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6 8. 시궁창에서 꽃은 필 수 있을까 =========================
모두가 숙연해졌다. 숙연...이라고 하면 좀 그런가,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는 것에 가까우려나. 황제 폐하는 잠시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머리를 한번 좌우로 도리질치고는, 말했다.
“자,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됩니다. 지금은 일단 발생한 문제를 해결할 때입니다.”
진심이건 아니건, 저렇게 빠른 전환을 보이는 사람이라 마음에 든다. 폐하는 지체없이 물었다.
“에아임 경. 조금 전에, 님크 기사단의 남부 습격 피해에 대해 말했죠.”
“네, 폐하.”
“그 말은, 님크 기사단 중의 반란세력과 뫼르말 가 사이에 연결이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까?”
갑자기 좌중에 긴장감이 팍 일었다. 나 스스로도 허리가 쭉 펴지는 느낌이 들며 저절로 군침이 꿀꺽 넘어갔다.
“어디까지나 정황일 뿐입니다만,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이런 문제에서 정황은 맞는 경우가 크지요. 대규모 병력의 움직임에 있어 숨길 수 없는 것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뫼르말 가가 남대륙으로부터 수입한 식량이 반역자들 쪽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공식적으로는 융파트나 나스프와 관계가 단절되었음에도 지금까지 궁핍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 것이지요.”
나스프 공작이 다시 뭐라 말하려 했지만, 에아임 형님은 손바닥을 그에게 내보였다. 어찌 보면 약간은 무례할 수 있는 이 자세에 나스프 공작이 입을 다물었다.
“말씀드렸지만, 공작님. 저는 공작님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의심한다면 공작님을 이 자리에 아예 부르지 않았겠지요.”
“그렇다면...?”
“일단, 확실한 것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뫼르말 가와 남대륙 간에는 연결이 있다. 둘째, 뫼르말 가는 남대륙으로부터 식량과, 전투병 얼마간을 수입하였다.
셋째, 그 전투병과 식량이 지금 반란군에게 전달된 정황이 있다.
넷째, 적어도 제가 파악한 바 안에서는 나스프 가는 이에 관련된 바가 없다.”
에아임 형이 정리를 마치고 나자 모두가 침묵에 빠졌다. 아까 황제 폐하의 말이 끝나고 흐른 침묵이 할 말이 없어서였다면, 이번 침묵은 할 말이 있긴 한데 누가 물어볼 것이냐, 누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 것이냐에 가까운 것이었다. 결국은 황제 폐하가 (계속 말하던 사람이 그였으니까) 약간의 책임을 느꼈는지 입을 열었다.
“에아임 경. 지금 경의 말은, 남대륙, 뫼르말, 님크와 에아뉘의 일부를 합한 반란군, 이 끝에... 융파트가 있다는 뜻입니까?”
형은, 의외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 단정하기는 이릅니다, 폐하. 지금 융파트 영지는 우리 군의 보급을 맡아 준전시체제에 들어가 있는 나스프 영지와는 달리 평시와 같은 생활이 유지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병력의 움직임과 관해 숨기기 힘든 것이 많으니까요. 만약 융파트 가가 지금의 병력을 직접 지휘하고 있다면 바로 표시가 날 것이라고 봅니다.”
린베크 아버님이 옳은 말이라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그렇다면, 경의 판단은 무엇입니까?”
“정보 책임자로서 공식적인 답을 내리라면 저는 아직 확답을 내리기는 힘들다고 말씀드릴 것입니다. 하지만 폐하, 폐하의 친인으로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융파트가 이 배후에 있다는 의심을 거두기 힘듭니다.”
결국, 폭탄이 터졌다. 소리없이 터진 폭탄은 모두를 침묵에 잠기게 만들었다. 의심이 실제가 되는 상황이니 그럴법도 하겠지. 하지만, 제국에 고위 귀족을 꼽으라면 반드시 들어갈 융파트 공작가가, 반란의 의심이 있다니.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책은?”
“우선은 융파트 영지가 지금 평시 체제라는 점을 적극 이용해, 융파트 쪽에서 정보를 수집중인 수사 기사단 정보단원들에게 좀 더 정확한 정보를 모으라고 지시해 두었습니다. 문제는 그 결과가 제도를 거쳐 여기로 와야 하기 때문에 7일 정도는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입니다, 폐하. 7일 안에 회전이 발생할 것이 분명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번 회전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융파트 가를 배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에아임 경. 만약, 파라 경이 우리의 정보를 유출했다고 칩시다. 그 방법은 어떻게 되었을 걸로 추정하고 있습니까?”
형은 약간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황송하오나 그에 대해서는 아직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폐하. 엔데 경에게 아직 묻기가 힘들다 생각하여...”
폐하가 나스프 공작을 바라보았고, 공작은 약간 움츠러드는 듯 하면서도 폐하를 마주보았다. 나중에야 형에게 물어서 알게 된 일이었는데(물론 약간 짐작은 하긴 했지만) 황실 마법사 오클리프 엔데 경도 예전 프그단처럼 나스프 공작가의 추천에 의해 결정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프그단과는 달리 엔데 경은 될 사람이 된 거라고는 하지만... 그리고 마법사들은 비정치적인 인물이라고도 하지만, 그래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니까.
