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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력 101에 매력 100, 마나는 0-215화 (215/309)

00215 8. 시궁창에서 꽃은 필 수 있을까 =========================

천막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형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는 이미 몇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상석에 앉아있는 황제 폐하와 린베크 아버님, 부사령관이자 기병대장인 다르임 형님, 보병대장 사르임 장군 – 다르임 형님과 우연히도 이름이 비슷해 오해를 많이 산다고 하지만 두 사람은 심지어 같은 군에서 근무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 들이 있었고, 그리고, 놀랍게도 나스프 공작님이 앉아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오, 기리인!”

내가 들어서자 황제 폐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황공하게도 입구까지 걸어나와 나를 맞이했다.

“좀 쉬었나? 몸은 괜찮아?”

“네, 폐하. 걱정해주신 덕분에...”

“그래, 그래. 다행이야. 자, 자, 얼른 이리 오게.”

폐하는 덥석, 내 손목을 끌고 가서, 자신의 옆 자리에 나를 앉혔다. 나는 황급히 자리에 앉으며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다행히 면면들이 정치가들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지금 황제 폐하는 나를 자신의 총신(寵臣)으로 거의 선언하다시피 한 건데... 나스프 공작은 지금 뭐라 할 상황이 아니고, 사르임 장군은 군부의 인물인데, 군부는 린베크 아버님의 입김이 강하고... 아버님과 형님 두 분은, 뭐, 내 편일 테니까. 그나저나 이 분 왜 이러시나...

“긴급 회의를 시작하겠소. 시간이 많이 없소. 당장이라도 적의 사절이 올 수 있는 시간이니 빠르게 정리 바라오. 그럼, 에아임. 보고하거라.”

린베크 아버님이 말하자, 에아임 형님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보고를 시작했다.

“어제 야습 병력은, 총 세 차례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1차는 적이 우리의 진격로, 즉 지난 구릉지에 다가가는 평원 지역에 화염으로 만든 벽을 세워, 기병이 위주인 우리의 병력의 진군로를 바꾸려 시도했던 것입니다. 다르임 부사령관님의 말씀도 그러하고, 실제로 지도를 통해 분석해 볼 때 저들은, 우리 병력의 길을 통제해 우리를 한 쪽으로 몰아가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히 그 시도는 모스 백작의 활이 만든 거대 얼음벽으로 화염벽을 한 번 끊어냄으로서 그 지역을 돌파하면서 잡혔습니다.”

다르임 형님은 새삼, 나를 보며 고개를 숙여왔다. 내가 황송한 마음에 마주 고개를 숙이자 에아임 형이 말을 이었다.

“이건 적의 대비가 뛰어났다고도 볼 수 있지만... 글쎄요. 야습을 예상했다면, 우리의 병종이 정숙을 가한 기병이라고 예상했다면 가능했을 수도 있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저들의 반응이 마치 우리가 올 것을 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 조금 의아스럽습니다. 하지만 우수한 지휘관이라면 마땅히 야습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고, 실제로 저희도 어제 저녁에 야습을 대비하기도 하였으니까요. 그러니 이 첫 번째 위기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흐음. 캐면 뭐가 나올 거 같은데, 뭐 정보 참모는 형이니까 형의 판단을 따라야지... 에아임 형님은 말을 이었다.

“두 번째는 적의 숙영지에서 받은 위협입니다만, 여기에서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다르임 부사령관님과 모스 백작의 활약으로 큰 피해를 주고, 닫힌 숙영지의 문도 돌파해 나올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모두가 집중해서 듣기 시작했다. 형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기습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우리는 습격대가 보낸 전령을 받았습니다. 그 전령은 습격에 성공하였으며 추격하는 적 병력이 없다는 점을 들어 두 시간 후 귀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습격대는 얼마 후 평원에서 두 배의 적 병력에 따라잡히게 되었습니다. 다르임 부사령관님이 병력의 치명적인 열세 중에도 기사 한두명을 빼내어 시간차를 두고 이 본진에 보고하게끔 했지만, 이들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평원을 수색하였으나 이들의 시체가 발견되지는 않았습니다.”

아아... 역시, 그랬구나.

“물론 대평원이라 어떻게든 소리를 들으려면 들을 수 있었겠지만, 대평원에서 말 한 마리를 발견하고 잡는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적에게는 우리 일행의 발목을 잡은 약 천 명 규모의 병력 이외에, 본대와의 연락을 차단할 목적으로 운용된 별동대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것도, 우리 전령이나 정찰병의 운용방식을 아주 잘 알고, 이를 피해 우리를 기만할 수 있을 정도의 병력이 말이죠.”

“그럼 문제가 심각한 것 아닙니까.”

황제 폐하의 말에 에아임 형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뻔 했습니다, 황제 폐하.”

“뻔 하다니?”

