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07화 (207/309)

00207 8. 시궁창에서 꽃은 필 수 있을까 =========================

“기리인, 와서 앉아라.”

부담스럽게도 오늘 저녁은 독대였다. 시종들이 병사들이 쓰는 금속제 넓은 접시에 요리를 담아 가져오고 있었다. 다행히 보급이 어렵지 않아서 아직까지는 식사가 잘 나오는 편이었다. 빵과, 과일과 야채, 그리고 이곳 평원에서 잡은 들소 고기였다.

황제라고 야전 생활이 그렇게 차이나지는 않았다. 테이블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보통의 테이블이고, 의자도 마찬가지였다. 병사들에게는 ‘황제 폐하께서는 우리와 같은 곳에서 주무시고, 우리와 같은 식기로 우리와 같은 것을 드신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겠지. 틀린 말은 아니다. 오늘은 병사들도 전부 다, 같은 소고기를 먹고 있을 거다. 황제 폐하에게는 향신료를 이용해 정성껏 구운 스테이크가 나오고, 기사들이나 병사들에게는 좀 대규모로 굽느라 약간은 누린내가 날 수도 있는 스테이크가 주어질 뿐.

“저격은 성공했다고?”

자기 접시의 고기를 크게 잘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폐하가 불명확한 발음으로 물었다.

“네, 폐하.”

“먹으면서 말해라. 괜찮으니까.”

그렇다면야 사양않고. 나도 폐하처럼 고기를 잘라서 입 안에 넣었다.

“저는 보고체계에 있지 않은지라 그 마법사가 어찌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신의 화살에 마법사가 맞고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역시 신궁이로군.”

“과찬이십니다, 폐하.”

“스스로도 과찬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러지 말게.”

나는 그저 머리를 긁으며 쑥스럽게 웃어보일 뿐이었다. 폐하가 빵을 찢다가, 새삼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면 경은 전장에 나오는 것이 처음이 아닌가?”

“아닙니다, 폐하. 소신은 제도로 내려오면서 이미 전투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북대공이 보낸 병사들과 전투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미 배에서 열 명에 가까운 사람을 쏘아죽였다는 내 말에 폐하는 약간 얼굴이 굳는 것 같았다.

“끔찍하지 않았나?”

“물론 끔찍했습니다, 폐하.”

“아니, 별로 안 그런 것 같은데.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소규모 전투에 나선 경험이 여러 번 있다. 잔병을 소탕하면서 사람을 직접 베어보기도 했지. 그리고는 그 날 저녁을 먹지 못했다. 고기를 볼 때마다 그날 내 칼에 전해지던 불쾌한 감촉이 떠올랐거든. 당시 내 상관이었던 린베크 삼촌은 ‘다 그런 거다’라고 하며, 토하는 내 등을 두들겨 주시더군.”

옛 일을 회상하는 폐하는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며칠을 앓고 나서 나는 내가 좀 더 정신적으로 자랐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무게가 어떤 것인지를 깨닫게 되니, 내가 내리는 모든 결정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더군. 가끔씩 그 때 그 장면이 꿈에 나오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소신은 그런 일이 없었군요...”

“나는 직접 죽였지만, 경은 활로 멀리서 쏘았기 때문일까?”

“...그럴 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잠시 고민하려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지금은 생각하지 말자.

“이거, 식사 자리에서 심각한 이야기를 괜히 꺼냈군. 일단 먹자고.”

“네, 폐하.”

우리는 다시 별 말 없이, 소소한 잡담만을 나누며 식사를 시작했다. 지금 내가 이 전장에서 하고 있는 임무가 몇 개 있는데, 초장거리 저격 임무와, 작전회의의 참모 임무, 그리고... 황제의 전령,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럴 때 말벗이 되어주는 것이다. 정말이지, 내가 저격 임무나 참모 임무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내가 황제 폐하의 미동(美童)이라는 소문이 끝없이 돌았을 것이다. 사실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고 있지만 지금도 아마 돌고 있을 거다. 그나마 그간 초장거리 저격을 몇 번 선보여서 ‘신궁’ ‘괴물 활’ 같은 이야기가 돌고 있는 게 다행이다.

“저, 폐하.”

궁내부원이 쪽지 하나를 들고 와 폐하에게 내밀었다. 폐하는 그걸 읽더니, “들라 하라.”고 말했다. 그 얘기가 떨어지기 무섭게, 린베크 아버님이 안으로 들어왔다.

“사령관님, 어서 오세요. 식사는 하셨습니까?”

“네, 폐하. 간단히 먹었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그렇게 하세요.”

“...폐하, 그리 쉽게 허락하셔도 되는 것입니까?”

“내가 꼬장꼬장하게 따지고 들면 ‘알지도 못하면서 나선다’는 이야기가 돌 것 아닙니까?”

린베크 아버님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웃음을 터트릴 듯, 혹은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를 듯한 표정이었다. 황제 폐하는 웃으면서 “농담입니다.”라고 한 후, 여상스러운 말투로 덧붙였다.

“내가 전략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만, 나보다는 린베크 사령관 및 그 휘하의 작전참모들이 훨씬 더 잘 알겠지요. 그렇다면 그대들이 제시한 작전을 믿고 맡기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 자명하지 않겠습니까.”

린베크 아버님은 즉시 군례를 올리며 말했다.

