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5 7. 황태자의 암살을 막아라...?! =========================
형은 말을 이었다.
“그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닌데. 어쨌든, 레이디 요안나도 어제 느끼셨겠지만 이미 기리인은 사건의 중심에 있어요.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차라리, 모든 걸 빨리 마무리짓고, 연구에 전념하는 게 나을 겁니다. 레이디께서도 안식년이 끝났다 해서 기리인을 두고 떠나실 수는 없으시겠죠?”
순간 나는 엄청 신경이 쓰였다. 아닌척 하면서 선생님의 반응을 살폈다. 선생님은 내가 그러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나비가 꽃을 떠나는 일은 있어도 꽃이 나비를 떠나는 일은 없죠.”
“시적이시네요.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제 판단은 그렇습니다. 제국 대학이나 대신전이 불만을 가진다 해도, 빠르게 황태자 저하와 얽힌 건을 마무리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연구를 추진하는 것이 낫습니다. 두 가지를 모두 하다가는, 운이 없으면 연구 관련 세력들과 황태자 관련 세력들간에 기리인을 매개로 해서 결합이 일어나 버릴 수도 있어요. 그리 되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정치에 휘말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군요. 에아임 경의 말에 동의해요. 기리인의 일이 빨리 끝나도록 돕는 것이 좋겠군요.”
“네. 선생님께서 기리인을 많이 도와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제가요? 저는 그냥 마법사일 뿐인데...”
“아뇨. 레이디 요안나는 여러 점들이 장점이지만, 무엇보다 ‘기리인이 믿을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 가장 큽니다. 지금 기리인은 너무 빠르게 중심으로 떠오른 나머지 주변에 연결된 사람이 없습니다. 아직 ‘이해타산을 넘어 무조건 그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이 부족합니다. 저 혼자만으로는 역부족일 때가 많습니다. 레이디가 계시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 이유라면 거절할 수 없죠. 기리인을 돕겠습니다.”
형은 웃으며 “감사합니다.” 라고 고개를 숙였다. 덩달아 나도 고개를 숙였다. 이어 형은 약간은 짓궂은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께도 이 방을 내어드렸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저희 집에는 어린 아이가 있어 주무시고 가시는 건 좀 곤란할 것 같습니다. 대신 기리인이 이 방에 있는 한 자유롭게 오셨다 가시는 것은 가장의 권한으로 허락하겠습니다. 기리인이 외박하는 것보다는 그게 더 안전할 것 같군요. 대신, 기리인. 레이디 요안나. 조용히만 부탁드립니다.”
진짜로 동생의 연애를 감독하는 형을 만난 기분이다. 우리는 별수없이 “네에.”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형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오실 때 말 없이 오셔도 되고, 가실 때 본채에 인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쉬시다 가십시오. 따로 인사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형은 벌떡 일어났다. 우리가 당황해서 일어서자, 형은 요안나 선생님 쪽으로 고개를 숙여보인 후 자리를 떴다. 선생님이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는 동안, 나는 황급히 형을 쫓아 나갔다. 형을 따라 나가 별채의 문을 닫자, 형은 빙글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형...”
“음? 왜? 걱정하지 마라. 테밀하고도 이야기 다 해 둔 거다. 테밀이 요안나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는데, 오늘 하는 거 보고 마음에 들었나 보더라.”
“......”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이 사람에게 얼마나 빚지고 있는 걸까. 형은 언제나처럼 내 머리를 헤집었다.
“야야, 표정이 왜 그러냐. 얼굴 펴 임마. 형이 돼서 동생의 연애사업도 잘 되게 도와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
“형......”
“좋은 사람 같더라. 울리지 말고, 잘 해줘라. 그럼 난 간다.”
나는 형이 본관의 문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마법을 잃은 후 나에게 생긴 가장 좋은 일은 저렇게 이해심 많은 형을 사귀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형을 절대적으로 믿는 것과 별개로, 나는 다른 누군가에게 형처럼 해 줄 수 있을까.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선생님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약간 민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에아임 씨는?”
“들어가셨어요.”
“그래...”
형이 무대를 깔아주니까 정작 어색해서 뭘 하기 힘들다.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우리 둘은 약간 꼼지락거리고만 있었다.
“저기...”
“네, 선생님.”
“내일은 황궁에 들어가지?”
“네. 황태자 저하와 점심식사를 하고 궁도장에 갈 것 같아요.”
“그래...”
그리고 또 꼼지락. 아. 시간이 아깝다.
“선생님.”
“으, 응?”
“옆으로 가도 돼요?”
선생님은 아무 말이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왜 이래. 할 거 다 했으면서 새삼스럽게. 나는 의자를 끌어 선생님 옆에 놓고 거기에 앉았다. 선생님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손을 잡자 어제처럼 내 손을 맞잡아왔다.
“선생님.”
“응...”
“무슨 생각하세요?”
“그냥...”
“그냥?”
“좋아서.”
약간 얼굴이 붉어진 채 선생님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은 아까부터 쭉 이러고 싶었거든.”
“저두요.”
