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08화 (208/309)

00208 8. 시궁창에서 꽃은 필 수 있을까 =========================

“우리는 모두, 전장에서 뼈가 굵은 기사요 마법사들이며 궁수들이다.”

크지 않은 목소리로, 린베크 아버님이 늘어선 기사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었다. 기사들 모두가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며 듣고 있었다. 여기서 손을 들어 ‘저는 아닌데요’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반면 저들은 안전한 곳에서 좀도둑이나 잡던 놈들이다. 우리, 황실 기사단과 친위군에 들어오지 못하는 놈들이 모인 놈들이란 말이다. 그런 놈들에게 우리, 정예중의 정예가, 황제 폐하께서 직접 기대하고 계시는 우리가 지면 되겠는가?”

“아닙니다!”

크지 않게, 하지만 절도있게 모두가 두 발을 모으며 외쳤다.

“황제 폐하께서는 이 계획을 듣는 순간, 두 말 없이 바로 찬성하셨다. 폐하께서는 나와 제장들을, 그리고 당신의 충성스러운 기사들을 믿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폐하께서 신뢰하시는 나 역시 여러분을 신뢰한다. 경들은 나의 신뢰에 보답할 수 있겠는가!”

“넷!”

짧고 굵은 대답에 린베크 아버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빛을 보였다.

“좋다. 작전에 대해서는 다르임 부사령관이 설명할 것이다.”

아버님이 연단에서 내려가고, 다르임 형님이 올라왔다.

“아주 간단하다. 내가 선두에 설 것이다.”

네에?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윌로우(willow)가 되어, 적을 꿰뚫는다. 그리고 크게 휘저은 후 돌아온다. 마법사, 그리고 궁기병대는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전과 확대에 기여하고 퇴로 확보와 추격 차단에 힘쓰라. 알겠는가?”

“넷!”

지극히 단순한 작전이다. 열심히 따라가라. 괜찮을까? 그 정도로 저들은 숙련된 병력이라는 뜻일까? 그러면, 그 안에서 나는 괜찮을까?

“좋다. 진형을 구성하라!”

그렇게 말한 다르임 형님은, 연단 아래 서 있던 나를 손짓했다.

“기리인. 너에게는 좀 특별한 임무를 줘야겠다.”

점입가경이로군.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퀘스트도 받았고 이제 물러설 수도 없다.

“고귀한 임무를 다하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다르임 형님은 나를 보더니, 미소지었다.

“얼마전까지 작위도 없었던 사람의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군. 귀족 나부랭이보다 훨씬 귀족적이야. 훌륭한 마음가짐이다, 기리인.”

그저 저는 퀘스트를 깨고 싶을 뿐입니다요...

“원래는 너를 궁병대와 함께 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네 활의 파괴력이 너무 아깝다. 너를 좀 더 주목받게 만들어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 요량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냐?”

잠시 생각해 본 나는 답했다.

“‘괴물 활이다’ 하면서 적이 공포에 질리는 상황을 만들겠다 이거죠? 회전 때도?”

“그래. 이해가 빨라서 좋군. 그걸 위해 오늘 우리 기사단이 만들 윌로우의 한가운데에 네가 설 것이다.”

“...보일까요?”

“그건 걱정하지 마라. 간격은 충분할 거다.”

“...제 화살에 맞을까봐 걱정하는 아군들은 없을까요?”

“걱정하지 마라. 그들은 기사요 군인이다. 명령에 따를 것이다.”

나는 완전히 납득하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초반에 몇 명을 완전히 제압하면, 알아서 적들이 공포에 빠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와 후방의 마법사대나 궁병대가 따라가기도 훨씬 쉽겠지.”

“저를 노리는 화살이나 마법은요? 작전대로라면 없을 것 같지 않은데요?”

“그걸 위해 네 옆에서 너를 보조하며 방어에만 신경쓸 기사 두 명을 붙여줄 것이다. 그들이 너에게 목표에 대해서도 조언해 줄 거다.”

이 정도의 조건이라면 불만 없지.

“알겠습니다.”

다르임 형님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 후 자리를 떴다. 에아임 형이 머리를 쓰다듬는 것 같은 거겠지?