“외삼촌.”
황제 폐하가 폭탄이 터진 위에 재차 폭탄을 떨어트렸다. 약간 움찔하던 나스프 공작은, 역시 그간 쌓아온 경험이 헛되지 않은 듯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폐하께서 저를 그렇게 불러주신 것이 어언 15년 만인가요. 평생 그리 불릴 일이 없을 줄만 알았는데 까마득하군요.”
공작님이 가볍게 견제하듯 두세 마디 던졌지만, 폐하는 그 모두를 무시하며 바로 치고 들어갔다.
“외삼촌. 저는 믿고 싶습니다.”
곧바로 공작의 심장을 향해 뻗어진 말의 칼날. 공작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당한 듯, 눈을 크게 뜨며 폐하를 바라보았다. 문득 나는 폐하의 시도가 아주 좋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의 알력은 잠시 뒤로 제쳐두자. 나는 당신을 신뢰하고 싶은데, 당신이 나에게 신뢰를 할 수 있는 뭔가를 주면 좋겠다. 그리고 저 말에는 아마, 이 반란을 진압한 후에도 당신을 신뢰할 것이다, 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거겠지. 아무래도 나스프 공작가를 바로 무너트릴 수는 없을테니까...
“폐하. 소신의 충심은 언제나 제국과 폐하를 향해 있사옵니다.”
약간 부족한 말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의외로 폐하는 믿기로 한 듯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감사합니다. 그럼 믿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황제 폐하는 나스프 공작이 어떤 표정을 짓든지 말든지 무시한 채 말했다.
“황제의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두세 번 겪은 일이라 늦지 않게 일어났다.
“에아임 경은 지금부터 파라 융파트 경을 비공식적으로 정보 유출의 용의자로 판단하도록 하십시오. 엔데 경과 합력하여 파라 경으로부터 정보가 전달되는 방식에 대해 연구하십시오. 동시에, 린베크 사령관과 다르임 부사령관, 사르임 보병사령관은 머리를 맞대고, 작전회의에서 파라 경을 효과적으로 배제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십시오.”
“넷!”
모두가 군례를 올렸다. 폐하는 그제야,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이 황제의 결정입니다. 모두 돌아가도록 하십시오.”
혹시나 나에게 무슨 하소연이라도 할까 싶어 황제 폐하를 바라보자, 폐하는 내 뜻을 짐작한 듯 고개를 살짝 저어 보였다. 지금은 아니라는 뜻이겠지. 나는 폐하에게 목례한 후, 폐하를 혼자 두는 게 좋겠다 싶어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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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는 오후가 반쯤 지나갈 때까지 자신의 천막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대충 궁내부원들을 떠 봤는데(하도 자주 보니 친해지지 않으려 해도 친해질 수밖에...) 점심식사도 하는둥 마는둥이었다고 한다. 온갖 감정이 그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지 않을까. 왜 내 대에 와서 이렇게 반란인가 하는 자괴감, 융파트가에 대한 의심과 분노, 앞일에 대한 걱정... 경험은 많지 않지만 이럴 때 섣부른 위로는 오히려 반감만 키울 수 있다는 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나는, 오후에 얻은 휴식시간동안 그간의 기록을 정리하면서도,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나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 고작일 뿐이었다.
내가 어젯밤의 일을 대략 기록으로 정리하고, 이어 내 마나 화살에 대해 앞으로 더 시도해 볼 것들에 대한 구상과, 전쟁이 끝난 후 이것들을 선생님과 연구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에 대해 적고 나니 이미 점심식사 후 두 시간이 넘게 지나있었다. 내가 잠시 아르논 양이 준 펜뚜껑을 닫고 크게 기지개를 켜는데,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 나는 즉시 책상 위를 정리하고 바로 나에게 주어진 천막의 밖을 나섰다.
전령 한 명이 폐하의 천막으로 황급히 들어가고 있었다. 그 전령이 땀을 흘리고 있거나, 혹은 온 몸이 먼지투성이이거나 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 이 전령은 진영 내부에서 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사령관님이 폐하에게 보냈을 가능성이 클 텐데... 무슨 일이 있어도 있구나.
============================ 작품 후기 ============================
하루 한 편이 되니 조회수가 1/2 이하로 떨어지네요 ㅠㅠ
쉬지 말고 어서 일해라! 라는 외침인 건가요...ㅋㅋ;;;
연휴 지나면 다시 올라가겠거니...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그때부터는 또 열심히 올려야죠.
제 글을 찾아서 읽어주시고, 선작/추천/코멘트/쿠폰 주시는 독자 여러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제 힘이십니다.
화이트프레페 님 // 뫼르말이 범인 맞네요 (수군수군)
eastarea 님 // 늘 감사합니다!
유한도전 님 // 칭찬 감사합니다! ^^
melontea 님 // 어이쿠... 감사합니다!!!!