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193화 (193/309)

00193 7. 황태자의 암살을 막아라...?! =========================

“폐하, 소신의 말을 들어주소서. 소신, 그간 있었던 일을 가감없이 사실대로 폐하께 말씀드릴 것이옵니다.”

갈궜으니, 달래줘야지. 얼굴이 빨개졌다가 하얘졌다가 마구 변하는 황제 폐하는 ‘나 동요하고 있다’는 걸 온 얼굴로 드러내고 있었다.

나에게 실망을 했든, 분노를 했든, 내가 원하는 건 ‘저 놈을 건드리면 위험하다’고 나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배은망덕이고, 어이없음이고 뭐고, 일단은 내 안전을 확보한 후의 문제다. 그리고 황제를, 제국에서 가장 힘있는 사람을 상대로는 어쩔 수 없이 위험한 외줄타기를 하는 수밖에 없다. 너무 나가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물러나면 지금 상황에서 변하는 것이 없다.

그리고, 당신은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걸.

“...알았다. 말하라.”

눈치채이지 않게 속으로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등으로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폐하께서 저를 처음 보신 날,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지 못한다.”

“폐하께서는 황태자 저하가 뫼르말 가문의 여식에게 몇 달 전부터 홀려 있으며, 이것이 제국의 정계의 균형을 흔들 수 있는 짓인데 저하께서 그를 모른다고 역정을 내셨습니다. 또한 궁내부를 폐하의 처가, 즉 나스프 공작으로 대표되는 세력에 장악당해 있으며, 그로 인해 자신에게 정보망이 하나도 없음을 말씀하셨지요.”

“그랬던 것 같군. 기억력 하나는 대단하군.”

“그러면서 폐하께서는 소신에게 사교계에서 저하의 평판과, 이 혼담의 진행에 대해 알아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다음 날 저녁 무도회부터 바로 임무에 착수하였지요.”

목이 마르다. 아니, 입이 탄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차 같은 걸 얻어마실 수는 없다.

“소신은 그날 황태자 저하를 유심히 관찰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각 영지의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여기는지, 현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운이 닿아서 알리시아 양과 직접 춤을 출 수 있게 되었지요. 그 결과 저는 현 상황에 대해 대략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황제 폐하의 안색이 조금씩 침착을 찾아가고 있었다. 흐음. 다시 약간은 흔들어야겠지.

“폐하께서 저에게 진실을 말씀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설명하라.”

약간 화났나보다. 아슬아슬하다. 조심하자. 인격적으로 모욕해서는 안 된다. 혹시나 모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도 안된다.

“폐하께서는 저에게, ‘안 그래도 남부에 의해 장악된 궁내부이고, 그로 인해 남부가 힘을 얻고 있는데, 저하께서 남부의 인물과 결혼을 하게 되면 균형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폐하. 소신이 어전에서 명예 기사를 수여받고, 그 날 오찬 자리에 참여하였을 때, 나스프 공작이 폐하께 상주드린 적이 있지 않습니까?”

폐하는 생각에 잠겼고, 황태자 저하가 아, 하고 말했다.

“그래, 분명 공작령과 거래하는 주변 독립 백작령들의 세금 관련 탄원이었지.”

“그 탄원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저하는 나를 도와 줄 작정인지, 나의 대화 상대가 되어 주고 있었다. 저러면 훨씬 편하지.

“경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남부에는 몇 년째 식량 생산이 원활하지 않다.”

“이는 어전 회의에서 공유된 사항이겠지요? 남부 평원이라면 제국의 곳간 아닙니까?”

“물론이다. 나스프 공작 본인도, 그리고 추밀원도 이 해결을 위해 애쓰고 있다.”

“저는 아르논 나스프 양으로부터 한 가지 사실을 들은 바 있습니다. 남대륙으로부터 곡물을 수입할 예정이라고, 그리고 그 하역지는 동쪽 해안이 될 거라고 하더군요. 대표적으로 뫼르말 백작가의 영지 같은 곳 말입니다.”

폐하의 표정은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정확히 읽을 수는 없지만, 화가 났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히 그러겠지. 치르낙 대왕께서 남부 대수림 사이로 내신 길이 있긴 하지만, 그 길을 따라서 식량을 운반한다는 건 무리일 테니까 말이야.”

“그런데 아르논 양은 그렇게 말하더군요. 뫼르말 백작이 그걸 믿고, 안 그래도 여러 가지 배려를 해 주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무리한 요구를 많이 한다고요.”

“그래서?”

“저하. 소신은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사옵니다. 처음에 황제 폐하께서 ‘남부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말과는 정 반대로, 오히려 황태자 저하께서 비로 뫼르말 가의 여식을 맞아들이게 되면, 지금 기세가 강력한 나스프 공작가를 견제하는 바람직한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 그렇지. 내가 일부러 레이디 알리시아를 협상의 상대로 삼은 것도 그런 점이니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것을 황제 폐하나 황태자 저하께서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하루 저녁만에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이라면 황제 폐하께서도 당연히, 뫼르말 백작가를 황태자비로 맞는 것이 폐하께서 고민하셨던 궁내부의 편중과 믿을 만한 귀의 부족이라는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고, 소신 그리 여겼사옵니다.”

