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8 7. 황태자의 암살을 막아라...?!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두근대지만, 무서워서는 아니다. 물론 겁이 안 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방비는 다 했다. 이렇게 했는데도 뭔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나온다면... 뭐, 다른 이들을 믿는 수밖에.
“기다리고 있었다니... 참 대담하군.”
그렇게 말하는 주제에 아무런 주저 없이 뚜벅뚜벅 걸어와 척하니 내 앞의 의자에 앉는 프그단 경. 여기서 일어나라고 하는 건 없어보이겠지.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확률은 반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경께서 오시거나 경보다 더 높은 사람이 오시거나. 경에게 정보가 모인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경이 황궁 내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거나, 혹은 경에게 모인 정보가 누군가에게 전달되거나 할 거라고 생각했지요.”
“호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차 같은 걸 내오기가 좀 그렇군요. 저도 더부살이 하고 있는 입장이라.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허, 참. 담대한 건가, 생각이 없는 건가?”
둘 다 아닌데요.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해 줄 필요는 없겠지. 그, 날카롭게 생긴 남자가 경의 뒤에 와서 섰다.
“저 분은 누구십니까?”
“내 호위 정도로 생각하게.”
“오늘 경과 나눌 이야기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습니까?”
“그건 아니지.”
그 남자가 눈을 감는다. 젠장, 마법이다!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펼쳐진다. 나에게 마법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물리적 실체를 지닌 마법은 통한다. 나를 바로 태워죽이지는 않을 거다. 그랬다가는 발각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포획 마법 같은, 줄이 나타나 나를 묶는 이런 것만 아니라면 상관 없다! 내가 의자를 뒤로 밀치며 벌떡 일어나는 사이, 그 남자는 나에게 손을 향하고 말한다.
“마비(petrify).”
하지만,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재빨리 의자를 돌아 그 남자에게 달려든다.
“뭐, 뭣?!”
반응하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크주크 형이 배에서 나에게 가르쳐준 것을 떠올린다. 균형 감각. 빠른 스텝. 나는 잰걸음으로 빠르게 그 마법사와의 거리를 좁힌다. 하지만 그 남자도 만만치 않았다. 말을 막아야 한다! 나는 형이 시합 때 했던 것처럼 빠르게 주먹으로 그 남자의 배를 올려친다. 하지만, 그 남자도 어지간한지, “우욱!” 하면서도 내 팔을 잡고 다시 외우던 주문을 완성시켰다.
“슬립(sleep)!”
휴우... 다행이다. 나에게는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저 마법은 확실히 안 통한다는 걸 아는 마법이니까. 곧, 그 남자는, 조용히, 배를 움켜쥔 자세로, 바닥으로 허물어지면서, 깊이 잠든다. 잠시 기다리자 코까지 골기 시작한다. 뭐지. 갈 곳을 잃은 마법이 저 놈에게 간 건가.
“뭐, 뭐야, 이게 어떻게 된...”
나는 숨을 고르며, 프그단 경을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것이 믿는 카드였던 건가.
“평균적인 슬립 마법의 지속시간은 두 시간 정도죠. 그러니 그 안에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죠.”
“아니, 어떻게 마법이...”
나는 약간 비웃는 표정을 지어준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경의, 저에 대한 기초 조사가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알려주는 게 아닐까 합니다.”
아직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프그단 경의 앞에 앉았다.
“경이 저에 대해서 약간만 조사해 보셨어도 제가 마법이 통하지 않는 체질이라는 건 아실 수 있었을 텐데요.”
“뭐, 뭣이라고...”
경천동지할 정도로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프그단 경. 물론 놀랄 일이지만, 저렇게 턱이 빠질 정도로 놀랄 일인가. 반역의 수괴 또는 그에 준하는 인물이 뭐 이리 멘탈이 약해. 나는 의자에 다시 앉았다.
“뭐, 어쨌든. 경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건 잘 알았습니다. 실망이군요. 마비에 슬립이라. 대놓고 묶어놓고 협박을 하거나 죽이거나 하겠다는 거군요.”
“아...”
아니, 왜 이리 정신을 못 차려. 정신 집중을 흐트러트리는 건 이렇게 협상이나 심문 같은 걸 할 때 당연히 좋은 거지만, 저렇게 충격 먹어서야... ‘시스템’, 부탁해.