“신뢰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아버님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모스 백작을 함께 데려가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그는 전장의 초심자입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괜찮습니다. 다르임 부사령관 및 몇 명의 병사들이 그를 적극적으로 지킬 것입니다. 전장에서 그의 활은 기사 1개 분대보다 훨씬 더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럼 그것도 믿고 맡기겠습니다. 그는 나의 친우이자 소중한 의논 상대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그는 제게 의붓아들이 되기도 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군례를 올린 아버님은 나에게 말했다.

“기리인, 잠시 나가자.”

어째 예감이 좋지 않다... 하고 따라나갔는데, 아니나다를까.

“야습이요?”

“그래. 저 쪽은 우리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마법사들의 공중 정찰로 인해 어느 정도 위치와 포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일은 저들도 우리를 경계할 테니, 오늘 기사와 궁수 일부, 마법사 일부로 야습을 해서 적들의 혼을 빼놓으면 내일과 모레 훨씬 더 유리하게 전황을 이끌어갈 수 있을 거다.”

“네...”

“당연히 함께 하리라 믿는다.”

‘띠링!’

<메인 퀘스트(4) - 진흙탕>

<#3. 야습>

<당신에게 야습에 참여하라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거절 시, 황제, 린베크, 다르임의 당신에 대한 호감도가 급격히 하락합니다.>

이건 뭐, 거절하지 말라는 거잖아.

“당연히 함께 하겠습니다.”

아버님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용기 없는 자는 로그푸스가 될 수 없지. 준비하고, 내 천막으로 오거라.”

그러더니 아버님은 내 어깨를 두어 번 툭툭 쳐 주고는, “필요한 것은 천막에 가져다 놓도록 했다.”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애초에 내가 거절할 거라고는 예상조차 안 하신 모양이네요? 아이고.

‘띠링!’

<상황을 봐서 알겠지만 거절은 함정이었습니다. 함정에 빠지지 않은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아 나 근데 이 자식이 장난치나.

<메인 퀘스트(4) - 진흙탕>

<#3. 야습>

<전장이란 때로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물론 개개인의 목숨마저도 그러합니다. 당신은 ‘고귀한 의무’ 때문에 별 수 없이 적진으로 달려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본 시스템이 당신을 지원할 것입니다.>

<1차 목표. 생환하세요.>

<2차 목표. 적에게 의미있는 전략적 타격을 주세요.>

<3차 목표. 적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세요.>

<위험도 : B>

<난이도 : A> <성공 시 공훈이 적립되어 차후 포상에 유리해지며, 연계 퀘스트가 부여됩니다.>

...내 인생 왜 이러냐. 이번엔 3단계부터 난이도 A에 난생 처음보는 위험도 B야... 거절도 불가능하고.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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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천막으로 돌아가보니, 쪽지 한 장과 검은색 긴 로브, 그리고 통 하나가 놓여 있었다. 쪽지의 내용은 이랬다.

‘말은 야간 습격 준비가 끝났습니다.

활과 화살, 그리고 얼굴과 손에 통의 가루를 발라 비반사 처리를 부탁드립니다.

오늘 백작님의 위치는 다르임 부사령관의 옆에서 저격 역할을 맡아주시면 됩니다.’

군령이다. 거부할 수 없다. 전쟁터에 나왔을 때 이미 어느정도 각오한 일이다. 그리고, 다르임 형님 옆에 있으니 괜찮을 거다. 하지만 나는 이를 꽉 악물어야 했다. 내 온 몸이 떨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솔직히 무섭다. 지금까지 전쟁터에 나왔지만 단 한번도 적진으로 직접 들어간 적이 없었다. 후방에서 화살만 날렸을 뿐이었다. 그걸로도 내 공훈은 누가 뭐라하지 못할 정도는 됐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나도 ‘높은 사람’이다. ‘고귀한 의무’를 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작위 같은 거 받지 말 걸 그랬나.

나는 옷을 갈아입으려다, 문득, 책상 위에 놓인 편지를 발견했다. 지금은 이걸 읽을 시간도, 이걸 생각할 여유도 없지만... 나는 맨 위에 놓인 선생님의 편지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걸 뜯지 않고 그대로 셔츠의 윗옷 주머니에 넣고, 그 위로 갑옷을 입었다.

이 편지를 읽으려면 살아서 돌아와야겠지. 무사히 돌아와서, 내일, 답장을 쓰자. 반드시. 나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드러난 부분에 재를 바르고, 활과 화살촉들도 재를 묻힌 후, 등에 활을 메고 전통을 옆에 찬 채 막사 밖에 매어진 말에게 다가갔다. 내가 전쟁터에서 타고 다니고 있는 말인 레브 – 갈색의 암말이라 레이디 브라운, 줄여서 레브라는 이름이 붙었다 – 에게도 이미 발에 소리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한 천보자기가 씌워져 있었다. 나는 레브의 고삐를 말뚝에서 풀어내고, 레브를 가볍게 토닥인 후, 레브 위에 올라타 사령관님의 막사를 향해 출발했다.

============================ 작품 후기 ============================

기리인을 본격적으로 굴릴 예정입니다.

이렇게 굴릴줄 알았으면 그냥 '굴러라!' 정도로 제목을 할 걸 그랬습니다.

제게 힘을 주시는, 읽어주시고 선/추/코/쿠 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5~7일 동안에는 여행 관계로 하루 한 편씩만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hansky 님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꿰뚫기만 했지 뚫고 지나간 건 아니니까요. 마법사를 회수(!)하면 화살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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