“역시 모스 백작의 공이 컸습니다. 아마 저들의 목표는 우리 습격대 500명을 붕괴시키는 것이었을 겁니다. 다 죽이지는 못해도 흩어지게만 한다면, 저들은 가장 중요한 ‘시간’을 벌 수 있지요. 그 시간동안 어제 평원에 배치되었던 병력을 모아서 본대와 합류해, 전력에 사용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모스 백작이 말도 안 되는 위력의 활을 보여주면서 저들의 전력을 순식간에 절반 이상 꺾어버렸습니다. 군에서 부대의 절반이 전투력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여러분 모두 잘 아시겠지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보았다. 나스프 공작 마저도 약간의 미소를 띠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몸둘 바를 몰라 고개를 숙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형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금 문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의 군의 운용방식부터 어제의 야습의 정보와 귀환로에 이르기까지 정보를 누군가에게 흘린 자가 있다. 둘째, 적에게는 증원이 있으며, 꽤 큰 규모일 수도 있다.”

“그에 대해 알아낸 것은?”

린베크 아버님이 말을 재촉하자 에아임 형님은 말했다.

“우선 두 번째 문제부터 말하겠습니다. 충격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어제 모스 백작이 활로 사살한 대규모의 병력들을 적들의 패잔병이 처리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시체는 우리의 선발대가 도착할 때까지 그대로 있었지요. 그 시체 중에, 피부가 유달리 검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남대륙?!”

그 말수 없는 사르임 장관님이 큰 소리를 친 것만 봐도 모두의 경악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황제 폐하를 돌아보니 폐하는 턱이 쑥 빠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대륙인이? 대체 왜?”

“...참전 이유나, 규모, 병종 등에 대해서는 아직 아는 바가 없습니다. 아마 우리의 공중 정찰을 대비해 적들은 남대륙인들을 꼭꼭 숨길 것으로 보입니다. 남대륙인들의 육체가 병사가 되기에 타고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분명 우리에게 악재일 것입니다.”

잠시 모두들 생각에 잠겼다. 에아임 형은 모두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약간 주려는 듯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정보부에서는 이미 한 달쯤 전에 흥미로운 보고서를 하나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아직 명확한 증거가 없어 뜬소문으로 치부되었던 일인데, 제국 동부해안의 항구에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 잠시 여럿 나타났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들은 곧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나스프 공작님.”

“불렀는가?”

“공작님을 이 자리에 모신 이유가 뭔지 아시겠습니까?”

공작님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얼굴에 약간 질린 빛을 띄우며 말했다.

“설마... 그들이 입항한 항구가 뫼르말 백작가의 항구인가?”

형은 음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공작님은 머리를 싸쥐며 책상에 쿵 하고 엎드렸다.

“그 놈, 끝까지 속을 썩이는군. 황제 폐하의 진노로부터 몸을 지킨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줄 알 것이지... 이런 짓을 꾸며? 황제 폐하, 저는 뫼르말 백작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에아임 경, 억울하네.”

형은 놀랍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공작님께서 뫼르말 가와 손을 잡고 이런 일을 벌였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저희 군의 전력을 약화시킬 요량이셨다면 보급에 장난을 치는 것만으로 충분하셨을 테니까 말입니다.”

황제 폐하도 고개를 끄덕였다.

“에아임 경이 나에게만 보고해 준 몇 가지의 정보가 있습니다. 나는 그 정보에 의거해, 나스프 공작의 충심을 의심치 않습니다.”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형은 잠시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저는 오늘 아침 그 사실을 알고 얼른 기록을 가져오게 해 살펴보았지요. 그리고 뫼르말 백작가가 저들에게서 가장 피해를 덜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피해라고는 농경지가 잠시 불탄 것 뿐이고, 그들은 곡물을 바닷가로부터 수입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반면 그들 주변의 백작령이나 후작령은 큰 피해를 입고, 심지어 영지의 경비병들이 큰 피해를 보기도 했지요.”

“에아임 경, 수치로 말씀해 주세요. 뫼르말 백작가가 역심을 품었을 확률은 어느 정도로 보고 있습니까?”

“7할에서 9할 정도라고 봅니다.”

“그렇군요...”

폐하는 팔짱을 끼고, 약간 시선을 내려 탁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뫼르말 백작가 역시 피해자이니 죄를 주지 말라고 하신 것은 선황제 폐하의 유언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중신들의 의견에도 그들을 벌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오히려 그들을 불안하게 한 것일까요...”

============================ 작품 후기 ============================

다행히 시간맞춰 쓸 수 있겠네요.

낮 연재를 하지 못했는데도 많은 분들이 읽어주셔서 감동했습니다.

제게 힘이 되어주시는, 찾아서 읽어주시고 선작/추천/코멘트/쿠폰 주시는 독자님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계룡산도인 님 // 감사합니다!

melontea 님 // 잊혀질까 두려워서...ㅠㅠ

화이트프레페 님 // 새삼스럽게...ㅎㅎ;;

유한도전 님 // 어쨌든 쓸 수 있을때까지는 써볼게요! 감사합니다 ㅎㅎ

eastarea 님 // 그거 왠지 땡기는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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