 다시 내 품 안에서 녹아드는 선생님. 몸이 내 쪽으로 돌려지며 팔이 내 목을 안아온다. 다시 우리는 혀섞어 진한 입맞춤을 한다. 다시금 나를 장악해오는 선생님의 향기를 들이마시며, 나는 선생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얼마나 그렇게, 바짝 붙어서 서로 입맞춤하고 입술과 혀를 애무했을까. 천천히, 우리 둘의 입술이 떨어진다. 나는 조심스럽게 선생님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선생님.”

“으응.”

“저 믿죠?”

“으응.”

선생님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미안. 일부러 저러는 줄 아는데... 불안해서.”

“뭐가요?”

“우리 기리인은 너무 인기가 많은 것 같아서...”

순간, 나는 선생님의 눈 안에서, 까닭을 알 수 없는, 슬픔을 보았다. 단순한 불안이 아닌 슬픔. 왜일까.

“나는 너를 묶어둘 아무런 자격도 수단도 없는데... 기리인을 세상이 놔두지를 않을 것 같아서... 너무 불안해서...”

안다. 이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를 자신 곁에 묶어두고 싶은 그녀의 마음이라는 걸. 내가 떠나지 못하게, 동정심을 자극하려는 수단이라는 걸.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거든, 무의식적인 것이든. 하지만 이 상황에서, 선생님의 눈 안에 든 슬픔을 마주한 나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저 어디 안 가요.”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던 선생님은 다시 말했다.

“불안하지 않게 해 줘.”

내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불안감의 근원이 뭘까. 왜 그녀의 눈 안에 저런 슬픔이 들어있는 것일까. 정말로 내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걸까. 모르겠다. 나는 선생님의 속을 모르겠다. 무슨 생각일까. 아니,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나는 그녀를 더 꼭 안으며, 더 격하게 그녀의 입술을 탐한다. 그녀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밧줄을 붙들 듯이 나에게 매달려온다.

“으흠.”

뒤에서 헛기침소리가 들려 나는 번뜩 정신을 차린다. 뒤에는 콧수염을 기른 사람 한 명이 서 있었다.

“실례합니다. 이 가게의 점장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네, 죄송하실 것까진 없지만 약간만 자제 부탁드립니다.”

“저... 마차 한 대만 불러 주실 수 있으실까요?”

“잠시 기다리십시오.”

선생님이 창피했던 듯 내 품에 고개를 폭 파묻고 못 들고 있는 사이, 나는 마차를 부르고, 남은 비용을 정산했다. 잠시 후 가게에 세운 깃발을 보고 제도를 돌아다니는 승용마차가 도착하자, 나는 선생님에게 말했다.

“선생님. 마차 왔어요. 바래다드릴게요. 가요.”

“저기, 기리인...”

선생님은 아까의 그 처량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같이 있어주면 안돼?”

============================ 작품 후기 ============================

두둥!

곧바로 다음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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