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04화 (204/309)

00204 8. 시궁창에서 꽃은 필 수 있을까 =========================

“전령을 들라 하라.”

린베크 아버님의 뒤에 서 있던 부관이 눈짓하자, 천막 입구에 서 있던 병사가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곧, 먼지를 뒤집어쓴 병사 한 명이 투구를 옆구리에 낀 채 들어와 부복했다.

“보고하라.”

“네! 적의 동태가 파악되었습니다! 적은 지금 이 지점으로부터 하루 정도의 거리인 지난 구릉지역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역시 거기인가... 보고서는 가져왔겠지?”

“넷!”

전령은 품에서 보고서를 꺼내,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내밀었다. 혹시 모르니, ‘정보 확인.’

<전령대의 보고서입니다. 위협이 되는 요소는 없습니다.>

다행이다. 보고서가 린베크 아버님에게, 그리고 황제 폐하에게 전달되는 동안, 병사들이 다가와 탁자에 펼쳐진 지도에 핀을 꽂고 있었다. 핀에는 깃발들이 달려 있었다.

“흠, 보고서에 따르면... 정확한 규모까지는 파악할 수 없으나, 님크 기사단과 에아뉘 기사단이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심지어 지금까지 별개로 움직이던 궁병대와 보병대도 함께 움직이고 있다...라. 배치의 정확한 모습은 공중에서 정찰하여 확인할 필요가 있다... 폐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쯧 하고 혀를 찬 폐하는, 사령관님이 물어오자 ‘아닙니다’라고 짧게 고개를 저었다. 사령관님은 고개를 한 번 갸웃 한 다음 말을 이었다.

“지금같은 추세라면, 저들은 구릉지를 포기하지 않고 거기에서 진을 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나스프 공작령을 배후에 두고 있다. 우회가 힘든 상황이라는 걸 저들도 알고 있군.”

“네, 옳게 보셨습니다, 폐하. 우리가 나스프 공작령을 무혈로 탈환하고 혼란을 진정시킨 것, 그리고 그로부터 보급을 받고 있는 것은 저들도 예상하고 있는 바일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우회해서 대륙 동부의 백작령들을 해방한다면, 저들은 곧바로 공작령을 치거나, 또는 공작령에서 오는 보급선을 방해할 것입니다.”

“그래. 그리고 우리의 왼쪽에는 대균열이 있지.”

“그래서 우리는 지금 정면으로, 그것도 좋은 지형을 선점하고 있는 적을 상대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군.”

폐하의 정리에 모두가 약간은 침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 잠시 후퇴하여 적을 끌어내는 것도 방법입니다.”

다르임 형님이 그렇게 진언했다. 폐하는 다르임 형님을 잠시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경의 말이 틀리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시간이 없다.”

시간을 언급하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제국은 지금 극도의 혼란 상태였다. 황제 폐하가 그렇게 암살된 이후, 제도의 시민들은 모두 공포에 떨어야 했다. 언제 누가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과 불신 풍조가 제도를 휘감았다. 그런 상황에서 황위에 오른 아제트 황제 폐하의 솜씨는 탁월했다. 이미 국정 경험이 많았고 대부분의 중신들에게 실효적인 지배력을 발휘하고 있던 황제 폐하는, 중신들을 장악하는 한편, 제도의 신민들을 모아놓고 건재를 과시하여 혼란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안정된 것은 제도 뿐이었다. 내가 처음에 예견했던 대로, 프그단을 비롯한 엘프의 손길은 저 깊은 곳까지 뻗어 있었다. 융파트의 님크 기사단의 절반, 그리고 나스프의 에아뉘 기사단의 절반이 봉기해, 님크는 나스프를, 에아뉘는 융파트를 휘저으며 약탈과 방화를 일삼았다. 이미 중부와 남부 주민 중 상당수가 전란에 휩싸여 난민이 된 상황이었다. 다행인 점이라고는 여름이 된 날씨라 동사(凍死)의 위험이 없다는 정도밖에 없었다.

“최대한 빨리 저들을 무찌르고, 반란을 수습 단계로 이끌어 가야 한다. 여기서 장기화가 되면 진정상태로 돌려놓은 푸른 산맥 건너편마저도 흔들려버릴 수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빠르게 반란을 종식해야 한다.”

“폐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될 것입니다.”

묵직한 린베크 아버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음의 말은 모두에게 신뢰감을 주고도 남았다.

“폐하께서 그리 말씀하셨으므로 우리의 전략 방향은 적을 정면에서 쳐부수는 것을 목표로 하겠습니다. 사실 선택지가 많지도 않습니다. 지금 저들이 밀리다가 밀리다가 회전을 선택한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온 것이기도 합니다.”

“저...”

사르임 장군이 손을 들었다.

“말하게, 장군.”

“어... 저... 저들이 갑자기, 네, 갑자기 회, 회, 회전을 선택했다면, 어, 어떤 계책, 계책이 있기 때문은 아닌가, 화, 화, 확인해야 한다고 새, 생각합니다.”

아이고. 저 분이 유일한 단점이 아랫사람들하고 같이 있으면 말을 안 더듬는데 황제 폐하를 비롯해 높은 분들하고만 있으면 너무 긴장이 심해 말을 더듬는다는 점이다. 하위 장교에서 출발해 장군이 되기까지 저 말더듬는 버릇 때문에 고과에서 불이익을 받은 적도 많다나?

