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6 7. 황태자의 암살을 막아라...?! =========================
그닥 짧다고는 볼 수 없는 복도를 걷는 동안 나는 크주크 형의 왕좌방어전 이야기를 황태자에게 해 주었다. 원래는 ‘내가 저하와 잡담을 할 정도로 친하다’는 걸 시녀들을 통해 보여주려는 의도였지만, 내 얘기가 재미있어서인지 저하는 곧 내 이야기에 푹 빠졌다.
“그래서?”
“그래서 승기를 잡은 크주크가, 에프오의 다리를 걷어차는 척 하다가 그 자의 무릎을 그대로 밟아 버렸사옵니다.”
“무릎을... 밟았다고?”
“네, 저하.”
“잠시만... 무릎을 밟으면, 다리가 뒤로 꺾여버리는 것 아닌가?”
“맞사옵니다, 저하. 그 후로 에프오라는 자는 다리를 쓰지 못했다고 들었사옵니다. 실제로 시합중에도 그 이후 그는 다리를 쓰지 못했사옵니다. 소신의 판단으로는 다리를 빠른 시간에 봉쇄하기 위해 그런 것으로 판단하옵니다.”
“으으... 아무리 사제가 대기하고 있다 해도 그런 다리는 영영 불구로 남을 게 아닌가. 끔찍하군...”
“그렇사옵니다, 저하. 소신이 보기에도 그 광경은 정말 끔찍했사옵니다.”
“으으... 물론 인간이라는 동물이 그런 걸 보며 흥분한다는 건 알지만...”
어느새 우리는 저하의 침전에 들어왔다. 저하는 방에 들어오자 내 어깨를 놓아주었지만, 표정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누스마, 거기 있는가?”
“네, 저하.”
누스마 씨가 달려왔다.
“오늘의 일정은 말한대로, 오후는 비워두었겠지?”
“네, 저하. 허나 재상부에서 자주는 곤란하다고...”
“내가 다른 시간에 가서 메꿔줄 것이니 그렇게 전하라. 조금 이르지만 점심 식사를 하겠다. 기리인 경과 식사할 것이니 이리로 식사를 가져오라.”
“네, 저하. 그리 하겠습니다.”
누스마가 사라지자 저하는 나를 보며 웃으며 말했다.
“기리인 경, 하나 깜빡하고 말하지 못한 가능성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알겠나?”
“어떤 가능성 말입니까?”
“내가 자네와 자주 독대하게 되면 말야...”
“저하께서 남색(男色)을 즐기시기 때문에 황태자비를 들이지 않으시는 것이고, 제가 새 애인이라는 소문이 돌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저하는 눈만 깜빡깜빡이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가차없군. 만약 그런 소문이 돈다면 어쩔 셈인가?”
“제가 여자를 ‘꼬시는’ 모습이라도 보여줄까요?”
“하하하! 아서게, 기리인 경. 난 자네가 황궁 경비대원에 의해 끌려나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아.”
“그러니 얼른 끝내야겠지요. 길어져서 좋을 것이 없으니까 말입니다. 호사가들의 가십이 아니더라도, 저하께서 저라는 한 사람에게 총애를 내리는 것은 이후 분명 좋지 않은 이야기가 나올 것입니다.”
다시 눈을 깜빡깜빡이는 저하. 이번에는 웃음이 아니라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는 참 욕심이 없군. 보통은 황태자와 친해질 계기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해서든 그 기회를 잡으려 들지 않나? 자네는 이미 친분을 쌓은 상태에서도 그걸 활용하기는커녕 오히려 멀어지려 하니 말이야.”
“저하, 소신에게...”
“저에게.”
“저에게 욕심이 없다는 말은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그렇게 성인이 아닙니다.”
저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데?”
“저하. 제가 금전이나 권력을 얻자고 저하를 도우면 저를 저하에게 소개해 준 에아임 경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저는 해야만 하는 일이 있습니다, 저하.”
“흐음.”
재미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던 저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말했다.
“뭐, 차차 얘기해보면 되겠지. 우선은 식사가 올 때까지 아까 그 이야기를 좀 더 해 주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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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스마의 귀를 의식해 우리는 식사하는 동안에는, 그러니까 누스마가 옆에서 식사 시중을 드는 동안에는 계속 잡담을 했다. 간단한 점심식사를 마친 후 누스마가 그릇을 내가고 차를 내오자, 저하는 “잠시 둘만 이야기하겠다. 누스마, 궁도장에 가서 활쏘기를 하겠다고 준비시키고 오너라.” 라고 말했고, 누스마는 잠시의 주저도 없이 “네, 저하.” 하고 고개를 숙인 후 방을 나섰다. 주어진 차를 홀짝인 후 저하가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비르히. 문 밖을 지켜라.”
방 한 구석에 가구인 것처럼 서 있던 비르히가 뚜벅뚜벅 걸어와서는 문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어우. 무섭다. 보통 사람처럼 피와 살로 이루어지지 않은 자동인형 같다.
“자, 이제 얘기해보지.”
