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3 7. 황태자의 암살을 막아라...?! =========================
한 쪽 구석에 있는 거대한 용광로를 제외하고는 그 넓은 마당이 모두 비워졌다. 한 쪽 벽면에는 지푸라기로 만든 과녁이 놓였다. 대략 거리는 6~70보 정도 되나.
“가깝군요.”
“확실히 제법 궁술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 우선 몇 발 쏴 보게.”
이 정도면 마불살을 쓸 것도 없다. 오로지 내 집중만으로 충분하다. 배운 대로, 발을 가지런히, 숨을 고르게, 머릿속에는 날아가는 화살의 선을. 마수목 화살을 물리고, 활시위를 릴리즈(release)에 걸고, 당긴다. 아무런 걸리는 것 없이 시위가 당겨진다. 톡. 쌔애애액! 텅.
“호오. 활시위를 아무런 저항 없이 당길 수 있군.”
“사실 처음에는 적응하기 꽤 힘들었습니다. 보통의 활시위를 당기는 힘이 10이라면, 이 활은 처음에 7~8의 힘을 모두 쏟아야 합니다. 이 활로 연속 발사를 할 수 있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그게 만든 의도라네. 대신 최대로 당겼을 때 조준이 훨씬 쉽지 않은가? 마지막에는 힘이 거의 안 드니까 말이야.”
나는 오른손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그래서 이 릴리즈 같은 도구도 쓰는 거겠죠? 손으로 놓으면 아무래도 떨림이 심하니까.”
“그래. 기리인 경, 이런 활은 왜 만들었다고 생각하나?”
‘경’에 반말이 약간 어색하지만, 내 나이의 세 배 넘게 먹은 분이 하니 그닥 어색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경’ 소리를 듣는 게 훨씬 더 어색하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잘 모르겠습니다.”
“결국 화살을 날리는 건 이 활대의 탄력과, 시위의 힘이라네. 그렇다면 활대를 더 강력한 것을 쓸수록, 시위를 더 강력한 것을 쓸수록, 시위를 더 멀리 당길 수록 화살은 강하겠지. 그래서 아직 군대의 궁수대에는 롱 보우(long bow)가 통하는 거지. 멀리까지 화살을 날려야 하니까 말야. 하지만 사람은 팔의 길이라는 제한이 있어. 그걸 어떻게 극복해볼까 하는 생각에서 만든 게 이 활이야. 조금만 당겨도 도르래 때문에 훨씬 더 멀리 당기는 효과를 얻지.”
디오틀라 씨는 그렇게 어려운 얘기를 하더니, 나를 보며 씩 웃었다.
“팔 힘이 버텨준다면 말이야.”
디오틀라 씨는 내 손에서 활을 받아들더니, 도르래에 뭔가 손질을 뚝딱뚝딱 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다시 활을 내밀었다.
“다시 쏴 보게.”
나는 아까처럼 활에 화살을 물리고, 시위를 당기... 으윽. 아까보다 꽤 많이 힘들다. 아까가 10이었으면 이번에는 15 정도? 못 당길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여러 발 쏘기는 쉽지 않겠다. 나는 끝까지 시위를 당겼다. 조준이 어렵지는 않다. 끝부분에서는 별로 힘이 안 드는 활이니까. 천천히, 릴리즈를 놓는다. 톡. 쐐애애액. 터엉.
“어떤가?”
“활의 위력은 확실히 강해졌군요. 하지만 이대로면 연속해서 당기기는 쉽지 않겠습니다.”
“그럼 조금 풀어야겠는데. 어디보자. 다시 이리 줘보게.”
그는 내 활을 받아들더니. 아예 도르래에서 시위를 풀어내었다. 그리고는 가지고 온 주머니에서 반쯤 투명한 뭔가를 꺼내어서는 시위 자리에 끼웠다. 장력을 확인한 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나에게 활을 넘겼다. 쏴 보라는 뜻인 것 같아서 나는 화살을 물리고 시위를 당겼다.
아까보다 쉽다. 처음보다는 약간 버겁다. 11 정도? 하지만 이 정도는 큰 부담이 안 될 것 같다. 아까의 활시위 힘이 처음에 8이고 뒤에 2라면, 지금은 처음에 8, 다음에 3 정도. 약간 후반부에 힘이 더 들어가지만, 이 정도는 내 힘으로 이겨낼 수 있다. 내 힘도 87이나 되니까. 흐읍. 톡. 쐐애애애애액! 터어엉!