나는 심호흡을 했다. 떨리는 마음도 있고, 두근거리는 마음도 있다. 그리고 나는 한 때 마법사로서, 자신의 마음을 관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마법사로서 그 마음을 가진 자신 모두 나 자신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적진으로 갔다가 다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는 것도 나이고, 무슨 일이 있을까, 이번에도 어떠한 공훈을 얼마나 세울 수 있을까 하고, 나한테는 없을 줄 알았던 야심에 두근거리는 것도 나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진정한 집중이, 지나친 이완도 지나친 긴장도 아닌 집중이 탄생한다.

“출발! 말이 지치면 안 되니 속도는 트롯(trot)으로 맞춘다. 약 두 시간 정도 후에 적과 접촉할 예정이다!”

곧, 제일 선두에서 다르임 형님이 말을 약간 빠르게 걷게 하기 시작하고, 그 뒤에 두 명, 세 명, 그리고 점차 날카로운 화살촉 모양을 만들며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새 내 옆에 서 있던 두 명의 기사가 고개를 끄덕여보이는 것을 보고 마주 고개를 끄덕인 후, 고삐를 가볍게 때려 레브를 앞 사람을 따라 걷게끔 했다. 그 동안 정찰 역할을 맡은 것 같은, 여남은 명의 기사가 말을 달려 멀리 흩어져 사라지고 있었다.

얼마나 말을 달렸을까.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본 나는 날이 밝지 않다는 걸 알았다. 새삼, 오늘이 그믐이라는 걸, 달이 없는 밤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것도 오늘 밤 야습을 결정한 주된 이유이겠지. 별들은 많이 떠 있었지만. 별님들의 약한 빛 만으로는 한 덩어리가 되어 말발굽 소리조차 최소한으로 억제한 채 앞으로 달려가는 우리들을 온전히 드러내지는 못했다.

전장에서 이런 한가로운 생각을 해도 될까. 짧게 한숨을 쉰 나는, 어깨를 움직여 어느새 굳어버린 팔과 어깨를 풀었다. 아쉽다. 옆 사람과 이야기라도 할 수 있었으면 긴장을 푸는데 훨씬 좋았을텐데. 하지만 우리는 야습을 하러 가는 중이다. 그런 군기가 풀어진 모습을 보였다가는 나로 인해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될 사람들이 많다. 정신을 집중하자.

‘띠링!’

<정면 방향에서 말탄 사람 한 명이 달려오고 있습니다.>

나는 도저히 안 보이... 아, 저기. 지평선에 걸린 별빛을 잡아먹고 있는 검은색 그림자. 한 명이고, 최대한 정숙을 유지하고 있다. 아까 파견한 정찰대인가 보다. 대열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뛰쳐나가더니, 그 그림자 쪽으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대열은 계속 전진해, 정찰을 마친 장교가 보고를 끝냈을 때는 이미 그 대열에 합류한 후였다. 보고를 받은 장교가 다르임 형님에게 상황을 낮은 목소리와 수신호를 동원해 뭐라뭐라 설명하는 것 같았다. 다르임 형님은 고개를 끄덕인 후, 손을 높이 들었다가, 앞으로 내렸다.

두두두두!

갑자기 행렬의 속도가 한 단계 올라갔다. 트롯(trot)으로 약간 빠르게 꾸준하게 걸어오던 말들이 칸터(canter)로 이제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안 남았나보다. 내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자, 나를 보고 있던 나를 호위하는 기사 한 분이 내 눈길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끄덕인 후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였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지만 대략 30분 정도가 남았다는 뜻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쉬지 않고 달려오느라 말들은 조금 지쳐있는 것 같았다. 간간이 뒤에서 따라오던 마법사들이 앞으로 달려와 재생 마법을 걸어주지 않았다면 말들은 적진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지쳐버렸을 것이다.

두두두두. 우리가 칸터 속도로 한참 앞으로 달려갔을 때였다. 이제 저 멀리에 불빛이 몇 개 보이기 시작할 때였다. 조금만 더 달려가면 적의 숙영지에 다다르겠다 싶었을 그 때,

펑!