“먼저 이걸 받으십시오.”
나는 에아임 형이 아침에 넘겨준 서류를 저하에게 건넸다.
“이건...”
“저하. 저하와 저, 그리고 레이디 요안나가 가지고 나온 서류는 나스프의 에아뉘 기사단과 융파트의 님크 기사단의 연명부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동그라미와 X표가 되어 있었지요. 기억하십니까.”
“기억하다마다.”
“에아임 경은 플레이크 모툼 경과 함께 이 명단을 분석했다 합니다. 평소의 성향, 출신 등 기존에 수사 기사단이 파악하고 있는 자료들과 대조하여 본 결과를 경이 저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어서 말하게.”
“동그라미가 두 개 쳐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조직’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저하는 손에 쥐고 있는 목록을 확인했다.
“님크에 세 명, 에아뉘에 두 명이군... 허허. 상당히 고위직이군?”
“그리고 이들에 의해 포섭되었거나 완전히 자발적은 아닌 소극적인 협력관계 정도를 맺고 있는 사람이 그냥 동그라미입니다.”
“대략 스무 명 정도 되는군.”
‘띠링!’
<메인 퀘스트(3) - 황태자의 암살을 막아라>
<#14. 네놈을 추적해주마 - 업데이트>
<2) 기밀 서류를 분석하세요. - 성공!>
<당신이 한 것은 아니지만, 기밀 서류에 적힌 정보를 성공적으로 분류하였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을 삼키고 저하에게 물었다.
“저하, 어떠십니까? 이 정도의 인원이라면 반역이 가능하리라 보시는지요?”
저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리 기사단이 충성심이 강하고 상명하복의 관계가 확실하다 해도, 이 정도의 인원으로는 기사단 전체를 장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기사단 전체를 장악하지 못한다면, 당장 그 기사단의 일부를 상대해야 하므로 전력은 급격히 하락하게 될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혜안이십니다, 저하. 실제로 모툼 경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고 에아임 경이 전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군. 나는 이 조직으로부터 협박 편지를 받은 것이 꽤 오래 되었다. 내가 성년이 되어 아바마마께서 정사를 보시는 것을 돕기 시작하면서부터였지. 그리고 7년이 지났어. 그렇다면 왜 그들은 그 기간동안 이 정도밖에 하지 못한 것일까? 최선을 다 했는데 이 정도인 것일까?”
“아직 결론을 내리기엔 이른 줄로 압니다, 저하. 그런데, 혹 그 수정은 응답이 왔습니까?”
저하는 자신의 머리를 딱! 쳤다. 아프겠다.
“그래! 어젯밤에 혼자 침대에 누워 있는데 불이 번쩍이기 시작했어. 다행히 해군 암호를 쓰더군.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골머리 앓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야. 여기... 그 내용을 적어두었네.”
“솔직히 적어는 놨지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우리가 쓰는 언어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저하. 이것은 마법사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마법어입니다.”
“마법어?”
“별 것 아닙니다, 저하. 마법을 우리가 쓰는 언어로 말하기 위해 통상언어에 부가적으로 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알아보기 어려운 것은 아니나, 저하께서는 지금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아서 잘 못 알아보시는 것 같습니다.”
“흐음.”
나는 종이에 다시 이렇게 적었다.
그걸 본 저하의 안색이 변했다.
“밤에 알리시아를 본다고?”
“저하, 저하께서 알리시아 양을 만나러 가거나 하시기로 한 일이 있으십니까?”
저하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 나는 혼담을 정보를 추적하기 위해 만들었을 뿐, 알리시아 양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냥 이름만 빌렸을 뿐이다. 최근 들어 만난 적은 없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런가. 그래서 그 때 그런 식으로 말을...
“무슨 일인가, 기리인 경?”
“저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괜찮다. 말해보라.”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바른 자세로 자세를 고쳐앉으며 다시 말했다.
“저하. 소신이 하는 얘기가 황실 모욕죄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은 추측이고 근거가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저하도 자세를 고쳐앉으며 말했다.
“황좌에 맹세코 자네에게 죄를 묻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에아임 경의 보고서로부터 나는 자네의 추리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들어 잘 알고 있다. 기탄없이 말하도록 하라.”
“네, 저하.”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있었던 일과 내 해석을 저하에게 말해주었다. 저하는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얼굴이 파래졌다가, 빨개졌다가 하는 등 표정을 몇 차례나 바꾸었다.
“그랬군...”
“저하, 저하의 잘못이 아니옵니다.”
“그래. 내 잘못은 아니지. 하나 그것이 실수가 된 것도 맞지 않는가.”
저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 작품 후기 ============================
혹시나 첨언하지만 기리인과 황태자가 딥다크의 길로 갈 일은 없습니다.;;;
읽어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시는 여러분들 덕입니다.
eastarea 님 // 언제나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화이트프레페 님 // 그럼 얼마전 오마케에서 쓴 지골로의 길로...?
박성빈 님 // 그건 캐사기군요. 그것까지 넣으면 좀 너무하다 싶군요 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