어우, 아까보다 훨씬 큰 소리가 난다. 화살도 아까보다 한 뼘은 더 깊이 박혔다. 시위가 뭔가 달라졌다.
“이 시위, 뭔가요?”
“역시 사용자라 잘 아는군. 이건 남부에서 나오는 개구리형 마수의 힘줄을 가공해 만든 거라네. 힘줄 색깔이 나지?”
“네... 뭐랄까, 시위를 당기는 후반부에 더 탄력이 있어서 화살을 쭉 밀어주는 느낌이...”
“개구리라서 늘어났을 때 쭉 당겨주는 힘이 있지. 힘이 많이 드는 게 활시위로 단점인데, 컴파운드 보우에서는 전혀 문제될 게 없지. 초반에 드는 힘은 일반 시위나 특수 시위나 마찬가지니까.”
나는 시위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감촉이 묘하다. 장갑을 끼거나 하면 되니까 상관은 없겠지.
“그리고, 이리 줘 보게. 결정적인 걸 바꿔주겠네.”
디오틀라 씨는 나에게서 활을 받아가더니, 한 쪽에 있는 작업대로 가져갔다. 그는 펜치와 망치와 끌로 장착된 보석을 빼내더니, 갑자기 자신의 방 쪽으로 달려갔다. 다시 달려온 그는 품 안에서 조그만 함을 꺼냈다.
“이걸 보게.”
크기도 조금 더 크고, 색깔이 훨씬 진한 붉은 보석과 푸른 보석이 나왔다.
“이 보석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는 알겠지? 이 보석은 지금 박혀있는 것의 강화판이네. 지금은 3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제부터는 한 번의 4서클 마법을 쓰거나, 혹은 세 번 나누어 3서클 마법을 쓸 수 있네. 충전에는 하루가 필요하네.”
4서클이면 전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효율 좋은 마법들이다. 3서클 마법이 소수의 사람에게 살상능력이 있다면, 4서클은 좀 더 넓은 범위에 파괴력이 있는 마법이다.
“그리고, 여기...”
그는 어딘가에서 금속판 두 개를 가져와, 나사로 활에 결합했다.
“이걸로 활대의 힘이 더 커지고 탄력을 받아낼 수 있을 걸세.”
“이 부품은 미리 준비되어 있던 거 아닙니까?”
“...디혼이 오든, 누가 오든, 언제든 이 활이 한 번은 내게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네. 언제든 달아줄 수 있기 위해 매년 새 부품을 준비해 두었지.”
아. 이 솔직하지 못한 남자들.
“제가 가기 전에 디혼 선생님 주소 알려드릴 테니까 그리로 편지 보내세요.”
“...”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리는 디오틀라 씨. 재미있다, 재미있어.
“그럼 다 된 건가요?”
“아, 아니. 여기.”
그는 동그란 원통을 하나 내밀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건?”
“열어보게.”
열어보나마나 화살 아닌가. 내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것보다 약간은 짧은 화살이 서른 개 정도 들어 있었다. 그 끝에는 화살이 아닌 뭉툭한 원통이 달려 있었다.
“이게 뭡니까?”
“흩어지는 화살일세.”
“네?”
“대략 100보 정도 날아가면 이 통이 터지면서 자그마한 못 크기만한 화살을 흩뿌리게 되네.”
“...그게 가능합니까?”
“물론 마법의 힘이지. 통 하나당 금화 하나씩이 날아가네.”
나는 입을 쩍 벌렸다. 드로그 금화 하나면 한 사람이 한 달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살 수 있다. 그걸 화살 한 발에 날린다는 말인가.
“통은 스무 개 정도 더 있네. 아무 화살 끝에나 달아도 되니까.”
“...금화 50개가 넘는 금액 아닙니까?”
갑자기 내가 들고 있는 전통이 몇 배는 무거워진 느낌이다. 디오틀라 씨는 웃었다. 그 웃음은 ‘회한’이라고 이름붙여야 할 그런 웃음이었다.