<고급 언변의 하부 기능인 ‘유도’가 발동합니다. 당신은 대화 상대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거나, 그 이야기를 토대로 당신이 원하는 쪽으로 협상을 전개하거나 할 수 있습니다. 유도의 스킬레벨은 현재 Lv. 2이며, 고급 언변 스탯 92의 보정을 받습니다.>
<고급 언변의 하부 기능인 ‘외교’가 발동합니다. 협상 자리에서 외교술에 준하는 매끄러운 화술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외교의 스킬레벨은 현재 Lv. 1이며, 고급 언변 스탯 92의 보정을 받습니다.>
좋아. 나는 손가락을 빠르게 두 번 튕겼다. 딱, 딱.
“으, 응?”
“정신 좀 차리십시오. 이 야밤에 찾아와서 뭐 하는 짓입니까.”
“아, 미안하네... 내가...”
아직 횡설수설하고 있는 프그단 경.
“앉으세요.”
그는 고분고분히 자리에 앉았다.
‘정보 확인.’
<이름 : 프그단 알쿠
나이 : ??
HP : 1920/1920
힘 : 72
민첩 : 75
지력 : 88
마나친화력 : 87
매력 : 85
지구력 : 66
특수 : 언변 88
스킬 : 위장 A0, ???>
<황궁의 궁내부 장관입니다. 나스프 공작에 의해 천거되었습니다. 궁내부에서 일한 지 30년이 넘는 베테랑입니다.>
<그러나 현재 황궁 내 음모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띠링!’
<메인 퀘스트(3) - 황태자의 암살을 막아라>
<#14. 네놈을 추적해주마 - 완료!>
<1) 그들이 보내는 정보를 보석으로 수신하세요. - 완료!>
<2) 기밀 서류를 분석하세요. - 완료!>
<3)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조직의 구성원을 추적해야 합니다. - 완료!>
<서류를 통해 하부 기사단의 인물을 파악했으며, 또한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 가장 머리인 프그단을 앞에 앉혀놓는 데 성공했습니다. 추적에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보상으로 연계 퀘스트가 진행됩니다.>
‘띠링!’
<메인 퀘스트(3) - 황태자의 암살을 막아라>
<#15. 추궁>
<프그단을 당신의 앞에 앉혔습니다. 프그단은 현재 상당히 동요하고 있습니다. 그를 몰아붙여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왜 황태자를 암살하려 하는지 추궁해내세요.>
<덧붙여, 그의 개인 정보에서도 확인하였듯이 그에게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 비밀을 밝혀낼 시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난이도 : S>
<난이도 재판정... 프그단의 당황한 상태를 감안하여 난이도는 A-로 조정됩니다.>
<보상으로 연계 퀘스트가 진행됩니다.>
아직도 끝이 아니냐... 진짜 징하다, 징해. 아무리 메인 퀘스트라지만, 이건 너무한 것 아니냐. 그러고 보면, 아직까지 내 진짜 메인 퀘스트인 ‘세계의 진실’에는 다가가지도 못했는데... 아. 마음은 급하고. 할 일은 많고.
우선 내 눈 앞의 일부터 처리하도록 하자.
“프그단 경. 왜 그랬습니까?”
“뭘 말인가?”
짐짓,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프그단 경. 아니, 이 시점에 와서 순진한 연기란 말인가. 말려들면 안 된다.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캐내기 위한 수작일 수도 있다. 우선은 빼도박도 못할 것부터.
“님크의 부단장, 제2연대장, 제3연대장, 에아뉘의 단장, 작전참모.”
과연, 프그단 경의 안색이 확 변했다.
“어떻게 알았는가?”
“추측해 보시지요.”
“어느 마법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의 안색이 다소 풀어졌다.
“그런 건 증거가 안 된다는 걸 잘 알텐데?”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저 인물들이 경과 관련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경이 마음을 먹으면 손발을 맞춰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사실 아닙니까?”
“자네가 검사인가? 판사인가?”
나한테 말할 이유가 없다고? 헹. 과연 그럴까.
“글쎄요. 당신 집무실의 바닥 목재 중 의자 기둥이 위치하는 부분의 목재를 살짝 들어올려 뒤집으면 나타나는 서류들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핏기가 사르르 빠져나가는 그의 얼굴을 보며, 의외로 감정을 잘 못 숨기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건 아닐 거다. 위장이 A0나 되는 사람이니까. 그만큼 지금 내용이 큰 충이라는 거겠지.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군.”