갑자기 우리의 앞에서 불꽃의 벽이 확 우리를 막아섰다. 대략 200보 정도의 거리에, 너비는 대략 20보 정도의 거리였다. 어마어마한 높이에, 이 멀리서도 확연히 알 수 있는 어마어마한 열기의 화염의 벽이었다. 뭐야, 걸린 건가? 아니면, 원래 여기에 함정이 있었던 건가? 어느 쪽이든, 뚫기에는 너무 위험하고, 멈추는 건 불가능하다!

“하앗!”

다르임 형님이 억지로 진로를 오른쪽으로 틀었다. 대열 전체가 화염의 벽을 왼쪽에 두게끔, 아주 부드럽게 방향을 틀어 앞으로 달려갔다. 베테랑 다운 대처였지만, 나는 저게 전부가 아닐 것 같다는 걱정이 들었다. 만약 내가 적의 사령관이라면, 그리고 이런 안배를 해 놨다면...

펑!

역시, 그럴 줄 알았다. 우리가 방향을 튼 앞에 다른 화염의 벽이 생겨났다. 다행히 늦지 않게 방향을 튼 형님을 따라 아직 우리 500인의 습격 분대는 달려가고 있지만, 주변을 돌아본 내 눈에는 분명한 동요가 느껴졌다. 저들은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화염의 벽에 갇혀버리고 말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뒤를 돌아보았다. 마법사들이 위치한 후방의 대열에서는 어떻게든 마법을 캐스팅해보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이미 그들은 급격한 방향전환에 따라오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하고 있었다. 젠장!

‘띠링!’

<당신의 추측대로 지금 토끼몰이당하고 있습니다. 빨리 위기를 돌파해야 합니다.>

나도 알아!

나는 등에 멘 활을 앞으로 가져오는 동시에, 전통에서 화살 하나를 꺼냈다. 디오틀라 님이 바꿔준 보석, 바꾸고 나서는 한 번도 쏴보지 못했는데. 지금이 기회인 것 같다. 나는 푸른 보석에 엄지를 갖다대고 꾸욱 하고 눌렀다. 활이 한 번 부르르 떨리다가, 다시 조금 더 길게 부르르르르 떨리더니, 활에서 뻗어나간 푸른 빛이 화살 끝으로 옮겨졌다.

나는 말을 타고 앞으로 달리는 자세로, 활시위를 당겨, 앞을 겨냥했다. 조금만 더, 곧 기회가 올 거다... 옳지! 저 앞에서 불의 벽이 다시 솟구쳐 올라온다. 다르임 형님이 다시 방향을 틀려 할 때.

나는 최대한 크게 고함을 지른다.

“그대로 앞으로!”

동시에 나는 최대한으로 당기고 있던 활시위를 부드럽게 놓았다. 이미 화살은 마나의 길을 따라, 우리 일행의 머리 위를 빠르게 비행해,  화염의 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미 화살 끄트머리에서만 빛나던 푸른 빛이 화살 전체로 옮겨가고 있었다. 화살이 마나의 레일을 벗어나는 150보쯤에 이르자.

꽈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공중에 흰 꽃이 피었고... 그 흰 꽃은 순식간에 얼음이 되기 시작했다. 화살은 얼음의 푸른 선을 허공에 그리며, 불길 위로 꽂혀내렸고... 그리고,

쩌저저적!

하루 세 번을 쓸 수 있는 얼음 마법을 한 서클 높여 한 번으로 모은 내 빙계 마법 화살은, 사람 열 명의 키만한 거대한 화염의 벽에 대항하는 거대한 얼음의 벽을 세웠다. 그리고, 불과 얼음이 맹렬히 싸우다가, 둘 다 공멸하는 지경에 처했다. 불길도 가라앉고, 얼음의 벽도 허리춤 정도의 높이까지 녹아내렸다. 흘러내린 물이 주변의 불길을 조금씩 더 가라앉히고 있지만, 지금 그걸 기다릴 여유는 없다.

============================ 작품 후기 ============================

그냥 기리인을 편하게 야습하게 둘 수야 없죠.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 밤 집필 시간은 아이들이 일찍 자주느냐에 달렸...흑흑.

늘 찾아서 읽어주시고 선작/추천/코멘트/쿠폰 주시는, 제 힘이 되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기리인은 그냥 궁수라기 보다는 전략병기에 가까우니까요.

eastarea 님 // 그러고보니 대박 사망플래그네요. 남한테 얘기라도 했으면 빼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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