“...그래서?”

한참 지켜보기만 하던 황제 폐하가 입을 열었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킨 후 입을 열었다.

“그래서 고민했습니다. 왜 황제 폐하께서는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제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거였습니다. 폐하께서는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를 원하신다.”

“으음...”

이 으음 소리는 형이 낸 소리였다. 하지만 작금의 황제와 미래의 황제 어느 누구도 타박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모두 내 얘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상황을 뒤집어서 처음부터 생각했습니다. 폐하께서 만약, 황태자 저하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내가 믿게 만들 요량이셨다면? 아마 그랬으면 저는 그 날, 무도회장에서 달리 행동했을 것입니다. 고귀한 레이디들과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여러 레이디들이 가십을 벌이는 자리에 은근슬쩍 끼어, 황태자 저하의 소식을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이냐, 이렇게 물었을 것입니다. 그 하나 만으로도, 혼담이 성사되기도 전에 소문이 났다는 것만으로도 혼담에는 제동이 걸리지요. 게다가, 황후 전하께서 두 팔을 걷어붙이시고 반대에 나설 것이 분명하니까 말입니다.”

세 사람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묘하게 줄에 매달린 인형들이 생각나, 나는 웃음을 꾹 참아야 했다.

“하지만 폐하의 의도와는 달리 저는 먼저 아르논 양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고, 그 과정에서 상황을 달리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아서, 알리시아 양을 아는 사람을 한 다리 건너 만나게 되었고, 그 사람의 도움으로 알리시아 양과 직접 이야기를 해 볼 수 있게 되었지요.”

여기서부터는 저하도 아는 이야기다.

“그리고 경은 나와 알리시아 양 사이에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

“뭣?”

황제 폐하가 깜짝 놀라 황태자 저하를 바라보았다.

“그, 그렇다면, 왜 알리시아를 고른 것이냐?”

“폐하, 그것은 순전한 우연이었습니다.”

“우연이라고?”

더 이상 놀랄 수 없을 정도로 화들짝 놀라버린 황제 폐하. 왠지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몰랐구나.

“황태자 저하가 이 혼담을 생각해낸 것은, 폐하와 마찬가지로 협박 편지를 몇 차례 받아왔으며, 거기에는 자신만이 아는 정보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극소수만이 아는 정보를 만든 후, 그 정보가 어느 길로 흘러가는지 알고자 하셨죠. 그 정보에 신빙성이 있어야 하니, 그럴싸한 사람을 한 명 골라야 했고요. 그게 알리시아 양이었습니다.”

“아아...”

새하얗게 질린 황제 폐하의 얼굴. 나는 거기에 추가 공격을 가하기로 했다.

“폐하. 폐하께서 저에게 받은 협박장이라고 하며 보여주셨던 것 기억하십니까.”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폐하.

“그 협박장을 받으셨을 때, 특이했던 것이 있으셨는지요.”

“아니, 별 것 없었다. 그냥 편지였을 뿐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점이 폐하를 의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처음 말씀드립니다만 며칠 전 소신도 그런 편지 한 통을 받았사옵니다.”

“뭐? 왜 얘기 안 했어?!”

형이 큰 소리를 냈다가, 폐하와 저하의 눈길을 받고 움츠러들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나중에 사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하, 소신의 편지는 푸른 빛이 돌며 잠시 후 스스로 타 버렸사옵니다. 저하의 편지도 그러하지 않으셨는지요.”

“그러하다. 잠시 후 스스로 타 버렸다.”

“뭣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황제 폐하에게 나는 추가타를 넣었다.

“그래서, 폐하, 소신과 황태자 저하가 받은 편지는 푸른 빛의 마력을 띠고 있었는데, 폐하가 보여주신 편지는 멀쩡했습니다. 그 푸른 빛으로 빛나는 편지를 받고 소신은 그제야 폐하를 의심하기 시작했사옵니다. 폐하께서 보여주신 그 편지가 가짜라고 결론내렸지요. 앞에서 제게 잘못된 정보를 주신 것과 더해, 폐하는 저하의 혼담이 성사되지 않는 것을 원하신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내가 잠시 이야기를 멈춘 동안, 세 사람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그래서 폐하. 저는 그 날, 폐하께서 저를 처음 만난 날을 다시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그 날, 폐하께서는 제게 황태자 저하에 대해 부정적인 뉘앙스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네가 변변치 못해 이런 자들에게 속는 것이다’라는 투로 말씀하셨지요.”

폐하는 침묵을 지켰다. 나머지 두 사람은 얼른 다음 이야기를 하라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으아.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네요.

6부와 7부를 총정리하는 자리이다 보니, 전에 쓴 걸 찾아보고 또 찾아보고...

오늘은 한 편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슬슬 다음주를 위해 비축분을 마련해야 해서...

제가 글을 쓰는 힘이 되는, 찾아서 읽어주시고 선작/추천/코멘트/쿠폰 주시는 여러분들께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카드보험 님, 디클레인 님, 쓰굴 님, 도마뱀DX 님, 화이트프레페 님, 체크필통 님, eastarea 님 // 모두 놀라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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