“아직도 이럴 겁니까. 내가 아까 얘기한 사람들이 모두 거기에서 건진 목록에서 나왔다는 걸 아직 모르겠습니까?”
약간 목소리를 높여 추궁하자, 그는 입을 조개처럼 꽉 닫았다. 묵비권을 행사하겠다, 그거지. 나는 피식 웃었다.
“뭐, 상관없겠지요. 지금 플레이크 모툼 경이 지휘하는 일부 정예 수사기사가 황태자 저하와 함께 황궁에 진입해, 궁내부원들 중 누스마 크세이스를 비롯해 혐의가 있는 사람을 모조리 체포 중이라는 건 알려드려야 겠군요.”
꼭 입술을 다물고 있는 프그단 경이었다. 얼마나 입술을 꼭 깨물었는지 입술에서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별로 보기 안 좋다. 나는 바지 주머니를 뒤져 손수건을 꺼내, 그의 입가를 닦아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황급히 뒤로 우당탕탕 물러났다.
“아, 안 돼!”
“뭐가 말입니까. 지금 입에서 피 나요. 닦아주려고 하는 건데 말입니다.”
“내, 내가 하겠네! 그거 이리 주게!”
흠. 내가 손수건을 내밀자, 그는 마치 거기에 더러운 것이라도 묻어있다는 듯 손끝으로 그걸 집었다. 뭐야. 이 아저씨, 왜 이래? 원래 그렇게 깔끔떠는 사람은 아닐 테고, 그러고 보니 아까 ‘안 돼’라고 했잖아? 뭐야, 내 손이 닿으면 뭔가 큰일이라도 나는 거야? 시험삼아. 나는 그가 가져가려고 들어올리고 있는 손수건의 끄트머리를 덥석 잡았다.
“왜, 왜 이러는... 아아아아아아악!”
내가 왼손으로 그의 오른손 손목을 붙잡자, 그는 저 끝이 없는 지하감옥 바닥에서 고문당하는 죄수가 내는 소리 같은, 고통과 경악, 분노, 슬픔이 뒤범벅된 긴 고함을 질렀다. 트리클 신에 맹세코 나는 건드리기만 했는데, 왜 이러지? 그렇게 아픈가?
...순간 나는 보았다.
내가 잡은 그의 팔 부분에서 조금씩, 마치 종이에 떨어진 잉크 방울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그의 팔의 피부가, 조금씩, 조금씩, 뭔가 다른 것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뭔가 다른 것이라는 것은 겸손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의 피부가, 회색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마치, 원래 이런 피부였는데, 도금이 되어있던 것처럼.
그의 옷 아래에서 그 변화는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오른팔을 따라 그의 몸 안으로 회색의 물감이 퍼지듯 회색 피부가 번지자,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키가 조금 더 커지고, 팔도 조금 더 길어지는 느낌이었다. 손가락마저도 회색이 되어서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 확실히 길이가 더 길어졌다.
그의 얼굴도 새롭게 변하고 있었다. 잿빛에 가까운 머리카락은 변화하지 않았지만, 남부인 특유의 까무잡잡한 피부가 벗겨지면서, 코가 조금 더 높아지고, 얼굴이 위아래로 조금 더 길어졌다. 그리고...
귀, 저 귀! 저 귀! 저거 뭐야! 그의 귀는 마치, 전설 속에 나오는 종족이 그랬다는 것처럼, 뾰족하게 변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자자, 빨리빨리 갑시다!
프그단을 잡는다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닐 지도 모르니까 말입니다.
찾아서 읽어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시는 여러분들 덕에 씁니다.
니코틴 님 // 그러게요. 찔끔찔끔 느는 선작에 마음이 약해졌었나 봅니다.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쓰굴 님(186편) // ㅋㅋㅋㅋㅋㅋ;;;;;
화이트프레페 님 // 지당하신 충고이십니다. 머릿속에 묻어두도록 하겠습니다.
jin-matient 님 // 아이고,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목이 안티'라는 소리는 전부터 많이 들어왔던 소리에요. 작품을 아끼는 님의 마음 충분히 전달받았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eastarea 님 // 언제나 격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