“이제 좀 그만 긴장하게. 전장에 나서면 누구보다 용맹하면서 왜 이리 긴장했어. 저기 말석의 모스 백작도 멀쩡하게 잘 있잖나.”

그러면서 눈을 찡긋하는 린베크 아버님. 아이고. 나는 고개를 숙였고 나머지 참석자들은 잠시 껄껄거리며 웃었다. 웃음을 거둔 아버님이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닐세. 저들은 분명 전력에서 열세야. 그동안 나스프 공작령 탈환을 비롯한 산발적인 전투에서 우리 기사단의 주력인 기병대 전력은 소모가 거의 없었네. 정찰과 경계에 힘썼던 사르임 장군과 정보부의 공훈이 컸지.”

장군과 에아임 형은 미소띤 채로 고개를 꾸벅였다. 아버님은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저들은 분명 우리 기병대의 돌격을 막기 위해 전장에 무슨 수를 냈을 것이다. 그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이다. 다르임.”

“네, 사령관님.”

“기병 50기를 동원해 전장을 위력 정찰하라. 만약 적이 집요하게 막거나 반격해 온다면 맞설 필요는 없다. 전력을 온존하라.”

“넷!”

“에아임, 그리고 엔데 경.”

퍼뜩 정신을 차린 엔데 경은, 다행히 “네, 넷?”하고 되묻는 추태를 보이지는 않았다.

“엔데 경. 마법사의 공중 정찰이 필요하오.”

“...알겠습니다. 부담이 많이 가는 상황이지만 그 부담을 감수해야 하겠군요.”

“동시에 우리에게도 그런 공중 정찰이 올 수 있으니, 대비를 해야겠군.”

에아임 형이 손을 들고 말했다.

“사령관님. 모스 백작이 그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황제 폐하를 비롯해 높으신 분들이 모두 나를 돌아보았다. 쑥쓰러워진 나는 볼을 긁으며 말했다.

“만약 적의 마법사가 투명화 마법을 건 채로 온다면 그때는 어떻게 합니까?”

엔데 경이 입을 열었다.

“안심해도 좋소. 저 쪽에 7서클 혹은 그 이상의 마법사는 없소.”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안심이군요.”

비상(levitation)이 아닌, 자유로운 비행(fly)은 4서클의 생각보다는 큰 마법이다. 그리고 투명화 마법(invisibility) 역시 3서클에다가 제약이 많은 마법이다. 이 두 가지를 함께 쓰려면 1서클이 더 있어야 한다. 즉 7서클 마법사가 1서클 만큼의 과부하를 감수해야 한다. 그 이하의 마법사가 그렇게 하려면... 내 꼬라지가 난다. 과부하로 인해 다시는 마법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

“감시탑이 필요하겠소?”

“아닙니다. 아군 진영 어디에서든 저격이 가능합니다. 화살 회수만 좀 도와주시면 되겠습니다.”

이미 몇 차례 내 솜씨를 보여준 적이 있기 때문에, 모두들 아무런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건 그대로 됐고... 내일이나 모레 회전을 할 경우 우리의 준비는 괜찮소?”

“걱정 마십시오. 군의 사기, 경계 태세 모두 좋습니다.”

“보급품의 상태도 충분합니다. 현재 군의 식량은 신선재료와 보존재료를 합해 약 20일분이 있으며, 우리 군과 나스프 공작령을 잇는 보급로의 안전도 아직 문제 없습니다.”

다르임 부사령관과 렛지 장관의 대답에 린베크 아버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황제 폐하를 보자, 황제 폐하는 일어서서 말했다.

“나는 경들이 최적의 판단을 내렸을 것이라고 믿소. 나는 승리를 원하오. 승리를 통해 제국을 다시 안정시키고 모두를 위한 정치를 할 것이오. 나에게 승리를 가져오시오.”

어쩌면 오만하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요구이지만, 군주가 할 수 있는 요구이고, 그 군주가 아무런 불평불만이나 억지를 부리지 않아서일까. 모두는 자리에서 일어나 군례를 하며 대답했다.

“황제 폐하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

황제 폐하를 따라 원래 위치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기리인.”

에아임 형이 나를 불렀다.

“네, 형.”

“잠시 시간 괜찮겠냐?”

“잠시만요. 폐하께 허락을...”

“다 들었으니 얼른 다녀오게. 출발할 때까지 돌아오면 돼.”

폐하는 그렇게 말하고는 말을 걷게 하기 시작했다. 나는 폐하의 뒷모습을 향해 목례를 올린 후 돌아섰다. 그리고 자신의 천막을 향해 걷고 있는 형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주말에는 가족 모임이 있어 아무래도 일요일 낮 연재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다음주 연휴 연재가 벌써 걱정이네요...

작품 이름을 <굴러라, 기리인> 정도로 바꿔버릴까 싶네요 ㅎㅎㅎ

찾아서 읽어주시고,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 주시는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님들이 제 힘입니다.

eastarea 님 // 계~~~~~~속 굴려야죠, ㅋㅋ

화이트프레페 님 // 세상에는 어떨 수 없는 일도 있죠, 그리고 황태자가 친구가 된 시점에서 이건 이미 운명... 그냥 구르는 수밖에요 ㅎ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