자연스럽게, 우리 둘의 얼굴이 가까워진다. 입술이 맞닿고, 어제 몇 번이나 나누었던 입맞춤을 다시 나눈다. 서로의 혀가 얽히고 나는 다시금 선생님의 향기에 질식할 것만 같은 착각을 느낀다.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의 입술이 떨어졌을 때 우리는 둘 다 숨을 헐떡이고 있다. 문득 나는 장난을 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선생님.”
“응?”
“소리 안 나가게 마법 얼른 써 주세요.”
선생님이 손동작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얼른 테이블 아래로 기어들어가, 선생님의 빨간 긴 치맛자락을 젖히고, 그 안으로 기어든다.
“뭐... 야! 꺅! 하, 하지마! 아앙! 하... 하지 마아...! 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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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늘은 유치원에 안 간다는 뢰다와 잠시 공놀이를 해 준 다음, 옷을 갈아입고 활과 화살을 챙기고 나니 마침맞게 집 앞에 마차가 와서 섰다. 오늘 나를 맞으러 온 건 토르히였다. ...생긴 것도 비슷비슷한데다 다들 말이 없어서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그냥 1호, 2호, 3호라고 할까... 아냐, 그럼 나는 누가 1호고 누가 2호인지 헷갈릴거야.
“안녕하세요?”
짐짓 활기차게 인사해 봤지만 묵묵부답인 토르히는 그저 고개만 끄덕여 보일 뿐이었다. 하아.
“기리인, 잘 다녀와. 조심하고.”
“네, 누나. 뢰다야, 삼촌 다녀올게.”
“응, 삼촌! 있다가 또 공놀이 해!”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마차에 올라탔다. 손에는 조금 전에 형이 사람을 보내어 전해 준 문서를 든 채였다. 잊지 말자. 나는 높은 분과 친분을 다지러 가는 것도, 시간을 때우러 가는 것도 아니다. 나는 손으로 허공에 뜬 버튼을 눌러 ‘퀘스트’ 창을 띄웠다.
<메인 퀘스트(3) - 황태자의 암살을 막아라>
<#14. 네놈을 추적해주마>
<이제, 황태자의 목숨을 노리는 ‘조직’이 어떤 것인지, 혹은 정말로 융파트와 나스프가 연합한 것인지, 그 실체를 추적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다행히 전 단계에서 성공적인 퀘스트 완료로 난이도가 하락하였습니다.>
<1) 그들이 보내는 정보를 보석으로 수신하세요.>
<2) 기밀 서류를 분석하세요.>
<3)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조직의 구성원을 추적해야 합니다.>
<난이도 : A>
<퀘스트 보상 : 연계 퀘스트로 이어집니다.>
그래. 나는 지금 이걸 하러 들어가는 거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내가 크게 심호흡을 하는 동안, 마차는 어느새 황궁의 정문을 지나고 있었다.
황궁 외성은 이 넓은 제국을 운영하는 중추적인 기관들이 있는 곳이다. 당연히 조용할 리가 없다. 시끌시끌한 그 공간을 지나자 내성은 바깥보다는 훨씬 덜 시끄러웠다. 머릿수건을 하고 시녀복을 입은 시녀들이 머리를 숙인 채 여남은 명씩 줄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마차가 멈추었다.
“내리십시오, 기리인 경.”
잠시 넋을 놓고 있던 나는 그게 토르히의 목소리라는 걸 깨닫고 깜짝 놀랐다. 황급히 짐을 챙겨 내리자, 세상에나. 황태자 저하가 직접 동궁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나는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저하를 뵈옵니다.”
“일어서게.”
나는 일어섰지만, 고개는 숙이고 있었다. 약식이지만 예법대로. 그런데 황태자 저하가 계단을 내려와서는 친밀하게 내 어깨를 감쌌다.
“저, 저하!”
“가세. 기다리고 있었네.”
부쩍 친밀하게 대하며 황태자 저하는 나를 안으로 데려갔다. 궁내에 소문이 돌게 하기 위함이겠군. 그렇다면 내가 여기서 어색한 태도를 보이는 건 일을 망치는 거겠군. 나는 짐짓 웃으며, 하지만 예법에 어긋나지 않게 말은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저하와 함께 걸어 동궁 안, 저하의 침전으로 향했다.
“잘 지냈나?”
“네, 저하. 심려해주신 덕에 무탈했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이봐, 전에 했던 이야기 말인데. 기억나나? 자네가 해 줬던 이야기 말이야.”
눈짓, 눈짓. 말을 맞추라는 거구만? 이 정도야 어렵지 않지.
“제가 레카 시에서 벌어졌던 제국 중부 격투기왕 왕좌 방어전을 참관했을 때의 일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저하가 눈으로 미소짓는다.
“그래, 그거 말일세. 그 이야기 다시 좀 해 줄 수 없겠나?”
“분부 받들겠습니다, 저하. 제가 도착했을 당시는 크주크 가하라는 자가 격투왕위를 9회째 방어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소신에게 운이 있어서인지 소신은 미틱 시에서 레카 시로 내려가는 배에서 그 크주크라는 자와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 작품 후기 ============================
씬을 또 쓰면 지겹다!고 하실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암시만 했습니다.
뭐 언젠가 또 씬이 나오겠죠 ㅎㅎ;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본편 진도 나가야죠.
바로 다음편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