“내가 이 활을 다시 손에 쥐어보는데, 그리고 그를 통해 내 아들의 소식을 처음으로 듣는 데 20년이 걸렸네. 20년 세월동안 마음 한 구석이 언제나 납덩어리를 달아놓은 것처럼 무거웠는데, 그걸 위해서라면 금화 따위 아깝지 않아. 돈은 얼마든 벌 수 있으니까.”
저건 제도에서 잘 나가는 장인의 자존심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이런 것을 공짜로 받으면 제 천칭에 분명 안 좋을 겁니다.”
내가 신의 천칭까지 들먹이자 디오틀라 씨는 팍 인상을 썼다.
“그럼 이리 하지. 20년 후에 와서 갚게. 지인 할인 가격으로 금화 스물 다섯 개. 알았나?”
“아니...”
“알아들었으면 이만 나가게. 자네가 와서 내일 납품해야 할 것들을 손을 못 대고 있잖나. 난 바쁜 사람이란 말이야.”
아니 자기가 장인들 다 돌려보내놓고 무슨... 참. 끝까지 솔직하지 못하시네. 나는 활 상자와 전통을 바닥에 내려놓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깊이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디오틀라 씨. 나중에 꼭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됐다는 듯 손을 내저어보이는 디오틀라 씨. 민망함을 그런 식으로 감추려는 60대 할아버지를 보자니 웃음이 나왔다. 나는 웃음을 꾹 참고,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 공방을 나섰다. 입구를 나가려는데, 뒤에서 누가 불렀다.
“아, 저기!”
빨간머리 주근깨, 아까 카운터를 보던, 네라라는 여자였다.
“네?”
“저기... 아까 디혼 씨라고 그랬죠? 그 활을 준 분이.”
“네.”
“아...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아버님께서 뭐라고 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버님? 아... 그렇구나. 네라 씨는 디혼 선생님의 배다른 딸이구나. 사별하고, 디혼 선생님이 떠나가고, 그리고 나서 맞은 후처에게서 본 딸인 모양이구나. 그리고 그녀가 커서 이제 공방 일을 돕고 있구나.
“별 말씀 없으셨습니다. 20년 동안 소식을 못 듣다가 이제 저를 통해 소식을 들어서 반갑다고 하셨지요. 그 분은 지금 북부군 기사 아카데미의 교관으로 지내고 계십니다. 제게 궁술을 가르쳐주신 분도 디혼 씨입니다.”
“그렇군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네라 씨의 표정. 나는 웃으며 말했다.
“북부 대요새의 기사 아카데미로 보내면, 디혼 씨에게 편지가 닿을 겁니다. 디혼 씨는 제게 이 활을 주어서 편지를 먼저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혹 아버님께서 답장을 쓰려고 하시면 주소를 그리로 보내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저, 혹시 활에 대해 저희가 더 봐드려야 할 것이 있을 지도 모르니, 성함과 지금 지내시는 곳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네. 제 이름은 기리인 모스입니다. 저는 지금 에아임 로그푸스 경의 집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아! 당신이 기리인 경이군요! 세상에...”
소문이라는 거, 정말 빠르구나...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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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인, 왜 이리 안절부절 못하니?”
“제가 뭘요?”
“지금 너 오줌마려운 강아지 같아. 기다려 봐. 아직 해도 안 졌구만.”
“저 완전 멀쩡한데요. 그나저나 왜 이리 안 오나...”
현관문 앞에 나는 형과 나란히 서 있었다. 형은 ‘너 니 꼬라지를 알긴 하냐’는 빙글거리는 웃음을 띠고, 말로만 놀리지 않을 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눈길은 골목길 끝에 향해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서 있었을까, 드디어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가 보였다. 마차가 천천히 이 집 앞에 와서, 멈춰섰다. 마부가 내려서, 마차 문을 열고, 손을 내밀자, 흰 블라우스에 긴 진홍색 치마를 입은 선생님이 마차에서 내렸다.
“선생님!”
나는 황급히 달려가, 마부가 잡지 않은 선생님의 반대쪽 손을 잡았다. 선생님은 살포시 웃으며, 마차 계단을 내려왔다.
============================ 작품 후기 ============================
토론회 보다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 편입니다.
내일 중에 꼭 세 편 올리겠습니다.
설문조사를 마감합니다. 제목도, 구성도 그대로 두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설문에 참여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찾아서 읽어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제가 이 글을 쓰게 해 주는 원동력입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넣어드렸습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